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베갯머리송사 (14)
“돌아갈, 돌아가면…….”
천마가 된 제하량이 다시 곤륜의 제자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예결은 이를 잘 알면서도 도무지 대사형을 포기할 수 없어 가당찮은 말을 중얼거렸다.
그건 애원이라기보다는 미련이었고, 미련이라기보다는 절망이었다.
“내가 무얼 해도 곤륜으로 돌아갈 수 없다.”
뭉개진 발음으로 뚝뚝 끊어지는 단어를 내뱉었을 뿐인데 하량은 예결의 말을 다 이해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관계를 되돌릴 생각도 없어.”
하량은 예결에게 천천히 입 맞췄다. 언제 거칠었냐는 듯 느릿하게 아래를 들쑤시는 양물의 움직임에 예결은 조금이나마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뭉근한 열기가 불을 지피듯 그의 몸에 퍼져나갔다. 떨어지기 아쉽다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빨아들인 사내가 고개를 뒤로 물리며 중얼거렸다.
“곤륜의 제하량은 이런 짓을 못 하니까.”
흘러내린 예결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준 남자가 반듯하고 모양 좋은 사제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예결은 그가 못다 한 말을 알 것 같았다.
만약 곤륜에서 사형제 둘이 붙어먹으면 무조건 파문이다. 쉬쉬하며 손장난 정도는 도와주긴 해도 밤낮을 안 가리고 이렇게 음탕하게 붙어먹는데 그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한편 천마는, 마교의 주인은 일개 곤륜문도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게 탐할 수도 있었고 그의 침전에 가두어도 무방했다. 그의 신도들은 천마가 옛 사제와 붙어먹는다 한들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하, 하지만. 하지만…….”
예결의 물기 어린 속삭임과 함께 그의 손이 하량의 눈가에 닿았다. 남자는 무방비하게도 눈을 감은 채, 사제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분명, 그랬잖아요. 흐윽. 협객이고, 영웅이었고……. 사람들을 구하는 걸 좋아했잖아요.”
예결의 속삭임에도 하량의 낯은 건조하기만 했다.
그는 귀 기울여 들을 뿐이다.
“그런데 천마가 되어서, 싫지 않아요? 무섭지는 않아?”
하량은 울먹이는 예결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고 그 얼굴을 내려다봤다.
‘이런 질문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천마가 되고 말고는 그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하기 위한 길이었지.
두려움이나 망설임 같은 것도 전부 제거된 채, 그는 미래를 택했다. 살아남는 것조차 온전히 제 의지로 선택한 적 없는 사내는 그렇게 쉽게 스스로를 망치기로 했다.
“……살아야 한다고.”
하량은 예결이 지독하게 후회하게 된 말을 속삭였다.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예결의 눈가를 따라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하량은 무감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생존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설령 그런 게 있더라도 빛이 바래고 말았다.
하나, 살아남아 예결을 만난 걸 보면 곤륜에서 노도사들이 그토록 찾던 천지신명이나 원시천존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떠올린 생각에 하량은 픽 웃었다.
파문당한 도사 주제에, 그것도 마교도들이 신으로 섬기는 천마가 된 주제에 신을 찾는 걸 보면 결국 하량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었다.
“곤륜으로 돌려보내 주었을 때.”
난잡한 흔적을 가득 단 몸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엉 우는 사제가 가여워 하량은 그를 깊게 끌어안았다. 숨을 깊게 쉬자 그가 참으로 좋아하던 예결의 체향이 느껴졌다.
“그때, 돌아오지 말았어야지.”
이 지독한 인연을 끊을 기회라도 있었다면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니 이제 하량은 그 스스로도 멈출 수 없었다.
흑귀의 몸에 가득한 그 흉측한 흉터가 탐이 난다 말하고.
남들이 다 우러르거나 두려워하는 천마가 되었다는 말에 엉엉 우는 예결을, 그가 어떻게.
어떻게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알겠니, 결아?”
하량은 밑도 끝도 없이 속삭였다.
“네 탓이다.”
아니. 아니다.
이 중 어느 무엇에도 예결의 책임 같은 건 없었다.
하량은 쓴웃음을 삼키며 정정했다.
전부 그의 탓이다.
이 너른 침상 위에서, 예결은 갈 곳 없이 그의 두 팔 사이에 갇혀 있었다. 사고 회로가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열락을 강제로 주입당하면서, 궁지에 몰린 채 사지를 바르작거렸다.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가이딩은 흡사 노도와도 같았다. 예결을 흠뻑 적시고 다시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양 집어삼키고 있었다.
“흑! 으흐…… 흐아……!”
사제가 바들바들 떨며 절정에 오르자 하량은 성기를 빼냈다.
“아흣……!”
마개 역할을 하던 양물이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그가 예결의 안에 잔뜩 싸질렀던 백탁액이 흘러나왔다.
예결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아래가, 아래가…….”
아래에서 정액이 줄줄 새는 느낌에 예결이 울음을 터트렸다.
“안 다물어지면, 어떡해요?”
“쉬이……. 괜찮다. 괜찮아.”
하량은 그런 예결을 능숙하게 얼렀다. 일부러 한계까지 몰아붙인 탓에 이렇게 된 거니 아둔하기보다는 그저 귀엽고 어여뻤다.
히끅거리는 어깨를 어루만지고 쪼듯이 입을 맞추며 귓가를 핥아 올렸다. 이미 나른하게 풀어져 있던 몸의 구석구석이 다시 붉어지는 게 보였다.
“내가 막아주마.”
“저, 정말요?”
진심으로 안도한 듯 하량을 살피는 눈이 깜박였다.
