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임무 완수 (7)
졸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가 예결을 불렀다.
자다가 일어나서인지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저음에 예결은 등골을 타고 오싹한 소름이 내달리는 것을 느꼈다.
하량은 붉게 달아오른 예결의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도홧빛으로 발갛게 물든 눈가에 대사형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아니, 어쩌면 영원처럼 느껴졌던 찰나 동안.
“저런.”
살짝 혀를 찬 하량이 속삭였다.
“불편한 모양이구나. 그렇지?”
살짝 내리깐 속눈썹이 은근한 암시를 담고 있었다.
이건 ‘제하량’이라기보다는 ‘흑귀’가 입에 담을 법한 소리가 아닌가 싶어 예결은 순간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본디 도사였다고 한들 사내로 태어난 이가 아랫도리 사정에 완전히 무지한 척 구는 것도 이상하긴 했다.
반사적으로 야금을 끌어다가 하반신을 가렸던 예결은 바싹 마르는 입술을 핥았다.
“빠,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일부러 대사형이 볼 수 있게끔 유도했던 그 밤과는 결이 다른 상황이었다. 나란히 누워 있었을 뿐인데 발기한 걸 들켰으니 변태 취급해도 할 말이 없다.
이러다간 정말 다 망치고 말겠다는 아찔함에 예결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걸 느꼈다.
아니다. 아직 절망하기엔 일렀다. 사내로 태어난 이상 몽정이라는 걸 하지 않겠는가. 혈기 왕성한 나이에는 아침에 일어나기만 해도 발기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하고.
그냥 조금 민망해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예결은 날뛰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예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하량의 눈은 반쯤 꿈에 젖은 듯 몽롱했다. 모든 창을 가려 밤인지 낮인지조차 모호한 이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희게 느껴지는 하량의 손이 예결을 향해 뻗어왔다.
입 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에 예결은 침을 삼키며 저도 모르게 주춤 몸을 뒤로 물렸다.
“이리 오렴. 우형이 도와주마.”
하량이 느릿하게 손짓했다. 여느 때보다 나른해 보이는 입매를 멍하게 바라보던 예결은 그 말을 몇 번이나 곱씹은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대, 대사형이요?”
예결은 기름칠하지 않은 자전거 체인처럼 새된 소리를 내뱉었다.
“이대로 두면 불편하지 않겠니?”
사형이 사제의 자위를 돕겠다니,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상황이란 말인가?
“제가 호, 혼자 할 수 있습니다. 혼자 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애걸하는 와중에도 아래가 가라앉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먹어 치운 사내가 앞에 있다는 걸 아는 몸은 주인을 닮아 참을성이 부족했다.
“괜찮다. 이 정도야 사형제지간에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일 아니겠니.”
하량의 말은 나직하고 또 여상했다. 예결은 하량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입을 몇 번 벙긋거리다가 말았다.
아무리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언제부터 꼰대 집합소인 중원무림이 이렇게 느슨한 기준을 가지게 되었단 말인가?
“원래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아무리 도가의 무인이라 한들 피를 보면 흥분하더구나. 때론 그 여파가 몸으로 미치기도 하지.”
“아아.”
그러니까, 장칠을 처리한 일 때문에 몸이 흥분한 걸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찝찝한 짐작이긴 해도 대사형의 말이 삼류 낭설은 아니었다. 예결이 어린 시절 숱하게 봐 온 사파 무인들만 해도 한번 칼부림이 나면 술을 퍼마시고 약도 하고 몸을 섞을 상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형이 사제의 수음을 도와주는 건 기사멸조 아닌가?’
기사멸조라는 단어를 떠올린 예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이건 아니지.’
분명 예결은 대사형이 기사멸조를 범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가증을 떨기 시작했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일을 저지르겠다는데 말려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예결은 자신이 초심을 잃었음을 과감히 인정하기로 했다.
“그럼…….”
부끄럽다는 듯 눈을 내리깐 예결은 침의 자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속삭였다.
“조금만. 조금만 도와주세요.”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하량은 예결을 그의 품으로 이끌었다. 뒤에서부터 안긴 자세가 된 예결은 순순히 바지를 벗었다.
매끈하고 흰 다리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듯했다.
“자. 수음을 어찌하는지 알려주마.”
