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화씨지벽 (9)
“예전보다 너무 얇아진 것 같아.”
하량이 중얼거렸다. 예결은 움찔했다.
대사형이 말하는 ‘예전’이 20년 전임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곤륜혈사 때 죽고 다시 태어났으니 생김새야 전생과 비슷해도 이렇게 다른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아랫입만 잘 받아먹지 말고, 윗입으로도 식사를 해야지.”
손을 가져다 대면 얼어붙기라도 할 것처럼 차갑게 생긴 낯과 문장 사이의 괴리감이 상당했다.
밀어라기에는 진지하고, 그렇다고 해서 온전한 걱정이라기엔 음탕하다.
예결은 입술을 몇 번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네…….”
코끝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하량이 예결의 발목을 의미심장하게 문지르며 속삭였다.
“또 식사를 걸렀다는 소리가 들리면 직접 먹여주마.”
“괜찮, 은데.”
차마 잘 먹겠다고 말할 수 없어 예결이 웅얼거렸다.
그간 은근슬쩍 식사를 거를 때가 있긴 했다. 특히 하량과 장기간 떨어져 있어 가이딩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음식 냄새조차 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하량에게 밀고한 자의 정체는 뻔했다.
‘삼랑 진짜…….’
세상만사 귀찮고 칼같이 은퇴해서 평생 놀고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태해 보이는 호위였으나 괜히 제하량의 수하가 아닌지 꼼꼼하긴 엄청 꼼꼼하다.
나중에 삼랑에게 원망을 쏟아낼 각오를 다지던 예결은 제 몸이 번쩍 들리는 걸 느꼈다.
“아?”
“이렇게…… 무릎에 앉히고.”
예결을 안아 올린 하량은 그를 제 위에 앉혔다. 누운 채로 받아들일 때와 전혀 다른 각도로 안을 자극하는 성기에 예결이 몸을 옹송그렸다.
제 어깨를 향해 기운 얼굴을 들어 올린 하량이 제 손가락을 예결의 입에 물렸다.
“이렇게…… 응? 알겠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듯 하량의 손가락을 문 예결이 고개만 끄덕였다.
“자알, 으아, 머그, 께오.”
입에 들어 있는 손가락을 씹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다 뭉개진 발음이 흘러나왔다.
“결이가 착해서 다행이야.”
원하는 답을 들은 하량이 손가락을 거두며 말했다. 그는 예결이 적셔준 손가락을 아래로 가져다 댔다.
성기가 가득 들어찬 밀지에는 한 치의 틈도 없었다. 하지만 하량은 기어코 하문을 벌리고 제 손가락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핫! 아흣……!”
에이포 용지 한 장의 두께라도 버거웠을 텐데, 유난히 길고 굵은 하량의 손가락은 내벽과 성기의 사이에 낀 채 그 큰 존재감을 자랑했다.
하량은 민감해진 안에 대고 손끝을 비비며 성기와 엇박자로 밀지를 들쑤시다 예결을 제 품 안에 단단히 옭아맸다.
“네가 너무 작아.”
하량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귓가에 닿았다.
“계속 이렇게 범하다 보면 부서질 것 같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혹하리만치 집요한 허릿짓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안, 으흣! 부서, 부서져……!”
예결은 도리질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하량이 자신을 멀리하는 게 더 위험하다.
가이딩만 안 끊기면 거의 불사에 가까운 게 에스퍼 아닌가.
“그래도, 응? 행여라도 네가 망가지면 어쩌지? 어떻게 해주길 원하니?”
어서 말해 보라는 듯, 하량이 예결의 극점을 꾹꾹 압박하며 물었다.
사실상, 예결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계속 안아, 안아 주세요…… 흐읏. 부서져도, 망가져도…….”
예결의 발음은 신음으로 다 뭉개진 채 흘러나왔다. 그러나 하량은 엉망진창으로 흘러나온 예결의 애원에서 원하는 바를 다 들었기에 만족스러운 낯을 했다.
