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드라마보다 더한 건 (9)
“대체…… 언제 이렇게 젖은 겁니까?”
살 기둥을 움직일 때마다 밀지에서 물에 젖은 것처럼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예결은 팔로 입을 틀어막은 채 히끅거렸다.
팔뚝이며 무릎, 곱아든 발끝이며 봉숭아 뼈까지 온통 도홧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살갗이 희어서 그런지 유독 그 색이 도드라진다.
하량은 곤륜의 흰 눈 위를 토끼처럼 뛰어다니던 어릴 적의 예결을 떠올렸다. 그때는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편이었는데, 오래도록 빛을 보지 않아 창백해진 피부가 안쓰럽기도 했다.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남쪽 바다에나 데려가 볼까.’
하량은 자꾸 흘러내려 예결의 몸을 가리는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발기고는, 그의 안으로 다시금 성기를 박아 넣었다.
버거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비좁은 하문이 하량의 양물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웠다.
“하읏, 아! 흐으…….”
하량은 그저 끌어안고 있을 뿐인데 예결은 그 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채 아래를 옴죽거렸다.
조금 익숙해지나 싶은 순간 이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움직이는 하량의 허릿짓에 쾌감으로 이미 포화 상태였던 머릿속에 자극이 비집고 들어온다.
얼마나 더 여기에 매달려 있어야 놓아줄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아니, 영영 놓아주지 않았으면 했다.
예결은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하량의 어깨를 붙들었다. 가까스로 매달린 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귓가에 나직한 탄성이 와 닿았다.
저 쇳소리가 섞인 듯 거칠기만 한 음성이 이렇게 들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가이딩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성교인지 셈하는 걸 잊었다. 거짓으로 쌓아 올린 관계일 뿐인데, 예결은 언제부터인가 지나치게 깊게 몰입하고 말았다.
“아, 사…… 흐읏. 대사형…….”
저도 모르게 상대를 불러버리고 예결은 입술을 깨물었다. 흑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야가 가려진 채로는 그저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 상대를 읽어내야 했다.
“맞아요. 그 대사형이라는 자에게 안길 수 없어서 제게 오신 거였지요.”
예결의 부름을 상황에 맞게 해석한 흑귀가 중얼거렸다.
불쾌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으나 어딘지 모르게 흥미롭다는 어조인 게 마음에 걸렸다.
예결은 직접 묶는 김에 매듭을 좀 헐겁게 할 걸, 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길지 않았다. 예결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귀신같이 알아챈 건지, 하량이 성기를 빼냈다가 단숨에 끝까지 박아넣었기 때문이다.
“아, 아, 아……!”
등허리를 뒤로 젖힌 예결의 입에서 날카로운 교성이 흘러나왔다. 빌린 방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애써 사정을 참아왔던 예결은 결국 파정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래로 이렇게 질질 흘리는 걸 보면 가끔 다른 생각도 들더군요.”
이미 빠듯한 안에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와 내벽을 눌렀다. 잔뜩 흘러내린 애액 덕에 손쉽게 안으로 침략한 손가락은 민감해진 점막을 헤집으며 꾹꾹 눌러왔다.
예결은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바투 다가선 사내의 살 내음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혹 문 공자는…… 그냥 사내와 흘레붙는 게 좋아 다리를 벌리러 온 게 아닐까, 하고.”
귓가에 내려앉는 음성이 오싹했다.
예결은 여전히 뒷구멍으로 양물을 품은 채 하량의 허벅다리에 앉혀졌다. 버겁긴 해도 아직은 버틸만했던 부피가 보다 거대하게 느껴졌다. 하량은 예결의 허리를 붙든 채 천천히 그의 몸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흣, 응! 흐으…….”
반쯤 경직되어 있으면서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을 주고 호응하는 예결은 누가 봐도 발정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쾌락으로 무너진 이성 위로 하량이 속삭였다.
“혹시 압니까? 당신의 대사형이라는 작자도 여기가 이렇게 사내를 잘 문다는 걸 알면 생각이 달라질지?”
묘한 암시가 담긴 말이었다. 그러나 떡밥을 던진다고 물면 그건 물고기지 사람이 아니다.
“대사형은…… 흐읏, 그런 분이 아닙, 아닙니다!”
예결은 거칠어진 호흡 사이로 열심히 하량을 비호했다.
“흐음……. 일단 그렇다고 해둘까요?”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내를 두둔하는 발언에 대한 흑귀의 반응은 모호했다.
예결은 그 의미심장한 말투에서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애썼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도가 문파 출신이라 들었던 것 같은데, 애가 있다는 의심까지 받다니.”
쾌락 사이로 은근한 속삭임이 흘러들어왔다.
“그 대사형이라는 사내가 별로 음전한 도사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제하량이 제하량을 믿지 말라고 이간질하는 상황이라니.
만약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예결은 헛웃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퍽 헤픈 하반신을 가졌을지도 모르지요.”
예결은 하량의 품에 갇힌 채 그가 내뱉는 말들에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그럴, 그런. 아닙니다. 아니라고……. 읏!”
