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도둑 키스 (9)
좌측은 남궁운, 우측에는 삼랑이다.
살수 백 명이 오더라도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필 이 둘이 버티고 있으니 난관도 이런 난관이 없다.
남궁운이 천년뇌각망을 알아보면 큰일이니 뱀뱀이를 꺼낼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본능적으로 피했다가는 얘 대체 뭐야……? 하는 의심을 살 거다.
결국 반응을 조절해야 한다.
마침내 공격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들 일행을 향해 암기가 날아왔다.
예결을 향한 날붙이가 제일 많았다. 상대는 이 일행의 구멍이 누군지 아는 게 분명했다.
지나치게 좋은 동체시력과 반응속도를 뽐내지 않기 위해 예결은 위기 앞에서 뻣뻣하게 몸이 굳은 사람처럼 두 눈을 크게 떴다. 두 손으로는 하량에게 건넬 선물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
“아……!”
채 비명이 되지 못한 탄식을 입 밖으로 흘려보낸 순간, 부드럽고 질긴 끈이 예결의 허리를 낚아채서 끌어당겼다.
당겨진 방향을 보니 삼랑이었다.
무어라 설명할 겨를조차 없이 삼랑은 예결의 머리를 눌렀다. 머리 바로 위로 날붙이가 살벌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지나갔다.
능숙하게 날을 피해 암기를 낚아챈 삼랑은 본인의 품에서 꺼내 든 비도를 날렸다.
큰 동작이었기 때문에 살수는 무리 없이 이를 피했지만, 이는 삼랑의 노림수였다. 그녀는 살수가 피한 자리에 예결을 잡아끄는 데 썼던 천을 던졌다.
천에 목이 졸린 채 버티던 살수의 발이 질질 끌렸다. 삼랑이 힘주어 확 끌어당기자 사내의 몸이 허공을 잠시 날았다. 우둑하고 뼈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두 팔과 다리가 한순간 늘어졌다.
이 정도로는 그녀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지붕 위에 숨어 있던 살수들이 우르르 뛰어내려 삼랑을 향해 달려들었다. 살수의 움직임이야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하다는 양 삼랑은 천을 던져 건물 벽에 쳐져 있던 천막의 기둥을 끌어당겼고, 살수들이 그 아래를 지나기가 무섭게 천이 풀썩 내려앉았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삼랑은 비도 네 개를 한꺼번에 날렸다. 때가 탄 하얀 천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에서 비도가 목적을 달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딜!”
삼랑이 지형지물을 활용하며 그녀 쪽의 살수를 처리하는 사이, 남궁운은 다른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암살자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보법으로 거리를 벌려 암기를 날리려 해도 남궁운은 이를 침착하게 쳐내거나 피해서 소진시켰다. 결국 살수는 칼을 빼 들고 남궁운의 간격 안으로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벌모세수로 인해 강력한 내공이 뒷받침되는 데다가 명가의 가르침을 받은 남궁운은 균형이 잘 잡힌 무인이었다.
‘암습에 실패한 이상 정면대결로는 절대 못 잡지.’
안전한 보호를 받으면서도 예결은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여차하면 본인이 나서야 할 테니 전황을 살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뱀뱀이가 활약할 자리가 없어 보이니 다행이었다.
‘청해상단을 중원 삼대 상단으로 만들기 전까진 남궁세가에 뱀뱀이를 들키면 안 된다.’
남궁세가가 천년뇌각망을 애완용으로 기를 리가 없으니 결국 내단을 위해 배를 가를 것이다. 뱀뱀이에게 애착이 생긴 예결은 눈에 모래가 들어가도 그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죽어라!”
한 살수의 외침에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가자 남궁운의 등 뒤에서 다른 암살자가 그를 기습했다. 하지만 이를 이미 알아챘다는 듯 남궁운은 상대를 날렵하게 걷어찼다.
사정을 두지 않은 각법에 살수가 날아가면서 피를 토했다. 그 와중에도 살수는 손에서 놓치지 않은 반달 모양의 칼을 날렸다.
