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195화 (195/203)

195화. 독제비는 참지 않고 (6)

예결의 몸을 침상에 눕히기 무섭게, 하량의 입맞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예결의 눈가에, 잔뜩 젖어 있던 뺨에, 그리고 앙다물던 입술에 내려앉았다.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던 턱 끝과 그 서러움이 처음으로 내려앉았던 예결의 손등에도 머물렀다가 다시 위로 올라왔다.

옷을 대충 걸쳐 입어서 벌어진 가슴팍에, 그리고 목울대에 입술을 비빈 사내는 다시 예결의 입술 위에 낙인을 찍듯 접문을 청했다.

데일 것만 같은 열기가 하량에게서 넘어왔다. 예결은 제 얼굴을 틀어쥔 채 입술을 깨물고, 핥고, 빨아들이는 사내에게 가지고 있던 숨을 전부 내주었다.

하량의 접문은 예결이 가진 것을 갈취했다. 그건 끊임없는 확인의 과정이기도 했다. 끊어질 듯 가쁘게 변하는 호흡을 혀 위로 굴릴 때마다, 하량은 가까스로 예결이 품은 생을 더듬는 기분이었다.

빠르게 뜨거워지는 몸도, 상기되는 살갗과 그 밑을 내달리는 맥박까지 전부, 입맞춤 한 번으로 헤아릴 수 있었다.

“아흣, 아…….”

입술을 깨물린 예결에게서 달큰한 신음이 비어져 나왔다. 물에 젖어서 탕옥에서 침상까지 옮겨지는 사이 조금 식었던 몸은 다시 온기를 머금었다.

“아래를 적시고 와서 다행이야.”

이미 단단해진 하량의 성기는 조금도 시들지 않은 상태였다. 예결은 기대감에 하량의 입맞춤을 되돌려 주며 허리를 들썩였다.

그러나 서두를 것 없다는 듯, 하량은 천천히 예결의 몸 안에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별다른 윤활유를 쓰진 않았으나, 평소와 달리 거칠지 않은 삽입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느릿하고 느긋하다. 물 위를 천천히 유영하는 감각과도 닮아 있었다.

뻐근할 정도로 벌어진 아래가 평소보다 더 아우성을 쳤다. 쾌락에 짓뭉개지다시피 하는 다른 감각이 오늘은 제 존재를 호소할 여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빠, 빨리…….”

예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하량을 채근했다. 하지만 무정한 사내는 예결의 어깨에 이를 박아넣을 뿐이었다.

내벽의 성감대를 피해서 문지르는 성기에 예결의 둔부가 옴쭉거렸다. 사제의 엉덩이를 단단히 받치고 있던 사내는 안달이 난 몸을 능숙하게 다뤘다.

삽입에만 집중하게 두면 앙살스럽게 눈을 흘길 게 뻔했다. 하량은 예결의 가슴 끝을 희롱했다.

아직 여름이 오려면 멀었음에도 잘도 여물어 부드러운 분홍빛을 머금은 그 첨단은 잘만 빨아주면 선홍색으로 물든다. 야릇하기 짝이 없는 색이었다.

입질 몇 번에 발긋하게 익어가는 가슴에 하량은 잇자국을 아로새겼다. 순흔 같은 게 오래 남지는 않지만, 저 몸에 집요하게 선사한 쾌락만은 남아 있는지 조금 물고 빠는 것만으로도 유두가 뾰족하게 솟는다.

이런 식으로 제 흔적을 확인할 때마다 하량은 자꾸 시야가 붉게 물들 정도로 흥분에 사로잡혔다.

휘청거리는 이성은 타인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는 가당찮은 착각에 휩싸인다.

“흐으, 흣. 사형…….”

느릿하고 묵직한 삽입이 이어졌다. 그가 아래에서 위로 몸을 쳐올릴 때마다, 살을 가르고 들어오는 성기의 존재감이 밀지에 새겨지는 듯했다.

예결의 얼굴은 또 흠뻑 젖어 들어갔다.

“울기만 하면, 어여쁜 줄 알았는데.”

하량이 눈가를 핥아주면서 중얼거렸다.

“좀 전은 속이 상하더구나.”

가슴을 부드럽게 쥐어짜던 손길이 그 끝을 꼬집더니 튕기듯 움직였다. 유두에서부터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감각에 예결의 허리가 살짝 휘었다.

“아흣……!”

