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44화 (144/203)

144화. 가장 오래된 (6)

“악몽?”

참으로 생경하기 짝이 없다는 양 진영이 중얼거렸다.

“그렇게도 보이겠군요.”

“아니면 뭔데?”

예결의 질문에 진영이 쓰게 웃었다.

“그건 악몽이 아니라 심마입니다.”

뜻밖에도 진영은 순순히 하량의 비밀을 내놓았다.

갖은 설득과 협박이 필요할 거라 생각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해왔던 예결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심마?”

무림인만이 겪는 불치병을 하나 꼽자면 그건 바로 주화입마라 할 수 있다.

무공이라는 강대한 힘을 몸에 품게 된 인간은 종종 주화입마라는 상태에 빠진다. 기혈이 뒤틀리고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증상이라, 백에 구십 구명은 죽음을 맞았다. 혹여 주화입마에서 어렵사리 살아남아도 반쯤 폐인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주화입마에는 갖은 원인이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상황을 세 가지 꼽을 수 있다.

운기조식을 하는 중에 외부의 공격을 받았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마공을 익혔을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어서 심지가 무너진 이가 본인의 심마를 극복하지 못했을 때.

한데 하량에게 심마가 있다니?

“나는……. 몰랐어.”

“그토록 필사적으로 숨겨 오셨는데 문 공자께서 아시면 안 되지요.”

“어쩌다가 그렇게 되신 거지?”

“……그걸 말씀드리기 전에, 저도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진영이 예결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예결은 술술 불었다.

“어제 오후에 대사형을 만나러 갔었어. 온통 어둡고 사람도 없어서 깜짝 놀랐지만, 오수를 즐기는 중이신가 했지. 선물만 두고 갈 생각이었는데……. 초가 켜져 있더군.”

다만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 뒤섞인 답이었다.

“까무룩 잠드셔서 불 끄는 걸 잊으셨나 하고 초를 끄고 돌아서는데, 대사형이 앓는 소리를 내셨어.”

예결은 눈을 내리깔았다. 숨길 수 없는 우울과 염려가 그의 낯에 번졌다.

이건 어쭙잖은 가장이 아니라 예결의 온전한 진심이었다.

“무척, 정말 많이 아파 보이시더군…….”

예결의 목을 조르던 사내는 자신이 괴로워하던 걸 즐기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사로잡은 고통에 어쩔 줄 몰라 발버둥 치는 것처럼 보였다.

“……제길.”

진영이 낮게 중얼거렸다.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기에 예결은 모르는 척해 주었다.

거푸 마른세수한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문 공자가 아침 일찍 서녕성으로 가셨다고 들어서 미리 경고를 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이번 일을 주군께 말씀드려야겠군요.”

“말, 말하지 마.”

예결은 진영을 만류했다.

“대사형이 숨기려 하신 일이잖아. 아무리 사고였다지만 내가 알게 되었다는 걸 그분이 모르셨으면 해.”

“안 다치셨습니까?”

진영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안 다치셨냐는 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상체를 훌렁 벗겨보고 싶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다쳤으면 그날 실려 나왔겠지. 대사형은 그냥 악몽 속에서 끙끙거리신 게 다야.”

예결은 어깨를 으쓱하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주워섬겼다.

“이 장원의 하인들은 주군의 처소에 함부로 접근하지 않게끔 교육받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진영이 쓰게 중얼거렸다.

“심마에 시달리는 주군이 종종 피아를 가리지 않고 손을 쓰기 때문입니다.”

손을 쓴다, 라.

진영은 표현을 섬세하게 골라냈으나 예결처럼 마냥 운이 좋은 이가 몇이나 있었을까.

굳이 셈할 생각은 없었기에 예결은 입을 다물었다.

“당신은 본디 정파의 사람이었지요? 주군과 같은 사문 출신의.”

“응.”

예결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곤륜 출신이다.”

진영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얼핏 유약한 문사처럼 보이는 사내의 눈에 붉은 기가 스쳤다.

“그거 아십니까? 저는 주군을 마교에서 만났습니다.”

예결이 마지막으로 본 하량은 살아남았을지언정 곤륜은 불타고 있었다. 그러니 하량이 마교로 끌려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예결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놈들은……. 그들은 모종의 실험을 위해 무인들을 중원 각지에서 잡아들였습니다. 아니, 무인뿐이 아니라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나이의 어린아이들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

예결은 잠자코 들었다.

“주군은 오래 살아남은 실험체 중 한 명입니다. 실험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초조했는지, 마교에서는 주군에게 마공을 익힐 것을 강요했습니다.”

“마공……?”

예결이 입술을 달싹였다.

“마공이라니?”

마공은 빠른 성취와 패도적인 힘을 얻게 해준다. 그러나 대부분 젊은 나이에 죽는다. 빠른 성취와 강력한 힘 대신 견뎌야 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마기가 골수에 스며서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내게 된다.

정파무림에서는 화경이라 부르는 극마의 경지를 넘어서서 현경이라 할 수 있는 탈마에 오르기 전까지, 마공을 익힌 자들은 고통의 굴레에 갇히는 셈이다.

문제는, 마공을 익힌 자가 경지에 이르는 게 극도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일부 마도인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게 되면 목숨을 끊는 경우가 허다하다.

빨리 오른 만큼, 더 높이 오를 수 없는 것.

그것이 마공의 가장 큰 문제였다.

“대사형이 마공을 익혔다고? 대체 왜?”

새삼 하량이 마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그를 경멸하는 건 아니었다.

