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가장 오래된 (2)
하량의 손길이 부드럽게 예결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러나 소슬한 바람이 스치는 양 오싹한 감각이 내려앉았다.
“대사형이…… 직접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예결은 시선을 피한 채 웅얼웅얼 답했다. 웃음소리처럼 들리는 무언가가 귓가를 스쳤다.
“……그래. 내가 그랬지.”
잠시 뜸을 들인 하량이 툭, 내뱉었다.
“버릇이 나쁘게 들진 않은 것 같구나.”
예결의 어깨가 움찔했다.
‘아무에게나 배우면 버릇이 나쁘게 들 텐데-’
꼭 같은 사람이 전혀 다른 입술로 내뱉은 그 말.
그 말이 간담을 서늘하게 조여왔다.
이는 제하량이 내내 감시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대사형이 흑귀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한 까닭이다.
흑귀와 제하량을 분리한 채로 사제의 밤과 낮을 모두 누리던 사내는 결국 마음을 정한 것이다.
삼킬 도리조차 없이 내뱉은 들뜬 숨이 하량의 성기에 닿았다. 예결은 들켜서는 안 되는 속내가 들킨 이처럼 조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아…….”
나직한 탄식과도 같은 호흡이 하량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탕옥 안의 열기와 습한 공기, 그리고 찰박찰박 물이 튀는 소리가 예결을 부추겼다.
곤륜의 그 누가 하량의 정갈한 도복을 헤치고 그의 나신을 훔쳐보았겠는가?
세사에 초탈한 듯한 분위기를 두른 채 뭇사람들의 어려움을 돌봐주며 악적을 물리치고 다닌 협객이 욕망에 못 이겨 신음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라도 해 봤겠는가?
제하량과 유일하게 염문이 있던 황보약린조차 그의 이부누이라 하였다. 그러니 이 너른 중원에 대사형이 이런 모습을 내보인 이라곤 오로지 예결뿐일 것이다.
눈꺼풀마저 더위를 먹은 듯 시야가 어지러웠다. 예결은 슬쩍 하량을 훔쳐봤다.
그의 눈이 예결을 보고 있었다.
“읏.”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 예결은 쾌락과 고통이 반씩 섞인 하량의 신음에 쥐고 있던 양물을 놓칠 뻔했다.
욕망이 섞여 들어가 검게 가라앉은 눈에는 온통 예결이 담겨 있었다.
‘이 사람, 숨길 생각은 있는 건가?’
부끄러워서, 혹은 속내를 숨기기 위해서라도 대사형이 눈을 피할 거라 생각했던 게 무색할 지경이었다.
“아프구나.”
투정하듯 말한 음성에는 웃음기 섞인 다정이 실려 있었다.
“죄, 죄송해요.”
가까스로 하량의 시선에서 빠져나온 예결이 얼굴을 붉히며 허둥지둥하자 그의 손이 예결의 손등 위를 감쌌다.
“괜찮다. 그래도-”
“어? 어어.”
당혹에 당혹이 줄지어 예결을 덮쳤다.
예결이 채 갈무리하지도 못한 얼굴을 빤히 보고 있음에도 하량에게는 그를 풀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젖은 채로 오래 있으면, 감모가 들지 않겠니.”
공교로운 우연처럼, 하량의 머리카락에서 물방울이 뚝, 하고 떨어졌다. 가슴팍을 따라 흘러내린 물방울은 젖어서 속살이 비치는 가슴골 사이로 또르르 흘러내렸다.
예결은 제 손을 놓아달라는 말을 꺼내는 것마저 잊은 채 홀린 듯 하량을 바라봤다.
애지중지 귀애하던 사제의 손을 감싼 채 움직이는 하량의 수음은 퍽 거칠었다. 예결은 그가 쥐고 흔드는 것이 하량 본인의 성기인지, 아니면 자신의 손인지 조금 헷갈렸다.
아직은 하량이 선을 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살짝 미간을 좁힌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입 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이 이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아서.
손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머리까지 옮겨붙었는지 뜨거웠다.
“크읏…….”