발씬거리며 아래를 조이는데, 물기 때문에 빛을 만날 때마다 어지러이 반짝이는 그 두 눈이 어떻게든 해달라는 듯 하량을 절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왜 우는지 궁금했는데…….”

예결의 손에 깍지를 끼고 겹쳐서 끌어당긴 사내가 그 끝에 입을 맞췄다.

“말해주지 않겠지?”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끄덕인 예결의 코끝이 훌쩍였다.

평소처럼 머리가 팽팽 돌아갈 때라면 모를까, 하량이 이토록 애태울 때 입을 열었다가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고집스럽기는.”

하량의 관자놀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느꼈다.

분명 평소보다 느리고, 부드러운 색사였으나 열락은 여전했다.

뭉근하게 달아오르는 몸을 날뛰지 않게끔 고삐를 쥐는 것만으로도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쉼 없이 몰아치던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즐겁기도 했다. 상대의 속눈썹 한 올 한 올까지 다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는 까닭이다.

지독하게 감각적이다.

팽팽하게 긴장된 근육 위로 손을 미끄러뜨릴 때, 벌어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나직한 신음에 귀 기울일 때, 하량이 잔뜩 인내하는 흔적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목이 절로 타들어 갔다.

아까 마시지 못한 사내의 정이 지독하게 탐이 났다.

“흐으……. 사형, 사형…….”

아무리 불러도 상대는 답이 없었다.

쾌감이 끝까지 차올랐으나 도무지 넘치려 들질 않는다. 그 찰랑찰랑 고인 열락에 몸을 흠뻑 적시고 싶은데, 하량은 어떻게 해야 그를 가득 채울 수 있는지 잘 알면서도 끝까지 들어오질 않는다.

사내를 가득 품은 하문이 야단을 부렸다. 애써 기교를 부려 허리를 흔들고 밀지를 조여도 하량의 이성은 굳건하기만 했다.

가이딩에 녹아내린 에스퍼의 몸은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져 저 자신을 지탱하기에도 벅찼다.

하량의 냉정하게 예결을 살피고 있었다. 이성 뒤에 욕망을 가둔 채, 사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는 걸 음미하는 사내의 두 눈은 짐승처럼 검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대사형을 부추길 수 있지?’

지금의 예결에겐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그냥 당장,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안 들 것처럼 아래를 헤집어 주었으면. 그렇게 제 몸 깊숙한 곳까지 범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예결의 이성과 판단력을 압도했다.

“하량…… 하량…….”

매양 깍듯이 사형제 간의 칭호를 고집하는 예결의 입에서 흘러나온 제 이름은 귀에 달았다.

예결의 다리가 바르작거리며 그의 허리에 매달렸다. 어서 제 안에 양물을 거칠게 쑤셔 넣고 내벽 구석구석을 짓이겨 달라고 조르는 것만 같았다.

“흐윽, 가가, 상공…….”

어떻게든 상대를 충동질하려는 필사적인 시도였다.

하량은 그 달콤한 부름에 취해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인내했건만 삼천갑자가 지나기라도 한 것 같았다.

무인 특유의 단단한 두 손이 예결의 둔부를 살짝 들어 올렸다. 슬쩍 몸을 뒤로 뺀 하량은 애태우는 것을 멈추고 제 성기를 사제의 밀지 가장 깊숙한 곳까지 푹 밀어 넣었다.

“아……!”

갑작스러움에 예결이 채 옭아매지 못한 교성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마른 절정에 예결의 눈앞이 희게 물들었다. 팔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부연 빛이 시야 가장자리를 탁탁 튕기며 터지는 것만 같았다.

하량은 몸을 뻣뻣하게 굳히다가 축 늘어지는 예결의 등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여전히 아래를 세운 채 새액새액 숨을 내뱉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사제의 두 눈에 선명한 수치심과 이루 말할 수 없는 탐욕이 함께 스쳤다.

“더어, 더……!”

그 요구는 흐느낌으로, 흐느낌은 질펀한 교성으로, 종래에는 드문드문 끊어지는 섬어로 옮아갔다.

하량은 먹이를 맛보는 짐승처럼 정사를 나누는 내내 예결의 살갗을 베어 물고 그 위를 핥다가 촉 촉 소리가 나게 빨아들였다.

게걸스럽게 사제를 탐하던 그의 손끝에 물기가 묻어났다.

