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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72화 (172/203)

172화. 화씨지벽 (8)

“옳지.”

반쯤 이게 맞나, 싶으면서 뱉은 호칭에 하량이 눈을 휘며 웃었다.

“듣기 좋구나.”

평소보다 달아올라 혈색이 좋아 보이는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지어도 부드럽고 온화해 보였다. 하량은 예결을 볼 때가 아니면 대체로 냉랭한 인상을 주곤 했기에, 그 간극이 제법 크게 느껴졌다.

잠시 얻은 여유에 숨을 색색 들이쉰 예결은 손을 뻗어 호선을 그리는 하량의 입가를 매만졌다. 이 감촉을 영영 못 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량이 혀를 내밀어 예결의 손바닥을 핥았다. 서서히 위로 올라간 입술은 손가락을 집어삼키고 그 마디마디를 사탕처럼 핥았다.

느릿하게 재개된 허릿짓에 예결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랫입술을 가볍게 빨아들이다가 쪽, 소리가 나게 떨어뜨린 사내가 속삭였다.

“가끔은 그렇게 불러 다오.”

예결은 보지 않아도 제 목덜미며 얼굴이 한껏 붉어졌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무어라 더 말하기도 어려워 그저 고개를 끄덕이자 대사형이 웃는 게 보였다.

이렇게 자주, 그것도 저렇게 행복하다는 듯 미소를 짓는 하량의 모습은 눈에 너무 달았다. 설탕물에 빠져 죽는 개미의 심정이 이런 걸까.

“좋아, 좋아해요…….”

하량의 위에 올라탄 예결은 무릎을 세웠다. 그저 매달려 있는 게 고작이었던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줘서 몸을 지탱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때때로 욕망은 정신력보다 굳건하게 그의 몸을 이끌었다. 엉덩이를 천천히 움직이자 하량의 양물이 안을 들쑤시는 게 느껴졌다.

고양감과 긴장감이 저울의 양 끝에 매달려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아래가 힘겹게 벌어지는 감촉에 그토록 원하던 사내를 가졌다는 게 실감이 났다. 동시에 다리에서 조금이라도 힘이 풀렸다가는 지나치게 깊은 곳까지 하량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하아…….”

예결은 더운 숨을 몰아쉬며 희부옇게 변한 눈으로 하량을 바라봤다. 혼탁해졌을지언정 그의 사고의 끝에는 언제나 자신의 가이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제 어깨를 거의 쥐어뜯기라도 할 것처럼 힘을 준 예결을 가만 바라보던 하량은 목이 마른 이처럼 입술을 핥았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붉은 혀가 괘씸했다. 예결은 떨리는 손으로 하량의 몸을 끌어당겨 키스했다.

몸의 열기를 해소하려 끙끙거리는 사제가 귀엽다는 듯 하량은 그의 콧잔등을 간지럽혔다. 예결은 자신의 허리를 지탱하는 손길에 퍼뜩 고개를 들어 하량을 바라봤다.

혼자 할 수 있다는 듯 손등 위에 손을 겹쳤지만, 하량의 인내심은 오래전에 망가져 버렸다.

퍽, 퍽 하고 거친 소리를 내며 살기둥이 아래를 드나들었다. 하량은 자꾸만 흘러내리려 하는 예결의 두 다리를 붙잡고 그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아……!”

길고 날카로운 교성이 예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야가 온통 부옇다. 이 눈물이 아득한 쾌락에서 기인한 건지, 아니면 아찔한 추락에서 말미암은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크윽…….”

하량이 신음을 토해내며 예결의 안에 파정했다. 이미 잔뜩 벌어진 아래가 더 팽창하는 것만 같았다.

영원처럼 느껴지는 찰나 동안, 그들은 한 몸처럼 이어진 채 가만히 머물렀다.

예결은 제가 팔을 두르고 있던 하량의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았다. 살갗이 맞닿을 때마다 보송보송하다기보다는 찐득한 감각이 남는다. 그 탓에 살과 살이 맞붙을 때마다 야릇함을 느꼈다.

