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89화 (189/203)

189화. 베갯머리송사 (16)

“아니.”

예결의 가슴은 채 철렁 내려앉을 여유조차 없었다.

하량의 얼굴이 바투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얀 얼굴에 젖어서 달라붙은 검은 머리카락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창백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눈을 개어 바른 것처럼 희다.

곤륜에서 사형제들이 살갗을 까무잡잡하게 태우고 돌아다닐 때도 하량은 저 혼자 먹내 나는 학자처럼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보다 잘생긴 사람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 때문인가, 소년 시절의 향수는 돌고 돌아 예결의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가 새삼 야단을 부렸다.

저보다 머리 하나는 큰 사내가 청초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역시 제 사고방식은 어딘가 고장 난 게 분명했다.

“그 이상이 되었지.”

고작 사제 따위라고 말하기엔, 하량은 예결과 나눈 모든 관계가 귀하고 아쉬웠다.

하물며 저쪽이 먼저 놓지 않는다면,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닥 남은 인연의 실까지 탐욕스럽게 거둘 것이다.

“그 이상이라 하시면?”

조바심이 난 예결이 재차 질문을 던졌다.

“네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단다.”

차라리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게 훨씬 편할 텐데.

예결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무엇이든, 이라는 범위는 모호하고 위험하다.

예결처럼 후안무치한 에스퍼는 그 말 한마디에 하량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고도 남는다. 그 위를 의기양양하게 뛰어놀다가 추락하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량이 허용하는 선까지 기어오르고 싶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한 얼굴이구나.”

하량은 예결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기더니 그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시선을 마주친 하량의 눈이 어둑했다.

“이 우형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사용?

스스로가 물건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하량의 음성에 예결의 눈썹 사이가 살짝 좁아졌다.

하량은 웃으며 사제의 젖은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고는 그의 허리를 붙잡아 안아 올렸다.

더운물에서 빠져나오면서, 몸이 순간 오싹했다. 예결을 탕옥의 대리석 난간에 앉힌 사내가 손으로 그의 무릎을 눌러서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온수 때문에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살갗에 입술을 묻었다.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사내가 허벅지의 여린 살갗을 빨아들이면서 예결과 시선을 마주쳤다.

흰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예결은 그의 시선에서 놓여날 방도를 찾지도 못한 채 하량을 바라봐야 했다. 물속에서 상체만 내민 대사형은 어딘지 모르게 교인(鮫人: 인어)을 연상시켰다.

오싹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인간을 매혹해 안식과도 같은 죽음으로 끌고 간다는 전설과 그리 다를 바 없을 정도로.

“흣……!”

허벅지에 잇자국을 새긴 하량이 붉어진 입술을 떼어냈다. 이제 그만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기대를 했으나 사내는 지체 없이 예결의 성기를 입에 머금었다.

끝만 머금은 채, 앞뒤로 진퇴를 반복하는 하량이 혀를 뾰족하게 세워 요도 끝을 쿡쿡 쑤셨다. 선액이 맺히기 시작하자 사내는 그제야 입을 벌려 예결의 성기를 더 안으로 끌어들였다.

입에 채 머금지 않은 음경 아래를 주무르는 손길이 야릇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쥐어짜였음에도 하반신은 잘도 일어났다. 잔뜩 성이 난 예결의 양물을 맛난 과자라도 되는 양 삼키는 하량의 낯은 지독하게 청수했고, 동시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야했다.

“흣!”

예결은 주변이 지나치게 밝다고 생각했다. 아래에서 이는 감각에 아무리 고개를 돌린 채 하량을 외면하려 해도 결국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문득 예결과 눈이 마주칠 때면 대사형은 아무렇지도 않게 눈매를 휘며 웃었다.

하량은 목구멍까지 양물을 삼키면서도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능숙한 혀 놀림으로 귀두를 자극하고 입 전체를 사용해서 살기둥을 빨아들였다.

“크, 흐, 으읏…….”

팔을 뒤로한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는 예결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엉덩이가 몇 번이나 들썩였으나 하량은 아까부터 쥐고 있던 예결의 허벅지를 지그시 누른 것만으로도 그를 손쉽게 옭아맸다.

살갗에서 젖내가 느껴질 것처럼 달았다. 뽀얀 몸 위에 겹친 수증기며 탕옥의 벽에 맞부딪혀 돌아오는 신음 따위가 질척한 분위기에 한 손 거들었다.

예결은 자꾸만 벌어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자칫 새된 교성이 새어 나올 것 같았다.

머릿속은 너무도 빠르게 진탕이 된다. 하량이 그 속을 온통 헤집고 쾌락을 심어놓았다. 나중엔 대사형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발정이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렵기도 하고, 기대됐다.

“흣, 으흑……. 사형. 그만, 이제 그만…….”

정말 그의 입 안에 정액을 낼 것 같았다.

만류가 아니더라도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는 허벅지에 예결이 파정 직전이라는 걸 알아챈 하량은 물러나기는커녕 그의 사제를 더 깊이 머금었다. 대사형의 볼이 움푹 들어갈 때마다 저릿저릿한 쾌감이 예결을 덮쳤다. 인내심은 거센 파도에 떠밀리기라도 한 듯 속절없이 부서져 내렸다.

“아……! 흣!”

