92화. 상유천당 하유소항 (4)
탐욕이라 하기엔 너무도 절박한 시선이었다.
“다 죽지 않았습니까?”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은 그는 제하량이 말을 잃고 침묵하자 거듭 물었다.
“문 사제도, 청우 사제도 죽었으니 이제 제게 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제야 곤륜운룡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은 눈치였다.
“……없다. 버렸다.”
“배가 고픕니다. 배가 고프단 말입니다!”
그나마 제하량을 비난하지 않던 곤륜의 제자였다. 동시에, 그는 마의가 굶주림을 불어넣은 바로 그 실험체이기도 했다.
“다 압니다.”
그는 제하량의 옷소매를 쥐어뜯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없었고 손목에 손톱으로 할퀸 자국이 생겼다. 어찌나 독하게 손을 썼는지, 벌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다 안단 말입니다! 몰래 숨겨와서 다른 사제들에게만 나눠 주셨지요. 저도, 저도 배가 고픕니다. 대사형…… 대사형…….”
몸을 내던져 제하량을 넘어뜨린 그는 품에서 나온 주먹밥을 보고 반색했다. 흙바닥을 굴러 엉망이 된 음식이었으나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좋을 것이다.
그가 익힌 마공은 인간을 아귀로 만드는 종류였으니까.
‘곤륜운룡이 어떻게 나올까?’
진팔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 광경을 훔쳐봤다.
바닥에 떨어진 주먹밥을 들어 올린 도사가 이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려 할 때, 몸을 일으킨 제하량이 덤볐다. 그는 사제의 손을 쳐냈다. 다시 바닥에 떨어진 음식에 달려든 제하량은 손을 쓸 겨를조차 없이 이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입만 쓰는 꼴이 그야말로 개가 따로 없었다.
“대사형, 대사형, 대사형! 으아아아!”
눈앞에서 사라진 주먹밥을 보며 젊은 도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듯 제하량을 향해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다시는 저 먹으라고 준 걸 남의 입에 넣어주진 않겠군.’
이제야 스승이 무엇을 지켜보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우습게도, 당시의 진팔은 마의의 혜안에 감탄했다.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소요에 기절하듯 잠들어 있던 이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주먹질부터 말리기 위해 부산스레 움직이는 이들이 제하량과 동문을 떼어놓기 위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사형 미쳤습니까? 갑자기 대사형에게 왜 이러시는! 아악!”
“사제, 사제! 이게 무슨 짓인가. 그만두게!”
“사형. 그렇게 있지만 말고 좀!”
포로들이 달려들어 말렸으나 굶주린 자의 광기를 이겨내긴 어려웠다.
곤륜운룡은 입가에 흙을 묻힌 채 자신을 마구 두들기는 손을 온전히 감내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언제나 정갈하게 유지하던 옷차림에 흙발자국이 남았고,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흡사 광인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제하량의 낯은 무표정하기만 했다. 고통에 무지한 이처럼 두 눈은 깊고도 먹먹했다.
진팔은 그것이 슬픔이 고여 만든 호수가 아니라 무저갱인 줄도 모르는 채 생각했다.
참으로 아름답다고.
***
“으, 음식에 약을 넣은 건 스, 스승님이 시킨 일이었소. 내 의지가 아니야! 아니었다고.”
진팔은 중얼거리며 팔을 긁었다. 붉은 지렁이가 기어가는 모습처럼 생긴 흉터가 죽죽 그어져 있었다. 신강을 떠나 시달린 악몽의 자취였다.
언제고 이런 날이 올 거라 짐작했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제하량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들 죽을 때가 되면 본인의 죄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하나 상대의 감상 따윈 하량에게 중요치 않았다.
“본좌는 복수하러 온 것도 아니고 단죄하러 온 것도 아니다.”
마의의 마지막 흔적이니만큼, 상대에게 알아내야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진팔이 고개를 조아린 채 물었다. 덜덜 떠는 사내를 내려다보는 하량의 눈에는 일말의 증오도 묻어나지 않았다.
“아수라혈강시. 그 제조법을 알고 싶다.”
아수라혈강시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생강시의 하나였다.
진팔의 스승인 마의는 죽기 전에 아수라혈강시를 완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끝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마의의 마지막 실패는 결국 본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도, 스승님의 곁에서 일찍 떠난 탓에 자, 자세히는!”
진팔이 모른다고 말하려는 순간 목에 서늘한 날붙이가 와 닿았다.
“다 말하겠습니다.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이, 일단 인간을 선별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보통의 인간은 그 과정을 버텨내지 못하고 매번 죽음을 맞이한다. 하여 재료가 되는 인간은 빼어난 무골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고수여야 한다.
마공만 익혀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정순한 심법만 익혀서도 안 된다.
정파의 심법을 익힌 고수를 데려다가 충돌이 가장 적은 마공을 심고 살아남게끔 보살핀다. 이때부터 내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므로 고독과 금제를 심어 탈출하거나 반항하지 못하게끔 ‘조정’한다.
주절주절 설명하던 진팔은 흘깃 제하량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사내는 본인이 겪었던 일을 ‘제작자’의 입장으로 듣게 되었음에도 전혀 동요하는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성공한 실험체는 어떻게 되지?”
