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39화 (139/203)

139화. 가장 오래된 (1)

‘와……. 들킬 뻔했다.’

뺨을 어루만지던 하량의 손길은 턱 끝으로, 그리고 목선을 따라 옮아갔다.

일부러 급소를 건드리고 반응을 살피는 거다.

보통은 생명의 위협을 당한 직후에는 본능적인 공포나 혐오를 드러낼 테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지.’

예결은 에스퍼고, 상대는 가이드였다. 악몽이나 약에 취해 살의를 드러내던 사내는 언제 그랬냐는 양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갈무리한 채 예결에게 닿아 있었다.

회복에 매진하느라 바닥을 드러냈던 가이딩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거부감 같은 걸 느끼기는커녕 감로수처럼 느껴진다.

‘역시 초가 꺼져 있어서 알아채셨나?’

도망치듯 나온 후에야 초가 여전히 꺼진 상태라는 걸 깨달은 예결은 고심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엔 시간이 애매했다.

아직 손자국이 사라지지 않은 목을 꽁꽁 싸맨 예결은 방으로 돌아와 탕옥을 준비시키고 그 안에 처박혔다.

목의 남은 손자국이 회복될 때까지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예결은 평소 목욕 시중 같은 건 받지 않을뿐더러 삼랑이나 진영이 찾아와도 씻는 중이라 하면 돌아갈 테니 좋은 생각이라 여겼다.

대사형이 예고조차 없이 들이닥칠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여기 계속 온수가 나와서 신기해요.”

예결은 부러 천진한 척 물장구를 치며 말했다. 일부러 수면에 파문을 만드는 중이었다.

하량의 옷자락에 점점이 젖은 자국이 생겨났다.

“인근에 온천이 있어서 연결해 두었으니까. 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구나.”

침착하게 설명한 하량이 웃었다.

“하지만 물이 따뜻해도 너무 오래 있으면 감모 들라. 늦지 않게 나오렴.”

예결은 손가락을 튕겨 하량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조금만 더 놀고요.”

하량의 가장 오래된 심마가 천진하기 짝이 없는 낯으로 그를 바라본다.

저에게 해를 끼칠 리 없다는 듯 무구한 신뢰로 가득한 시선으로.

“혼자 심심했던 모양이구나.”

애달프고 사랑스럽고 원망스러운 이를 마주 보며 하량이 물었다.

“조금, 놀아줄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 겨를조차 없이 하량이 성큼, 탕조 안으로 들어섰다. 예결이 다리를 뻗고 발장난을 쳐도 여유롭던 공간이 빠듯하게 좁아져 간신히 두 사내를 담아내고 있었다.

찰랑찰랑하던 물이 흘러넘쳐 탕옥의 바닥을 적셨다.

채 벗지도 않은 옷이 젖어 들어가며 하량의 살갗에 달라붙는 모습이 아찔하리만치 자극적이었다.

하량은 눈을 내리깔았다. 속눈썹이 드리우는 음영에 넋을 뺀 예결은 한 발짝 늦게 그의 시선이 어디에 닿았는지 깨달았다.

일렁이는 수면의 아래, 애써 옹송그린 다리 사이를 확인한 사내의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올라갔다.

“대, 대사형?”

“무얼 그리 숨기나 했더니.”

하량은 손을 뻗어 뺨 위에 흘러내린 예결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다른 손은 물속에 숨어 드러나지 않던 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내 가르쳐준 것을 잘 복습하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길고, 제법 모양 좋은 양물이 하량의 손아귀에 붙들렸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예결의 성기는 흥분한 채였다.

“아흣!”

하반신이 붙들린 예결의 입에서 날카로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탕조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이 좁은 곳에서 달아날 곳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몸을 하고 아무 일도 없던 척 잘도 시치미를 뗐구나.’

가엾게도 포획당한 사제를 내려다보며, 하량은 실소했다.

“아, 흐읏. 그게……. 응. 사형……. 혼자,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네?”