예결은 결국 하량의 입 안에서 절정에 올랐다. 하량은 예결이 토정한 백탁액을 남김없이 삼켰다.

입가에 조금 흘러나온 질척한 액체를 본 예결이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팔을 뻗었다. 어떻게든 닦아줄 작정이었다.

그러나 채 손이 닿기도 전에 여봐란듯이 흰 정액을 말끔히 핥아 삼킨 사내가 속삭였다.

“이렇게…… 내게 너를 내주고.”

반듯한 입술 어디에도 음란한 자취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내게 무엇이든 청하렴.”

하량은 예결의 다리에 가만 머리를 기대며 속살거렸다. 입술 사이로 선홍색 혀가 비칠 때마다 예결은 조금 전의 구음을 연상하게 되었다.

교태라는 단어와 세상에서 가장 먼 존재가 있다면 그게 하량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예결이 내려다보는 남자는 그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선 존재였다.

“베갯머리송사…….”

더운 열기에 잠식된 차에 머리끝까지 흥분이 차오르니 현기증이 났다. 예결은 애써 스스로를 추스르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구나.”

하량은 나직이 수긍했다.

“나와 침상을 나눌 수 있는 건 오로지 너뿐이니 말이다.”

예결은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제가 가당찮은 걸 바라면 어쩌시려고.”

“말하지 않았니. 네가 날 떠나지만 않는다면……. 무엇이든 이루어 주겠노라고.”

예결의 반응은 하량이 상정한 그 무엇보다 유순했다.

그로서는 고분고분하게 구는 사제를 윽박지르거나 강압할 생각 따윈 없었다.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길 것이다. 모든 염려를 덜어주고, 기쁨과 행복만을 일러주리라.

하량이 건네는 안온함이 늪이나 다름없다는 걸 모르고 가라앉을 수 있게.

“만약 제가 소원으로 다른 사내를 끌어들이겠다고 한다면요?”

사뭇 도발적인 발언에도 하량의 낯은 온화하기만 했다.

“그런 것도 되는 건가요?”

그간 겪은 대사형은 무척 관대한 사내였다. 그러나 예결은 그 관대함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을지도 모른다는 게 걱정이었다.

요구한 적도 없는데 예결이 거대 상단 하나를 말아먹어도 괜찮다며 흔쾌히 내준 사내다. 직접 원수의 목숨을 거두는 걸 부추기고 지켜봤으며, 흑점을 드나들며 흑귀와 몸을 섞을 때도 하량은 불쾌감을 내색하지 않는다.

하량은 자신이 그를 떠나지만 않으면, 살아 있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허용해줄지도 모른다.

예결은 아주 넓은 세상이 아니라 하량의 품에서 살고 싶었기에, 그런 건 곤란했다.

“망자와는 오욕칠정을 나눌 수 없단다. 그건 무의미한 짓이지.”

함께 침상에 눕기도 전에 상대가 이미 죽은 사람이 될 거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말씨가 우아했다.

예결은 그 말미에서 묻어나는 잔혹함에 안심했다.

최소한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일단 그 정도의 독점욕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었다.

“추워요. 물에 들어가고 싶어요.”

더운 수증기로 가득 찬 탕옥에는 웃풍 한 점 들지 않건만, 예결은 천연덕스럽게 요구했다.

하량은 아무 말 없이 예결을 안아 물속으로 데려왔다. 젖은 몸이 퍽 무게가 나갈 법도 한데 그는 공깃돌이라도 드는 양 수월하게 움직였다.

물속에서의 움직임은 자유롭진 않았으나, 예결은 더듬더듬 벽을 짚어 균형을 잡았다.

하량의 품에 안긴 예결은 한참을 꾸물거렸다.

나른하게 풀어진 눈을 한 대사형은 예결이 하는 양을 느긋하게 지켜봤다. 온종일 예서 몸을 담그고 있어야 한대도 상관없었다.

이내 예결의 손이 조심스럽게 수면 밖으로 나왔다. 하량의 얼굴을 끌어당긴 예결은 내내 피하던 하량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약속…… 지키셔야 해요.”

속삭임과 함께 입술 위에 달콤한 숨이 겹쳤다. 성큼 다가선 예결의 입술이 먼저 하량의 위에 포개졌다.

“……아.”

하량은 나긋하게 제 목을 감아오는 팔에 눈을 감았다.

아랫입술을 빨아들이며, 예결은 하량이 언젠가 자신에게 알려주었던 입맞춤을 복습하듯 조심스럽게 혀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고른 치열을 훑고 입천장을 간질이며 말캉한 혀를 휘감았다.

하량이 조금 전까지 제 체액을 머금고 있었다는 걸 아는데도, 불쾌하기는커녕 달기만 했다.

‘내가 원래부터 제정신은 아니긴 했어.’

조심스레 눈을 뜨고 올려다본 하량의 낯이 붉었다. 예결도, 하량도 그게 탕옥의 열기 때문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았다.

예결은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저를 끌어당겨 안는 품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고 바르작거렸다.

“무슨 부탁을 들어줄까?”

제법 뜸을 들인 하량이 예결의 등을 어루만지며 물었다. 간질간질한 애정이 묻어나는 손길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고작 입맞춤 한 번에 정말 예결이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는 거였다.

예결은 망설이는 척, 눈을 내리깐 채 중얼거렸다.

“……뱀뱀이를 보고 싶어요.”

그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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