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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20화 (120/203)

120화. 드라마보다 더한 건 (8)

“여기에서, 말입니까?”

조금 느릿하게 흘러나온 반문은 참으로 가당찮은 소리를 들은 사람의 반응 같았다.

예결은 긴장한 양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은, 그는 하량이 자신의 요구를 얼마든지 들어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매 순간 대사형만을 쫓는 예결은 그의 헌신이 어딘지 모르게 뒤틀려 있다는 걸 체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관절 어느 문파의 사형제지간이 이렇단 말인가?

하량은 이미 관례를 치르고도 남을 나이의 예결을 한참 어린 동생을 챙기듯 굴었다. 재회했을 적의 부상 때문인지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가족을 정성껏 간병하는 이처럼 먹는 것, 입는 것, 마시는 것 어느 하나 손을 안 대는 게 없었다.

그럴 때 보면 갓 태어난 아이를 보듬어 살피는 부모 같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한 내리사랑이라기엔 집착과 독점욕이 강하다.

청해의 장원에서 지내는 동안 예결은 삼랑이나 진영, 그리고 홍여 외의 사람과는 온종일 세 마디 이상을 섞을 일이 없었다. 그나마도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는 관계가 다였다. 익숙해지려고 하면 시비도 바뀌고 하인도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가지치기한 나무처럼, 예결의 주변엔 인간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누가 일부러 손을 쓴 거지.’

이를테면 대사형이라든가, 제하량이라든가, 혹은 내 가이드라든가…….

곤륜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어떻게 돌아올까 머리를 굴리느라 몰랐고, 돌아온 뒤에는 대사형을 덮칠 궁리를 하느라 관심이 없었을 뿐. 예결은 제 주변이 어찌 돌아가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 결론은 예결을 기쁘게 했다.

자신이 성가셔서 곤륜에 내다 버린 게 아니라, 그 집착과 독점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피신시키려 했던 게 아닌가.

“그, 계속 생각이 났어요. 몸이 자꾸 뜨거워질 때마다.”

입술이 바싹 마른 양 혀로 축이며 예결은 속삭였다.

“흑귀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앞으로만은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얼마 전에 깨닫기도 했고…….”

심지어 대사형이 본래의 모습일 때 성적인 접촉까지 가졌다. 수음을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하반신을 어루만지던 손길을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했다.

항주에서 있었던 일들이, 예결이 털어놓은 과거의 진실이 그의 마음을 어느 정도 허물어놓은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흔들어 보자.

“눈을 가리면 되나요?”

흐트러진 옷의 허리끈을 주섬주섬 챙긴 예결은 직접 눈을 가렸다. 뒤쪽으로 매듭을 지으려 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하다 보니 영 헐겁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교한 매듭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소리도 잘 참아볼게요.”

예결은 흑귀가 있을 방향을 향해 말했다.

이제 슬슬 뭐라도 반응이 돌아와야 할 것 같은데 조용하기만 했다.

“흑귀 님? 거기 계신 거 맞죠?”

침묵 때문에 기척을 확인할 수 없어 혼란스러운 사람처럼 예결은 앞으로 손을 뻗으며 몸을 기울였다.

더듬더듬, 허공을 짚으며 팔을 뻗던 그는 몸이 휘청이는 걸 알아챘음에도 일부러 균형을 잡지 않았다.

식탁 위에 앉아 있던 예결의 몸이 엎어지려 했다. 그러나 바닥과 아찔한 충돌이 있기 전, 손끝에 단단한 가슴팍이 걸렸다.

예결은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이처럼 풀썩 무너지듯 그 품에 안겼다. 조심스럽게 그 목을 끌어안으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안 가셨구나.”

머리 위에서 아, 하고 탄식 같은 소리가 들렸다.

예결은 처음엔 그게 자신이 낸 소리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단단한 두 팔이 그의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당혹스러워하며 가슴에 기댄 얼굴을 들어 올리기가 무섭게 하량이 턱을 쥐고 끌어당겨 입술을 겹쳐왔다.

“으흣…….”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모든 호흡을 낱낱이 헤아리고 먹어 치우는 입맞춤은 도저히 부드럽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하량이 그 숨을 얼마나 달게 들이마시고 있는지를, 맞닿은 살갗에서 전해지는 전율이 말해주었다. 예결은 코로 숨을 쉬는 것도 잊고 헐떡거렸다. 벗어나려 하자 입술을 깨물어 벌리고 그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습하고 말캉한 살을 집요하게 뒤쫓고 탐한다.

한 치의 틈조차 주어지지 않는 탐닉에 예결은 온전히 제 몸을 내맡겼다. 아예 더 가져가라는 양 하량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이 불길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말 잘 알고 있음에도, 동시에 하나도 모르겠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욕구불만 탓일 거다. 그러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이유를 알았다.

항주에서 자신을 두고 떠나갔던 도련님에게 실은 사정이 있었다는 게 가슴 떨리도록 기뻤다. 그가 자신을 잊은 게 아니라 혹시 모를 암살 위협 때문에 거리를 두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다.

한없이 무능하고 또 무기력했던 전생의 어느 때에도, 자신은 하량에게 버려진 적이 없었던 거다.

다시 태어났을 때, 피로 이어진 가족을 가지게 되었음에도 예결은 항상 혼자 남겨지는 상황을 두려워했다.

