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베갯머리송사 (10)
누군가가 날려 보낸 검은 새가 창공을 가로질렀다.
‘진영인가?’
예결은 새가 어디에서 날아올랐는지 가늠하려 애썼으나 지금 위치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협곡의 저 위, 높은 절벽의 양옆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들이 검푸른 깃발을 휘두르자 먼 데서 둥, 둥 하는 북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시커먼 아가리가 입을 벌리고 있는 듯했다.
저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예결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차는 다시 부드럽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예결은 하량이 창문을 닫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는 그림처럼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다만, 예결은 하량이 몸을 긴장시킨 상태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시선만은 무심한 듯 예결을 빗겨 있었으나 그 외의 모든 것은 사제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한다. 숨소리를 조금 크게 낼 때,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움찔거릴 때, 십만대산의 정경을 눈에 담느라 고개가 돌아갈 때마다, 하량의 자세도 조금씩 바뀌었다.
마차가 좁은 협곡을 빠져나갔다. 예결은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평범해 보이는 옷차림이지만 저 밖, 중원 사람들이 입는 것과 미묘하게 형식이 달랐다. 그들은 마치 거대한 행사를 앞두고 오와 열을 지어 늘어선 군인들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예결은 저들의 수를 헤아리려다가 포기했다. 마차가 움직일수록, 저 끝에 사람들이 더 나타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량의 마차가 완전히 협곡을 빠져나온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누군가의 선창에 다른 이가 따라 외치더니 이는 곧 물결처럼 모든 사람에게로 퍼져나갔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재림 만마앙복!”
일부러 맞추라 윽박지르거나 강압하지 않아도 한마음 한뜻이 된 양 반복되는 외침은 거의 광기 같았다.
십만대산을 처음 눈에 담았을 때와 다른 의미로 예결은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새삼 마교가 일반적인 무림 단체가 아님을 실감했다.
저들은 천마라는 신을 모시는 신도들이었다.
‘멀미할 거 같아…….’
숙제를 안 한 날, 학교에 가면 혼날 것을 알고 미리부터 불안해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아랫배가 당기고 속에 나비가 가득 찬 것처럼 술렁이는 감각.
예결은 제 행동의 결과가 이끌어낸 미래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사제가 몸을 뒤로 물리며 어깨를 움츠리자, 하량은 예결의 등을 감싸 안았다. 이질적인 풍경에 놀란 것도 잠시, 예결은 제 몸을 휘도는 가이딩에 안정감을 느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재림 만마앙복!”
딱 저 대사만 녹음해서 반복 재생하는 것 같다.
어느새 사람들을 전부 가로지른 마차가 우뚝 멈추어 섰다. 밖에서 문을 조심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어 예결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자, 대사형이 움직였다.
“잠시, 실례하마.”
하량은 예결의 아혈과 마혈을 동시에 짚었다.
“아……!”
목소리도 나오지 않게 된 건 물론, 자의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된 예결의 몸이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여긴 어차피 대사형 홈그라운드 아닌가? 도망쳐봤자 바로 잡힐 텐데 뭐 하러 행동을 구속하지?’
예결은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하량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썼다.
“이해해주렴. 여긴 위험한 곳이라……. 갑자기 뛰쳐나가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예결이 패닉해서 날뛸 것을 걱정한 모양이었다.
‘여기에서 도망칠 생각은 없는데.’
대사형이 천마라는 사실에 충격받은 것과 별개로, 예결은 그로부터 달아날 마음은 없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에스퍼는 가이드의 곁을 떠날 수 없다.
설령 예결이 모종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탈출을 노려도 마찬가지다. 예결이 아무리 날고 기는 에스퍼라 한들, 이 많은 무림인, 그것도 마교도의 이목을 속이고 십만대산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천운에 가깝게 탈출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 너머에 예결을 기다리고 있는 건 사막이었다.
제아무리 에스퍼라 한들 가이드 없이 사막을 가로지르는 건 모험이다.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심해지고 더 많은 가이딩을 필요로 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결은 하량의 곁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가자.”
대사형은 사제의 손끝에 애틋하게 입을 맞추더니 한 팔을 제 목에 걸치고는 예결을 안아 올렸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예결은 하량의 품에 안긴 채 적진으로 여겼던 마교의 한복판에 떨어졌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재림! 만마앙복!”
하량은 느릿하게 저를 향한 마도인의 숭배와 선망, 광신과 열원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갔다.
다만 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한순간 압도당할 거 같은데, 그들의 광기를 한 몸에 받아내는 대사형의 낯은 오연하기만 했다.
저 파도가 들이닥칠지라도 본인은 결코 삼켜지지 않으리라는 걸 확신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태도였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재림! 만마앙복!”
마혈이 짚여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예결은 목에서 피가 날 것처럼 외치는 이들을 바라봤다. 목이 터져라 그들의 신을 향해 외치는 벌건 목구멍이 보일 때마다 이상하게 속이 좋지 않았다.
예결이 외면해봤자 소용없다고, 이 모든 게 현실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예결은 하량이 마차에서 내린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계단이 있었던 것이다.
높은 단으로 올라갈수록 그 층을 차지한 이들이 줄어들었다. 대신 그만큼 한 명 한 명의 기세가 강력해졌다.
전생에 반쯤 세뇌당하다시피 마교는 악이고 마교도는 악마라는 소리를 들었던 예결은 반사적으로 위축되는 걸 느꼈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아.’
