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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57화 (157/203)

157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3)

하량이 그의 어깨에 대고 헐떡이는 숨을 쏟아냈다.

“……또 안에 해버렸군요.”

이젠 제 사제의 샅을 파고드는 패륜적인 짓에 퍽 익숙해졌다. 기실, 처음 예결을 탐할 때조차 죄책감보다도 더 큰 욕망을 느끼지 않았던가.

“괘, 괜찮아요.”

몸을 뒤로 빼낸 사내가 바르작거리는 예결의 다리를 제압하고 제 성기를 빼냈다. 그를 따라 조금 부풀어 있던 배가 움푹 꺼지는 모습이 사뭇 자극적이었다.

“아, 흐읏!”

부피가 줄어든 성기가 안에서 빠져나가는데도 예결은 내벽이 긁히는 감각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마침내 귀두까지 빠져나가자 깊숙한 곳에 파정한 정액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애써 아래를 닫아보려 해도 사내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아래를 벌렸다.

“그, 읏, 놓아…….”

“그냥 두었다가는 배앓이를 하지 않습니까.”

건조한 웃음기 서린 음성에 예결은 아랫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결국 안에 품고 있던 백탁액이 흘러나왔다.

흑귀가 벗어준 장포는 하필 어두운색이었다. 그 위로 질금질금 흘러내린 하얀 정액은 퍽 적나라한 대조를 이뤘다.

“게다가…….”

손가락을 쑥 밀어 넣은 흑귀는 크게 원을 그리며 돌렸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정액이 벌어진 구멍 속에서 뚝뚝 흘러나왔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배가 부르면 곤란합니다.”

어느새 농탕질을 하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밀지의 입구에 뭉툭한 귀두가 와 닿았다. 거칠 것 없는 두 번째 삽입이었다.

“아흣!”

한 차례의 절정을 맞이한 뒤 민감해진 내벽이 사내의 양물을 옴죽옴죽 잘도 삼켰다.

자지러질 듯한 쾌감이 단전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삽시간에 솟구쳤다. 예결은 새액새액 숨을 내뱉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애타는 부름이 흩어진 이유가 무언지 안다는 듯, 흑귀는 예결의 입술 위를 가볍게 깨물고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퇴를 반복하는 몸짓은 마치 파도 위의 조각배 같았다. 멀미가 날 때와 사뭇 비슷한 감각이었다.

“하으…… 하아…….”

속도가 느려졌다고 해서 느껴지는 감각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길고 깊게 느끼게 된다. 거칠게 안을 오갈 때면 그저 막연하게 크다고만 생각했던 양물의 부피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듯 버겁다.

하문을 파고드는 성기를 받느라 어쩔 도리 없이 아랫배에 힘을 주는 까닭에 몸에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깍지를 끼는 손은 땀과 체액으로 끈적끈적했다. 아니, 어쩌면 몸에 와 닿는 공기가 끈적끈적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열이 오른 눈으로 어지러이 천장을 훑었다. 예전에는 바라볼 이유조차 없었던 한 구석의 얼룩이 보였다. 이제 보니 절묘하게 책장을 배치해놔서 가려놓았다.

지금까지는 별생각이 없었으나 앞으로 계약 상대와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오늘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았다.

그저 차갑기만 했던 대기는 울긋불긋한 색을 입은 듯 야릇하게 느껴졌다.

“유달리 느끼시는군요.”

뒤로 허리를 빼며 오목해진 배꼽 위를 어루만진 흑귀가 속삭였다. 다시 힘주어 안으로 양물을 밀어 넣는 동작은 느릿했으나 먼젓번과는 전혀 다른 호흡이었다. 예결이 호응할 수 있을 정도로 상냥한 속도지만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딱 그 정도로 변칙적이다.

예결은 답 없이 사내의 옷을 끌어 내리고 그 어깨를 깨물었다. 흑귀가 해댄 입질에 비하면 순흔조차 되지 못할, 앙증맞은 잇자국이었다.

“왜, 왜 이렇게 느리게……?”

“거칠게 하는 걸 더 좋아하시는 건 압니다.”

남자가 차게 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제력을 잃으면 곤란해서요.”

“왜에, 왜……?”

백 미터 달리기나 마라톤이나, 숨이 차기는 매한가지였기 때문에 예결의 음성은 이리저리 뚝뚝 끊겼다.

“지금은 낮이지요. 보통 때였다면 업무를 보는 시간이 아닙니까?”

흘러내린 예결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준 하량이 속삭였다.

“다시 일하러 가셔야지요.”

진이 빠져서 붓은커녕 종이조차 들어 올리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결국 무언가를 숨기기 위함일 터였다.

‘눈을 가리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나.’

너무 몰입하면 축골공이 풀리니까, 그래서?

“흣!”

나름의 추리를 해치우기가 무섭게 흑귀가 예결의 내벽을 푹 쑤셨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에 익숙해져 있던 몸은 날카로운 쾌감에 화들짝 놀랐다.

반사적으로 아래를 조이자 사내가 속삭였다.

“저를 너무 궁지로 몰지 말아 주십시오.”

더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몰아치는 허릿짓에 예결은 열에 들떠 신음했다.

“흑귀 님……. 아, 흑귀 님…….”

할딱이는 호흡 사이로 고집스레 상대의 이름을 되뇌었다. 흑귀의 낯은 쾌감인지 괴로움인지 모를 이유로 일그러져 있었다.

보기에 흉측한 흉터가 얼굴을 가로지른들, 지금의 예결에겐 이보다 황홀한 광경이 없을 터였다.

“……아?”

예결은 움찔했다. 순간 저를 잡고 있던 하량의 손이 커진 것 같았다.

아니, 작아진 건가?