성대를 긁듯이 흘러나오는 대사형의 저음을 듣고 있노라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엉망진창으로…….’
좀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다.
아까부터 느낀 갈증에 예결이 아랫입술을 핥는 순간, 하량이 사정했다. 얼굴에 튄 백탁액이 질척한 감촉과 함께 흘러내렸다.
예결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비강에 훅 끼치는 꿉꿉한 밤꽃 냄새를 맡은 뒤에야 정신이 들었다.
“아.”
헐벗은 몸에, 걸친 거라곤 대사형의 정액뿐이다.
안 봐도 꽤나 지저분한 몰골이 되었을 것 같아 손을 들어 올려 닦아 내려는데, 하량이 더 빨랐다.
“내 너를 더럽히고 말았구나.”
이미 젖은 옷소매로 한쪽 뺨을 닦아내는 손이 뜨거웠다. 예결은 하량의 손목을 밀어내며 두서없이 웅얼거렸다.
“아니에요. 이 정도는 금방 닦으면 되니까…….”
“이 우형이 끝까지 책임지게 해주렴.”
하량이 손길이 예결의 턱을 틀어쥐었다. 밀쳐낼 생각도 없으니 벗어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젖은 옷소매가 반대편 얼굴을 찬찬히 닦아냈다.
“나도 씻어야 하지 않겠니.”
그리 말한 하량이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결국 예결은 하량의 손에 몸을 맡긴 채 목욕 시중을 받았다. 왜 이런 것까지 잘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손길이었다.
‘게다가……. 담백하다.’
예결은 멍하게 생각했다. 머릿속이 텅 빈 것만 같다.
다시 차오른 온수나 탕옥 안을 가득 메운 수증기 때문은 아니었다.
방금 일어났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정중하게 예결의 살갗을 닦아주는 사내 때문이었다.
“그렇게 쳐다보니 부끄럽구나.”
하량이 수면 위를 툭 튕기며 말했다. 뺨과 눈가에 튄 물방울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예결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무릎을 끌어안고 중얼거렸다.
“제가, 이 사제가 아둔한지라 혼란스러워요.”
예결은 하량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웅크린 채 상대를 탐색하는 예결의 시선은 마냥 무구하지 않았다.
흑귀가 아닌 제하량이 직접 저에게 손을 댄 게 벌써 두 번째였다. 이대로 어영부영 넘어갈 수는 없었다.
“혹, 싫었니?”
하량이 천을 눌러 꾹 짜내자 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요동치는 수면만큼이나 온갖 답이 예결의 앞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아뇨.”
“그래. 나 또한 그렇단다.”
웃으며 답한 사내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말을 골랐다.
“싫지 않아서…… 아니, 그건 거짓말이지.”
픽 올라간 입꼬리가 대사형답지 않게 삐뚜름해 보였다. 예결은 제가 맞게 보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어 눈을 몇 번이나 끔뻑였다.
“항주에서 있었던 일이 퍽 좋았단다. 그저 잠에서 덜 깬 채 있었던 일이라 나 홀로만 꿈결 같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예결의 팔을 닦아주던 하량의 손이 천 대신 예결의 살갗을 스쳤다. 고의성이 짙게 느껴지는 접촉이었다.
“내 확인하려 그랬다.”
“……하, 하지만.”
자꾸만 함박웃음이 나올 것 같았으나 예결은 이를 애써 참으며 하량을 올려다봤다.
“저는, 저희는. 사형제지간이 아닌가요?”
긁어 부스럼이 아닌가 싶어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예결은 이미 금기를 범한 사내를 믿었다.
“결아.”
나지막한 부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점의 위엄도, 한 점의 분노도 느껴지지 않는 상냥한 말씨임에도 그랬다.
“너는 다정한 아이라 이 우형을 여전히 존중해주고 있지만, 제하량이라는 사내는 네게 대사형이라 불릴 자격을 잃었단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목이 멨다.
“아주 오래, 정말 오래전에.”
대사형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예결은 한 대 세게 맞은 사람처럼 혼곤해졌다.
‘처음부터, 대사형에겐 기사멸조조차 아니었다는 거야?’
