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56화 (156/203)

156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2)

아니, 라든가. 안 돼, 같은 말을 꺼낼 겨를조차 없었다.

더운 숨이 아래에 와 닿았다. 샅을 벌리고 그 사이로 파고든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닥쳐올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비부에 와 닿는 말캉한 감촉에 예결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아!”

채 정제할 틈조차 없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간 날것 그대로의 탄성에도 하량은 물러서지 않았다. 성기나 손가락에 비하면 혀로 안을 쑤석거리는 감각은 얕은 곳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마냥 쾌감만은 아닌 감정이 머리를 하얗게 태웠다.

잠시 얼굴을 뗀 흑귀가 그 높은 콧대로 회음부를 비비듯 애무했다.

“아흣……!”

예민하기 짝이 없는 살덩어리에 선명한 감촉이 와 닿자 예결의 하얀 다리가 은어처럼 파드닥거렸다. 그러나 하량의 두 손이 예결의 허벅지를 단단히 잡아 벌렸다.

연약한 살결 위로 묻어나는 벌건 손자국이 사뭇 야릇하면서도 가학적이었다. 울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예결의 입술 사이로 뚝뚝 흘러내렸다.

다시 밀지를 파고든 혀는 고작 두 번의 진입만으로도 눅진해진 내벽을 양껏 맛봤다. 부러 흘린 츱, 츠읍 하는 적나라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타액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래가 혼자 젖어 드는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갈피를 잃고 허공을 서성이던 예결의 손가락이 흑귀의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저를 옭아매는 손길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 흑귀가 검게 가라앉은 눈으로 예결을 바라봤다. 그의 입술이 젖어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시발, 진짜.’

순간 이성이 뚝 끊어질 뻔했다.

음전하기 짝이 없던 대사형에게 이런 면모가 존재할 거라고 상상치도 못했던 과거의 자신이 한심했다.

아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몰랐다. 사심 가득한 제 눈에도 금욕적인 사내로 보였다면 다른 이들도 감히 하량에게 범접지 못했을 테니까.

“……이제 넣어주세요.”

목소리가 떨린 것도 같았다. 판단력은 이성과 함께 엉망으로 엉켜버렸다.

“벌써 말입니까?”

흑귀는 예결의 발목을 끌어당겨 그 끝에 입 맞추는 여유까지 보였다. 아래가 흉흉하게 불거진 게 뻔히 보이는데도 부러 애태우는 티가 났다.

예결은 돌아버릴 것 같았다. 더듬더듬 아래로 손을 뻗은 예결은 하량이 핥아서 적셔준 구멍을 스스로 잡아 벌렸다.

“어서, 응?”

대사형에게 사내의 양물을 달라고 조르는 사제가 어떻게 비칠지 염려할 여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

예결의 발목을 쥐고 있던 하량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가 조금만 손목을 꺾으면 발목이 분질러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살갗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몸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그를 뿌리쳐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가이드가 원한다면 발목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어디에서 이런 걸…….”

탁한 음성으로 뭐라 중얼거린 사내가 하의를 끌어 내렸다. 툭 튀어나온 성기는 이미 단단해져 있었다.

“아플 겁니다.”

뭉툭한 귀두 끝이 아래에 와 닿는 게 느껴졌다. 예결은 물러서지 않고 그를 마주 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다음 순간, 뜨거운 것이 하문을 파고들었다. 좁아터진 밀지를 강제로 잡아 벌리는 듯한 감각에 예결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시야가 희뿌옇게 번졌다. 거의 처음 사내를 받아들였을 때만큼이나 아팠다.

흑귀의 미간이 좁아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왜 오늘은 눈을 안 가렸지?’

설마, 하는 기대감과 조바심이 동시에 일었다.

“욕심도, 많으십니다.”

뚝 뚝 끊기는 음성에서 끊어질 듯 말 듯 팽팽한 인내심이 느껴졌다.

“제 아래를 잘라다가, 어디에 쓰시려고.”

놀리듯 말하고 있었으나 목에 핏대가 선 걸 보면 그 또한 한계까지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청해로 가져가서, 혼자서 재미 보실, 때 쓰실 요량입니까?”

그런 거라면 특별히 고려해 보겠다는 듯 짓궂게 속삭였다.

“흐으…….”

예결은 아니라고 입술만 벙긋거렸다. 그러나 그의 답은 소리가 되어 입술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달라고 하셔서…… 아낌없이 드렸으니.”

빚쟁이의 요구라 어쩔 수 없이 응했다는 듯 말하는 본새가 참으로 천연덕스러웠다.

“힘을, 힘을 푸셔야지요.”

찰싹, 하고 둔부를 내리치는 손바닥에 예결이 몸을 뒤로 젖히며 바르작거렸다.

“아흐, 읏!”

그렇게 하면 시야를 가둔 눈물을 털어낼 수 있는 것처럼 예결은 도리질했다. 드물게 성기를 만져주는 하량의 손길에 예결은 애써 심호흡했다. 힘을 풀어야 했다.

사내를 받아먹을 준비를 하며 천천히 이완되는 사제의 몸에 흑귀의 입매가 살짝 느슨해졌다. 그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좁은 밀지 안으로 성기를 파묻었다.

“아!”

깊은 곳에 있는 성감대를 비벼주자 예결의 입술 사이로 달콤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몇 번이고 헤집고 엉망으로 만들어 봤기에 하량은 이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낳지는 않았을지언정 찾아냈고 키우지 않았을지언정 가르쳤다. 그가 직접 빚다시피 한 예결의 몸은 쾌락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처음부터 고통이 아니라 기쁨으로 길들인 까닭이다.

