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임무 완수 (6)
예결이 손을 반짝반짝 흔들었다.
금빛 전류가 맴도는 손은 정말 하늘의 별을 옮겨다 놓은 듯 휘황찬란했다.
장칠은 저게 무언지 몰랐다. 그저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을 닮았다고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저게 무척 고통스러우리라는 사실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지독한 공포에 질려 거친 숨을 꺽꺽 몰아쉬었다.
“셋.”
둘조차 없이 셋을 센 예결의 손이 쑥 내려가며 물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왜 벌써 셋이야!’
비명조차 나오질 않아 속으로 절규한 장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갈 거라 생각했으나 그의 시야는 깜깜하기만 하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고통까지는 찰나일 텐데, 백을 세도 충분할 것만 같은 시간이 아득히 흘렀다. 그래서 장칠은 모든 죽음이 이런 거라고 생각했다.
명랑한 웃음소리가 밤을 가로지르기 전까지는.
“하하하하!”
장칠은 눈을 번쩍 떴다.
청해상단주의 손은 수면에 닿을 듯 말 듯 가까웠으나 그 바로 위에서 멈춰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샛노란 빛 아래 드러난 예결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을 겁박할 때는 그렇게 기분 좋게 웃더니.”
예결이 손을 뻗었다. 바투 가까워진 거리에 장칠은 숨을 들이쉬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리는 옴짝달싹도 하질 않는다.
최대한 몸을 뒤로 젖혔으나 한계는 명백했다.
“본인 차례가 오니 새파랗게 질린 꼬락서니 하고는.”
어느새 웃음이 걷힌 예결의 낯은 서늘했다. 꿀밤을 먹이듯 그의 손이 탁, 하고 장칠의 이마를 때렸다.
장칠의 시야가 어느새 희게 번졌다. 벼락이 머릿속에 지핀 새하얀 불길에 온몸을 뒤틀었으나 이 고통에서 헤어나갈 방법이라곤 없었다.
물속에서 부들부들 떨던 그의 몸이 쓰러지며 첨벙 소리를 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뒹굴던 장칠의 팔이 한순간 멈추더니 푹 꺾였다. 예결의 손이 닿은 이마엔 검게 타들어 간 화상 자국이 마치 낙인처럼 생겨나 있었다.
눈을 홉뜬 채 경련하는 사내를 보며 예결은 하량이 앗아간 두려움을 떠올렸다.
다시 태어난 후 선예공방에 처음 돌아왔을 때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면 힘 조절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저자를 태워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조목을 만들려다가 생겨난 실패작들처럼 검게 변한 장칠을 보고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눈앞의 사내가 죽는다고 한들 예결은 노예처럼 살았던 기억을 떨쳐내진 못했을 거다. 짝귀는 에스퍼조차 아니었던 가장 연약한 시절을 지배하던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외려 개운했다.
“대사형.”
예결의 등 뒤의 어둠 속에서 제하량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못 할 것 같니?”
막 사냥한 동물을 해체하는 것이, 갓 낚아 올린 생선을 손질하는 것이 어렵냐고 묻는 것처럼 다정다감한 투였다.
이러다가 그 대상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어버리겠다고 생각하며 예결은 두 손을 양옆으로 들어 올렸다.
“이 정도면 됐어요.”
이마에 대문짝만하게 장칠의 범죄 이력을 적어주고 싶었으나 면적이 좁아서 참았다.
뭣보다 잘 먹어서 기름이 반지르르한 얼굴에 또 손을 가져다 대고 싶진 않았다.
“너무 편하게 죽는 것보다는 평생 쫓기면서 사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요. 대사형이 말한 대로 실종자가 되면 성주가 죄를 뒤집어씌울 테죠.”
그렇게 되면 장칠은 다시는 대인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목에 현상금도 걸릴 테니 어쩌면 짝귀 때보다도 비참한 꼴로 도망쳐야 할 거다.
예결은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아, 장칠이 제 죄를 가볍게 하려고 모든 건 적혈파의 문주가 저지른 일이라고 고발했다는 소문을 내도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시간을 벌어서 도망친 걸로.”
사파의 무인들은 끈질기다. 놈들은 칼 외에도 잔혹함과 공포를 무기처럼 휘두르기 때문이다. 최대한 악명을 쌓아 몸을 부풀리기 위해서는 좋은 본보기만 한 것이 없었다.
예결이 원하는 대로 소문이 난다면 적혈파의 문주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장칠을 찾아내 그 대가를 치르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정파의 역사만큼이나 길고도 오래된 사파의 습속이므로.
“사파 무인은 손속이 잔인한 편인데……. 차라리 포쾌가 먼저 찾아내는 편이 자비롭겠어.”
저녁 바람처럼 소슬한 예언이었다.
“장 대인 소리를 들으며 주변에 인망을 얻었다면 누구 한 명은 그를 뒤로 빼내서 숨겨주려 할지도 모르죠.”
코끝을 찡긋거린 예결이 속삭였다.
“안 그래?”
정신이 돌아왔음에도 기절한 척 누워 있던 장칠의 몸이 움찔 떨렸다.
“겨우 사파 낭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걸 어쩌나.”
몸을 숙인 예결이 속삭였다.
“비단옷을 걸쳐도 사파 낭인 짓거리를 버리지 못해서 죽게 생겼네.”
고개를 들어 올린 예결의 입가에는 삐뚜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예결은 한 발짝 물러났다. 바로 뒤에 서 있던 하량이 그의 어깨를 손으로 감싸며 속삭였다.