수치심과 흥분이 뒤범벅된 낯이 천천히 얌전해지는 게 보였다. 동공이 조금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고, 거칠었던 숨소리는 또 가늘어졌다.
하량은 예결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도리질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엉엉 운 후에야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깨닫고 말수가 줄어드는 사람처럼, 온전히 이지를 돌려받는 모습을.
예결의 판단력은 멀쩡해 보였다. 아직까지는.
아쉬움인지 안도일지 모를 감정을 삼키며, 하량은 자신에게 안겨드는 몸을 단단히 붙들었다.
“결아, 너는 청형전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십만대산도 아니라, 고작 이 침전에서조차 예결을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
“네가 어여쁘고 음탕해서가 아니라…….”
흰 발목을 그러쥔 사내가 그 끝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 우형이 게걸스럽고 천잡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서.”
설령 예결이 말라비틀어진 꽃이었거나, 지푸라기 인형이라고 한들 그건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그렇단다.”
몸을 뒤로 뺐다가, 한 번에 성기를 밀지 가장 깊숙한 곳까지 박아넣었다.
가냘픈 허리가 뒤로 휜 채 바들바들 떨리며 예결의 하반신에서 멀건 정액이 터져 나왔다. 잠시나마 이성을 되찾고 엉엉 울던 예결의 낯은 손쉽게 표백되고 그 위에 열락이 아로새겨졌다.
하량이 길들인 몸은 쾌락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를 주저앉히려면 협박도, 고문도, 세뇌도 필요 없을 테니 참으로 기꺼운 일이다.
“너는 내가 주는 것만 달게 받아 마시렴.”
망가진 형태인들 사랑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온전한 예결을 가지고 싶었다.
웃음을 가질 수 없다면 울음이라도 받아마셔야 하지 않겠나.
“아흣……! 아아……!”
하량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예결의 아래에서는 찌걱이다 못해 쿨쩍이는 소리가 났다.
숨을 쉬는 법을 잊은 것 같아 헐떡일 때면 하량은 귀신같이 호흡을 불어넣었다. 부연 시야에 들어찬 사내가 저를 쥐고 놓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워, 예결은 두 팔로 그를 더 깊게 끌어안았다.
“무엇이든, 뭐든 주마……. 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전부 이루어 줄 테니. 이젠 그럴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량은 마치 섬어와도 같은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온전한 그 자신이 아니라, 녹음된 내용을 반복하는 고장 난 카세트 같았다.
처음 고백받을 때와 같은 말이 마치 메아리처럼 돌아오고 있었다.
‘채 보름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오래전 같아.’
예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량은 다시 예결에게 입을 맞췄다. 그는 쉽게 벌어지는 사제의 입 안을 무참히 약탈하며 그의 숨을 마지막 한 모금까지 갈취했다.
그렇게 해서도 도무지 안심이 안 되는지 하량의 두 눈은 소유욕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럼.”
한동안 침묵하다가 마침내 입을 연 예결은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중얼거렸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 대사형은 괜찮아요?”
교성을 내뱉느라 갈라질 대로 갈라진 음성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
“예전처럼?”
사내가 그의 목덜미에 대고 콧잔등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정사의 여파로 예민하게 달아오른 살갗이 움칠 떨리는 게 느껴졌으나 하량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그럼, 그럼…….”
뭐라 덧붙이려던 예결의 고개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하량은 제 목덜미를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탁 풀리는 걸 알아채고 예결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쳤다.
굳게 닫힌 눈꺼풀은 결국 그가 기절했음을 보여주었다.
내내 제 목에 두르고 있던 예결의 두 팔을 벗어낸 사내는 묶여 있던 두 손을 풀어주었다. 아무리 결박에 사용된 천이 부드러웠다곤 하나 긴 시간 동안 묶인 채 흔들렸던 살갗에는 붉게 쓸린 자국이 남았다.
하량은 무표정한 낯으로 그 손목을 내려다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숙여 제 얼굴에 가져다 댔다.
“자장…… 자장…….”
항주에서, 또 청해에서 예결이 들려주었던 자장가를 어설피 흉내 내는 사내의 음성은 새벽이 기울도록 오래, 그리고 조용히 계속되었다.
***
“중독되셨습니다.”
예결의 진맥을 마친 삼랑이 손을 거두며 말했다.
“누구 짓이지?”
사제가 낑낑거릴 때만 해도 발정이 났다고 여겼던 하량은 아침이 되도록 열이 내리지 않자 삼랑을 불러들였다. 이제 막 그 진맥 결과를 듣는 참이었다.
“제가요.”
삼랑의 경쾌한 말에 하량은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
“제가 맞습니다.”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 보려다가 본전도 못 건진 삼랑이 황급히 해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독이 아니라 약에 중독되신 거죠.”
“약이라면…….”
“예. 주군이 쓰시던 수면제와 진정제 같은 것들 말입니다. 신경을 이완시키는 기능도 있고…….”
“그게 왜?”
“드신 게 아니라 연기로 흡입하셨으니, 약 기운이 가구며 벽지에 스며들었던 겁니다. 주군께서는 무림인이라 그 정도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겠지만, 아시다시피 문 공자는…….”
삼랑은 말을 줄였다.
하량은 잠들어 연즉 깨지 못한 예결을 내려다봤다.
“약하구나.”
사제가 약연을 태울 때 바로 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량은 몇 달 동안 교에 머무르지 않았고, 침전에서 연죽을 쓴 적도 없으니 이 방에 연기가 스몄던 마지막 날은 반년도 더 전의 일이다.
고작 그 잔향으로 몸에 열이 오른 것이다.
“지독하게 약해.”
하량은 눈을 내리깐 채 예결을 굽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