‘내 것이다.’

감히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는 아득히 멀기만 했다.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참으로 많았다. 후회가 벼린 날로 몇 번이나 제 몸을 후비고 파헤친 뒤에야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음을 배웠다.

다행이었다.

이 또한 아무도 되돌리지 못할 테니까.

“흐읏, 아……!”

예민해진 가슴이 깨물리는 감각에 예결은 신음을 토해냈다. 벌겋게 달아오른 유두에 뾰족한 잇자국이 생겼다.

반죽을 하듯 가슴을 누르고 비비는 손길에 숨을 빼앗겨 허덕였다. 아래는 그토록 정성껏 핥아 주었으면서 가슴에는 이갈이하는 짐승처럼 입질을 새겨 놓은 대사형의 변덕이 예결의 몸을 냉탕과 온탕으로 반반 갈라놓았다.

사내라 가슴을 빨아봤자 나올 것도 없는데, 하량의 입술은 참으로 집요했다. 왜 아무것도 주지 않느냐 앙살을 부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리도 통통하게 여물 줄 알았다면 진작 먹어 치울 것을.”

흑귀가 혀를 찼다. 상대가 하량이라는 걸 알면서도 목소리가 전혀 달라서인지 그 말에 순간 등허리가 오싹했다.

아래를 조이자 그가 허리를 움직여 더 깊은 곳까지 양물을 치받았다. 매달릴 것이 필요해 사내의 너른 어깨에 두 팔을 둘러 안자 그 목덜미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보였다.

살 내음과 어우러지는 체향, 그리고 땀 냄새가 야릇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 파정 한 번 하지 않아 밤꽃 향기가 더해지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색사가 아니라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거친 운동을 하는 것 같다.

‘연무장에서 수련하던 대사형에게서도 이런 냄새가 났을까.‘

살기둥이 거칠게 움직이는 통에 아래가 인두로 지져진 양 홧홧했다. 그러나 고통보다도 쾌감이 주가 되는 걸 보면 자신은 망가져도 아주 단단히 망가진 게 분명했다.

머리든, 몸이든.

“흑귀, 님……! 흑귀 님…….”

자신이 끌어안은 사내의 등이 움찔 떨리는 게 느껴졌다.

예결은 입맛을 다셨다.

제 가이드라서 이렇게 느끼는 건진 모르겠지만, 진짜 하량은 날로 먹어도 안 비릴 것 같았다.

‘반응이 이렇게 솔직해…….’

그가 느끼는 게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몸정을 질펀하게 쌓은 사내를 상대로 흔들린 예결의 모습에 기뻐했으면 좋겠다.

그가 느끼는 게 당혹이었으면 좋겠다. 지독하게 경애해서 차마 닿지조차 못할 대사형을 두고 다른 사내라 생각하는 흑귀에게 몸뿐이 아니라 마음마저 내줄 것처럼 구는 이 순간에 아차, 하고 흔들렸으면 좋겠다.

‘나 혼자서만 당신이 좋아서 몸살이 나는 건 싫으니까.’

설령 하량이 그렇게 흔들리게 될지라도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등가교환이었다.

예결의 저울은 형편없이 기울어져 있었기에.

“하, 하하…….”

사내의 웃음소리에 바투 붙어 있는 몸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그건 거대한 울림 같기도 했고 미처 추스르지 못한 흐느낌 같기도 했다.

“얼마나, 더.”

웃음이 뚝 끊어지고, 탄식과도 같은 속삭임이 귀에 들렸다.

“얼마나 더 큰일이 나시려고…….”

혀를 찬 사내가 예결을 책상에 눕혔다. 안정적으로 매달리던 몸을 빼앗긴 예결의 두 손을 잡아챈 사내가 이를 묶듯이 쥔 다음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끄윽, 흣!”

몸이 뒤로 밀려날 때마다 비단 위로 몸이 미끄러지는 감각이 몸서리칠 정도로 선명하게 와 닿았다. 만약 흑귀가 장포를 벗어놓지 않았다면 등이 발갛게 쓸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움직임은 거칠었다.

손목이 붙들린 탓에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제법 튼튼하게 짜인 가구의 다리가 끼이익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발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신발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솜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상대가 쥐고 흔들 때마다 구겨졌다가 펴지는 아코디언이 된 것 같기도 했다.

“흐아! 아흣!”

날 선 교성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올 때마다 예결은 자신의 목소리가 이토록 낯설게 들릴 수 있음을 새삼 실감했다.

어떤 열락은 불길보다도 뜨거웠다. 벽난로를 살라 먹는 불길에 손가락을 가져가지 않아도 델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처럼, 지금이 그랬다.

안을 거칠게 치고 들어오는 몸짓이 좋았다. 언젠가는 이 불길이 저를 전부 살라 먹을 것 같아서 좋았다.

사랑은 눈으로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기에 차라리 이렇게 증명받고 싶었다.

“흐, 흑귀 님! 읏!”

흑귀의 거죽을 뒤집어쓴 하량의 낯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괴로워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참는 태가 났다.

“더어, 더……!”

몸이 어지러이 흔들리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까무러칠 듯 거꾸러지는 시야에 예결은 절정을 예감했다.

“크윽…….”

사내의 무게가 제 위에 실림과 동시에, 예결은 눈앞이 희게 번지는 걸 느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