대사형이 잔뜩 헤집어 놓은 아래가, 밑구멍이 얼얼했다. 조금만 움찔거려도 그 안에 고인 정액이 찰랑이는 게 느껴졌다.

하량이 예결의 얼굴 바로 옆에 고개를 숙인 채 내뱉던 호흡이 점차 단정해졌다. 그는 천천히 몸을 뒤로 뺐다.

“하으, 하으……. 으응.”

예결은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잔뜩 민감해진 내벽은 성기가 들어올 때가 아니라 나갈 때도 아쉽다는 듯 움찔움찔 반응했다.

안을 가득 채우던 것이 서서히 빠져나가는데도 예결의 속은 비워지질 않았다.

같은 사내의 씨물 때문에 배가 불렀다.

“읏!”

하량이 완전히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예결은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다. 그러나 하량이 예결의 허벅지를 누르며 속삭였다.

“다리를 벌려야지.”

“하지만……. 흐를, 흐를 것 같아요.”

예결이 고개를 도리도리 내젓자 그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서렸다.

“안에 품고 있으려고?”

“타, 탕옥으로 갈 때까지는. 침상도 더러워질 거고.”

예결은 중얼중얼 변명을 둘러대며 애써 구멍에 힘을 줬다.

하량은 고작 가구 핑계를 대는 예결이 귀여웠다. 손을 뻗은 하량은 밀지의 입구 주변을 손가락으로 둥글렸다.

“하읏, 사형. 대사형…….”

예결이 잔뜩 울어 붉어진 눈가를 한 채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 말아 달라는 애걸이었다.

그러나 하량은 촘촘히 오므려진 주름에 손가락을 꽂았다. 조금 밀어 넣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벌어지는 하문에서 애액과 정액이 질금질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집게손가락과 중지를 집어넣은 하량은 이를 힘주어 벌렸다. 제법 버티던 예결은 민감한 내벽에 와 닿는 자극에 속수무책으로 다리를 벌렸다.

“아읏, 안, 안 돼…… 그. 흐윽.”

하량은 훌쩍이기 시작한 예결을 달래듯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흘려도 괜찮단다.”

그러나 다정한 건 말투뿐이었다.

그의 손가락은 헤프게 벌어진 밀지를 쑤시고 저 안을 휘저었다. 애써 다물고 있던 뒷구멍에서 하량이 싸질렀던 백탁액이 후드득 떨어졌다.

다리를 따라 흐르는 체액의 감촉에 예결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무리 정액이라지만 그걸 아래로 뱉어내는 걸 하량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민망하기도 했다.

하나 그런 수치심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지, 아랫구멍에서 손가락을 빼낸 하량은 그 끄트머리에 귀두를 걸쳤다.

“몇 번이고 다시 채워주마.”

머리를 망치로 두드린 듯 쾅! 하는 충격이 온몸에 전해졌다.

“크, 아흣!”

한순간 허리가 위로 뜨고 몸이 뒤로 젖혀졌다. 오랜 애무 끝에도 쉽사리 삽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밀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하량의 성기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흐으, 흐…….”

예결은 한쪽 손을 내려 제 아랫배를 더듬었다. 거기에 구멍이라도 난 게 아닌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

하량은 그 손을 손쉽게 앗아갔다. 손목을 붙든 채 더 아래로, 양물을 집어삼키느라 한껏 벌어진 하문에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사제가…… 배움이 빨라서 다행이야.”

“사형…… 사형……!”

예결은 엉엉 흐느꼈다.

좋았다. 너무 좋았다. 힘들어도 도저히 고통스러워지질 않는다.

하량의 성기가 밖으로 나올 때마다 그의 손아귀에 대고 거세게 마찰하는 감각과 엉덩이가 들썩일 때마다 찰싹찰싹 소리를 내는 것마저도 그는 모두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우형의 좆이 터지기 전에 이렇게 품어주어 고맙구나.”

