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2화 (2/174)

2화 죽음

“오늘 내로 수사 마무리해서 검찰에 서류들 송치(送致)하도록 하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동래 경찰서 수사과장 최창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예? 서장님, 하지만 아직 수사가 다 된 것도 아니고 기간도 5일 더 남았습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2)피의자의 구속 기간은 10일로 정해져 있었다.

그 때문에 송치까지 아직 5일이라는 여유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피의자들 신병도 이미 확보되었고 증거품도 우리가 찾았잖아요? 사회적인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사건인 만큼 검찰에서 송치를 조금 서둘러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아마 검사가 직접 수사할 생각인 모양인데 서로 불필요한 마찰 일으키지 말고 기본 수사 마무리되는 대로 송치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이내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최창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담당 검사랑 친분이 있다지만… 쯧.”

짧게 혀를 찬 최창원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내 수화기에 입을 대고 무어라 말하기 시작한다.

“예… 예, 예. 잘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형사1팀장 김진성이 힐긋 옆을 바라본다.

‘난리 나겠군.’

초췌한 얼굴로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도윤을 발견한 김진성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도윤아.”

“예.”

김진성이 조용한 목소리로 부르자 도윤이 모니터에서 시선도 떼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니, 벌써 며칠째 잠도 안 자고 있다. 오늘은 고마 드가서 쉬라.”

“괜찮습니다.”

곧바로 대답하는 도윤을 보며 짧게 한숨을 쉰 진성이 말을 잇는다.

“내가 안 괜찮다. 오늘은 내 말대로 드가라. 너, 자꾸 고집 피우면 이번 수사에서 배제할 기다. 편파적으로 수사할 가능성이 있는 놈들, 내 손으로 배제할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제?”

이어지는 진성의 말에 멈칫한 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도윤이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윤이 경찰서 정문을 나서는 것을 확인한 진성이 큰 소리로 외친다.

“지금 하고 있는 서류들만 마무리해서 바로 가져온나! 오늘 송치할 거니까.”

“예? 아직 기간 많이 남았는데, 벌써요?”

진성의 말에 형사1팀이자 도윤의 조원인 박일경이 되묻는다.

“니까지 토 달기가!? 과장님 지시니까 마무리해라. 어차피 애들 다 잡았고 증거품도 찾았으니까 뒤처리는 검찰에 맡기라고.”

“…도윤이 행님 알면 난리 칠 텐데.”

“아, 그럼 이 상황에서 뭘 더 어쩌자고! 도윤이 지금 누구보다 힘든 거 안다! 근데 도윤이는 지금 애들을 잡아 족치고 싶은 기지, 검찰에 넘기고 싶은 게 아니잖아! 하나 있는 여동생 잃은 놈 머리에 뭐가 들어 있겠어!?”

“…….”

“사고 칠 위험 큰 놈, 마음 같아서는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빼 버리고 싶은데 혼자 난리 칠까 봐 참고 있는 거야. 군소리 말고 송치 준비해!”

며칠 밤을 샌 진성이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일경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팀장님, 다른 건 제쳐 두고 어제 도윤이 행님이 얘기한 건은 어떻게 마무리할까요?”

“뭐?”

“그 왜, 오영철이 있지 않습니까”

“…….”

이어지는 일경의 말에 진성이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 진성을 보며 일경이 말을 잇는다.

“그 으슥한 골목길에 분명히 CCTV상으로 죽은… 애랑 오영철이 둘밖에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머지 12명이 미리 입이라도 맞춘 듯 오영철은 구경만 했다고…….”

“증거 있어?”

“예?”

“유일하게 있는 CCTV에서는 오영철이 잠시 애랑 얘기하다가 먼저 가 버리는 장면뿐이고, 그렇다고 증거품에서 DNA가 검출되는 것도 아니야. 심지어 나머지 공범들이 똑같은 진술을 하고 있지. 이 상황에서 오영철이를 어떻게 말아 넣을 거야? 가뜩이나 미성년자들이라 예민한데.”

“그럼…….”

“덮어.”

“예?”

“덮으라고. 13명 중에 12명이 실형을… 하아.”

조금씩 표정이 굳어지는 일경을 보며 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말실수했다. 오영철이 건은 지금까지 수사한 것만 정리해서 송치하자. 검사가 보고 판단하겠지.”

“…예.”

일경의 대답을 끝으로 대화는 끝이 났고, 같은 날 오후 서류가 모두 검찰청으로 송치되었다.

* * *

6개월 뒤, 부산고등법원 항소심 5차 공판.

“…다만, 범행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범죄 전력이 전혀 없는 점, 아직 나이가 어려 개선 가능성과 장래를 고려할 필요가 있는 점 등 형법 제51조가 정한 양형 조건을 두루 참작하여 형을 선고합니다.”

주심 판사의 말이 끝나자 법원 내부가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잠시 목을 가다듬던 주심 판사가 말을 잇는다.

“주문, 피고인 김태환, 피고인 서문교를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에 처한다. 또한 피고인 오영철을 제외한 나머지 10명의 피고인에 대해 일괄적으로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 6월에 처한다.”

웅성, 웅성.

주심판사의 말에 법원 내부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교적 그 죄가 경미한 피고인 오영철은 부산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한다.”

방청석의 웅성거림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이는 청소년인 피고인들의 재기 의지조차 꺾어 버리는 중형의 처벌은 가혹하다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입니다. 피고인들은 이런 결정이 자신들의 죄를 없애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재판을 마칩니다.”

