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86화 (186/203)

186화. 베갯머리송사 (13)

“너무, 너무 힘들어요. 흑귀, 님. 흑귀 님……! 아!”

허리를 움직이며 아랫배에 대고 성기를 비비는 예결은 애원과 함께 지독한 독을 하량에게 흘려 넣었다.

예결도 이게 퍽 미친 짓이라는 걸 알았다.

제대로 풀지 않으면 피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대뜸 하량의 양물을 머금은 것부터가 상당히 자학적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더 미친다. 특히 손아귀 안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제야 위기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예결은 하량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고, 그래서 필사적이었다.

‘나 때문에 살아남았고, 살아남았기에 천마가 되었으니.’

원망은 하량이 예결에게 품고 있던 애정을 웃자라게 하고 말았다. 예결은 그런 걸 뿌리째 뽑아내는 방법 같은 건 몰랐다.

자신을 향해 스미던 그 서슬 퍼런 가이딩을 기억했다. 목이 졸리는 순간에조차 하량의 광기를 끌어안았으나 그 진의를 알게 된 지금은 못내 괴로웠다.

그리움도 미안함도 다하고 나면 그때는?

대사형이 여전히 자신을 곁에 둘까?

예결은 그 답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하량을 충동질하고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혀야 한다. 난잡하기 짝이 없는 사제로 비쳐도 상관없었다.

영원히 그의 품에 안겨 있을 수만 있다면.

“결아…….”

나직한 부름과 함께 더운 숨이 예결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복잡한 심경이 녹아나 있었으나 결코 기쁨은 아니었다.

예결이 훌쩍훌쩍 울음을 터트렸다. 혼자서 열심히 해 보려고 하는데 몸이 맘처럼 따라주지 않아 서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래를 움칠 조이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허릿짓이 야릇했다. 사내가 무언지도 모르던 저 몸에 교태를 입힌 것이 바로 하량이니 그 색기를 모를 수가 없었다.

하문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량은 그 입에 사정했으니 예결의 아래를 적신 건 온전히 밀지가 머금고 있던 애액과 잔뜩 성난 하량의 양물 끝에서 흘러나온 선액뿐이다. 분명 쾌감보다 고통이 더 커야 할 텐데, 예결의 낯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명백히 쾌락에 사로잡힌 얼굴이다.

“뜨거, 워요. 아, 아흣……!”

욕심껏 허리를 움직이면서도 애가 닳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그를 힐끗힐끗 올려다보는 예결의 두 눈은 몽롱하게 풀어진 채였다.

하량은 예결이 발정이 날 때마다 누굴 찾아갔는지 알았다. 그러니 이렇게 이성이 반쯤 날아간 상황에서는 제하량이 아니라 흑귀를 찾는 게 보다 ‘익숙한’ 일일 거라는 사실도.

머리로는 그렇게 냉정하게 셈할 수 있었다. 심지어 하량과 흑귀는 한 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은 투기가 치밀었다.

예결의 옷깃 한 번 쥐어보지 못한 풋내 나는 후기지수를 경계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각이었다. 마음 약한 사제가 상처투성이의 남자에게 건넸던 위로가 탐이 났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른 채, 밤이 여위어 새벽이 올 때까지 나누던 정사가 욕심났다.

왜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했는지 생각하면 스스로에게 부아가 치민다.

이 관계가 너무 소중해서 무너뜨리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라, 하량은 결국 예결에게 제 정체를 들키고 말았다.

‘어차피 이렇게 되었을 것을.’

한 치 앞도 보지 않고 순간의 달콤함에만 취해 있던 결과였다.

기실, 하량은 처음부터 예결의 몸과 마음을 탐낸 적이 없기에 흑귀로서 사제를 안는 일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다른 이에게 내주지 않을 수 있다면 흑귀로 움직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지독하게 안일했다.

“이 우형이 실수했구나.”

하량이 손을 뻗어 예결의 허리를 붙잡았다. 몸달아 엉덩이를 움직이던 예결이 순간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의 입술이 예결의 쇄골 위를 꾹 누르고는 이내 천천히 핥아 올렸다.

우유 냄새가 날 것처럼 흰데, 이렇게 지분거리고 있노라면 야릇한 향내가 나며 혀끝에 짠 소금기가 느껴졌다. 다른 손을 등허리를 따라 느릿하게 미끄러뜨리며 잘못 쥐면 부서질 것 같은 몸피가 연약하게 떨리는 감각을 즐겼다.

“다른 사내를 그리워하게 만들다니……. 내 참으로 부끄러워 결이 네게 면목이 없다.”

물기에 젖은 눈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하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감질나게 움직이던 예결의 어깨를, 천천히 눌렀다.

“흐…… 으아……?”

어떻게든 버티고 서려던 다리가 한순간에 풀렸다. 예결은 하량의 성기 위에 강제로 주저앉혀졌다.

쾌감인지 고통인지 모를 것이 등골을 타고 머리까지 치밀었다.

“으, 그읏……! 아……!”

절절한 교성이 예결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 눈앞이 번쩍였다. 예결은 헤프게 입만 벌린 채 숨을 헐떡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 깊게 넣어야지. 예결아. 힘들다고 이렇게 얕은 곳만, 찌르면…….”

