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90화 (190/203)

190화. 독제비는 참지 않고 (1)

“잘 지냈어?”

중정의 연못 앞에 있던 예결이 손을 흔들었다. 그 여상한 태도에 삼랑의 낯이 묘해졌다.

“잘 지냈죠.”

성큼성큼 걸어온 그녀는 예결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예결을 몇 번이나 살폈다.

잠을 못 자 눈 밑이 퀭하다거나, 입술을 하도 물어뜯어 다 부르트거나, 혹은 손등을 다 긁어놓고 손톱도 잘근잘근 씹어놓는 등의 어떤 징조를 찾으려 애썼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예결은 정말 잘 먹고 잘 잔 사람처럼 때깔이 반지르르했다. 갓 깐 달걀처럼 매끈매끈한 낯을 보며 삼랑은 혀를 내둘렀다.

‘요전에 잠든 문 공자를 진맥했을 때만 해도 제법 처연해 보였는데, 벌써 회복한 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역시 보통 신경줄이 아니다.

“뱀뱀이는?”

“여기 있습니다.”

삼랑이 들고 온 상자를 열자 천년뇌각망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보다도 극도로 조용조용한 움직임에 예결이 손을 뻗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이빨이 나긴 했다만, 그 크기가 앙증맞기 짝이 없었다. 맨송맨송한 아가리만 보고 있으면 방심하기 쉬우나 상대는 번개를 다루는 영물이었다.

이런, 하고 삼랑은 상자를 덮으려 했다.

하지만 예결은 그녀가 뚜껑을 덮기도 전에 뱀뱀이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냉큼 물려준 상대가 이상했는지 입을 메추리알만큼 입을 벌리고 있던 뱀뱀이는 물고 있던 예결의 손을 뱉어내더니 몸을 뒤로 물렸다.

고개를 갸웃한 뱀뱀이는 상대가 예결이라는 걸 알아봤는지 손가락에 이마를 비비고 온몸으로 그의 손을 감았다. 슬금슬금 손목으로 타고 오른 금빛 뱀을 쓰다듬는 예결의 모습에 삼랑이 허탈한 얼굴이 됐다.

“역시 주인은 알아보네요.”

“왜? 삼랑도 공격당했어?”

“조금 짜릿했습니다. 그래도 견딜 만하던데요?”

벽조목처럼 새카맣게 타버리는 줄 알았다며 그녀가 너스레를 떨었다.

천년뇌각망 뱀뱀이는 예결과 떨어지고 꼭 보름째부터 지독하게 날카로워졌다. 예결이 인간의 음식을 주길래 그걸 줘 봐도 먹지 않고, 홍여가 일러준 평범한 뱀의 먹이를 찾아다가 바쳐도 외면했다.

예결이 종종 저를 맡긴 삼랑을 알아보긴 했어도 만지려 들면 가차 없이 번개를 뿜었다. 정전기보다 조금 더 아픈 수준이라지만 따끔거리는 감각을 무시하면 어느새 팔이 저릿저릿해지고 뜻대로 움직이지 않게 된다.

다들 괜히 영물이 아니라며 슬금슬금 피해 다녔기에 자연스럽게 삼랑이 뱀뱀이를 전담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녀가 천년뇌각망을 마주하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는 거였다.

‘산채 하나를 통째로 불 지르고……. 벽조목을 그렇게나 만들어낼 정도로 강력한 영물의 공격이 고작 이 정도라고?’

지나치게 약했다.

삼랑은 이 의문을 아직 입 밖에 내진 않았다. 그런데 때마침 예결이 호출이 온 것이다.

“아이고. 우리 뱀뱀이. 홀쭉해졌네. 비늘도 윤기가 덜하고……. 뭐 먹고 지냈어?”

“아무것도 안 먹으려고 하던데요? 사람 음식도, 생고기도, 산 짐승도 가져다줬는데 전부 무시당했어요.”

예결이 안쓰러운 마음에 천년뇌각망을 꼭 끌어안았다. 삼랑이 안 볼 때 슬쩍 제 힘을 흘려 넣을 요량이었다. 뱀뱀이는 왜 이제야 왔냐는 듯 칭얼거리는 아이처럼 그의 손등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고양이 이빨처럼 작은 뿔이 그의 손등을 간질였다. 뭔가 껍질이 벗겨지는 느낌이 의아해서 보니까 희게 일어나는 겉껍데기가 보였다.