땅, 땅, 땅.

재판이 끝났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출입문을 나서기 시작하자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도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도윤은 재판 과정을 지켜보게 되면 흥분하여 날뛸 것이라고 생각한 팀장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재판에 참석하지 못한 차였다.

출입문을 나서는 무리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도윤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오영철…….”

다른 놈들과 달리 불구속 수사를 받은 오영철이 부모와 함께 출입문을 나서고 있었다.

뚜벅, 뚜벅.

도윤이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

오영철의 아버지 오길태가 무서운 눈빛으로 다가오는 도윤을 발견하고는 멈칫한다.

“자네는 뭔가?”

오길태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도윤이 죽일 듯이 오영철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오영철이 입을 열었다.

“강 형사님 아니십니까?”

“강 형사? 아, 담당 형사 중에 골 때리는 놈이 하나 있다더니…….”

오길태의 말에 도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봐, 형사 나으리.”

오길태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도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저벅, 저벅, 저벅.

일단의 무리 사이에서 유독 오길태의 발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도윤의 착각일까?

이윽고 도윤의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춘 오길태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우리 영철이가 이번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신다던데…….”

“…….”

도윤이 입을 다문 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만 보고 있자 오길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잇는다.

“사실 나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영철이가 이런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 나는 사람이야”

“개소리! 오영철이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그 말을…….”

“증거 있나?”

자신의 말을 끊고 반문하는 오길태를 보며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자네도 법 배웠으니까 알 것 아닌가? 증거재판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IN DUBIO PRO REO.”

오길태의 말에 도윤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리고 말이야…….”

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참고 있는 도윤을 보며 말끝을 흐린 오길태가 도윤의 귓가로 입을 가져다 댄다.

“…….”

무어라 중얼거린 오길태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자 도윤의 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어진다.

“이 개새끼야!!!!!!”

퍼억!

“컥!”

도윤이 내지른 주먹에 정면에서 얼굴을 강타당한 오길태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퍼억, 퍼억, 퍼억, 퍼억.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도윤이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고 오길태의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이런 미친!”

이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오영철이 도윤에게 달려들었고 뒤늦게 출입문을 나서던 김진성과 다른 형사들의 도움으로 도윤을 간신히 오길태에게서 떼어 낼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사지가 붙들린 채 격분한 도윤의 고함 소리가 법원 건물 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징계 결과 나올 때까지 집에서 근신하라는 서장님 지시다.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머리 좀 식히라.’

진성이 한 말을 떠올리며 도윤이 힘없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불과 50여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에 들어설 무렵 도윤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오영철, 오길태…….”

제자리에 우뚝 선 도윤이 씹어 내뱉듯 낮게 중얼거렸다.

‘알아보니까 부모님 일찍 여의고 여동생이랑 둘이 살고 있던데? 늦둥이 여동생 뒷바라지한다고 결혼도 못 하고 말이야. 섭섭지 않게 챙겨 줄 테니까 이제 눈치 보지 말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 보면서 살라고. 남은 인생 즐기란 말이야. 이런 기회가 어디 있어?’

오길태가 속삭인 말을 상기한 도윤이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니 자식은 물론이고, 너를 포함하여 니 집안까지 철저히 무너뜨려 주마.’

속으로 다짐한 도윤이 다시 느린 속도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골목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도윤이 멈칫했다.

상념에 빠져 바로 뒤까지 다가오는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도윤이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푸욱!

“…컥!”

순간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빠르게 뒤로 물러나던 도윤이 발을 헛디뎌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강 형사님, 나 기억해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윤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코 옆에 박힌 점이 유독 눈에 띄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온통 검은 복장으로 서 있었다.

“너는…….”

“아! 하도 잡아넣은 범죄자가 많아서 나 같은 건 까먹었으려나?”

품에서 예리한 단도를 하나 더 꺼내 든 남자가 말을 잇는다.

“6년 전에 요 앞 사거리 편의점 강도라고 하면 기억나겠죠? 그때 형사님이 직접 저 구속했잖아요.”

점차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도윤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끄윽… 복… 수냐?”

“에이, 뭐 그런 것도 있는데 형사님한테 칼빵 몇 번 놓아 주면 돈은 물론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해 준다는 사람이 있어서요. 복수는 뭐, 겸사겸사라고 해 두죠.”

말을 마친 남자가 도윤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한다.

“CCTV는 없지만 오래 끌면 누가 올 것 같거든요. 귀찮은 건 사양이니까… 조용히 죽어 주세요.”

그대로 도윤의 앞에 쭈그리고 앉은 남자가 손에 쥔 단도를 몇 번이고 찔러 넣기 시작한다.

푸욱, 푸욱, 푸욱.

살을 파고드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도윤의 의식이 조금씩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꿀렁, 꿀렁.

“이크!”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시기 시작하자 재빠르게 뒤로 물러난 남자가 씨익 웃으며 중얼거린다.

“형사님, 듣기로 얼마 전에 여동생이 죽었다면서요? 어떻게 보면 내가 원수를 은혜로 갚는 까치 정도 되겠네. 이렇게 남매를 같은 곳에 보내 주니까.”

말을 마친 남자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다.

“젠… 장…….”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듬더듬 말을 내뱉던 도윤이 잠시 후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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