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존경하던 사형이 악당이 되어버렸다-201화 (201/203)

201화. 용서 (3)

“……네.”

예결의 답은 놀라울 정도로 선뜻 흘러나왔다.

하량이 저를 백 번쯤 속였다면, 자신은 그를 백한 번쯤 속였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카드 게임 테이블에 앉은 플레이어와도 같았다.

제 패를 숨기고, 블러핑으로 상대를 기만하면서 서로가 바라는 것이라곤 상대에게서 승리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곤 고작 이 게임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뿐이다.

“대사형보다는 제가 더 거짓말을 잘하는걸요.”

예결의 고백에도 하량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사제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 정도야 그도 알았다. 처음부터 의심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예결이 살아 있는 것도. 조금 자란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젊은 청년의 외형을 한 것도. 기이할 정도로 빠른 회복력과 하량의 손길에서만 안식을 찾는 몸.

곧이곧대로 믿기엔, 다시 만난 그의 사제는 거짓말과 그리움을 잘 빚어서 만들어 놓은 꿈 같았다.

그러니 어찌 깨어날 수 있겠는가?

“거짓말을, 했다고.”

단지 그는, 예결이 그 사실을 직접 고백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사제 몰래 그의 행적을 파헤치고, 그가 마의의 실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은밀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예결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지만 십만대산을 비우고 적의 방심을 유도한 것도, 마의와 암묵적인 동맹을 맺고 있던 공 가주를 친 것도 그 작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뾰족한 단서를 얻지 못했다.

어쩌면 예결이 마의가 연구하던 생강시의 성공작일지도 모른다는 가정 외에는, 아무것도 나오질 않는다.

긴 세월 끝에 재회한 사제는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옛 시절 그대로라 여겼을 때도 속였다는 말 같은 건 고백하지 않더니, 어째 천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거짓말쟁이라고 실토하는구나.”

하량은 예결의 턱을 검지로 살짝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이 우형이 두렵지 않니?”

두렵냐고?

뭐 그리 뻔한 질문을 한단 말인가?

예결은 하량이 두려웠다. 항상 그랬다. 모든 에스퍼가 자신의 가이드를 경계하는 것처럼, 예결도 하량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대사형의 손에는 제 생명과 감정과 안위와 그 외의 모든 것이 걸려 있다. 그가 천마임을 알기 전에도 그랬고, 모든 사실이 폭로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예결은 그런 말을 함부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제게 묻고 싶은 게 있으세요?”

예결이 흘러내린 하량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다만 시선만으로 무언의 긍정을 되돌린 사내에게, 예결은 보일 듯 말 듯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원하는 게 있다면, 송사를 하셔야지요.”

권유처럼 들려도 사실상 명령이나 진배없었다.

“누가 그런 발칙한 소리를 가르쳤지?”

다 알면서 웃는 사내의 음성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묻어났다.

“그러게요.”

예결은 하량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슬쩍 움직이다가 가만 그 위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어설픈 사기꾼이던가, 아니면 좀 마음 약한 악당이던가……. 잘 생각이 안 나요. 원한다면 이것도 물어보셔도 돼요.”

하량은 낮게 웃었다. 이건 명백히 목적이 있는 유혹이었다.

사제를 잘 아는 그는 예결이 화제를 바꾸기 위해 이런 언사를 입에 담았다는 걸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내 또 사제에게 크게 배우는구나.”

하지만 예결이 제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겠다면 뭐 어떤가?

그는 사제에게 농락당하는 것마저도 즐거웠다.

“반평생 정도를 도인으로 살아서 내 상도에 어두우니 네가 이해하렴.”

도인이라니, 천마가 입에 담기엔 참으로 얄궂은 말이다.

그러나 이는 무겁기 짝이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상체를 일으킨 하량은 침상에 누운 예결이 손목을 끌어당겨 그 안쪽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불에 달군 인두로 지지는 것도 아닌데, 그 여린 살갗이 와 닿는 감촉이 뜨거워 예결은 어깨를 움찔했다.

“자, 그럼 송사를 해 볼까.”

헐거워진 사제의 허리끈은 슬쩍 잡아당기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풀어졌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비치는 유두는 몇 번이나 깨물고 빨고 부풀렸음에도 처음처럼 깨끗한 색이다.

사제가 이쪽을 보고 있었기에 아쉬움과 탐욕을 그럴듯하게 갈무리한 사내는 손을 뻗어 그의 다리를 벌렸다. 어느 정도 발기한 예결의 성기가 보였다. 위가 아니라 아래로도 엉엉 울곤 하는 사제의 음탕한 몸을 기억하는 하량의 입꼬리가 보일 듯 말 듯 올라갔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예결은 부끄러움에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니라 기대가 어린 눈으로 하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느껴지는 갈증에 하량은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의 목마름은 잘 우는 사제가 채워줄 것이다.

“아!”

예결은 하량이 하문으로 고개를 숙이자 저도 모르게 야금을 움켜쥐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혀가 뒷구멍을 핥는 말캉한 감촉에 등허리를 타고 소름이 올랐다.

안에 들어올 거라 생각했던 하량의 혀는 그 주변을 적시는 것에 열심이었다. 안으로 밀어 넣을 듯 말 듯, 은근히 애를 태우는 움직임에 예결은 쉽사리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마치 잔불이 서서히 커지는 것처럼, 채 전소되지 않은 욕망이 잘도 고개를 들었다. 날렵한 코가 회음을 꾹 누르는 감각에 예결이 어깨를 굳혔는데, 이내 혀가 그 뒤를 따랐다.

