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베갯머리송사 (5)
“청해에서 개방도가 실종된 건 아시오?”
남궁운은 일전에 수하로부터 받았던 보고를 떠올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협조 요청을 받은 것도 아니기에 나서지 않았다.
“이 노개는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급파되었소.”
“개방이 나섰다면 흉수를 찾아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황 장로까지 나선 겁니까?”
거지는 많고, 그들은 쉽게 사라지거나 나타난다. 다만 개방도가 흔적조차 없이 자취를 감추는 건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십만 방도가 있다는 개방.
그들은 무림을 통틀어 가장 큰 정보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흉수가 그만큼 기가 막히게 꼬리를 자른 게지.”
손을 휘휘 내젓는 황걸개의 낯이 초췌했다.
“사라진 녀석은 내 밑에서 데리고 있던 놈이기도 했고. 그래서 직접 나서게 된 것이오.”
“강호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항상 도산검림을 걷는 것과 같다곤 하나, 의기로운 개방도의 목숨이 하루아침에 꺼지다니 실로 안타깝습니다.”
황 장로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반듯하며 정중한 태도가 과연 명가의 자제다웠다.
그러나 남궁운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개방도의 실종과 제 친우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남궁운은 예결을 감싸며 황걸개를 채근했다. 저자로 향한 그의 시선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황걸개는 그가 마냥 ‘인사’를 위해 지인을 좇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잡아야 했다.
“처음에는 애도하는 마음과 분노가 더 컸지. 하지만 석연치 않음에 서녕을 헤집고 다니다가 그 녀석이 파고들면 안 되는 것을 알아내려 했음을 알게 되었소.”
멍청한 놈, 하고 중얼거리는 노인의 낯은 초췌했다. 원래도 주름이 많은 얼굴이었으나 급속도로 늙어가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파고들면 안 되는 것이라니, 서녕에 그런 게 있습니까? 아니, 두려운 것 없다는 개방의 장로께서 이토록 위축되신 이유가 무업니까?”
흉수가 권세가였냐고 돌려 묻는 남궁운의 질문에 황걸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개방도가 두려운 것이 없는 이유는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오. 내 한 몸에 걸친 건 거적때기요 손에 든 건 타구봉뿐이니, 개만도 못한 종자들을 언제든지 두들겨 패고 다닐 수 있었지.”
남궁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역사를 통틀어 거대 문파 출신이 고수보다 일개 거지의 협행이 더 빛날 때가 많았다. 개방도는 보상도 원치 않는다며 악적을 처단하고 사람들을 구했다.
“하지만 그런 개방이라도 어겨서는 안 되는 금기가 존재하오. 이를테면 황궁이라든가.”
무림과 관은 불가침이다.
남궁운은 입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개방의 금기는 곧 무림의 금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황궁에 비견될 정도로 위험하며, 중원의 서쪽에 자리 잡은 단체는…….
“하지만 남궁 공자, 당신이 붙잡으려 한 남자는, 그는…….”
황걸개는 바싹 마른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실로 힘겨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남궁운은 그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싹둑 잘라냈다. 황걸개가 거론하려는 이름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황걸개의 말을 들으면, 예결을 구하러 갈 수 없어진다. 그는 남궁세가를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궁 공자. 내가 위험을 감수하고 그대를 끌어낸 이유를 정녕 모르겠소?”
밖이 저토록 소란한데, 거지는 차마 고함을 지르지도 못하고 숨죽여 말했다.
“내, 내 눈이 틀린 게 아니라면 저 사내는 분명 천……!”
남궁운은 황걸개를 뿌리칠 수 있었으나, 도무지 그러지 못했다. 황걸개가 흘린 단어를 못 들은 척, 그는 입을 열었다.
“……어쩌면 천지신명께서 제게 황 장로를 보내주신 걸지도 모르겠군요.”
“드디어……!”
마침내 이 꽉 막힌 남궁세가 소가주에게 제 간곡한 설득이 먹혔다고 생각한 황걸개의 낯에 화색이 맴돌았다.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
“운, 이렇게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일행이 있고…….”
“예결.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남궁운은 단도직입적이었다. 손목에서 흘러들어오는 그의 가이딩 파장은 무척 불안정하고, 또 필사적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예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느새 곁에 다가온 넉살 좋아 보이는 거지가 자자, 하면서 예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간발의 차로 그의 손길을 피한 예결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수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점혈을 피한 건가?”
노거지가 중얼거렸다.
“예결은 무공을 모릅니다. 너무 겁주지 마세요. 자아, 예결.”
황걸개를 경계하던 예결은 고개를 돌렸다.
“여길 빠져나가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그 남자가 돌아오기 전에 어서 가야 합니다.”
“아!”
남궁운은 예결을 들쳐멨다. 차라리 노거지가 나섰다면 걷어차기라도 했을 걸, 남궁운이라 방심했다.
“놓아! 놔주세요!”
발버둥 친다고 한들 바로 풀려날 수 있는 게 아닐뿐더러, 남궁운은 신속하게 경공을 전개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량과 앉아 시시덕거리던 다관이 멀어지고 있었다.
“이, 무슨. 남궁 공자!”
예결의 목소리가 파들파들 떨렸다.
