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화 (1/174)

1화 빌어먹을 재벌

허리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진 긴 생머리.

잘록한 허리에 적당한 볼륨으로 솟아오른 가슴.

걸을 때마다 좌우로 흔들거리는 애플 힙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새하얀 피부가 유난히 돋보이는 젊은 여인이 휴대폰 화면에 정신이 팔린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또각, 또각.

인적이 드문 골목길.

하나밖에 없는 가로등마저 고장이 났는지 흐린 불빛으로 깜빡거린다.

열 걸음이나 걸었을까?

흠칫.

이내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 여인의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쿵, 쾅, 쿵, 쾅.

‘설마… 설마…….’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 속으로 중얼거린 여인이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또각, 또각.

뚜벅, 뚜벅.

마치 자신의 걸음 속도에 박자를 맞추듯 연이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걸음 소리.

공포에 사로잡힌 여인이 걸음 속도를 더욱 높혔다.

또각, 또각, 또각, 또각.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이제는 뛰다시피 걸음을 옮기던 여인이 순간 발목을 접질려 바닥에 쓰러졌다.

“아얏!”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접질린 발목을 부여잡은 채 부르르 떨고 있던 여인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눈을 크게 떴다.

“으… 으…….”

긴장으로 굳은 몸 때문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뚜벅, 뚜벅, 우뚝.

마침내 등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여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 괜찮으세요?”

귓가로 들려오는 쇳소리에 여인이 감았던 눈을 살포시 떴다.

“아…….”

이제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오영철’이라는 이름의 명찰을 단 교복을 입은 소년이 변성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 다치신 것 아니에요? 병원에 가야…….”

소년의 교복을 유심히 바라보던 여인이 이내 인근 중학교의 교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괜… 괜찮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의 정체를 확인한 여인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뭐 하는 거야, 한심하게…….’

여인이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오영철이 다시 묻는다.

“저… 부축해 드릴까요?”

오영철의 물음에 여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정말 괜찮아.”

“아, 예… 그럼…….”

꾸벅 고개를 숙이고 골목길 끝으로 걸음을 옮기던 오영철이 이내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자 여인이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칠칠맞지 못하게, 정말.”

작은 목소리로 자책한 여인이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 들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응?”

잠시 후 골목길 끝에 도달한 여인이 모퉁이를 돌았을 무렵 그 자리에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얘, 뭐 하고 있어?”

제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는 오영철을 발견한 여인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저… 저기요.”

오영철이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의 파란색 물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을 유심히 바라보던 여인이 눈을 크게 떴다.

“저게 뭐… 어머!”

빠르게 다가간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 가까이에서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다.

“누가 이런 짓을…….”

파란색 페인트가 반쯤 굳어 눌러붙어 있었고, 시선이 향하는 곳곳에 날카로운 물체에 꿰뚫린 듯 숭숭 구멍이 나 있었다.

눈조차 제대로 감지 못하고 끔찍하게 죽어 있는 강아지 사체를 보며 여자가 질끈 눈을 감았다.

“혹시 수건이나 담요 같은 것 있니? 아무래도 묻어 줘야 할 것 같은데…….”

“…….”

“…학생?”

등 뒤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학생이 겁에 질린 것으로 생각한 여인이 감았던 눈을 살포시 뜨고 고개를 돌린다.

“…에?”

어느새 다가왔는지 기다란 물체를 손에 쥔 채 바로 뒤에 서 있는 오영철을 발견하고는 여인이 고개를 갸웃한다.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을 바라보며 오영철이 새빨간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고년, 참 맛있게 생겼네.”

“뭐?”

여자의 반문에 오영철이 말없이 손에 쥔 쇠 파이프를 높게 치켜든다.

휘익! 퍼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동시에 머리를 쇠 파이프로 직격당한 여인이 그대로 쓰러졌다.

풀썩.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여인의 시야 사이로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골목길 곳곳에서 족히 십수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무… 슨…….’

영문을 모른 채 조금씩 의식을 잃어 가는 여인의 귓가로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와… 몸매 실화냐? 얼굴도 거의 연예인급인 듯.”

“개꼴리네, 시팔. 영철아, 너 다음 나부터 시켜 주면 안 돼? 응?”

“근데 피 졸라 흘리는데… 이러다 죽으면 좆 되는 거 아니야?”

“영철이 엄마가 변호사잖아. 심지어 아빠는 재벌임. 다 커버 쳐 줌.”

“리얼 개꿀.”

“일단… 오기… 옮…….”

비교적 또렷하게 들려오던 말소리마저 드문드문 끊겨서 들리기 시작한다.

찌지직, 부우욱.

잠시 몸이 붕 뜬다는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소름 끼치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뒤이어 온몸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턱 하고 숨이 막힌 여인이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코앞에서 시꺼먼 물체가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내 그 물체의 정체를 확인한 여인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촉에 여인이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잊은 채 날카로운 비명을 터뜨렸다.

“아이 시팔! 한참 좋았는데! 철식아, 이년 깼는데 어떡하지?”

소년의 말에 오영철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떡하긴… 한 번 더 작업하면 되지.”

“아하!”

오영철의 말에 한쪽 무릎을 탁 하고 친 소년이 여인에게서 잠시 떨어지더니 이내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쇠 파이프를 손에 쥐고는 여인에게 다가선다.

그 모습을 발견한 여인의 온몸이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제… 제발…….”

여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소년이 피식 웃었다.

“미인은 잠이 많다는데… 조금 더 자라고, 금방 끝나니까.”