“쉬이…….”

예결이 횡설수설 애걸했으나 하량은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깨어난 순간부터 채 털어내지 못한 질척한 악몽이 그림자처럼 하량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온전히 깨어나지 못한 사내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보다도 충동이었고, 억눌러왔던 가학심이었으며 속절없는 지배욕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조금, 도와주는 정도만.’

능숙하게 지키던 선을 넘어서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사실, 언제나 그 너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 아아… 흣!”

하량은 달큰한 살갗에 얼굴을 묻고, 손을 움직였다.

강압적이기까지 한 쾌락에 예결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물이 넘치며 바닥을 찰박찰박 때리는 소리가 탕옥의 벽에 맞부딪히고 돌아와 울리며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내내 몸을 더운물에 담그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예기치 못한 쾌락 탓인지 현기증과 비슷한 감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그, 흐읏. 사형. 아프, 아니. 그.”

“아프기만. 한 건 아닐. 텐데…….”

후, 하고 숨을 몰아쉬는 하량의 음성이 살짝 끊겼다가 이어졌다. 예결은 사내의 눈가에 열감이 머물러 있음을 알아챘다.

“솔직하게 말해보렴. 네가 내게. 이 우형에게 숨길 게 무어가 있겠니?”

지척에서 열렸다가 닫히는 입술이, 그 붉게 물든 색과 욕망인지 수증기인지 모를 것으로 희뿌옇게 변한 시선이 판단력을 앗아갔다. 예결은 염치도 잃고 자제력도 잃었다. 벌거벗겨진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시뻘건 욕망뿐이었다.

홀릴 대로 홀린 에스퍼는 제 가이드에게 애걸했다.

“……좋아요! 읏, 조, 좋아요……! 더, 더 해주세요.”

울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젖어 있는 뺨이 야속하다는 듯 손가락으로 툭 건드린 하량이 예결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착하구나.”

희고 무른 살을 범하던 무도한 손길은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이 흡족하다는 듯, 집요하게 예결의 살기둥을 비비고 조였다.

음낭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끅끅거리며 어린 짐승 우는 소리 같은 것을 내던 예결은 어느새 하량의 품에 매달려 있었다.

어린아이 달래듯 사제를 무릎에 앉힌 하량은 수면 아래의 사정에 몰두하고 있었다.

“흐응……. 대사형.”

비음 섞인 채근에 하량은 예결의 목덜미 위로 긴 숨을 뱉어냈다. 보송보송한 솜털마저 젖은 그 위로 입술을 미끄러뜨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저를 기만하고 범하는 사내의 희롱에 몸을 내맡기는 사제를 볼 때면 그가 가엽고 어여쁘다. 저에게 빚진 것도 없으면서 되다 만 짐승 따위에게 발목이 잡힌 신세 아닌가.

‘하지만 놓아줄 수는 없지.’

예결에게는 양지가, 남궁운 같은 이의 곁이 어울릴 거다.

그러나 하량은 사제를 그림자에서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옛 사부님의 유언마저 저버리고 곤륜을 올라 사제를 되찾은 날,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지지 않았나.

“사형…… 사형…….”

물이 탁해지는 게 보였다. 예결은 실례한 아이처럼 수치스러움을 느꼈는지 울음 섞인 애원으로 하량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래. 그래…… 내가 여기 있단다.”

하량은 예결의 등을 끌어안고 조심조심 다독였다.

탕조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예결을 안아 든 채 물을 비워냈다. 온천수가 이어져 있으니 다시 물을 채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이 탕조 안에 차오르기 시작하자, 하량은 예결을 그 안에 내려놓았다.

이대로면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으니 씻고 나오라는 뜻이었다.

하량은 천천히 몸을 뒤로 물렸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호흡을 고르던 예결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하량의 중심부가 무서울 정도로 성이 나 있다는 걸 알아챘다.

