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85화 (185/203)

185화. 베갯머리송사 (12)

천마의 거처, 청형전은 은은한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다.

잘못 발을 디디면 상대를 죽음으로 이끄는 절진이 가동되는 중이었다. 하량이 천마가 된 이후로 한 번도 가동한 적 없는 진법이다.

보이지 않는 기관 장치들도 실로 오랜만에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으며 천마의 직속 무영대에 소속된 그림자 호위들이 청형전을 둘러싸고 있었다.

본디 청형전은 십만대산 내에서도 가장 심처에 자리 잡아, 요새 속의 요새라 불릴 만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건 천마의 대가 바뀐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고.’

예결을 떠날 때와 옷이 달라진 하량은 절진을 가로지르며 생각했다.

‘아무도 나올 수 없다.’

실상, 그가 원한 건 후자의 기능이었다.

안개 너머의 어렴풋한 이들의 윤곽이 하량을 향해 손을 뻗고 보이지 않는 입으로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하량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마침내 진법을 전부 가로지르자, 무영대의 수장이 나타나 천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손님은 잘 있나?”

[예.]

답은 전음으로 들려왔다. 주인 외의 모든 이에게 신분을 감추기 위해 저들은 얼굴뿐이 아니라 음성까지도 숨기는 자들이었다.

“탈출 시도는?”

만년한철로 족갑을 만들어 채울 수도 있었으나 그건 예결에게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 하여 하량은 천잠사로 사제의 두 손을 묶어놓았다.

무림인도 아닌 예결이 일반적인 방식으로 그 구속에서 풀려날 수 있을 턱이 없다. 그가 기르는 천년뇌각망도 현재는 삼랑이 보호하고 있는 상태다.

하나, 하량은 사제가 가끔 보이는 돌발적인 재치를 기억했다.

[밖을 나오려는 시도는 없었습니다.]

하량은 눈을 내리깐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결은 그가 천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급속도로 얌전해지긴 했다.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정말 겁에 질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멍청하기는.’

사내는 쓰게 웃었다. 하나를 얻었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예결을 온전히 가지기로 택했으니 사제의 외면에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

[흐느끼는 소리 같은 게 새어 나오긴 했습니다.]

그림자 호위는 하량이 세세한 질문을 던지자 그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원래 포로에게는 흔한 일이라 따로 보고할 생각도 없었다. 하나 주군이 이토록 주의를 기울이는 걸 보니 말을 해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알았다.”

하량은 고개를 끄덕인 뒤 수하를 지나쳤다. 그의 걸음은 조금 더 빨라졌다. 사제가 울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바심이 났다.

“결아.”

한 겹의 장지문을 앞에 둔 하량은 우뚝 멈추어 섰다.

무영대주가 말한 대로, 어렴풋한 흐느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장이 쿵, 떨어진 사내는 바로 문을 열어젖히려다가 멈칫했다.

‘……분명 울고 있긴 하지만, 이건.’

예결의 울음에 야릇한 색이 덧입혀져 있었다. 그는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길게 드리운 비단 너머 어렴풋이 비치는 사제의 인영이 보였다. 그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였다. 어딘가 아픈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하량은 휘장을 걷었다.

침상 위에 무너진 예결이 보였다.

다리 사이에 끼운 야금은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고, 그의 옷가지는 쓸려 올라가 맨살을 드문드문 드러냈다. 다리를 연신 교차하며 비비는 반라의 예결은 하량이 돌아왔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발갛게 상기된 낯을 하고 있었다.

예결이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다가 울음을 터트린 정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하량이 낸 소리에 젖어 있는 사제의 두 눈이 그를 바라봤다. 발간 눈가와 젖은 뺨이 씰룩거렸다. 원망과 애걸이 뒤섞여 혼탁해진 시선이 하량을 채근했다.

실로 아찔하기 그지없는 염태였다.

하량은 드물게 당황했다.

‘대체 왜?’

약 같은 걸 먹이진 않았다. 그런 게 없어도 잘만 우는 예결을 더 괴롭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마.’