“그래.”
쾌락에 취한 이가 아무렇게나 읊조리는 말은 술에 취한 이의 주정만큼이나 신빙성이 없었다.
그러나 하량은 그 말이 예결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마.”
일찍이 사제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고, 그리 약속하지 않았던가.
하량의 손가락과 양물이 비부를 빠져나갔다. 한순간 아랫구멍이 허전해지자 예결이 하문을 움찔거렸다.
아쉬움은 잠시뿐이었다. 하량의 양물이 다시 예결의 비부를 꿰뚫었다.
몇 번이고 싸지른 탓에 정액이 조금 묽어진 것 외에는 처음과 그리 다를 것 없이 단단한 성기가 예결을 가득 채웠다. 안을 후벼파고, 깊은 곳을 쑤셔주는 감각이 예결을 아득히 높은 곳까지 끌어올렸다가 다시 저 바닥의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아찔한 고양감과 낙하감.
최초의 정사보다 더 거칠고 깊다. 기실, 처음부터 미약 따윈 필요 없었다. 예결은 오로지 하량에게만, 그에게만 반응하고 있었으니까.
“결아, 읏, 결아…….”
아무리 탐해도 모자란다는 듯, 하량은 그의 귓바퀴와 뺨과 이마와 턱 끝, 목덜미와 둥그스름한 어깨, 뾰족하게 솟은 유실을 머금고, 핥고, 깨물었다. 그의 입술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온통 울긋불긋한 꽃이 피었다.
“아흣, 아……!”
정말 다시 태어났던 순간에도 이렇게 울어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예결은 뺨을 적신 액체가 타액인지 눈물인지, 혹은 땀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얼굴뿐이 아니라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위로, 아래로 엉엉 울었기 때문이다.
“고와, 곱구나…….”
하량은 그를 묶어놓은 목줄을 찢어발긴 짐승 같았다. 멈추는 게 무언지 모르는 것처럼, 그는 제 사제의 몸 위에서 도통 내려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은근슬쩍 실어 온 무게는 예결을 붙들고 그가 도망갈 여지를 봉쇄했다. 흑귀에게 안길 때도 느낀 거지만, 그는 예결이 제 품을 벗어나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대사형이 움직일 때마다 샅에서 찰싹찰싹하는 소리가 났다.
하염없이 흔들린 팔다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맨정신으로 버티고 있는 게 기적 같을 정도였다.
“히, 힘들어요.”
예결이 처음과는 전혀 달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새된 교성을 내지르느라 목소리가 반쯤 쉬어 있었다.
탁해진 음성은 하량의 욕망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저 몸에 입힌 색이며 거칠어진 목소리마저도 그가 칠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아.”
하량의 목소리도 한껏 낮아진 채였다. 언제나 단아하고 고고하던 사내에게서 색기가 그득 묻어났다.
그의 아랫배에는 예결이 싸질렀을 백탁액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니, 어쩌면 대사형의 정액이 아래에서 넘쳐흐른 것일지도.’
예결은 멍하게 생각하며 입술을 핥았다.
다시 안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그토록 혹사당했음에도 예결이 다시 하반신을 세우는 걸 알아챈 하량은 조금 더, 아니 꽤 많이 뻔뻔해졌다.
“네가 이 우형을 업어주기로 하지 않았니?”
하량이 소곤소곤 속삭였다.
‘업어요? 어떻게?’
동그래진 눈과 빤한 시선.
사제가 무어라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만 있을 것 같았다. 하량의 입가에 충족감과 허기가 어린 미소가 스치듯 머물렀다.
예결을 아프지 않게, 다정하게만 대해주고 싶다가도 그가 흑귀의 편린을 읽을까 두렵다. 하여 하량은 사제에게 숨 돌릴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생각이라는 걸 남겨놓으면, 사고라는 걸 하게 두면 예결이 알아챌지도 모르니까.
“어떻게 업는지 금방 알려주마…….”