하량은 평소보다 뜨겁게 느껴지는 예결의 몸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그는 예결이 이처럼 달아오른 이유가 열락 탓이라고 여겼지 해독 작용 같은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예결을 몰아붙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가는 몸은 무참히 흔들리며 사내를 받아들였다. 하량의 어깨에 걸쳐 놓은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

예결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벗어나려 허리를 흔들 때마다 하량의 성기가 내벽을 둥글게 문질렀다. 성감대가 꾸욱 눌릴 때마다 움칠 튀어 오른 몸은 또 그만큼 가라앉았다.

“하윽, 아!”

바짝 일어서 있던 예결의 성기 끝에서 희멀건 정액이 흘러나왔다.

“조아, 좋…… 좋아…….”

“이렇게, 깊은 곳까지 채워야.”

“흣! 아……! 흐읏!”

예결이 하는 양을 지켜볼 듯 관대했던 사내는 무작스레 허릿짓을 했다. 그의 호흡 사이에 거친 헐떡임이 섞여들었다.

“그래야 네가 울지.”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예결의 뺨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하량은 이미 젖어 있던 뺨 위를 핥았다.

“아……!”

손으로 등줄기를 훑기만 해도 몸을 움츠리며 매달려 오는 예결의 두 눈은 쾌락에 젖어 혼몽했다.

하량은 제 위에 올라타 있던 예결이 몸을 침상으로 무너뜨렸다.

천마만이 사용할 수 있던 너른 침상에는 아이가 실례라도 한 양 젖은 자국이 생겨나 있었다.

하량은 방에 들어온 순간 사제를 발견하고 느꼈던 아찔함을 선명히 기억했다.

어떻게든 욕망을 해소해 보려 야금을 다리 사이에 끼운 채 허벅지를 비비던 예결의 모습은 눈에 넣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하량을 어떻게든 죽여 보겠다고 살수를 보내고 계략을 짜는 마도육가 놈들은 다 멍청이였다.

지금의 그는 제 발로 자신의 파멸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아흣!”

눕혀진 후 하량이 처음으로 움직이자 예결은 입가를 와글와글 일그러뜨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다리에 통 힘이 들어가지 않아 허리를 감지 못하고 활짝 벌렸다.

“천, 천천히. 흑귀 님…….”

예결은 잊지 않고 애걸했다.

“왜, 그 사내는 천천히 쑤셔 주더냐?”

하량이 다정하게 물었다.

“아닐, 텐데.”

정체를 밝힐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대사형의 속삭임은 지나치게 의미심장했다.

그러나 오래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여태 들어온 곳보다 더 깊은 곳까지 범하려는 양, 푹 하고 치받는 하량의 허릿짓에 예결은 숨을 거칠게 들이쉬었다.

“흐윽, 흑.”

“어느 사내가, 그렇게 인내심이 좋아? 응?”

하량이 예결의 귓가에 자잘한 입맞춤을 흩뿌렸다. 그러나 그의 하반신은 여전히 좁은 밀지에 길을 내려는 것처럼 자비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예결의 몸은 흔들리지도 않았다. 대사형이 온몸으로 그를 내리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게가 전부 압박감으로 와 닿았다. 하량의 품은 세상에서 가장 아늑하고 작은 예결의 세상이었다.

“하아, 하……. 읏!”

귓가에 말캉하고 뜨거운 것이 와 닿았다. 뾰족한 것이 예결의 귓불을 물고 뺨을 핥고, 턱선을 따라 부드러운 입술을 비비다가 목울대로 내려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제 몸은 온전히 남아 있음에도, 예결은 어쩐지 자신이 짐승에게 싹싹 발라 먹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 아! 좋……. 흐윽…….”

예결은 두 손이 묶여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락에 흠뻑 젖은 머리로는 팔에 힘을 주고 하량에게 매달려야 한다는 그 간단한 동작마저 수행하지 못했으리라.

혼자 움직일 때보다 더 깊은 곳까지 들어온 하량의 양물이 내벽의 예민한 곳을 쑤석거렸다. 허리를 살짝 둥글리다가 안으로 퍽퍽 하고 들어올 때마다 아랫배가 저릿저릿했다. 뱃가죽이 들썩이는 듯한 모습을 보며 예결은 다시 머릿속을 녹여버리는 쾌감에 고개를 뒤로 꺾어 눈을 감았다.

잔뜩 쥐어짜여 몸에 물 한 방울 남지 않은 것 같은데,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하량은 그마저도 아깝다는 듯, 집요하게 예결의 뺨을 핥았다.

어질어질한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눈꺼풀을 몇 번이나 깜빡이던 예결은 저를 내려다보는 검고 어둑한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사, 사형…….”

“아니지. 아니지.”

이제야 퍼뜩 상대가 누군지 깨달았다는 듯 희게 질려가는 예결의 뺨을 어르듯 툭툭 두드린 사내가 속삭였다.

“네 앞에 있는 걸 대사형이라 부르면 안 된단다.”

몇 번이나 정정해 주었음에도 여전히 저를 사형이라 부르는 사제에게 하량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곤륜의 배신자. 마교의 주구. 정파무림의 주적.”

연무장에서 초식이 왜 이렇게 전개되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동문에게 일일이 목검을 쥔 손을 고쳐주고 발의 각도며 어깨의 위치까지 조정해주던 바로 그때의 제하량처럼 다정하다.

“그리고 저를 대사형이라 불러주는 하나 남은 사제를 범하려 혈안이 된…….”

여전히 제 목에 걸쳐진 팔을 애틋하게 더듬은 사내가 그 안쪽에 입술을 찍어 누르듯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무도한 짐승 새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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