말을 마친 소년이 손에 쥔 쇠 파이프를 높게 치켜든다.

퍼어어억!

끔찍한 타격음과 동시에 여인이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까똑, 까똑, 까똑, 까똑, 까똑.

쉼 없이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새벽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었던 강도윤(强度尹)이 미간을 찌푸렸다.

“끙……!”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세운 도윤이 헝클어진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놈의 카톡방은 조용한 날이 없어.”

긴급 카톡방을 제외하고는 알림을 모조리 꺼 두었기 때문에 내용을 보기도 전에 대략 어떤 내용인지 짐작을 하는 도윤이었다.

형사 12년 차, 이제는 이 분야의 관록마저 생길 지경이다.

타다닥.

도윤이 잠이 덜 깬 얼굴로 휴대폰을 조작하자 잠시 후 휴대폰 액정에 화면이 떠오른다.

<수사과 카톡방>

박병오 형사2팀장: 관내 강간 사건 발생, 현장은 오래된 폐건물입니다.

박병오 형사2팀장: 피해자는 현재 생명이 위독하며 강간치사 사건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1)여청에서도 이미 저희 쪽에 지원 요청한 상태입니다.

최창원 수사과장: 현장 출동 형사들 제외하고 나머지 형사들은 모두 사무실로 모이세요.

김진성 형사1팀장: 알겠습니다.

장병은 반장: 알겠습니다.

정재일 부장: 예, 알겠습니다.

“하… 암매장 사건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젠장.”

입이 툭 튀어나온 도윤이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둔 옷가지를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다급히 현관을 나서는 도윤의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또 한 번 메시지가 떠오른다.

박병오 형사2팀장: 피해자 사망, 지금 즉시…….

분주히 움직이느라 미처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한 도윤이 그대로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부릉.

낡은 엔진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린 것을 확인한 도윤이 경찰서를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까똑, 까똑, 까똑.

경찰서 주차장에 차량을 세운 도윤이 그대로 내려서려는 순간 또다시 울려오는 알림음에 무심코 휴대폰 화면을 확인한다.

박병오 형사2팀: 피해자 Y병원 후송 중 사망.

박병오 형사2팀: 발생지인 부산 동래구 xx로 3번지 폐건물로 현장 보존…….

박병오 형사2팀: 피해자 인적사항, 강단비 주민등록번호는…….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메시지를 확인하던 도윤이 순간 우뚝 멈춰 섰다.

“…강단비?”

익숙한 이름 석 자에 도윤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설마… 아닐 거야.’

떨리는 손동작으로 휴대폰 액정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확인 버튼을 누르자 곧이어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표시된다.

툭.

도윤의 손아귀에서 떨어진 휴대폰 액정이 그대로 바닥과 충격하며 쩌저적 갈라진다.

휴대폰을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온몸이 굳은 듯 미동도 하지 않던 도윤이 잠시 후 미친 듯이 주차장으로 되돌아가 차량에 몸을 실었다.

부아아아아아아앙!

자동차 액셀을 바닥 끝까지 밟아 대자 엔진이 공회전하는 소리가 차량 내부를 가득 채운다.

끼기기기기기긱.

듣기 거북한 소음과 함께 그대로 코너를 돌아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온 도윤의 차량이 어딘가로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부산 P병원 영안실(靈安室).

벌컥!

영안실 출입문을 벌컥 열어젖힌 도윤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형사1팀의 두 형사였다.

“오셨습니까? 왜 바로 이쪽으로 오셨…….”

좌측에 서 있던 젊은 형사가 말을 잇던 도중 그대로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도윤을 보며 말끝을 흐린다.

“……?”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옆을 돌아보자 우측에 있던 마른 체구의 중년 형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두 형사를 지나친 도윤의 시야로 가장 먼저 새하얀 천이 눈에 들어온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적막한 영안실에 휴대폰 진동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예, 팀장님.”

젊은 형사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대답하자, 곧바로 수화기 넘어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강도윤이! 혹시 강도윤이 거기 있나!?”

“예? 예. 현장으로 안 가고 바로 이쪽으로 오긴 했는데…….”

젊은 형사의 말에 수화기 너머로 또다시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

이윽고 젊은 형사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어 내자 옆에 있던 중년 형사가 묻는다.

“팀장님? 뭐라셔?”

말없이 도윤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젊은 형사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게… 피해자 가족 확인되었답니다.”

“그래서?”

중년 형사가 반문하고 있을 때, 안치대 바로 앞까지 도착한 도윤이 흰 천을 확 하고 걷어 낸다.

“야, 잠깐……!”

도윤이 피딱지로 엉겨 붙은 시신의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자 중년 형사가 급히 외친다.

턱.

순간 젊은 형사가 두 팔로 자신의 팔을 감싸 쥐자 중년 형사가 멈칫한다.

“……?”

이내 중년 형사가 옆을 돌아보자 젊은 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해자 강단비, 주소는 부산 동래구…….”

“야! 다 아는 사실을 뭘 또 중얼거리고 있어?”

“부모님 없음. 공부상으로 확인되는 유일한 친오빠…….”

여전히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말끝을 흐리는 젊은 형사를 보며 중년 형사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마침내 도윤이 차갑게 식은 시신의 머리칼을 완전히 떼어 냈다.

풍성한 머리칼 사이로 내려앉은 피딱지.

얼굴 곳곳에는 흘러내린 혈흔이 그대로 굳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상당히 아름답다.

새하얀 피부가 유난히 돋보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도윤의 처절한 절규가 영안실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