어떻게든 쓸모나 효용성을 입증하면 버려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에스퍼로 발현하고 무심코 안도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같은 이유로 부모와 멀어지고 말았지만.

센터에 들어간 후에도 그랬다.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염세적인 소년에게 다른 에스퍼들은 가이드를 만나면 달라질 거라고 했다.

‘가이드는 무슨.’

예결은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로, 가이드를 만나고 모든 게 달라졌다.

그의 가이드는 제하량이었으니까.

최초의 삶에서 만났던 다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예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무 해나 지났음에도, 저를 한눈에 알아보던 제하량을 기억한다. 그는 온통 의심스러운 구석만 가득한 예결을 다시 그의 품에 들여놓았다.

이미 불이 꺼진 심지라 여겼던 곳에는 잔불이 남아 있었던 거다. 예결은 그 자그마한 불꽃이나마 꺼지지 않게끔 지켜낸 하량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산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죽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전혀 다른데.’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 어떤 책에서도 읽을 수 없었지만,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언제나 제하량이 있었다.

대사형은 언제나 그의 어린 사제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다정한 게 좋으십니까?”

간신히 입술을 뗀 사내가 거친 호흡 사이로 물었다. 예결은 하량의 어깨와 가슴 사이 즈음을 어정쩡하게 짚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거친 건?”

한 손에 얼굴을 쥐다시피 한 사내가 예결의 고개를 들어 올리게 하고 물었다. 싫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예결은 웃음이 나오려는 입술을 애써 단속했다.

“흣……. 그냥…… 그냥, 전. 애태우는 게 싫어요.”

뺨을 쥐고 있던 억센 손아귀가 풀려나갔다.

“하하……. 진짜 어디에서 이런.”

하량의 입에서, 흑귀의 음성으로 거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쾌하다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오싹해서, 아랫배가 저릿저릿해졌다.

“제가 큰 실수를 했군요.”

한 손으로 예결의 발목을 쥐고 끌어당긴 사내가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질척하게 젖은 아래를 헤집었다. 뒷구멍은 조금의 저항감조차 없이 상대의 손가락을 빨아들였다. 수음 연습을 한답시고 쑤석거린 아래는 이미 젖어 있었다.

하량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뭉툭한 것이 밀지의 입구에 와 닿았다. 마음의 준비를 채 할 겨를조차 없이 두툼한 기둥이 안으로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예결은 탄성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입을 벌렸다. 채 내지르지 못한 교성이 새빨간 입 안에 잔뜩 고여 있었다.

“이렇게 익어서 푹푹 벌어지는데, 다정한 게 좋냐느니 거친 게 좋냐느니 같은 질문이나 하고 있었다니.”

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은 후에야 하량이 중얼거렸다. 수음을 뒤로 해보라고 권한 뒤라서인지, 사제의 내벽은 안에 들어온 것을 탐욕스럽게 오물오물 씹어 삼키려 들었다. 감도도 더 좋아졌는지 조금씩 더 안을 헤집고 파고들 때마다 예결의 입술이 덩달아 벌어졌다.

그는 충동적으로 손가락을 저 입술 안으로 집어넣었다. 잘 익은 과일처럼 붉어 보이는 혓바닥이 무도한 침략자를 반겼다. 차마 깨물지는 못한 채 핥고 빨아들이는 게 먹이를 조르며 애태우는 새끼 짐승 같기도 했다.

하량은 심호흡했다.

이대로면 정말 자제력을 잃고 예결을 망가뜨릴 것만 같았다. 한동안 사천에 오지 못해 욕구불만에 시달린 건 예결뿐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빼낸 하량은 사제의 허리를 감싸서 몸을 살짝 들어 올렸다.

식탁에 눕힌 채로 박았다가는 저 무른 살결에 울긋불긋한 멍이 새겨지고 말 것이다. 정사를 끝내고 몇 분 뒤면 전부 사라져 버리는 흔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하량은 예결을 거칠게 다루고 싶지 않았다.

“흣!”

살짝 물러났던 흑귀가 다시 거세게 안으로 진입해왔다. 예결은 그의 두 손에 단단히 붙들린 채 아우성쳤다. 침상에 누워 있을 때는 뒤로 밀려나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고정된 채, 그 힘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고통스럽진 않았으나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다.

반쯤은 허공에 몸이 떠 있어서 의지할 대상이라곤 하량뿐이었다.

저절로 힘이 들어간 손끝이 흑귀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툭툭 불거진 핏줄이 손바닥 아래로 느껴졌다.

성기가 드나들며 아래가 화끈거렸다. 하문의 약한 곳을 집요하게 박아오는 양물이 성감을 고조시켰다. 예결이 움찔움찔 떨며 아래를 조일 때마다 귓가에는 저를 덮어쓰다시피 몸을 겹친 사내의 신음이 들렸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뭉그러졌다. 예결은 어느새 엉엉 울고 있었다.

몇 병이나 되는 술병을 아무리 기울여도 취하질 않았는데, 지금의 고양감은 너무도 쉽게 예결의 사고를 헤집고 그의 이성을 불태웠으며 자제력마저도 주저앉혔다.

하량은 예결을 망가뜨릴 생각도 없으면서, 그를 너무도 쉽게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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