“오……. 뱀뱀이 탈피하려나?”

예결은 뱀뱀이의 눈을 확인했다. 묘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게 보였다.

언젠가 뱀이 허물을 벗을 때 눈이 푸르게 변하는 걸 블루 현상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디에서 들었는지는 안 봐도 뻔하다. 센터에서 만난 선배 에스퍼 중에는 파충류를 키우던 가이드에게 완벽한 애인이 되겠다며 벼락치기하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 사납게 중얼거릴 때마다 저리 가라고 엉덩이를 걷어찼는데, 이럴 때 도움이 될 줄 알았다면 덜 구박할 걸 그랬나.’

“홍여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주인과 오래 떨어져 있는 것도 그렇고, 몸이 탈피할 때가 돼서 예민한 거라고.”

“얘가 몸 비빌 만한 것도 하나 가져다줘.”

예결의 요구에 삼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놀랍다는 듯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시네요.”

“왜? 못 지낼 줄 알았어?”

“놀라실 거라고 생각했죠. 반응이 좀…… 격해질 수도 있을 거라고 여기기도 했고.”

삼랑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 가서 십만대산 출신이라고 밝히면 아주 뒤집어지거든요.”

“삼랑은 마교에서 나고 자랐어?”

“네. 일월신교 출신입니다. 부모님과 일가친척 모두 뼛속까지 마인이지요.”

경쾌한 답이었다. 예결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뱀뱀이를 쓰다듬었다. 방금까지 물을 마시고 온 건지 코끝이 촉촉했다.

“일월신교. 그래. 여기에선 마교가 아니라 일월신교지. 내가 아직 안 익숙해서……. 천천히 적응할게.”

“마교라고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삼랑은 예결의 반응에 놀라지 않으려 애썼다. 가까이에서 그를 접하며 독특한 성품이라는 건 여러모로 느꼈지만 정파 출신인 예결이 이토록 선선한 태도로 바뀐 상황을 수용할 거라곤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리가 없다고 현실도피하거나, 그 대단한 성질머리로 청형전의 절반 정도는 부숴버릴 줄 알았다.

“어느 쪽이든 저희를 부르는 말이니까요.”

“그래서, 대사형이 천마라고.”

예결은 검지로 뱀뱀이의 머리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탈피 중이라 몸이 근질거려서인지 뱀뱀이는 신이 나서 예결의 손에 머리를 마주 비벼왔다.

“예. 그분은 저의 주군이며 만마의 주인 되십니다.”

“언제부터?”

“삼 년은 조금 넘었습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마교에 군림한 건 아닌 모양이다.

예결과 재회한 하량은 그간 이십 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마교가 곤륜을 침공한 것이 대사형이 스물둘 되던 해의 일이니까……. 거의 십칠 년은 고통받으셨겠군. 내 말이 맞나?”

삼랑은 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한 그녀가 확인하듯 물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문 공자가 찾은 게 천년뇌각망이 아니라 저인 것 같군요.”

“뱀뱀이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 네가 데리고 올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

턱을 괸 예결이 발을 까딱까딱하며 말했다.

“우리 귀여운 뱀뱀이와 떨어진 것도 너무 오래됐고, 그리고 또.”

“정보를 얻으려고?”

“그래.”

“진영이나 홍여도 있잖아요? 왜 저를?”

얼굴에 꽃받침을 한 삼랑이 물었다.

예결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진영은 말 안 할 거야. 고지식하니까. 홍여도 말 안 하겠지. 그는 우직하니까.”

“제가 좀 입이 가볍고 촐싹거리긴 하지요.”

삼랑이 뿌듯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퍽 냉정했다.

예결이 원하는 걸 전부 건네주는 게 정녕 주군을 위한 일인지 가늠하는 낯이었다.

“왜 주군의 과거를 알고자 하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본인에게 들을 수 없으니까.”

“주군은 문 공자가 요구하면 뭐든 말씀해 주실 겁니다.”

“나도 알아.”

베갯머리송사 한 번이면 하량은 예결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그때 일을 회상하실 거 아니야.”

그런 건 싫었다.

삼랑은 예결을 빤히 바라봤다.

