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화씨지벽 (7)
힘이 다 풀렸음에도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몸을 마주 끌어안으며, 하량은 그의 안으로 천천히 파고들었다.
느릿하고 묵직하게 아래를 채우는 감각은 처음이 아님에도 낯설었다.
흑귀의 모습을 한 하량은 항상 축골공을 사용한 채였기 때문이다. 그 탓인지 종종 안에서 더 커질 때가 있긴 했으나, 몇 번이고 절정에 올라 몸이 눅진하게 풀렸을 때와 처음 삽입하는 순간 몸이 긴장하는 정도는 전혀 달랐다.
‘못 버틸 정도는 아니야.’
예결은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래도 가이딩이 병행되고 있지 않나.
“흐으…….”
울먹이는 신음을 뱉어낸 예결은 하량이 더 깊게 들어올 수 있게 다리를 벌렸다.
버거워 허덕이는 게 보이는데도 물러나기는커녕 저를 힘주어 끌어안는 예결은 하량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휘저었다.
“숨을, 쉬어야지. 옳지.”
대사형이 예결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그 위에 입 맞췄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다정한 손길에 예결은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미간을 살짝 좁힌 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힌 게 보였다. 하량은 무림인이라 이런 신체적 변화가 밖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는 편이었다. 추위나 더위를 느끼지 않았으며 항주로의 긴 여정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런 하량의 낯에 새겨진 변화는 그가 얼마나 인내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다소 비좁아도 난폭하게 밀어 넣으면 그만일 것을, 행여라도 예결이 아플까 땀을 뚝뚝 흘려가며 참아내는 거였다.
매사 차분하고 온화하기 그지없는 사내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이유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이라는 게, 예결에게 지극한 희열을 선사했다.
“사형……. 대사형…….”
호흡을 고른 예결은 제 안으로 파고드는 하량의 성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노력이 무색지는 않았는지 귀두가 완전히 진입한 게 느껴졌다.
“흐윽, 흣…….”
예결은 숨죽여 헐떡였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우는 시늉을 하면 하량이 물러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살기둥이 점점 더 깊은 곳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내벽이 벌어지며 저를 탐하는 사내를 야금야금 삼켰다.
삽입만으로 녹초가 된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곤두선 온몸의 성감이 아우성을 쳤다. 아래로 파고드는 하량의 무게가 묵직하기 짝이 없었다. 허리는 벌벌 떨렸고 팔은 하량의 목을 휘감은 채 경직되어 있었다. 생리적인 눈물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하량은 그런 예결의 이마에 자잘한 입맞춤을 흩뿌리고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졌다.
그렇게 하량의 양물이 반쯤 들어왔을까, 갑자기 그가 몸을 뒤로 뺐다.
“사형……?”
성기가 쑥 빠져나갔다. 귀두만 입구에 걸친 채, 그가 애써 벌려놓았던 내벽이 다시 좁아지는 게 예결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전부 집어삼킬 수 있었는데, 하고 아쉬움에 벌어진 잇새로 비명과도 같은 교성이 흘러나왔다.
“아흣!”
하량이 단숨에 저 깊은 곳까지 양물을 처박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자신이 열어놓은 그 자리까지만.
긴장했다가 잠깐 이완됐던 밀지는 뜻밖의 침입에 속수무책이었다.
몸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만 같았다.
예결은 젖어 있는 눈으로 하량을 올려다봤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붉은 혀가 자극적이었다.
“네가 달라고 했으니, 잘 받아먹어야지.”
어르듯 건넨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량이 허리를 움직였다. 성기를 뒤로 뺐다가 다시 안으로, 처음보다 더 깊은 곳으로 치받는 움직임이 묵직하고 단호했다.
뜨겁고 단단한 양물이 길이라도 내듯 아직 열리지 않은 밀지 깊숙한 곳에 꽝 꽝 부딪혔다. 예결은 그가 안으로 밀려 들어올 때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숨에 헤프게 히끅거렸다.
못질을 당하는 나무가 된 기분이었다. 하량의 허릿짓에 머리가 울렸다.
사형, 사형…….
소리 한 자락 흘리지 않고 입만 뻐끔거려도 다 안다는 듯 하량의 손길은 다정했다. 그러나 그의 하반신은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눈앞이 번쩍거리고 이성이 있던 자리는 새하얗게 지워진다. 저 아래,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쾌감이 전신에 저릿저릿하게 차올랐다.
“하읏, 하으……. 읏!”
달콤한 비음이 신음에 섞이기 시작할 무렵, 예결은 제 아래가 꽉 차 있음을 깨달았다.
기어코 그걸 다 먹어 치우고야 만 것이다.
“느껴, 지니?”
아랫배를 부드럽게 누르는 하량의 손길에 예결은 자지러졌다.
“앗! 사형! 그, 아흣!”
하량은 저를 붙들고 있던 예결의 한쪽 손을 끌어다가 그의 배 위에 올리고 그 위에 본인의 손을 겹쳤다. 다정한 족쇄에 붙들린 예결은 대사형이 허릿짓을 할 때마다 제 손아귀에 와 닿는 감촉에 질겁했다.
아랫배에 무언가가 들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솟았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안까지 박힐 때마다 머릿속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전율이 흘렀다.
이대로 뱃가죽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비이성적인 공포, 또 저를 범하는 사내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제하량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배덕감과 쾌락이 엉망으로 뒤섞여 그의 사고를 곤죽으로 만들었다.
“어여쁘기도 하지…….”
한숨처럼 속삭인 사내가 예결의 벌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타액을 핥았다. 그리고 마지막 한숨조차 제 몫으로 갈취하겠다는 양 탐욕스럽게 입을 맞췄다.