거의 흐느끼다시피 부정의 말을 입에 담았다. 그러나 드문드문 새어 나오는 신음은 예결의 변명을 일그러뜨렸다.
“아, 하긴. 제대로 된 도사였으면 상단을 차릴 게 아니라 여전히 산속에서 고고히 살았겠군요.”
하량은 포로의 아우성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자해라기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고 자조라기엔 신랄하기 짝이 없다.
예결을 쉼 없이 몰아붙이는 동안에도, 하량은 본인을 할퀴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가진 것도 없는 사내가 상단을 그만큼 키워낸 걸 보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겠지요. 어쩌면 몸을 팔고 다녔을지도…….”
예결은 항의하는 뜻으로 끌어안고 있던 사내의 목을 꽉 물어버렸다.
흑귀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의 하량은 미웠다.
품에 안고 있는 몸이 쾌감이 아니라 분노로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 흑귀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고작 대타 따위가 그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싫으십니까?”
무어라 답해야 할지, 예결은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찰나조차 견딜 수 없다는 양 둔부를 그러쥐어 오는 우악스러운 손길이 실로 낯설었다.
흑귀는 대사형이 예결에게 숨겨놓은 민낯 같은 거였다.
원래의 모습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인내심과 자제력을 가진 사내가 흑귀의 모습으로 저를 안을 때면 유독 흉포하고 거칠어진다.
본디의 사제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을 제하량의 뒷면.
예결이 어찌 그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저는.”
가까스로 입술을 뗀 예결은 목멘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대사형의 품에는 안길 수, 읏! 없는걸요. 저는…… 그저 가엾은 사제일 뿐이니까.”
어설프게나마 허리를 들썩이며 사내의 양물을 조르는 예결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필사적이었다. 하량은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나를 가진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예결은 땀에 젖은 사내의 목덜미 위를 더듬더듬 어루만졌다. 자신이 어느 즈음을 깨물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 마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입질을 한 자리를 핥아주는 대신, 예결은 흑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하아.”
배부른 사자의 나른한 한숨 같은 것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예결은 안심하기는커녕,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아흐, 아, 흐아앗!”
아래가 한계 이상으로 벌어질 때면 찾아오는 묵직한 둔통이 어김없이 예결을 쫓아왔다.
밀지에 들어차 있던 흑귀의 물건이 계속 커지고 있었다.
장기가 눌리는 압박감에 천으로 가린 두 눈이 더없이 커졌다. 울려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흐윽, 흣……. 아, 아프…….”
말캉한 혀가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을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무릎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는 예결의 어깨를 부드럽게 눌러서 제지한 사내가 그의 몸을 짓눌러왔다.
뒤에서부터 끌어안은 채 가슴을 주무르는 손길이 능수능란했다.
압박감보다도 쾌락 그 자체에 오감이 서서히 분산되었다. 예결의 입에서 감창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하량은 충분히 적응되었다고 판단했는지 뒤에서부터 퍽퍽 거칠게 아래를 쑤셔왔다.
질펀하게 젖은 밀지를 버겁게 드나들던 양물은 점차 속도를 더해갔다.
“아흣!”
분명 두 눈은 현실을 보고 있는데 머릿속에는 하얀빛이 번쩍번쩍 오고 가는 것만 같았다. 넘실거리는 쾌감에 휩쓸려 까무러치지 않는 스스로가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몇 번 받아봤다고 하량의 성기가 익숙해지기라도 한 걸까?
식탁에 쿵쿵 부딪히려는 이마를 단단한 손이 감싸왔다. 예결은 기다렸다는 듯 그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헤프게 울었다.
‘어차피 금방 낫는다는 걸 다 알면서…….’
예결은 속으로 잘난 손이 가엾다고 못내 탄식하면서도 가슴께에서 무언가 따뜻한 게 번지는 걸 느꼈다.
출구가 없는 미로에 갇힌 기분이 이런 걸까.
예결은 하량이 거칠어서 좋았고, 그가 다정해서 좋았다.
애태우는 건 싫지만 그래도 대사형이 뜸을 들일 때면 매사 진중하던 그가 자신을 상대로는 짓궂어지는 법도 아는 것 같아서 좋다.
기어이 밀지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밀고 들어온 하량의 성기가 몸을 가득 채웠다. 쾌감을 느끼는 중에도 이대로면 아랫배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식은땀이 죽 흘렀다.
쾌감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찰싹 달라붙은 채였다.
지독한 쾌락에 고조되어 있던 성감은 하량이 깊은 곳으로 밀고 들어올 때마다 오싹오싹 떨리며 내려앉는다. 그 까마득한 낙차가 예결의 정신을 쥐어짜고 그의 호흡을 앗아갔다.
여기가 아늑한 침실도 아니라 사천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세워진 주루라는 것마저도 잊어버린 채, 예결은 자신을 닦아세우는 사내의 품에 매달려 그의 아랫배에 달아오른 성기를 비볐다.
쾌락에 매몰된 채 낑낑대는 음탕한 사제를 내려다보는 하량의 입가에 나른한 미소가 머물렀다.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으로 더럽혀 놓은 후에야 비로소 안심이 된다.
무심코 더 아래로 끌어내리고 싶어질 정도로.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