하량은 뒤늦게 사제가 주기적으로 몸의 열기를 해소하려 흑귀를 찾아갔던 걸 떠올렸다. 당서악이 쓴 약의 부작용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정사를 나눴기에 그 문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아, 결아.”

하량은 재갈을 풀어주었다. 타액으로 젖어 있는 천을 치우고 바로 손까지 풀어주려고 하는데 침상에서 천잠사를 분리하기가 무섭게 예결은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처음 당서악의 미약에 당했을 때는 약 기운에 짓눌리다시피 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몸이 가벼웠다. 무엇보다 무한한 가이딩의 근원이 바로 앞에 있지 않나.

예결은 묶여 있는 손으로 하량의 허리끈을 거칠게 풀어냈다. 처음엔 그를 제지하려던 하량은 어찌하는지 보겠다는 듯 멈췄다.

“아. 아아…….”

반쯤 우격다짐으로 겉옷을 뜯어내고 하량의 하의까지 끌어 내린 예결은 이미 반쯤 기립한 사내의 양물을 허겁지겁 두 손으로 쥐었다. 여전히 두 손이 묶여 있긴 했으나 아직 큰 불편이 느껴지진 않았다.

지금의 예결은 다른 게 급했다.

“읍.”

다시 깨어났을 때부터 갈증을 느꼈던 예결은 하량의 귀두 끝을 입에 물었다. 최대한 이를 세우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긴 했으나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기 때문에 잘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아직 완전히 발기한 상태가 아니었다만 입을 최대한 벌려도 받아내는 게 쉽진 않았다.

“으읏, 읍…….”

욕심껏 살기둥을 입에 머금고 핥자, 타액이 입가로 질질 새는 게 느껴졌다.

하량이 제 치태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내내 너무 더웠다. 머리가 반쯤 어떻게 되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때맞춰 하량이 나타난 것이다. 딱 너무 늦기 직전에.

그는 차가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뜨거워서 차갑게 느껴지는 불꽃 같은 거였으나 예결은 그런 감각마저 감지덕지였다.

천천히 기립해가는 성기가 입 안을 빠듯하게 채웠다. 예결은 최대한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하량의 반응을 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게 보였다.

‘괜찮아.’

이건 좋은 신호다. 참고 있다는 뜻이니까.

사제가 게걸스럽게 제 아래를 빠는 동안, 하량의 손이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었다. 조금만 힘을 줘도 터질 것처럼 작고 연약한 머리가 느껴졌다.

어설프게 아래를 빨아들이는 구음에 하량은 속절없이 신음했다. 언제나 사제의 아래를 탐하기에 급급했던 그는 예결의 입에 성기를 물려볼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건 너무 추잡하고 정도를 모르는 짓 같았다.

한데 지금의 하량이 느끼는 희열은 그에게 남겨져 있던 일말의 죄책감을 앞지를 정도로 강력했다.

솔직히 말해 예결이 애무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다. 숨이 모자라 헐떡이다가 종종 이를 세웠고, 예민한 음경은 그에 날카로운 쾌감과 고통을 모두 느낀다.

문제는 그 혼재된 감각이 하량을 부추긴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배려해 주어야.’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만 끝났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예결의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허릿짓을 하지 않는 게 고작이었다.

고통과 희열에 반씩 일그러진 예결의 눈은 아직도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를 걷는 듯 몽롱했다. 조금만 긴장을 놓으면 입에 머금은 하량의 성기가 빠져나갈지도 몰랐다.

츱, 츱, 하고 빨아들일 때마다 멀건 애액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예결은 게걸스럽게 사내의 성기를 탐했다.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요동치는 가이딩도 예결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인내하는 하량에게서는 분명 기꺼운 쾌락이 전해져왔다.

아무리 욕심껏 탐해도 먹어 치울 게 남아 있다. 귀두 끝이 목구멍에 부딪힐 때마다 반사적으로 구역감이 몰려왔으나 예결은 그마저도 참아냈다.

‘이렇게 좋을 줄은.’