삼랑의 매끄러운 천이 그 무기를 감싸더니 끌어당겼다. 동료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살수의 미간에 반달 모양의 칼이 박혔다.
대체 어떻게 짠 천인지는 몰라도 내공을 불어넣으면 흡사 고무와도 같은 탄력이 생기고 어지간한 날로는 끊어지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무림에는 정말 기물이 많다니까.’
어색하게 겁에 질린 흉내를 내며 예결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난전이 한참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는 문진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습격자들은 어느새 반 이상이 줄어 있었다. 대부분은 바닥에 나뒹구는 시체가 되어 있었다.
생존한 살수 중 한 명이 무언가 수신호를 보내자 살아남은 이들이 한순간에 썰물처럼 물러났다. 따로 알아볼 만한 표식도 없었는데, 그가 살수의 우두머리인 모양이었다.
한순간에 도주하기 시작한 살수들은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삼랑은 당황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달아나는 이들의 등을 향해 비도를 날렸다.
전력을 다해 멀어지는 이들을 손쉽게 따라잡은 암기는 목표물의 몸을 관통했다. 도주하던 살수들은 하나같이 왼쪽 가슴이 뚫린 채 픽 픽 쓰러졌다.
하나 가까스로 삼랑의 비도를 피한 마지막 살수는 동료의 죽음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마저 죽일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예결은 흘깃 삼랑의 눈치를 살피다가 다리에서 힘이 풀린 척 비틀비틀 건물의 벽으로 다가갔다.
기댈 작정이었는데, 가만 보니 피가 튀어 있었다. 예결은 그냥 속이 역한 사람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예결은 다치지 않았습니까?”
“멀쩡, 멀쩡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남궁 공자.”
어찌나 명검인지, 남궁운의 검은 숱한 살수를 베어 냈음에도 여전히 희게 빛나고 있었다. 피를 닦아낼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예결의 무사를 확인한 그는 전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 죽었군.’
정확히 표현하자면 ‘죽였다’.
일부러 손속을 가벼이 했음에도 살아 있어야 할 살수 몇의 목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었다.
‘심문은 물 건너갔다.’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아 있지 않음을 확인한 남궁운은 검을 갈무리했다.
찰칵, 하고 검집과 검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남궁운의 시선은 예결의 그림자에 스며들어 가듯 선 삼랑에게로 향했다.
저 여자가 전부 죽였다.
살인멸구를 노린 게 아니냐고 묻기엔 이 상황과 예결의 호위 사이에 관계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저 손속이 잔인한 자일 가능성도 있었다.
저 호위는 교룡선에 올랐을 때부터 계속 남궁운의 눈에 밟혔다. 그의 본능이 삼랑이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알리며 경종을 울렸다.
거대 세가의 소가주로 훈련받아온 남궁운은 능숙하게 심증을 삼켰다.
“일단. 객잔으로 가야겠군요.”
“사, 사람이 죽었는데 어디에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남궁운은 이런 종류의 뒤처리를 한 경험이 있는 눈치였다.
“간도 크지. 여기가 청해라지만 어찌 운을 노리는 살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결은 간이 졸아붙었지만, 화가 난 사람답게 입술을 깨물었다.
“남궁세가는 워낙 큰 곳이고 가문의 행사에는 여러 이권이 얽혀 있으니까요.”
태어난 순간부터 가문의 원한을 짊어져야 했을 남궁운은 그리 충격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잠시 말꼬리를 흐린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의 손을 내려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들이 쓰는 무기가 좀 낯설었습니다. 중원에서는 주로 쓰이지 않는 형태더군요. 무공도 독특했고…….”
사슬이 연결된 반달 모양의 칼이라든가 톱날이 있는 비도는 다소 생경했다.
원래 남궁운이 종종 마주치던 살수의 무기와는 결이 다르다.
“그럼…… 일이 복잡해지나요?”
복잡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저들의 목적이 처음부터 남궁운이 아니라 예결이었을 수도 있다는 소리니까.