그 후로는 마치 실이 끊긴 인형처럼 하량에게 몸을 맡겼다.
탕조에서 일으켜 세워지고, 몸이 닦이고, 큰 천에 둘둘 말린 채 하량의 품에 안겨 복도로 나왔다.
침실로 돌아가는 길은 어둑했고, 삼랑이나 다른 하인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
큰 충격을 받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데다가 물에 젖은 예결은 퍽 무거울 터다. 하지만 하량은 공깃돌이라도 다루는 양 사제를 가볍게 쥐고 흔들었다.
침상 곁의 의자에 앉혀진 예결은 바람이 빠진 풍선 인형처럼 두 팔을 늘어뜨렸다.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진 물방울이 마룻바닥을 짙은 갈색으로 적셨다.
어디선가 영견을 가져온 하량이 예결의 머리를 감쌌다. 예결은 퍼뜩 손을 들어 올렸다.
“……제가 할 수 있어요.”
탕옥을 나서서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하량은 저를 붙든 예결의 손을 자연스럽게 떨쳐냈다.
“여기까지 용납해주지 않았니. 기왕이면 끝까지 책임지게 해 주렴.”
웃으며 말하던 그가 멈칫하더니 예결의 손목을 잡아 들어 올렸다. 그 끝을 살피던 사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런.”
“어라?”
예결의 손톱 끝이 살짝 부러져 있었다.
“이게 언제 이렇게 됐지?”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내가 아까 너무 거칠게 쥐는 바람에 부러졌던 모양이구나.”
하량이 미안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까’가 언제인지 잘 아는 예결은 차마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그…… 아니. 그. 괜찮아요.”
탕조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에스퍼라고 해서 손톱이 티타늄 합금으로 된 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머리카락처럼 손톱도 안 자라던데……. 부러진 건 어떻게 되는 거지?’
예결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머리카락이나 손톱이 안 자란다고 해서 크게 불편할 건 없었다.
그저, 모든 게 무서울 정도로 잘 풀리고 있는 탓인지 이런 사소한 신호에서 불안을 찾으려 한다.
어쩔 수 없었다. 예결은 제게 주어진 행복을 안심하고 누리는 특권을 가져보지 못했으니까.
“있잖아요.”
호칭을 생략한 채 흘러나온 부름에 하량의 낯에 긴장이 서렸다.
하지만 예결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은 대단한 계산이나 계략 같은 걸 거치지 않은, 그저 충동의 소산이었다.
“……계속 대사형이라도 불러도 되나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조마조마했던 건지, 초조함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서서히 안도가 번져나갔다.
그러고도 하량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무어라 형용키 힘든 시선으로 예결을 바라보던 사내는 한참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의 형상보다 비틀렸을지언정 사제가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하게 해 주겠다던 하량의 약속에는 변함이 없었다.
“얼마든지.”
***
예결이 잠드는 걸 지켜본 뒤에야 하량은 본인의 침실로 돌아왔다. 문을 굳게 닫아건 사내는 방 안의 모든 초를 밝혔다.
밤이 스며들었던 방 안은 어느새 대낮만큼이나 밝아졌다.
하량은 침실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다가 침상 밑, 아주 자그마한 틈에 툭, 하고 걸쳐진 하얀 것을 발견했다.
두둥실 떠오른 무언가의 파편이 하량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하량은 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하,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다가 다시 손을 떼고 거푸 마른세수를 한 사내는 자신이 찾아낸 것을 집요하게 노려봤다. 잠깐 사이 핏발이 선 두 눈에는 선득한 예기가 머물러 있었다.
어디에서 떨어져나왔는지 몰랐다면 그 정체를 알 수 없었으리라.
‘결이, 네가.’
손톱 조각을 움켜쥔 하량의 무표정한 낯 위로 보일 듯 말 듯 일그러진 미소가 내려앉았다.
‘결국 알게 된 모양이구나.’
방 안을 가득 밝힌 촛불의 빛이 하량의 뒤로 길고도 무량한 그림자를 이어 붙였다.
그 새까만 바닥을 응시한 채, 하량은 제가 지독하게 귀애하는 사제를 하염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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