하량은 예결의 안에 제 욕망을 가득 쏟아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바로 정사를 재개하지 않고 몸을 뒤로 물렸다.
마개 노릇을 하던 하량의 성기가 빠져나가자 아래에서 희고 점성이 있는 액체가 울컥울컥 흘러내렸다.
“흐으…….”
어느 정도는 허벅지에 튀어 흘러내렸지만, 그 양이 너무 많은 탓에 둔부 아래에 흰 웅덩이가 드문드문 생겼다.
하량은 입맛을 다셨다.
예결의 안에 정액을 내는 건 좋았다. 제 냄새를 잔뜩 묻히고 흡족해하는 짐승의 본능 같은 거였다. 다만 너무 싸지른 통에 들어갈 자리가 부족해지는 건 좀 아쉬웠다.
“흐윽, 흣…….”
손가락을 넣고 휘젓자 감도가 높아진 내벽이 잘도 오물거리며 검지를 먹어 치웠다. 예결은 입으로는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의 몸은 항상 하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딜 내돌리기도 두렵군.’
정액이 얼추 흘러나왔다고 판단한 하량은 손가락을 빼내고 사제의 몸을 가볍게 뒤집었다. 예결이 반사적으로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지탱했다.
하량은 그의 등 뒤에 몸을 붙이고 벌름거리는 하문에 제 양물을 박아넣었다.
“끄…… 윽……!”
마주 보고 있을 때와 달리, 뒤로 양물을 받을 때의 감각은 훨씬 버거웠다. 무게가 통으로 실린다는 착각 때문인지 하량의 성기가 지나치게 크게 느껴졌다.
“하으, 하아…….”
예결이 심호흡하며 몸을 이완하자 하량이 그의 등줄기 타고 부드럽게 손을 미끄러뜨렸다.
분명 다정한 손길임에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자아. 잘 업어다오.”
하량이 어깨에 팔을 두르는 양 뒤에서 감싸왔다. 그의 손이 예결의 손 바로 옆 침상 바닥을 짚었다.
그가 아까보다는 부드럽게 허리를 쳐올렸다.
“아흐, 흐으…….”
여유가 생긴 것 같았으나 이는 착각이다. 하량에게 매달린 채 하염없이 흔들릴 때와 달리 어느 정도 스스로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예결의 등은 빠르게 땀으로 젖어 들어갔다. 하량의 얼굴이며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의 숨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아주 오래도록 내달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좋았다.
제 등에 겹쳐진 하량의 흉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촉, 물결치듯 힘이 들어가 곤두선 팔 근육. 코끝에 비릿하게 맴도는 밤꽃 냄새와 그에 뒤얽힌 대사형의 체향.
이 모든 게 미치게 좋다.
“하읏……. 대사형……. 더 깊게, 더 안아 주세요.”
하량은 제 손을 예결의 손등에 겹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묵직하게 제 안을 들쑤시는 살기둥이 진퇴를 반복할 때마다 예결은 온몸으로 그를 받아냈다. 이렇게 뒤에서 내려다볼 때면, 고개를 젖힐 때마다 예결의 눈가에 아롱지는 눈물이 반짝이는 듯했다.
사제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 알면서도 싫다는 내색조차 하질 않고 더 해 달라 조르는 말에 하량은 무지한 사내인 척 그를 집요하게 탐하고 괴롭혔다.
가장 깊은 곳까지 몸을 밀어 넣고 있으면, 예결의 심장 소리가 제 몸과 공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았다.
‘뜨겁고 향긋하고……. 살아 있지.’
하량은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그러쥘 수 있었던 제 심마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이것이 자신의 광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도 좋았다. 그러니 예결이 마의의 제자가 숨겨놓았던 실패작이든 성공작이든 상관없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꺼우니 말이다.
‘……내가 정녕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마에 사로잡힌 거라면.’
차라리 깨어나지 않기를.
“이토록 염치없고, 짐승 같은 사내라 미안하구나.”
하량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며 예결의 뺨을 쓸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