“아닙니다. 그저 무인이라 새로운 무기에 관심이 가서 한 말이었을 뿐입니다. 제가 청해에서 오래 머무르고 있으니 사막 쪽에 본거지를 둔 살수 단체를 동원했겠지요.”
예결의 걱정스러운 시선에 남궁운은 본인이 느끼던 의혹을 숨겼다.
청해상단처럼 큰 단체를 거느린 예결이니 누군가가 노리는 게 마냥 이상하진 않다.
남궁운이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동안, 그의 몸을 샅샅이 살피던 예결이 외쳤다.
“앗. 상처가……!”
“아.”
남궁운은 덤덤하게 자신의 팔을 내려봤다. 예결에게로 향하던 암기를 쳐내면서 하나가 스친 모양이었다.
경미한 부상이었으나 예결은 안색을 굳혔다.
“다치셨습니다.”
“이 정도는 금방 나을 겁니다.”
“아뇨.”
예결은 단호했다.
“중독되었을지도 모르니 꼭 의원에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삼랑.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의원이 어디지?”
가이딩은 가이드에게. 그리고 치료는 의사 선생님에게.
자신이 약한 척하느라 가이드가 다쳤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건 에스퍼도 아니다.
“이쪽이긴…… 한데. 정말 그걸로 의원을 보러 가시려고요?”
삼랑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하긴 무인의 회복력이 오죽한가. 저 정도는 침 바르면 낫는다. 하지만 예결은 이 문제에 있어선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래서 무림인들이란.’
독이 아니라도 파상풍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진짜 몸이 좋으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건 딱 강호에서 칼밥 먹는 무인들을 두고 나온 말이 틀림없었다.
예결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빤한 시선에서 전해져오는 무언의 압박에 결국 삼랑은 입을 열었다.
“안내하겠습니다.”
“예결. 나는 정말 괜찮습니다.”
본인이 멀쩡하다는 사실을 피력하려고 했으나 입을 꾹 다문 예결이 도저히 들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남궁운은 순순히 예결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 한마디 않는 등은 그에게 묘한 기분을 선사했다.
슬쩍 기를 돌려 보았으나 독에 중독되었을 때 특유의 감각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피가 비치긴 했지만 조금 우기면 생채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처 때문에 의원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은 남궁운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그는 남궁세가라는 거대 가문의 후계자로 컸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의젓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통스러워도 아프다고 말해선 안 되고 힘들어도 지쳤다는 내색을 해서는 안 된다. 남궁운의 어깨에는 가문과 그에 따른 식솔들이 전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긁힌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동요하는 이는 정말이지……. 낯설었다.
남궁운이 홀린 듯 예결의 뒤를 쫓는 사이, 어느새 그들은 의원에 당도해 있었다.
“일단 저는 상단에 기별을 보내야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삼랑의 말에 예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암살 사건에 휘말렸으니 이 일을 오래 감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예결의 허락을 받은 삼랑은 남궁운 쪽을 흘깃 보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거침없이 안으로 걸음을 옮긴 예결은 수염이 성성한 의원을 찾아냈다. 눈을 요긴하게 쓴 덕분에 사람을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이고 놀라라.”
“여기 환자가 있습니다.”
약재를 다듬던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이 공자를 살피면 되는 겁니까?”
“예.”
“오. 이 정도 상처면 금창약만 잘 바르는 걸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검을 자주 잡는 사람이 오른팔을 다치지 않았습니까?”
예결은 지긋한 시선으로 의원을 바라봤다.
“혹시 덧나기라도 하면 무척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금창약이나 좀 발라주고 끝내려 했던 의원은 예결의 닦달에 못 이겨 남궁운의 팔에 붕대를 둘러 주어야 했다.
“어떻습니까? 의원님.”
“척 보기에도 환자분이 워낙 건강한 체질로 보이시니 금방 나을 겁니다.”
환자라고 발음하는 것 자체가 어색한지 영 떨떠름한 목소리였다.
“다행입니다.”
예결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배 에스퍼들이 가이드는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깨질세라 하던 걸 봐왔더니 자신도 옮은 게 분명하다.
그때, 불쑥 문이 열렸다.
“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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