중원에 넘어오며 항상 무림인을 경계해왔다. 에스퍼와 궤가 다른 힘을 사용하는 데다가 지금의 그로서는 완전한 방비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그럭저럭 위험을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남궁운이 자신에게 이럴 줄이야.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아이고, 반항이 너무 거세군.”
남궁운과 함께 경공을 전개하던 노거지가 중얼거렸다.
“당신이 남궁 공자에게 뭐라 속살거린 겁니까?”
예결은 그 말에 기민하게 반응했다.
“남궁 공자. 분명 유순하고 성품이 고운 공자라 하지 않았소?”
황걸개가 독기 가득한 예결의 시선에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황걸개를 반으로 쪼개고도 남았을 정도였다.
“별안간 납치당하는 처지인데 발 한 번 내지르지 못하지 않습니까.”
남궁운의 말에는 희미한 애틋함이 묻어났다.
가이드에게 손 올리지 말라는 선배 에스퍼들의 세뇌에 가까운 가르침 덕이라는 걸 전혀 모르기에 가질 수 있는 감상이었다.
만약 예결을 들쳐멘 게 황걸개였다면 그는 백 번쯤 물리고도 남았으리라.
“그건…… 그렇군. 아무튼 문 공자, 조금만 얌전히 있게나. 곧 개방의 안가에 도착하면 그때 모든 걸 설명해 주겠네.”
지붕 위를 내달리는 동안, 서녕성의 풍경이 발밑으로 지나갔다.
기예단의 깃발이 넘실거렸고 축포가 쏘아졌다. 사람들은 와! 하고 탄성을 내질렀고 호객에 나선 상인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남궁운의 등에 매달리면서 예결의 턱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멱리가 저 아래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너울너울, 하얀 천이 긴 꼬리를 만들며 멀어졌다.
예결은 그 멱리가 추락한 자리에서 그 누구든 위를 올려다보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했으나 멱리는 흔적조차 없이 삽시간에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아무도, 그 누구도 머리 위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도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았다.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하량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느낀 예결은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남궁운을 기절시키면 나는 추락한다.’
어떻게든 착지해도 이 높이면 부상을 면치 못할 거다.
‘게다가 저자는 무공을 익힌 거지로 보이니 분명 개방도야. 차라리 확성기에 대고 내가 에스퍼라고 광고하고 말지.’
남궁운이야 숨통을 압박해 기적적으로 기절시킨다고 해도, 힘을 쓰지 않고 저 개방도까지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조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일단, 안가라는 곳에 도착한 순간을 노린다.’
그래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엔 손을 써야 한다.
예결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오래지 않아 그들은 복잡한 골목에 내려섰다. 예결은 남궁운을 확 밀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예결,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설명이요? 남궁 공자는 아까 거기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잖아요.”
언제든 달아날 수 있게 골목길을 등진 채 저들을 노려보는 예결의 기세에 남궁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상황에서도, 예결이 제 이름을 불러주지 않은 것이 어쩐지 마음에 묵직하게 얹혔다.
“예결의 동행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어서 결례를 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사형이 왜요?”
“……단단히 세뇌당했군.”
황걸개가 혀를 찼다.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한 남궁운이 예결에게 말했다.
“예결. 그는 당신의 사형이 아닙니다.”
그의 낯에는 안타까움이 번졌다.
“곤륜에서, 예결의 스승을 만나고 왔습니다. 백양진인 말입니다. 기억합니까?”
언젠간 들킬 줄 알았기에 예결은 놀라는 기색 없이 그를 마주 봤다.
“그게 왜요?”
“그분께 당신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오래전, 아주 오래전 곤륜과 관계가 있던 마두가 자신의 제자를 납치해갔노라며…….”
“하, 마두라니.”
예결은 그 말을 코끝으로 비웃었다.
하여간 무림 놈들, 특히 정파 것들은 지독하게 폐쇄적이라 지들과 동색이 아니면 죄다 마두고 사술이다. 하물며 파문당한 제하량은 대마왕쯤 될 것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부님, 진짜…….’
전생에도 딱히 도움 한번 준 적 없더니, 이번 생에도 두고두고 화근이 된다. 이 정도면 사제 지연이 아니라 악연이 따로 없었다.
“문 공자. 처음 뵙겠소. 이 노개는 개방의 전대 방주, 적노개의 제자이며 현재는 장로 노릇을 하고 있는 황걸개라 하오.”
황걸개는 이쯤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입을 열어 스스로의 신분을 밝혔다. 보통 개방의 장로라 하면 알아주니 나선 거였다.
한데 정작 예결을 멈춰 세운 건 그의 신분이 아니라 적노개라는 낯익은 이름이었다. 황걸개는 자기소개가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말을 이어갔다.
“남궁 공자의 말이 맞소. 당신과 함께 있던 사내, 그는.”
입술이 바싹 말랐는지 그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이었다.
“그 남자는 문 공자의 사형이 아니오.”
“그걸 어찌 아십니까?”
예결이 서늘한 음성으로 쏘아붙였다.
“그가 그리워하는 사제는 이십 년 전에 죽었으니까.”
황걸개가 고개를 툭 떨궜다.
“문 공자는 그저 대체품일 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