사탕처럼 달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빨기 쉬운 것도 아니었다. 수컷 냄새가 나는 사내의 성기가 입 안을 빠듯하게 채운 탓에 반사적으로 눈물까지 고였다.

그래도 예결은 구음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마음에 때맞춰 찾아든 발정을 거부하지 않고 몸을 맡긴 결과였다.

‘대사형이 천마라고.’

아롱아롱 매달려 있던 눈물이 눈가를 타고 주룩 흘러내렸다. 머리 위의 하량이 그를 만류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예결은 모르는 척 열락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럼 뭐 어때.’

애당초 하량이 파문당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파의 마두여도 괜찮다고.

상대가 소박한 구멍가게 주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대기업 회장이라는 걸 알게 된 신데렐라도 아닌데 당황할 이유가 다 무어란 말인가?

“으, 으읍…….”

다시 태어난 예결은 에스퍼가 되었다. 선배 에스퍼들이 사비를 들여서 출판한 망할 지침서에 따르면 어차피 에스퍼의 법칙은 가이드를 토대로 재구성되는 법이다.

하량은 예결의 은인이었고, 그의 가이드이기도 했다.

예결이 그를 위해 바꾸지 않을 것이 없다. 감정과 사고, 상식과 도덕관까지도.

“결아, 크윽…….”

짐승처럼 목을 낮게 울리는 하량의 신음에 예결은 멈칫했다. 머리칼을 틀어쥔 그의 손이 예결의 얼굴을 뒤로 물리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결은 물러남 없이 사내를 먹어 치웠다.

“그만. 그만…….”

예결은 제하량을 원했다. 그것만은 처음부터 바뀌지 않는 단 하나의 목적이었다.

그가 자신을 가지게 했으니, 이젠 대사형이 저를 버리지 못하게 만들 차례가 온 것뿐이다.

‘미워해도 괜찮으니까. 제발…….’

집요하고 필사적인 움직임에, 결국 하량은 사제의 입 안에서 절정에 달했다.

“윽……!”

목젖을 때리는 백탁액 때문에 몇 번 기침하면서도, 예결은 사내의 정액을 달게 받아마셨다. 양이 많은 탓에 일부는 어쩔 수 없이 흘러내렸다.

무심코 입술을 핥는데, 인내심을 잃은 하량이 그를 덮쳐왔다.

“흐으, 흐…….”

대사형의 입맞춤을 받아내며, 예결은 몸을 잘게 떨었다.

‘텁텁할 텐데.’

그런데도 하량은 도통 물러서는 법 없이, 예결을 탐닉했다. 반쯤 이성이 사라진 눈이었다.

좋은 징조였다. 저 혼자 미쳐 있는 건 아니라는 소리였으니까.

예결은 여전히 묶여 있는 두 팔을 하량의 목에 걸쳤다. 하량은 그저 입맞춤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리를 일으킨 예결은 대사형에게 거푸 입을 맞추다가 천천히 그의 성기 위에 앉아버렸다.

“읏.”

질척하게 젖어 있던 하문은 하량의 양물을 잘도 집어삼켰다. 아래를 풀어줄 시간조차 없었기에 피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가이딩을 갈구하는 에스퍼의 몸은 생각보다 탐욕스럽고 유연했다.

삽입의 고통이 아주 없다고 말할 순 없었으나 아래를 가득 채워오는 양감 때문에 아랫배가 눌리는 듯한 느낌만 빼면 버틸 만했다.

“결……!”

놀란 하량이 접문을 멈추고 저를 불렀다. 예결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을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두 손으로 그의 뒤통수를 끌어당기며 입술을 꾹 눌렀다.

뱀처럼 간살스레 혀를 놀리며 아래를 조였다.

“안아, 안아주세요…….”

예결은 몽롱한 낯을 한 채 웃었다. 하량이 제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에 그의 손목에 입을 맞춘 뒤 가만히 얼굴을 기댔다.

“흑귀 님.”

그는 사내를 부추기는 방법을 아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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