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베갯머리송사 (1)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열락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예결은 구겨진 야금처럼 드러누웠다. 하량은 한 차례 야금을 치운 뒤 새것을 깔아주고는 그와 나란히 몸을 뉘었다.
사제가 더는 못 버틸 것을 알기에 물러나긴 했으나, 살갗을 맞대고 있노라면 더 닿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여 하량은 예결의 몸을 제 품에 넣고 은근슬쩍 어루만지고 있었다.
예결은 입술로 제 어깨를 지분거리는 하량의 머리를 한쪽 팔로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간지러워요.”
“으음.”
그러나 하량은 물러나지 않았다. 말캉한 감촉이 살을 핥자 예결은 화들짝 놀라 사내를 놓아줬다.
“그렇지만 닿아 있고 싶은걸.”
예결은 몸을 슬금슬금 뒤로 물렸다. 색사가 재개되면 더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기절하듯 잠드는 것보다는 이 열기가 아직 머무는 동안의 평온을 즐기고 싶었다.
“알았다. 건드리지 않을 테니 도망가지 말렴.”
예 있으라는 하량의 말에 예결은 반신반의하는 척 답했다.
“저만 만질 거예요.”
“그래. 원하는 대로 하거라.”
지금의 하량은 배부른 짐승처럼 몹시도 관대했다. 그러나 예결은 저를 담은 그의 눈이 종종 검게 물드는 걸 알았다.
‘이런 허기는 영원히 충족되지 않지.’
그저 잠시의 유예가 존재할 뿐이다.
몸을 반쯤 일으킨 채 턱을 괴고 하량을 내려다보던 예결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내일은 같이 서녕성에 가요.”
그는 반대편 손으로 대사형의 얼굴을 만지작거리다가 슬금슬금 가슴 위로 움직였다.
제 딴에는 은밀한 움직임처럼 포장하고 있었으나 하량의 가슴을 애무하는 예결의 손길은 담백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이도 채 여물지 않은 어린 강아지가 입질하는 걸 내버려 두는 주인처럼, 하량은 그런 예결이 갸륵하다는 듯 내려다보며 반문했다.
“음. 상단 일?”
삼랑에게 따로 들어온 보고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떠보는 거였다.
“대사형이 시간만 넉넉하다면 이 사제와 좀 놀아달라고 떼쓰는 거예요.”
요컨대, 데이트 신청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함께 외출하고 싶다는 사제의 말을 이해한 하량의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시간을 내마.”
하량은 예결의 손목을 붙들고 그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렇게 붙어먹었는데도 이 달고 부드러운 냄새는 도무지 질리지 않았다.
“저 혼자 원해서는 별 소용이 없어요. 대사형도 저랑 같이 나가고 싶으셔야지요.”
“아…….”
하량의 목소리가 조금 멍해졌다. 그는 예결을 제 품 안에 넣은 채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이 우형도 함께 가고 싶구나.”
“정말요?”
예결은 신이 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서녕에서 괜찮은 요릿집을 찾아놨어요. 또 저번에 같이 갔던 골동품 파는 가게도 대사형이랑 가고 싶어요. 생일 선물을 퍽 마음에 들어 하셨던 거 같은데, 분명 대사형의 안목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몇 개 더 있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또…….”
재잘재잘 떠드는 얼굴은 더없이 반짝였다. 하량은 그를 가만히 눈에 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래. 다 다녀오자꾸나.”
예결은 잔뜩 쉬어 거칠어진 목소리로 한참이나 떠들다가 제가 연모하는 이의 위에 몸을 겹친 채 밀려오는 졸음에 굴복하고 말았다. 하량은 그 후로도 한참이나 깨어 있었다.
잠든 사제의 말랑한 볼을 건드리기도 하고, 예결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비 꼬기도 하며 손장난을 쳤다.
그리 극적이지 않은 순간들이, 아주 사소하고 소박한 일들이 그에게 현실을 실감케 했다.
이 밤이 다 저물고 새벽이 어스름하게 도착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는 죽음처럼 고요히 눈을 붙였다.
그렇게 첫정을 나눈 연인들은 한 침상에 누워 한 베개를 나누어 베고, 한 이불을 나누어 덮은 채 깊게 잠들었다.
***
몸이 무거웠다.
예결은 눈을 끔뻑였다. 천장에 모빌과 전등이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예결은 제 몸을 내려다봤다.
‘분명 대사형을 만났던 거 같은데.’
아니다. 예결은 새로운 삶을 부여받고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된 후 시간이 꽤 흐른 참이었다.
‘무슨 꿈을 그렇게 거하게 꿨담.’
처음엔 지옥에 떨어진 거라고, 그다음엔 어느 종교에선가 말하는 사후세계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성인의 정신으로 아기의 몸에 갇혀 있다는 건 참 이상한 감각이었다.
‘갑갑해.’
어쩌면 꿈에서 전생을 떠올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예결은 자신을 안아서 이리저리 옮기는 어른들이 의심스러워 쉬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의 유년 시절 끝자락에 가장 위험했던 건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짝귀나 독사 같은 이들보다 훨씬 더 온화하고 다정한 것만은 분명했다. 황 노야조차 예결에게 이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모친이 퇴소한 후, 예결의 세상에는 그 두 어른만이 남았다.
예결은 저들이 자신의 부모라는 걸 차차 받아들이게 됐다.
여기가 어딘지 파악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변의 정보에 주의를 기울인 결과였다. 주변인들이 대충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일어나 앉을 수 있게 될 무렵, 예결은 어설프게 가부좌를 틀고 내공심법을 운용했다. 힘이 없는 아이가 된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곤륜파에서 그가 배운 것은 도가 계통의 심법으로 축기 속도가 느릴지언정 안정적으로 정순한 기운만을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몸으로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역시…… 축기가 안 된다.’