하량은 예결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솜털이 오소소 일어날 것만 같은 감각에 예결은 어깨를 움칠 떨었다.
의연하려 해도 흑귀가 아닌 제하량의 앞에서 자신의 몸을, 그것도 성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상황이 쉬이 적응되지 않았다.
“몸에 긴장을 풀고, 뒤로 기대렴.”
예결은 천천히 하량의 가슴팍에 몸을 기댔다.
“다리를 벌리고…… 옳지.”
흰 손이 뱀처럼 미끄러져 예결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누르고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흣!”
살 기둥을 감싸는 손가락의 감촉에 예결의 입에서 새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손으로 이렇게 쥐고, 천천히 앞뒤로 흔드는 거다. 너무 거칠게 손을 움직이면 예민한 살갗이 쓸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충분히 젖은 후에는……. 괜찮지만.”
아직 잠기운이 머물러 있는 듯 느릿느릿한 말이 예결을 깊은 늪으로 끌어들이는 듯했다.
흉터투성이인 흑귀의 손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시원시원하게 뻗은 손에서는 수컷 냄새가 났다.
예결은 정신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목검을 쥐고 운룡검결의 시범을 보이던 바로 그 손이 예결의 성기를 감싸고 있었다.
실제로는 몇 번인가 일어났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건 정말 예기치 못한 자극이 되어 예결을 덮쳤다.
몸을 겹치고 있어서인지 하량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예결의 심장은 어지러이 날뛰는데, 그는 비교적 침착한 것 같았다.
“자. 직접 해보렴.”
하량은 친절하게도 예결의 손을 끌어다가 그의 성기를 감싸게 했다. 이제 놓아주려나 하고 몸을 빼려는데, 예결의 손 위로 하량이 손을 겹쳤다.
“너무 강하게 쥐지 말고. 이렇게……. 살살 달래 주렴.”
하량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비단 안겨 있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몸을 맡기고 자위하는 방법을 가르침 받는 이 상황이 그랬다.
숨소리마저 젖어 있는 것처럼 들렸고, 아직 대기 중에 눅진한 잠이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끈적끈적하고, 또 무겁다.
아주 뭉근한 불 위에 오래오래 끓여 졸아붙은 설탕물이 된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으니?”
아직 어릴 적, 처음으로 누워본 침상 위에서 끙끙 앓을 때 계속 곁을 지키며 괜찮냐고 물었던 바로 그 소년이 지금은 사내가 되어 예결의 쾌락을 돌보고 있었다.
이건 정말 어렴풋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죄를 저지르는 기분이었다.
“네에, 엣! 흐으…… 흡.”
예결은 거의 꼭두각시처럼 하량이 시키는 대로 손을 움직였다. 제 손 위에 손을 겹친 대사형은 언제 힘을 주고 또 어떻게 흔들어야 하는지까지 전부 통제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느릿느릿하긴 해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차오르는 쾌감에 예결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할딱대는 숨을 내뱉으며 제 어깨에 기대는 사제를 굽어보는 하량의 시선은 담백하고, 또 다정하기만 했다.
그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사실 나는 네가 악몽을 꿀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곁을 지켰는데, 이런 도움을 주게 될 줄이야…….”
“흐읏. 응…….”
이 모든 게 꿈결 같다. 아찔한 배덕감에 예결은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몸속 깊은 곳이 어서 여기도 긁어주고 채워달라며 성화였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항주까지 오다 보니 마지막으로 흑귀를 만난 것이 벌써 몇 주 전이다. 매일같이 대사형과 붙어 있어 가이딩이 풍족했던 것과 별개로 예결은 은근한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물이 예결의 눈가를 방울방울 적셨다. 부족하다는 듯, 아직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량은 이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귀엽다는 듯 예결의 귓가에 나직한 웃음을 내뱉었다.
“이제 좀 요령이 생긴 것 같구나.”
괴롭다고 할 수 없어 예결은 고개만 주억거리며 손을 열심히 움직였다.
“흐, 흐앗……!”
마침내 파정한 예결은 숨을 골랐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지고 있었다. 욕망을 해소하기가 무섭게 찾아드는 잠에 예결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치, 침상을 더럽혔는데.”
“괜찮다. 내가 다 치울 테니 걱정하지 말렴.”