“밤공기가 이리도 찬데, 고생 많았다.”
“저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고생은 여기 뱀뱀이가 했죠.”
슬쩍 옷소매를 걷은 예결은 모든 공을 뱀뱀이에게 돌렸다. 오래간만에 포식한 뱀뱀이는 졸음이 왔는지 몸짓이 느릿느릿했는데, 제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귀신같이 알아채고 동그란 머리를 갸웃갸웃 움직였다.
“정말 이자가 살아서 내일을 맞이해도 괜찮겠느냐?”
누군가의 죽음을 논하면서도 하량의 음성은 평이했다.
예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 더 괴로울 테니 전 이걸로 됐어요. 저놈을 죽인다고 황 노야가 살아 돌아올 것도 아니고.”
이만큼 했으면 저세상의 황 노야도 만족하리라.
향이나 올리러 왔다가 제대로 복수까지 해 주게 된 예결은 어깨를 으쓱했다.
장칠을, 짝귀라는 인간을 제 인생에서 도려내는 것만으로도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대사형이 보고 계신다고.’
아무리 앞뒤 안 가리는 에스퍼라도 자기 가이드 앞에서는 행동거지를 조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하량이 무림인이라지만 마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원래 정파 출신 협객이었으니 사람 피 보기를 즐기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대로 장칠의 삶을 마무리하기엔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예결은 대사형을 힐끔 올려다봤다.
‘온전히 내 몫이라고 넘겨주시긴 했지만, 뭔가…… 화가 나신 거 같단 말이지.’
성에 찰 만큼 화풀이도 했겠다. 이다음은 하량의 몫으로 남겨줄 생각이었다.
손질도 잘해 놨으니 장칠은 대사형의 머리카락 한 올 상하게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리라.
‘주인에게 전리품을 선물하는 고양이의 심정이 이런 거겠지.‘
오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예결은 하량을 올려다봤다.
“이제 돌아가요.”
“그래.”
예결의 말에 하량은 낮게 웃었다.
“돌아가자꾸나.”
***
장원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꾸벅꾸벅 졸던 예결은 옷을 갈아입을 겨를조차 없이 침상에 몸을 뉘었다.
아주 오래된 노곤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짝귀를 피해 염색공방 창고에서 한뎃잠을 자던 밤, 아파서 끙끙거리느라 거적 위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던 밤, 영영 이 삶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아 지새웠던 밤이 한꺼번에 예결을 찾아온 것만 같았다.
곁에 있던 온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에 예결은 손을 뻗었다.
“가지…… 마요.”
웅얼웅얼. 잠꼬대처럼 중얼거린 말에 상대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머리맡에서 아주 나지막한 허밍이 들렸다.
예전에 대사형에게 불러달라고 졸랐던 자장가와 비슷한 멜로디였다. 비몽사몽 한 중에도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손길이 그의 얼굴에 와 닿았다. 살과 살이 맞닿은 자리를 타고 진득하면서도 다정한 기운이 그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건……. 가이딩인데.’
예결은 탄식 같은 신음을 내뱉었다. 역시 잠들어 있는 동안 곁을 지켜주던 온기는 대사형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밀려 들어오는 가이딩에 예결은 다시 기절했다. 아주 깊은 물에 안기는 것과 같은 안온함이 그를 감쌌다.
예결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사위는 온통 어두웠다. 정말 밤이 온 건 아니고, 휘장을 내려 모든 창을 가려놓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곁에는 하량이 누워 있었다.
대사형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마치 석공이 평생을 바쳐 빚어낸 조각상처럼 반듯하게 눈을 감은 사내를 보고 있노라면 나쁜 생각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이러다가 대사형 덮치는 거 아니냐.’
흑귀한테 일생일대의 고백까지 해둔 상태인데 대사형은 무방비해도 너무 무방비했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던 예결은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깨닫고 몸을 움츠렸다. 설상가상으로 하반신이 반쯤 일어선 채였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예결은 울상을 지으며 원인을 파악하려 머리를 굴렸다.
장칠을 상대하며 에스퍼의 능력을 사용했다. 목숨을 거둘 생각은 없었기에 장칠을 전기 통구이로 만들지 않았지만, 그 전부터 화려한 시각 효과를 노리고 끌어다 쓴 힘이 적지 않다. 가이딩을 갈구하는 몸 상태가 된 것이다.
장원에 돌아오기가 무섭게 잠든 자신이 직접 침의로 갈아입었을 리는 없을 테니 대사형이 직접 수발을 들어줬으리라.
그렇게 가이딩이 솔솔 흘러들어 왔을 테다.
푹 쉬라고 자리를 피해 주려는 대사형에게 곁에 있어 달라고 매달리기까지 했다. 잠결에 저지른 짓이라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은 자초한 셈이다.
예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에스퍼가 짐승 비슷한 것이긴 하지만 어디 가이딩을 받는다고 매번 발정이 나겠는가. 이건 일시적 가이딩 부족 상태에서 흘러들어온 힘에 대한 반동이 분명했다.
센터 생활을 몇 년이나 했지만 이런 부작용은 아무도 안 알려줬다. 물론 어디 가서 남한테 말하기에 우세스러운 부작용인 건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에스퍼 대상 성교육 교재 좀 새로 만들라고!’
자리에 없는 선배들을 향해 울분을 토해낸 예결은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대사형이 알아채기 전에 탕옥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다.
저를 마주 본 자세로 누워 있는 하량과 손끝이 스치는 바람에 읏, 하고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입술을 깨물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예결은 가느스름하게 뜬 하량의 몽롱한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결아?”
(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