마공을 익힘으로 인해 그가 잃을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 까닭이다.

예결의 시선에서 혐오가 아닌 절박함을 읽은 진영이 잠깐 사이 가라앉은 음성으로 답했다.

“그분과 함께 끌려온 사형제의 시신을 문파로 돌려보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예결은 이를 악물었다.

“그럼, 대사형이 파문당하신 건…….”

더는 산 사람조차 아닌 이들을 온전히 돌려보내 주고 싶어서. 그래서였다.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지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예결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사문에 큰 애정은 없었다. 애초에 그는 제하량을 만나기 위해 곤륜을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량이 곤륜을 위해 무얼 했는지는 안다.

온 중원이 그의 이름을 떠들었다. 사문의 모두가 그의 어깨에 기대와 짐을 함께 얹었다. 청해의 귀퉁이에서, 천천히 녹슬어가던 구파일방의 말석을 일으켜 세울 기둥이고 대들보로 여겼다.

하량은 그 관심과 기대 모두를 묵묵히 감당했다.

그랬던 사내가, 고작 마공을 익혔다는 이유로 파문당했다고.

예결이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각설하고, 주군은 마공의 부작용으로 심마에 시달리게 되셨습니다. 약 없이는 잠들 수 없을뿐더러, 그렇게 잠을 청해도 살아 있는 것이 접근하면 공격성을 내보입니다.”

“공격성이라면 어느 정도?”

“저는 지금 눈앞이 문 공자가 정말 살아 있는 게 맞는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무뚝뚝한 진영 특유의 어투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예결은 침묵했다.

“……생각이 많아 보이시는군요.”

“대사형이 심마에 시달리고 계신 데다가 사문에서 파문당한 이유가 마공 때문이라는데, 아무래도 평소처럼 재잘재잘 떠들긴 힘들지.”

예결이 눈가를 꾹 누르며 답했다. 날카롭게 말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자꾸 어조가 꼬였다.

“주군 곁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이시는군요.”

진영이 중얼거렸다.

“왜? 내가 대사형을 떠났으면 좋겠어?”

“그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진영은 솔직하게 답했다.

“내가 대사형에게 쓸모가 없긴 하지.”

예결은 자조적인 투로 중얼거렸다.

“쓸모요?”

남자가 코끝을 찡그렸다.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 공자는 본인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전혀 자각이 없으신 겁니까?”

상대의 추궁에 예결은 눈을 끔벅였다.

가이드 옆이야말로 에스퍼에게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그러니 진영이 안전불감증 운운해봤자 피부에 와 닿을 리 없다.

목이 졸렸음에도 예결에게 더 큰 감정으로 남은 건 그날 하량의 입술을 남몰래 훔친 사건이다.

그의 기준은 일반인의 것과 달리 비틀려 있었기 때문이다.

“주군이 문 공자에게 쏟는 애정과 정성이 이상하다는 생각, 정녕 한 번도 안 해 보셨습니까?”

예결의 반응이 영 갑갑한지 진영이 거푸 추궁하듯 물었다.

“그게 정말 애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결은 답하지 않았다.

애초에 애정이라는 단어조차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아닌가.

감정의 깊이는 0부터 10까지라고 정해져 있지 않다. 3까지가 우정이고, 6부터가 사랑이라는 식의 측량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애정은 오롯한 애정이 아니며 증오도 오롯한 증오가 아니다. 예결은 하량을 존경하고 사랑했으며 집착하고 열망한다.

그중 어느 감정이 가장 큰지는 예결 본인조차 몰랐다. 이 모든 걸 그저 애정이라 뭉뚱그려 표현할 뿐.

하량에 대한 예결의 모든 감정은 삐죽빼죽하고 강렬했으며 정도라는 걸 몰랐다.

어떤 사람은 가이드에 대한 에스퍼의 감정이 집착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게 사랑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그저 구원자에 대한 절박한 믿음이며 신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여전히 향긋한 것처럼, 서로 다른 듯 비슷한 감정은 무어라 불러도 열렬했으며 델 듯이 뜨겁고, 까무러칠 듯 절박하며 애틋하다.

그러니 애정이라는 단어의 정의나 이를 사용할 자격 같은 걸 물어봤자 깜깜할밖에.

‘……어차피 영원히 함께할 수만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상관이지?’

잠시 침묵한 예결은 진영에게 물었다.

“그쪽은 뭔가 다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네?”

진영은 내내 곱씹어온 답을 내뱉듯 막힘없이 말했다.

“심마는 당사자가 겪은 충격적인 사건에서 비롯됩니다. 주군은 여러 굴곡을 겪으셨지만, 항상 헤쳐나오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하지 못한 최초의 사건이 있습니다.”

예결은 하량의 행적을 하나씩 꼽아보며 중얼거렸다.

“대사형이 협행을 하실 때 가장 처음 겪은 건 일림곡 전투였고, 그땐 무사히 빠져나오셨는데? 아니지. 무림대회 가던 날을 기준으로 잡으면 풍여 마을 사건인가?”

가만히 듣고 있던 진영의 낯에 깊은 피로가 스쳤다. 관자놀이를 꾹 누른 사내가 조용히 말했다.

“모두를 지켜왔고 또 지켜야 하는 사람이, 도리어 그를 지켜준 단 한 명을 눈앞에서 잃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무엇이 주군의 심마가 되었겠습니까?”

모래사장에 발을 내디디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푹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입니다.”

진영이 선고를 내리는 판사처럼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분의 가장 오래된 심마입니다.”

(14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