제하량이 천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삼랑은 그게 배신감일 거라고 감히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보니 그런 감정과는 결이 다르다.

예결의 분노는 결코 제하량을 향해 있지 않았다. 만약 주군을 할퀴고 싶었다면 이토록 복잡한 방식으로 삼랑을 불러들이지도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그렇다면.

“……세세한 상황은 저도 모릅니다. 제가 주군을 처음 만난 건 십여 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요.”

“상관없어. 구체적인 상황을 원하는 게 아니라 대략적인 흐름을 알고 싶은 거니까.”

예결은 알아야 했다.

무엇이, 누가 하량을 이토록 난도질해 놓았는지.

삼랑은 한숨을 삼켰다. 꼭 이렇게 난감하고 섬세한 건 제 몫이다. 하지만 예결이 앞서 추론한 것처럼 진영이나 홍여는 절대 못 할 이야기다.

결국 문 공자가 모르는 주군의 과거와 가교가 될 만한 건 저 혼자뿐이다.

“네. 뭐, 짐작하셨듯이 그다지 유쾌한 십칠 년은 아니었습니다.”

삼랑은 입술이 바싹 마르는 걸 느꼈다.

“처음 마교에 오신 직후 이 년인가, 삼 년 동안은 마의의 손아귀에서 지독한 실험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마공을 강제로 익힌 게 이 년째의 일이라던가요.”

“마의. 마의라……. 그자가 한 실험의 목적은?”

“마도천하를 위해 사용될 병기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세뇌해서 키워낸 암살부대나, 고수를 잡아다가 혼백과 이지를 앗아 만드는 실혼인, 그리고 죽은 이의 시체를 일으켜 사용하는 강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만을 취하겠다는 계획이었지요.”

예결은 눈을 끔벅였다.

그냥 듣기만 해도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마공을 익히고 마기를 어느 정도 억누를 수 있게 될 즈음 세뇌 작업에 착수합니다. 마의는 철저한 인간이라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서 고독도 심어 두었습니다. 제가 이걸 아는 건 살아남은 모든 포로에게 같은 작업을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삼랑은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후에는, 그 후에는 행적이 감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짐작하기로는 중원에 파견되어 주요 요인을 암살하는 데 동원되었을 겁니다.”

중원으로 갔다면 하량의 손에 묻은 피는 정파무림인의 것이었으리라.

곤륜은 아니더라도 구파일방이거나, 오대세가, 혹 그에 준하는 거대 문파의 무림인을 암살한 거겠지.

예결은 눈을 감았다.

‘혹 대사형이 죽인 사람 중에 한때 알던 이가 있었다면?’

이를테면 용봉지회에서 회주 노릇을 하던 시절 알게 된 젊은 무림인들 말이다. 그들을 미끼로 스승이나 부모를 불러내 죽였을지도 모른다.

“십 년 전에 중요한 실험체가 실종되어 마의가 길길이 날뛴 것을 보아 그때 주군께 이변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뇌가 건재했는지 주군께서는 결국 마교로 돌아왔고, 마의의 착실한 수하처럼 지내셨습니다. 저와 접촉이 생긴 것도 이때 일이지요.”

“같은 편?”

삼랑이 픽 웃었다.

“적이었지요. 제 가문은 마의와 그가 하는 일을 경계하고 있었으니까요.”

예결은 애써 한숨을 삼켰다. 아무리 간략하게 들어도 하량의 삶이 너무 팍팍했다.

“주군은, 아무리 지독한 임무를 맡아도 항상 살아 돌아왔습니다. 마의는 그를 한 당의 당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의 밑에 본인이 세뇌한 실험체를 집어넣었지요. 지금 와 생각하면, 이건 마의가 아니라 주군의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그때부터는 조금 괜찮으셨던 건가?”

“아뇨.”

삼랑이 고개를 내저었다.

“주군은 너무 유명해졌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마교주가 의심할 정도로요.”

낭중지추라고, 하량이 눈에 띄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역대 교주 중 가장 유약한 인간이었던 당시의 천마는 가문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올랐습니다. 처음 등극할 때부터 반발이 컸고, 경쟁자를 제거한 방식에 대한 의혹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요. 교주는 자신의 단단한 우방인 마의 한 명만은 신뢰했습니다. 주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그의 손에서 지나치게 강력한 고수가 탄생해 버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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