제 욕망 따윈 별거 아니라는 듯, 긴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짜내고 있던 하량은 예결의 시선이 어디에 닿았는지 깨닫고는 야릇하게 웃었다.

“도와주려고?”

수증기가 적신 하량의 낯은 조금 불콰해져 있었다.

술에 취할 리 없는 사내의 발그레한 낯은 예결을 들쑤시고 충동질했다.

‘자극이 너무 큰데.’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에 아랫입술을 핥은 예결은 차마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서 있는 하량에게 조심스럽게 손을 뻗은 예결은 젖은 옷을 벗겨내려다가 몇 번이나 헛손질했다.

발기한 정도를 보면 도무지 인내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은데도 하량은 나른한 눈으로 예결을 내려다보며 기다렸다.

가까스로 바지를 벗겨내자 예결이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본 적 없는 크기의 양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매번 안에서 커지기에 설마 설마 했지만…….

“무리하지 말렴.”

아연함에 사제가 멈춰 있자 하량이 달래듯 말을 건넸다. 예결이 이렇게 놀랄 걸 이미 예상했다는 투였다.

“……아뇨. 괜찮아요.”

오기가 치솟았다. 안에도 넣어봤는데 고작 쥐고 흔드는 게 뭐가 어렵다고.

두 손으로 하량의 성기를 쥔 예결은 손아귀에 빠듯하게 차는 양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표면에서 느껴지는 성난 힘줄에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너무…….”

예결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너무?”

하량이 채근하듯 되물었다. 예결은 차마 문장을 완성하지 못한 채 고개를 홱 돌렸다. 왜 이럴 때만 얄궂은 사내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때, 무언가가 뺨에 스쳤다. 다시 정면을 본 예결은 그게 무언지 알아챘다.

성기의 위치가 딱 뺨을 건드릴 듯 말 듯 한 높이였다.

‘입에 물어보고 싶은데…….’

예결은 흘깃 하량의 눈치를 살폈다. 반쯤 눈을 내리깐 하량의 낯은 지독하게 야했다.

항상 예결을 쥐고 흔들기만 하던 사내가, 민낯을 드러낸 채 그에게 붙들려 있었다. 꽁꽁 싸맨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낸 하량의 얼굴에는 예결이 몰랐던 야만이 서려 있었다.

‘이런 몸을 도복 아래 감추고 있었다고?’

하량이 곤륜이 아니라 화산처럼 혼례가 허락된 문파 소속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판단력이고 자제력이고 전부 날릴 뻔했던 예결은 가까스로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구음을 시도하기엔 정말 기술이 부족했다. 냅다 입에 넣는다고 끝이 아닐뿐더러, 요령 없이 삼키려 들었다가는 입가가 헐어버릴 게 분명한 크기였다.

‘살짝, 아주 살짝만 핥아보면…….’

안 된다.

애써 머리에 힘을 주며 예결은 손을 움직였다. 아쉬움 때문에 힘이 들어간 손아귀는 요령은 좀 부족해도 열심히 하량의 성기를 애무했다.

“이렇게 쥐고……. 흔들면.”

“아……. 그래.”

입 안에 타액이 고이고 허리가 자꾸만 들썩인다.

사내의 살 내음이 다 무어라고.

저를 내려다보는 비스듬한 시선이,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신음이 다 무어라고.

“……잘하는구나.”

낮게 가라앉은 하량의 음성이 예결을 칭찬했다. 순간 예결의 귀가 확 붉어졌다.

하량의 손길에 한 차례 절정을 맞았던 하반신으로 다시 열기가 몰리고 있었다.

차오르는 중이긴 했으나 한 번 부어버린 탓에 무릎께에 닿는 게 고작인 물은 예결의 부끄러움을 제대로 가려주지 못했다.

어깨와 팔꿈치, 손목과 무릎, 귓불과 목덜미가 전부 복사꽃처럼 옅은 분홍빛으로 물든 사제를 내려다보던 무도한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지나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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