예결의 다른 쪽 손을 제 목에서 풀어낸 하량은 깍지를 끼고 뒤얽힌 손가락 위로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내 최선을 다하마.”

하량은 성실한 사내였고, 그 탓에 그의 ‘최선’은 뭇사람보다 과했다.

접문을 청하듯 예결의 입술 주변을 두어 번 툭툭 건드린 남자는 깊게 입 맞췄다. 혀를 밀어 넣고 예결이 아껴놓은 숨을 포식했다.

아래에서부터 치받는 움직임에 예결의 몸은 침상의 끄트머리까지 밀려났다.

쾅쾅 하량이 성기를 치받을 때마다 머리가 울렸다.

“사형, 아흣! 가가…… 가가……!”

꾹 누르면 ‘사랑해’ 같은 대사를 내뱉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그것도 단단히 고장 난 걸로.

안이 푹푹 쑤셔질 때마다 하량을 부르고 그에게 좋다고, 사랑한다고 섬어를 중얼거렸다.

하량은 그런 예결이 어여쁘다는 듯 어루만지며 사제의 몸에 자신을 아로새겼다.

일전에 다른 사내와 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는 고백에 그가 아랑곳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본인이 흑귀여서가 아니라, 누구와 아무리 질척하게 붙어먹었든 이를 지워낼 자신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쾌감에 흐무러질 대로 흐무러진 몸은 하량이 주는 것이 고통이라도 달게 삼킬 수 있을 정도로 녹아버렸다.

입을 벌린 것을 닫을 정신조차 남아 있지 않아 흘러내린 타액을 하량은 잘도 핥아먹고 받아마셨다.

사내는 깍지 낀 손가락을 단단히 틀어쥔 채, 예결의 팔을 위로 옭아매고 박아넣었다.

히끅대며 떨리는 몸을 어르며, 하량은 벌겋게 부어 있는 가슴을 몇 번이나 깨물고 빨아들였다. 예결이 아래를 세게 조였다.

“윽…….”

길고, 탄식과도 같은 숨이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다시 한번 그의 안에 사정한 하량은 예결의 손을 놓아주었다. 손이 밧줄에 묶여 있었던 것처럼 얼얼했다. 손가락 사이마다 벌건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예결은 제 몸 상태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대사형을 훔쳐봤다.

눈을 감은 사내의 반듯한 이마와 눈썹이 유난히 시선을 붙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경건하고, 기묘할 정도로 절절하다.

예결은 저를 무너뜨리고 삼킨 사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기쁨? 아니면 죄책감?

너무 맑은 물은 수심을 헤아릴 수 없다더니. 예결은 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그 깊이가 어떠한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잠깐 숨을 고를 시간만 주고 몸을 일으킨 하량은 예결의 다리를 제 어깨에 걸쳤다. 아예 뺀 적도 없는 성기가 정액으로 가득 찬 밀지 안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흑, 흐읏……!”

푹, 하는 제 귀에만 들리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정액이 성기와 구멍 사이를 비집고 질질 샜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이미 넘친 것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예결에겐 평소의 기절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흑귀 때의 경험 때문인지, 하량의 완급 조절은 절묘했다.

진이 빠지도록 안기면서 절정에 몇 번이고 오른 것 같은데도 그의 정신은 현실에 머물렀다.

가이딩 에너지가 넘쳐흐를 듯 찰랑거리고 있었다. 예결은 너무 좋아도 그 안에 빠져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만약 에스퍼로 환생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예결은 오싹해졌다. 도무지 전생의 몸으로 하량의 욕망을 다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잠시 멈춘 하량은 제 어깨에 걸쳐 놓았던 예결의 발목을 붙잡고 그 위에 입 맞췄다. 그 부드러운 감촉과 달리 발목을 그러쥔 손아귀는 철근처럼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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