다음 순간 하량은 채 사정하지 않은 성기를 예결의 하문에서 뽑아냈다. 다디단 사탕을 빨듯 탐욕스레 가이드의 몸을 먹어 치우던 예결은 아쉬움에 탄식을 내뱉었다.

흑귀의 손이 예결의 눈을 가렸다. 빛 한 점 비집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아귀힘에 예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흑귀 님……?”

“못 볼 꼴을 보일 뻔했군요.”

다급하게 시야를 가로막은 것치고는 그 목소리가 기이하리만치 평온했다.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제 자만이었던 모양입니다.”

착각이 아니었다. 예결의 얼굴에 와 닿는 손바닥의 감촉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흑귀 특유의 흉터라곤 오간 데 없이, 그 감촉만 놓고 말한다면 문사의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매끈한 살갗.

‘하.’

예결은 입맛을 다셨다. 이 손아귀만 벗어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사형을 마주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정이 되고 마법을 잃은 신데렐라가 달아났듯, 하량도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었다.

“눈. 감고 있을 테니까……. 가려 주세요.”

“……이런, 들켰군요.”

“항상 눈을 가린 채로 안아 주시다가 오늘만은 달랐잖아요.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라 여겼는데…… 만약 흑귀 님이 제게 보여주기 싫은 비밀이 있다면 억지로 확인할 생각은 없어요.”

그럼에도 하량의 손길은 주춤 머물러 있을 뿐,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서요.”

고작 한 번의 채근에, 하량은 그 굳건하던 손아귀를 풀어냈다.

하량은 조금쯤, 아주 조금쯤은 사제가 눈을 뜨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순간 거짓을 들킨다면 그 또한 감당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결은 언제나처럼 순종적이고 진솔한 낯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흰 얼굴 위로 내려앉은 속눈썹의 그림자를 가만히 덧그려 보던 사내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흑귀 님?”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내 앞에 헐벗은 채 다리를 벌린 사제는 이토록 무방비했다.

채 사라지지 않은 손자국으로 벌겋게 물든 허벅지를, 눈을 감은 채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불안하게 기웃거리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웃음이 나왔다.

“하하…….”

“흑귀, 읏…….”

듣기 싫은 부름이 그 입에서 흘러나오기 전에 하량은 입술을 가져다 댔다.

고통에 반사적으로 눈을 뜰 것을 종용하는 양 아랫입술을 깨물고 혀를 빨아들였다. 입 안에 고인 타액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집어삼키고 저 안에 자신의 숨을 아낌없이 불어넣었다.

“흐, 으으…….”

필사적으로 눈을 감느라 찌푸린 아미 위를 부드럽게 문지른 하량은 옷소매를 북 찢어 예결의 눈을 가렸다.

이젠 정말 한계였다.

사제를 안아 올린 흑귀는 그를 제 위에 앉혔다.

잘 품고 있던 것을 빼앗긴 탓에 아쉬웠는지 뻐끔거리던 밀지의 안을 가득 채웠다. 아찔하기 짝이 없는 추락감에 예결은 입을 벙긋거렸다.

하량이 기이하게 굴 때부터 짐작했는데 정말 축골공이 풀렸는지 삽입과 거의 동시에 성기의 부피가 커졌다.

“하읏! 흐!”

아래를 거칠게 비집고 벌리는 양감이 속을 더부룩하게 만들었다. 사레들린 이처럼 기침을 몇 번 내뱉었다. 그러나 지금의 하량은 다른 사내의 거죽을 뒤집어쓴 탓에 다정을 내려놓는 게 그리 두렵지 않았다.

예결을 더 거칠게 다루고 싶었다. 망가진 뒤에도 이토록 후회 없이 무구할지 궁금한 까닭이었다.

하루는 귀하게만 모셔놓고 싶다가도, 다른 하루는 엉망으로 만들고 싶은 걸 보면 자신이 정말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었다.

“읏, 흐읏……!”

허리를 붙들고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예결의 몸은 들썩였다. 허리를 뒤로 젖힌 채 아우성치던 예결은 무심코 하량의 팔을 짚었다가 전율했다.

잔뜩 화가 난 근육이 팽팽하게 서 있는 게 느껴졌다. 곤두선 핏줄 위로 손가락을 더듬어 미끄러뜨리고 있노라면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기에 더 선명하게 보게 된다.

무슨 대단한 신공의 심득에나 적혀 있을 법한 소리였다. 그런 걸 색사에 적용하는 자신은 정말 미친놈이고.

“후우…….”

귓가에 대고 숨을 몰아쉬는 흑귀 때문에 목덜미의 솜털이 오소소 곤두섰다. 애써 밀지를 조이며 예결은 사내의 가슴에 제 얼굴을 비볐다.

이토록 무작스럽고 거칠게 구는 이에게 다정히 대해달라는 양 매달리는 몸짓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회유로 비칠지언정 예결은 지금 자신이 하량의 등을 떠밀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축골공조차 풀어버릴 정도로 이성도, 여유도 잃은 사내에게 요사를 떨어봤자 그에게 어서 짐승이 되라 부추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해야 이번에야말로 안 멈추겠지.’

예결은 사내를 끌어안은 채 삐뚜름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밤을 지새우게 된다고 한들 후회하지 않으리라. 사천에 돌아온 내내 몸달아 어쩔 줄 모르면서도 지나치게 오래 참아야 했다.

인내의 결실은 달다는 걸 알면서도, 예결은 이 풋내 나는 과실조차 탐났다. 먹을 수 있다면 배탈이 나더라도 씨앗까지 삼켜야 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인간이었다.

욕망에 눈이 멀어 사문이고 대사형이고 아무것도 뵈지 않는 발칙한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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