마교도의 시선은 전부 하량에게만 올곧이 박혀 있었다. 기이한 일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이라는 것을 품을진대 저들은 그들의 주인이 품에 안고 있는 짧은 머리카락의 청년이 누군지, 왜 천마의 품에 안겨진 채 옮겨지는지 전혀 궁금해하질 않는다.
멍청해서가 아니다.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서지…….’
이토록 강대한 세력을 거느린 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이 한 몸처럼 천마를 추앙한다.
중원무림의 강호인들이 신강 저 구석에 처박힌 마교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단체를 이끌고 있든, 그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이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신으로 섬기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든 한 몸처럼 움직일 것이다.
그건 무척, 위협적이고 두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예결은 하량을 올려다봤다. 오로지 앞만 바라보는 저 얼굴이 강호에 돌아온 이래 가장 낯설게 느껴졌다.
‘아니, 아니야.’
하량은 달라진 적이 없다. 달라진 건 오히려 예결이 보는 관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던 영웅의 틀 안에 제하량을 집어넣은 채 왜곡된 시선으로 대사형을 우러르기만 했다. 대사형이 흑귀의 거죽을 뒤집어쓴 걸 보고도 그랬다. 진영이 제하량이 파문당한 이유를 말해주었을 때도, 그저 정파 놈들 욕하기에 급급했다.
하량은 차마 말할 수 없었으리라. 하나 남은 사제라고 있는 예결이 편협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서.
천마가 되었다고 한들, 저 선량하기 짝이 없는 사내는 예결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을 거다.
‘내 탓……. 내 탓이다.’
묵직한 죄책감이 가슴에 얹혔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천마님을 배알하나이다.”
가장 높은 단에서 오르기 바로 직전, 여섯 명의 마교도가 하량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몸에 걸친 장신구며 옷, 기세로 미루어 보아 이 숱한 마인 중 손에 꼽힐 정도의 지위를 차지한 자들이 분명했다.
예결은 처음으로 자신을 탐색하는 시선을 느꼈다. 봤지만 안 본 척하는 고급 기술을 사용하긴 했으나 예결이 이런 감각을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대사형은 그들이 읍하는 것마저 무심히 지나쳤다. 예결은 그가 이대로 다음 문 너머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가장 높은 단, 그 위에 올라선 하량은 등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공 가주.”
모여 있던 여섯 명 중 한 노인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모은 두 손은 백옥처럼 희고 투명했다.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손은 젊은이의 것에 비견해도 더 아름다우니 그 간극이 기괴하다.
“본좌를 위해 제법 흥미로운 마중을 보냈더군. 내 따로 불러서 치하하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하량은 예결을 데리고 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지기 한 명 없는데 스르륵 열리는 나무 문을 몇 개나 지나서야, 예결은 웅장하다 못해 보는 이를 찍어누르는 위엄을 갖춘 검은 전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청형전〉
예결이 그 편액을 읽어내기가 무섭게 하량은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내 거처란다.”
하량은 집들이라도 하는 것처럼 예결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깊은 곳에 침소가 있고, 저 복도를 걸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옆 건물로 넘어갈 수 있는데 그곳에 탕옥을 마련해 두었지. 마음에 들 게다.”
정작 그의 사제는 인형처럼 미동조차 못 하고 있었으나 하량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들떠 있었다.
“중정에는 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화요초가 심어져 있으니 보는 재미가 있을 거다. 독초도 있었는데……. 저번에 전부 치워놓으라 했으니 네게 해가 되는 일도 없겠지.”
예결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대사형이 하는 양만 보면 평생 비밀로 하려던 거 같았는데, 미리 독이 든 화초를 치워놨다는 걸 보면 언젠간 여기에 자신을 데려올 생각이었던 걸까?
“무척 무서울 거라는 건 안다. 이런 곳이라도 나름 사람 사는 곳이니 너무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
‘사람 사는 곳.’
정말 예전의 대사형이었다면 절대 쓰지 않았을 표현이다.
복도 위로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는 하량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마침내 침소에 도달한 그는 여태 그랬던 것처럼 손 한 번 대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안은 청해의 장원에서 하량이 지내던 거처보다 더 꾸며져 있었다. 그곳이 아무것도 없어 살풍경했다면, 이곳은 고상한 분위기의 가구가 들어차 있었다.
원형의 창문이 중정을 향해 나 있었다. 그 너머가 비칠 듯 말 듯 한 비단 아래 청옥과 진주를 꿰어 드리운 발이 침상 앞을 가리듯 드리워졌고, 한쪽에는 화려한 세공의 연꽃 모양 금속 향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는 건 여기나 거기나 매한가지였다.
우아한 곡선의 도자기 화병이 있을지언정 꽃이 꽂혀 있지는 않고, 정교한 무늬의 탁상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들 그 위에는 붓이나 물잔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하량은 아무렇지도 않게 침상으로 다가가 예결을 내려놓고 그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아, 아아…….”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 몇 번 입술을 달싹인 예결은 목소리가 나오는 걸 확인했다.
그는 대사형을 바라봤다. 분명 할 말이 있었는데, 선뜻 흘러나오지 않는다.
실제로는 며칠이나 지났을 테지만, 체감상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우형이 부족해, 결이 너를 겁먹게 했구나.”
하량이 예결의 뺨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예결이 입술을 열었다가 주저하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몹쓸 사내라서…….”
예결의 손을 끌어당긴 하량이 그 손바닥에 뺨을 가져다 댔다.
“네가 이곳에 있으니 좋구나.”
눈을 감은 이의 얼굴은 무척 평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