다정과는 거리가 먼 몸짓이었으나 예결은 어느새 젖어 든 뺨 위를 느릿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에 거부하지 않았다.
“이렇게 예쁘게 울 줄이야.”
하량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예결을 하염없이 눈에 담고, 또 담았다. 이 모든 순간을 제 뇌리에 아로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그거 아니 결아?”
“아……! 흣!”
안으로 깊게 파고들며 하량이 속삭였다.
“네 아래는 이렇게 오물거리는데…… 네 눈은 투명한 갈색이구나.”
실로 무구하기 짝이 없는 색이다. 이토록 야살스럽게 저를 먹어 치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제가 흑귀에게 여지를 준 순간 느꼈던 것이 질투라면, 지금의 하량이 느끼는 것은 후회였다.
고작 잘난 정체 따위를 숨겨보겠다고 저 눈을 가린 채 탐한 것이 통탄스러웠다.
“고와……. 참으로 곱구나.”
천하절색의 미모를 가진 것도, 대단한 교태를 떤 것도, 밤 기술이 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량은 도무지 사제에게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사형……. 대사형.”
예결은 간절하게 하량을 불렀다. 사내의 양물이 드나드는 밀지는 뜨겁고, 아랫배는 연이은 진퇴에 욱신거렸다.
하량은 저를 부르는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고는 요구했다.
“이름을 불러주련?”
“어, 어떻게. 제가. 대사형의 존함을.”
예결은 쾌감에 절어 붉게 흐무러진 낯을 하고도 두 눈을 크게 뜨고 경악을 드러냈다.
“이런.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야.”
남자가 느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혀를 찼다. 그는 예결의 하반신을 콱 움켜쥐었다.
다소 거친 손놀림에도 이미 흥분한 성기는 선액을 뚝뚝 흘리며 하량의 손아귀를 적셨다.
“대사형……!”
“결이는 사형에게 범해지며 흥분하는 아이로구나.”
목덜미에 더운 숨이 와 닿았다.
“이 우형이 그 속도 모르고, 야속한 요구를 하고 말았어. 용서해주렴.”
제 양물을 쥐고 흔들며 재개된 허릿짓에 눈앞에 별이 보였다.
예결은 몸이 들썩들썩 흔들릴 때마다 힘없이 그 파도에 떠밀려가다가 다시 끌려오기를 반복했다.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대사형을 틀어쥔 손끝이 저렸다.
혼자서 스스로를 달랠 때조차 차마 부르지 못한 이름이 툭, 하고 흘러나왔다.
“하, 하량.”
하량은 그 부름을 음미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시.”
“하량, 하량…… 흐윽, 하량…….”
예결은 하량의 가슴에, 어깨에, 팔과 손끝에 입술을 가져다 대며 애걸했다.
“더.”
거듭된 요구에 어느새 공기는 음란한 색으로 젖어 들어 있었다.
“하랴앙…… 으흣! 사형. 하량. 하량……!”
하량이 아래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찌걱거리는 소리가 거칠어진 호흡과 뒤섞였다.
예결은 그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매달려 울었다.
애초에 그는 호부호형을 못 하는 게 한이 되었던 홍길동이 아니었다. 이 발칙한 에스퍼의 뇌리에는 대사형을 발라먹을 생각만 만만했기에 이름을 부르는 거야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내가 너의 무엇이지?”
숨을 고를 여유조차 주지 않은 하량이 예결을 채근했다. 샅을 벌리고, 허벅지에 벌건 손자국을 남기고, 흑귀에게조차 열어주지 않았던 가장 깊은 곳을 헤집었다.
“말해 보렴.”
사제의 안에 제 몸을 파묻으면서 하량은 그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열락에 취해 몽롱해진 예결의 얼굴은 지독하게 야했다. 그는 물기에 젖은 눈으로 하량을 올려다보다가 할딱이는 숨을 내뱉었다.
“대사형……?”
“아니지. 나는 오래전에 네 사형이라 불릴 자격을 잃지 않았니.”
어차피 그건 끝난 일이다.
이젠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일 뿐이다. 그들은 더 이상 곤륜의 이름 아래 사형제로 묶일 수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으로 모두 망쳐버린 이 관계를 새롭게 쌓아야 했다.
“저, 정인. 정인이요.”
예결은 본능적으로 하량의 요구를 파악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럼 네가 나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그냥 이름으로 부르라는 게 아닌 걸 보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건데.’
하량이 무얼 요구하는지 바로 알아채기 힘들어 예결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무언가 생각날 듯 말 듯 어떤 단어가 모호한 윤곽을 띤 채 어른거렸다.
그때, 하량의 성기가 아랫배를 은근하게 비비며 위로 치받았다. 예결의 잇새 사이로 희디흰 울음이 새어 나왔다.
말 한마디 없는 재촉이었다.
“사형, 흐읏. 거기, 거긴.”
잔뜩 벌어져 다물릴 길 없는 아래가 욱신거렸다.
온통 하량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애액 한 방울 비집고 흘러나오질 않는다. 하량은 묵묵히, 그러나 거칠게 예결의 아래를 헤집고 파고들어 범했다. 적응할라치면 박자를 바꾸고, 엉엉 우는 꼴을 보고야 말겠다는 듯 거칠어지는 몸짓에 예결은 속절없이 신음했다.
그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으면 영영 해방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하량의 허리를 감은 다리가 덜덜 떨리고 두 팔은 자꾸만 흘러내릴 때였다. 예결은 퍼뜩, 언젠가 남궁운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가, 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