부모의 눈을 피해 낮잠 시간에 숨어서 심법을 운용한 예결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자연의 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단전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예결은 여전히 가누기 힘든 몸을 짜증스럽게 뒤로 눕혔다.
‘이 몸은 대체 언제 크나.’
아직 어려서 머리의 비율이 큰 게 불만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휘청휘청하게 된다.
그때, 닫힌 문 너머의 불빛이 어른어른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엄마 아빠다.’
예결은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오빠 어쩌지. 예결이가 말을 안 해.”
옹알이도 거의 안 하던 편이었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고 덧붙이는 여자의 얼굴에는 수심이 어려 있었다.
예결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병원에서 그랬잖아. 주변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반응하는 걸 보면 청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아직 말할 준비가 안 돼서 그래.”
“아니 그래도. 부모 마음이라는 게 그렇잖아.”
저를 달래는 남편의 말에도 여자는 쉬이 걱정을 털어내기 어려운 눈치였다.
“처음에도 그랬어. 산후조리원 옆방 언니 애는 사흘 만에 눈 떴다는데 우리 애는 일주일이 걸렸잖아. 의사 선생님이 너무 늦은 것도 아니고 평범한 거라고 했는데도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몰라.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하고.”
문제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예결은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말을 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하고 있긴 했으나 대체로 부모가 보이지 않을 때의 일이었다.
게다가 겉보기야 어떻든, 열일곱 살이나 먹은 예결의 입장에서는 말을 제대로 못 해 웅얼거리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애가 조금만 아파도 다 내 잘못 같아…….”
“여보.”
“아이참. 괜히 센치해지네. 그냥 많은 건 안 바라. 우리 예결이가 평범하고 건강하게 컸으면 좋겠어.”
평범하게.
평범하고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예결은 유아용 침대를 둘러싼 울타리 사이로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가만히 지켜봤다.
행여라도 아이가 떨어져 다칠까 둥글게 마감한 나무 울타리. 그마저도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쿠션으로 둘러놓았다. 예결의 시선이 점점 더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좁지만 아늑한 방 안은 이런저런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저 구석에 놓인 바퀴 달린 작은 의자 같은 데 앉아서 걷는 연습 비슷한 걸 하기도 했고 그 옆에는 온종일 읽고 또 읽어주던 동화책이, 머리 위에는 무언가 주렴 같은 걸 주렁주렁 달아놓기도 했다.
온통 예결을 위한 것들뿐이다.
다음엔…….
‘말을 좀 더 해 볼까.’
비로소 새로 주어진 삶을 살아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이건……. 악몽도 아니고 대체 뭐람.’
잠에서 깨어난 예결은 목뒤를 문질렀다. 드디어 하량과 맺어졌는데 이 뒤숭숭한 꿈을 꾸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그는 슬쩍 어깨를 돌려봤다.
가이딩 덕분에 그토록 질펀한 정사를 나눈 사람치고는 몸이 멀쩡했다. 어젯밤만 해도 두 다리로 땅을 디딜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걷거나 뛰어도 별문제가 없을 듯했다.
‘게다가…….’
잠든 사이 대사형이 물수건으로 닦아준 건지 몸이 그리 끈적거리지 않고 냄새도 안 났다.
때마침 방문을 열고 하량이 나타났다. 그는 예결에게 더운 김이 올라오는 찻잔을 건넸다.
본인이 굉장히 목이 말랐다는 사실을 이제 막 깨달은 사람처럼 예결은 차를 호호 불어가며 입술을 축였다.
“밤새 뒤척이더구나. 혹 푹 잠들지 못한 거니?”
“아니, 그냥 꿈을 좀 꿨어요.”
하량이 건넨 질문에 예결은 꿈이 남기고 간 잔재를 훨훨 털어내며 답했다.
“불편한 곳은 없고?”
“네.”
몸을 일으킨 예결은 두 다리로 섰다. 아프진 않았으나 걷는다는 행위가 어색했다.
처음 다리가 생긴 인어도 아닌데 말이다.
‘계속 대사형한테 매달리느라 그런가.’
두 다리로 사내의 허리를 감는 게 아니라 혼자 걸음을 옮긴다는 게 낯선 이유를 깨달은 예결의 낯이 조금 붉어졌다.
“오늘 서녕성에 가기로 한 거 맞죠?”
예결은 확인하듯 하량에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러자고 하지 않았니.”
“좋아요. 그럼 일단 준비부터-”
무어라 말하려던 예결은 멈칫했다.
아래에서 액체가 흐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예결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아.”
하량이 뒤처리를 어느 정도 해주긴 했지만 너무 깊은 곳까지 사내의 정을 받아내는 바람에 안쪽에 씨물이 남아 있던 모양이었다.
안에서 흘러내리는 것의 정체를 깨달은 예결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땐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 저는 탕옥에 다녀올게요. 준비도 해야 하고.”
“이런.”
사제의 어색한 태도에서 기민하게 그의 사정을 눈치챈 하량이 예결에게 물었다.
“데려다줄까?”
“혼자가 좋아요.”
예결의 거절에 하량은 노골적으로 아쉬운 얼굴을 했다.
“그래도. 잘 빼내지 않으면 나중에 배앓이를 할지도 모르는데…….”
“잘할 수 있어요.”
발긋한 예결의 뺨을 핥듯이 바라본 사내가 마뜩잖은 낯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꼼꼼히 씻어야 한다.”
어린아이에게나 건넬 법한 말이 퍽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은 지난밤이 남긴 여운 탓이리라.
“다녀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