칼날이 살을 파고드는 감각에 진팔은 떨지 않기 위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가설, 뿐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진팔이 간신히 꺼낸 말에 하량이 턱짓했다.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뜻이었다.
“회복력이 좋아집니다. 팔다리가 꺾이거나 잘려 나가도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숨이 끊어져도 죽지 않습니다.”
하량은 눈을 내리깔았다. 예결의 비정상적인 회복력은 이미 겪어본 바 있다.
“더불어 주변의 기감에 예민해집니다. 호, 호전적인 성향을 드러내며 피를 갈구하게 되지요.”
이건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음혼귀마가 곤륜의 정상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시체의 가슴에는 말발굽 자국이 남아 있었기에 하량은 음혼귀마의 죽음에 적뢰가 어느 정도 기여했음을 알고 있었다.
단, 적뢰가 달려오기 전까지 사제는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
“하지만 가장 뛰어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순간의 신체로 나이가 고정됩니다. 어, 어느 정도는 환골탈태를 모방한 것이지요.”
“혹 자아를 가지는 경우는?”
하량의 질문에 진팔이 아리송한 낯으로 답했다.
“일단 생강시가 되기 전의 기억은 전부 사라집니다. 주, 주인의 명령을 용이하게 받게끔 만들기 위해섭니다. 그러니 제작 직후에는 피아를 모르는 어린아이 같을 거, 겁니다.”
그러나 하량의 사제는 예전의 기억이 있었다.
어떤 것은 아귀가 맞는데, 어떤 것은 전혀 달랐다.
애초에 아수라혈강시는 성공작이 존재한 적도 없으니, 하량의 의심은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주인이란, 아수라혈강시를 제작한 자를 말하는 건가?”
“본교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천마를 위한 것, 아수라혈강시 또한 교주님의 것입니다.”
문득, 하량은 침묵했다.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특히 제가 예상치 못한 일방적인 접촉일수록 그 불안감이 더 커지지요.’
흑점에 찾아온 예결이 창백한 낯으로 흑귀에게 그리 고백했다. 다른 사내는 안 된다고.
사제는 제하량과 흑귀 외의 모든 사내가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 둘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공교롭지 않은가.
하량의 고요가 길어질수록 진팔은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내내 무미건조하기만 하던 제하량의 낯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수라혈강시의 오감이 처, 천마신공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진팔은 입천장이 마를 정도로 열심히 떠들었다.
“스승님의 이론대로 제작된다면, 아수라혈강시는 제작되기 전에 모든 기억만 잃을 뿐입니다. 심장이 뛰고, 만져도 온기가 있습니다. 내공이 필요 없으니 단전도 존재하지 않지요.”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진팔도 잘 모른다. 마공과 정파의 심법을 충돌시켜 발생하는 힘으로 환골탈태를 유도할 거라고 광기 어린 음성으로 말하던 스승의 음성을 기억할 뿐이다.
하나 그렇게 두 기운이 충돌한 인간은 대체로 주화입마를 일으키고 죽는다. 마의가 원하는 그릇은 한 번도 완성되지 못한 채 깨지기만을 반복했다.
“하여 양민과 아수라혈강시를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마신공을 익힌 유일한 존재, 즉 교주님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수라혈강시는 천마신공을 익힌 자의 손에서만 웃고 울고 반응할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만난 예결은 하량에게 맹목적이었다. 이상하리만치 그를 따랐고 눈앞에 하량이 보이지 않으면 항상 주변을 맴돌았다.
곁에 있어 달라 부탁하던 사제의 애원이 떠올랐다.
‘나는, 사제에게 그토록 맹목적인 애정을 받을 일을 한 적이 없다.’
하량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진팔에게는 그 시간이 마치 천 년이나 만 년처럼 하염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신강 외에 혈강시의 실험이 진행된 곳은?”
“재,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보통은 십만대산 내부에서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심드렁한 낯을 한 하량이 손을 움직이려 했다. 이미 십만대산 전부를 취한 사내이니만큼, 그는 일월신교 내부에 있던 아수라혈강시의 흔적 전부를 지워냈을 게 분명했다.
진팔은 다급하게 머릿속을 뒤졌다. 분명, 분명 자신이 아직 아는 게 있었다.
“스승님께서는 만약을 대비해 그분이 가장 아끼던 첫째 제자에게 모처를 준비해두라 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시, 실험이 진행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문서나 기록은 남아 있을 겁니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그쪽에 남아 있는 게 더 상세하리라.
“쥐라면 이미 죽였지만……. 놈이 중원의 어디를 거닐었는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겠지.”
혼잣말처럼 뇌까린 하량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아수라혈강시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는 있나?”
그 말에 진팔은 제하량을 바라봤다.
스승의 가장 완벽했을 작품을, 동시에 그를 최악의 실패로 떠민 존재를.
“당신은……. 예전의 곤륜운룡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량은 답하지 않은 채 검을 내리그었다.
진팔은 채 문턱에 미치지도 못한 아침의 태양을 볼 기회조차 없이 눈을 감았다.
마침내 그의 어제가 오늘을 따라잡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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