“흐읏, 흐…….”

하량은 사냥감의 뼈를 싹싹 발라 먹는 승냥이처럼 예결의 아래를 탐했다. 하문에서부터 회음, 그리고 고환의 바로 아래까지. 맨정신으로 받아먹게 된 생경한 자극에 예결의 눈가가 붉어졌다.

흉포하다기보다는 집요하고, 집요하다기보다는 게걸스럽다.

고아하기 짝이 없는 대사형이 제 밑을 빨고 있다는 상황도 예결의 머릿속을 들쑤시는 데 일조했다.

그의 성기는 이미 애액을 뚝뚝 흘려보내고 있었다.

“저, 저한테는. 이상한 거 먹지 말라, 그리하셨으면서…….”

예결은 신음 사이로 웅얼웅얼 원망을 내뱉었다.

“이상한 거라니. 이렇게 달고 음탕한 몸이 어찌 이상하다는 말이냐?”

잠시 희롱을 멈춘 사내가 다정히 속삭였다.

“더 주렴. 응?”

조르듯 속삭인 사내가 준 여유는 그게 마지막이었다.

살기둥 아래를 샅샅이 핥는 사내의 콧잔등에 음경이 스치듯 쓸린다.

더 아래로 내려간 하량의 혀가 회음을 집요하게 핥아 올린다. 예민한 살갗에 와 닿는 야릇한 감촉에 예결은 다리를 닫으려 했다. 그러나 예결의 샅을 게걸스럽게 탐하는 사내는 도무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몸이 녹진녹진하게 풀어질라치면 살짝 이를 세워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능란한 애무에 예결의 시야는 차츰 흐려져 갔다.

낮에 뱀뱀이를 통해 칠괴동 좀 무너뜨렸다고 예결의 몸은 가이딩을 평소보다 더 갈구하고 있었다.

쾌감이 가이딩의 뒤를 따라오는 건지, 아니면 가이딩이 쾌감의 뒤를 따라오는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예결이 몸을 들썩일 때마다 흘러내렸던 옷깃 아래 감춰져 있던 유두는 이미 뾰족하게 솟은 뒤였다.

“아흣!”

잔뜩 힘이 들어가 꼿꼿해져 있던 무릎은 예결이 무너질 때마다 조금씩 곱아들었다.

“사, 대사형. 그, 그만……! 그냥 너, 넣으면…….”

술에 취한 이처럼 불콰하게 물든 얼굴로 애걸하던 예결은 하량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걸 발견하고 희망 어린 시선을 던졌다.

그러나 예결이 마주친 하량의 흑안에서는 애욕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반듯한 입술은 타액인지 애액인지 모를 액체로 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말초신경까지 전부 타버릴 것 같다. 흐무러질 대로 흐무러져 있던 예결의 몸에 팽팽한 긴장이 맴돌았다.

“송사를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니 결아?”

나직한 속삭임과 함께 대사형의 입술이 음란한 호선을 그렸다.

“그럼 내가 주는 건, 전부 받아먹어야지.”

어르고 달래듯 말하면서, 그 내용은 폭압적이기 짝이 없다.

예결은 사내가 다시 고개를 천천히 숙이는 동안 침을 꿀꺽 삼켰다. 절로 뻣뻣해진 허벅지 끝을 경쾌하게 두드린 사내가 반죽을 치대듯이 진득하게 손을 움직였다.

하량은 그의 밀지 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아!”

계속 애태운 까닭에 이미 느낄 만큼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점막에 와 닿는 혀의 감촉과 움직임이 예결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일부러 이 순간을 위해 아껴놓은 진미를 맛보는 양, 그의 농탕질은 집요하기 짝이 없었다.

하량이 선사하는 쾌감이 고조될수록, 날카롭고 선득한 요의가 치밀어 오른다.

“그만, 제발 그만……. 사형. 여기서는. 앗!”

예결은 도리질 치며 흐느꼈다. 하량을 만류하기 위해 손을 뻗었으나 도리어 붙잡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있는 힘껏 밀어낸 것 같은데,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가, 갈 거 같…… 아니, 놓아.”

횡설수설 내뱉던 예결의 인내심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탁, 하고 끊어져 버렸다.

“아, 아…… 아……!”

정액이 아니라 맑은 물 같은 것이 성기 끝에서 튀었다.

하량은 물러나기는커녕 발갛게 물들어 잔뜩 성이 난 예결의 양물 끝에서 투명한 액체가 튀는 것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소변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액도 아닌 것이 나무로 짠 침상과 기둥, 그리고 벽에 사방으로 튀어 음란한 얼룩을 만들었다.

그게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예결은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기분에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흐, 흐흑…… 그러니까, 노아, 놓아달라고.”

혀가 풀려서 발음이 뭉그러졌다.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다는 걸 알았으나 수치심에 마비된 이성은 쉽사리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어, 어떻게. 다 젖었, 젖어버렸…….”

예결은 횡설수설 중얼거렸다.

흥건하게 젖은 얼굴을 하량의 가슴에 비비적거리며 떨어지지 않으려 드는 예결의 등을 사형이 어루만졌다.

“새 침상에 쓰일 나무는 결이가 고를까?”

다정한 제안에도 예결은 여전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짙은 색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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