하량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무언가 몸을 닦을 물건을 가져올 생각인지 그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예결이 와락,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입술을 몇 번이나 잘근잘근 깨문 후에야 예결은 속을 어지럽히던 질문을 꺼내놓았다.
“저 말고도…… 다른 사제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신 적이 있나요?”
“글쎄.”
하량은 난처하다는 얼굴로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관행이 있긴 하지만 내 직접 누군가를 도와준 것은 네가 처음이구나.”
그는 손등으로 예결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이 우형의 거짓말을 용서해주련?”
가물가물해지는 시야에 하량이 끔뻑끔뻑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예결은 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번만이에요.”
***
휘장 사이로 붉은빛이 스몄다. 어느새 저녁놀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제의 몸을 닦아준 낮 이후로 침상 곁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하량은 예결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잠에 취한 척 굴었던 하량은 실상 예결의 살 내음에 취해 있었다.
마침내 정신을 차렸던 예결이 신음하며 몸을 일으켰을 때, 하량은 사제가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말갛기만 하던 저 눈가가 도홧빛으로 물든 걸 발견한 순간 그가 흥분했음을 알아챘다.
수음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에 예결은 당혹한 눈치였다. 사제가 선을 넘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느꼈던 조바심은 가파르게 덩치를 불려갔다.
하지만 결국 예결은 하량에게 그의 몸을 내어주었다. 반쯤은 체념으로, 반쯤은 믿음으로 자신에게 안기던 몸을 끌어안은 하량은 깊이 만족했다.
사제의 욕망을 달래 주는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건만, 흑귀가 아닌 제하량에게 안겨 오는 예결을 보는 만족감은 그가 막연히 짐작한 것 이상이었다.
수음을 가르치며, 예결이 욕망을 달래는 모습이 눈에 새겨진 듯 머릿속을 어지러이 떠돌았다.
흑귀가 뒤만 쑤셔도 절정에 오를 정도로 색사에 빠르게 익숙해진 예결이 정작 앞을 만지는 자위엔 서투르다는 사실이 하량을 미치게 했다.
그럴 의도로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사제는 이미 그의 손길에 흠뻑 물들어 버렸다.
참으로 기쁘게도.
하량은 이 여정의 시작부터 찬찬히 되짚어 나갔다.
처음 항주에 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사제는 별 미련을 보이지 않았다. 하량은 이곳이 예결의 고향이라는 걸 알기에 그 반응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예결은 자신의 과거에 별 애착이 없어 보였다.
하량은 자꾸만 떠오르는 아수라혈강시 이야기를 애써 지워냈다. 저 역시도 고향에 그다지 애착이 없노라 고백한 하량은 사제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도 소식이 궁금한 사람은 있긴 하네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라.
이는 분명 예결이 아수라혈강시가 아니라는 증명이 될 텐데, 아쉬움을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의 세상에서 예결은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예결에게 자신은 단 한 명이 아닐 것이다.
언제나 밝고 사랑스러운 사제는 그의 인생을 무엇으로든, 그 누구로든 채워나갈 수 있으리라. 사제의 그늘을, 그의 결핍을 찾아 어떻게든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 필사적인 하량과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니까.
황 노야.
그가 노인이라는 사실에 하량은 긴장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사제가 낙양에서 살던 시절로부터 거의 서른 해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노인은 죽고도 남을 세월이 흐른 셈이다.
하량은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예결이 처음으로 거론한 과거의 인연이다. 사제가 한창 힘들었던 시절에도 누군가의 돌봄을 받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량은 순순히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가 이미 죽었을 거라 판단한 후에야 관대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했을 뿐이다.
얼마나 저열한 인간이 되어버린 걸까.
예결이 없을 때는 그 바닥이 어딘지 몰랐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 없으니 무저갱을 헤아릴 이유도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사제의 존재는 하량이 잊었던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공포를 일깨워 주고 그 대가로 무지를 박탈했다.
더는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내에게 예결은 지나치게 많은 것을 주었으니, 이는 참으로 밑지는 거래가 아닌가.
‘하지만 너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겠지.’
하량은 자리에서 일어나 잠든 예결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옅지만 규칙적인 호흡이 그의 손바닥을 민들레 홀씨처럼 간질였다.
귀를 기울이면 심장이 뛰는 소리조차 들을 수 있으면서, 사제가 여전히 숨을 쉬고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됐다.
“푹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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