다시 눈물이 떨어지는 줄 알고 놀랐던 하량은 젖어 있는 예결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머리가 아직…… 젖어 있었구나.”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예결의 색소 옅은 머리카락이 보송보송하게 말랐다.

몇 번을 겪어도 무공은 신기하기만 했다. 전생에 그 초입에서 깔짝였기에 더더욱 놀랍다.

‘나는 저런 거 못 했는데.’

선망 어린 눈으로 하량을 바라보던 예결이 반라의 몸으로 그에게 매달리며 물었다.

“……내일 청형전 밖에 나가봐도 돼요?”

“밖에를?”

“십만대산 밖으로 나가겠다는 건 아니에요. 안내해줄 사람을 붙여주세요.”

“청형전 밖은 네게 위험하단다.”

하량은 도드라진 예결의 가슴을 지분거리며 조곤조곤 설명했다.

“대사형이 지내는 곳을 보고 싶어요. 여기 들어올 때 대충 봤지만, 십만대산이 생각보다 넓어서……. 궁금해요.”

예결이 하는 말이라면 무어든 들어주던 대사형이 잠잠했다.

몸을 일으켜 앉은 예결은 하량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아직 몸 달은 사내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예결은 하량을 내려다보며 재차 졸랐다.

“네?”

“……위험해.”

마침내 내놓은 답은 거절이었다.

그러나 쉬이 낙담하지 않는 예결은 하량의 얼굴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손으로 잘생긴 입술을 어루만지며 대사형과 눈을 맞췄다.

“대사형이 제 뒤에 계신데 누가 절 건드리겠어요?”

아무리 천마신교가 천마를 신으로 섬기는 광인들의 집단이라지만, 하량이 명령한다고 해서 자신이 정말로 안전할 리가.

마교에 처음 와 보는 예결이라도 십만대산에 자리 잡은 마인들의 사회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저, 예결은 제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삼랑이나 홍여랑 같이 다니다가 누가 건드리려고 하면 지져 버려야지.’

그리고 삼랑이나 홍여가 했다고 덮어씌우는 거다.

다소 난폭한 생각을 하며, 예결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채 하량의 입술 위에 제 것을 겹쳤다. 접문이라 부르기에는 간지럽기 짝이 없는 입맞춤이다.

“네?”

다시 몸을 일으킨 예결이 하량의 가슴팍 위에 손가락을 둥글리며 졸랐다.

하량의 미간이 난처함으로 살짝 좁아졌다. 그러나 더 이상 단호한 거절을 입에 담지 못한 채 망설였다.

“대사형이 지켜주실 거잖아요.”

“……너는.”

그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결이 너는 이 우형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어. 그렇게 속아 놓고도…… 아직도 내가 네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유일한 우방일 거라고 그리 생각하는구나.”

혼잣말에 가까운 읊조림이었다.

탄식을 삼킨 하량의 낯에는 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다. 예결은 자신이 그에게 찰나 사이에 선사한 번민이 지나치게 무거웠나, 싶어 미안함을 느꼈다.

“삼랑을 붙여주마.”

감정을 갈무리한 사내가 말했다.

“누가 네게 결례를 범하거들랑, 그 자리에서 치죄해도 좋다.”

“네.”

“행여라도 무슨 일이 있는데 숨길 생각은 말렴. 이곳은 내 땅이고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없단다.”

부드러운 말씨에 집요한 걱정이 묻어났다.

“이렇게 허락해 주었는데 다쳐서 돌아오거들랑 다시는 네 다리로 청형전 밖을 나갈 수 없을 거란다.”

하량의 경고에 예결은 극심한 유혹을 느꼈다.

대사형 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라니, 그건 오히려 바라던 바 아닌가.

‘생채기 정도는 감수해볼까?’

망설이던 예결은 애써 충동을 갈무리하고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심할게요.”

“……결이 너를 믿지 못해서 이런 조건을 거는 건 아니란다.”

“알아요.”

예결은 조용히 중얼거리고는 배시시 웃었다.

“제가 너무 소중해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하량은 그 말에 달리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예결은 하량의 몸 위에 제 몸을 겹쳤다. 그렇게 하면 피륙 아래 있는 두 개의 다른 심장을 서로 맞물리게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심장 박동에 가만 귀를 기울이며, 예결은 그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 가만가만 눈을 감았다.

“절대, 사고 치지 않을게요.”

결코 저버리지 않을 맹세라도 하듯 경건한 말투였으나 예결이 입에 담은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는 아주 대형 사고를 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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