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촌지(寸志)
딸랑.
자그마한 동네 미용실 출입문에 달린 종소리가 작게 울렸다.
“어서 오세… 어머! 도윤 학생? 도윤 학생 맞지? 아니, 이제 학생이 아닌가? 진짜 오랜만이다!”
단골 미용실에 들어서자 도윤의 기억보다 20년은 젊어 보이는 원장이 자못 반갑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원장님?”
기억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눈앞에 보이자 도윤이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분명 도윤의 기억 속 동일 인물이 맞았지만 나이를 떠나 어림잡아 30킬로그램은 더 날씬해 보였다.
“어머, 어머. 몸 좀 봐! 짱이다! 군 입대한다고 머리 자르러 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전역한 거야?”
족히 10살은 많은 원장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오더니 도윤의 탄탄한 몸을 만지작거렸다.
180센치미터가 넘는 키에 고시 공부 중에도 운동은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한 도윤이었기에 건강미 넘치는 근육을 자랑했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살짝 몸을 빼낸 도윤이 멋쩍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머리 자르러 왔어요.”
“어머, 호호호. 나도 참, 주책이다. 요 앞에 앉아.”
잠시 후 도윤이 자리에 앉자 원장이 도윤의 앞머리를 살포시 쓸어 올리며 말한다.
“머리 진짜 많이 길었네? 조금 있으면 앞도 안 보이겠는데?”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원장의 말에 도윤이 멋쩍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더벅머리는 한물 간 거 알지? 어떻게, 요즘 유행하는 머리로 잘라 줘?”
“예? 유행하는 머리요?”
“응, 완전 유행이거든. 칼머리라고 들어 봤지? HOT 머리라고, 넌 숱이 많으니까 스카이 블루로 컬러까지 넣어 주면 진짜 이쁠 것 같은데?”
“…….”
순간 5 : 5 가르마로 앞머리만 길게 내린 누군가를 떠올린 도윤이 다급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그냥 짧게 잘라 주세요.”
“얼굴도 잘생겨서 어울릴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원장을 보며 도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내 미용실 내에 머리 자르는 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진다.
사각, 사각, 사각.
그대로 미용실 의자에 몸을 묻은 채 도윤이 생각에 잠겼다.
‘게임 같은 능력, 그리고 검사라는 신분.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오씨 일가의 엄청난 재력을 떠올린 도윤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IMF라는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돈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도윤이었다.
황금만능주의, 조물주 위에 건물주, 대통령 위에 재벌 같은 말들은 부(富)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여실히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중요한 건 도윤이 재산을 축적할 방법을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경제학을 전공하는 건데…….’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동화사에 묻힌 금덩이들과 주가가 폭등할 해외 주식 정도일까?
아니, 해외까지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당장 3만 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만 쓸어 담아도 밀레니엄 시대라는 내년 2000년부터 주가가 치고 올라가기 시작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후에 ‘숨은 주식 찾기 정책’으로 유명해질 아모레퍼시픽의 전신 태평양 주식도 있다.
‘우리 회사 주식 사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매입한 1만 원짜리 주식이 20년 뒤, 4천만 원으로 되돌아왔다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한때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도윤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원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장은 돈보다 검사가 되어 인지도를…….
“어, 움직이면 안……!”
미용실 원장이 당황하여 소리쳤다.
사각!
순간 머리에서 들리는 섬뜩한 소리에 도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 * *
“…단비 오빠?”
수업이 모두 마친 시간, 교무실에 들어서는 도윤을 보며 40대 중반의 대머리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 예. 제가 단비 오빠입니다. 담임 선생님 되십니까?”
도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대답한다.
“그래. 내가 단비 담임인 송창기… 아, 아직 20대인 걸로 알고 있는데 말 편하게 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선생님.”
“우선 자리를 옮기지.”
말을 마친 송창기가 산만 한 배를 이끌고 뒤뚱거리며 걸음을 옮기자 도윤도 따라 이동했다.
이윽고 상담실이라 적힌 자그마한 방에 이르렀을 때 송창기가 걸음을 멈췄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어젖힌 송창기가 앞에 있는 의자를 손짓했다.
“앉지.”
“아, 예.”
어색한 침묵 속에 도윤이 말없이 손을 꼼지락거렸다.
눈앞에 있는 단비의 담임 선생님은 무언가 기분 나쁜 일이 있는지 상당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으신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잠시 바닥을 바라보고 있자 이내 송창기가 입을 열었다.
“실내인데 모자는 벗어도 될 것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이윽고 아직까지 모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도윤이 아차한 표정으로 급히 모자를 벗었다.
‘이런 실수를… 그래서 표정이 좋지 않으셨던 건가?’
도윤이 머리에 난 땜빵을 잠시 쓰다듬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도윤을 보며 ‘흠, 흠.’ 하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송창기가 이내 말을 잇는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얼마 전에는 할머니까지 돌아가셔서 지금은 자네 혼자 단비를 돌보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
“예. 맞습니다.”
송창기의 말에 도윤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도 어린 데다 동생까지 돌보기가 쉽지 않을 텐데…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부모님이 남겨 주신 돈이 제법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선생님.”
도윤이 말을 마치자 순간 송창기가 눈을 반짝인다.
“…그래?”
‘뭐지……?’
순간 송창기의 표정이 밝아졌다고 느낀 것은 도윤의 착각일까?
잠시 창밖을 응시하던 송창기가 입을 열었다.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단비의 고등학교 입시 때문이네. 성적도 썩 괜찮아서 이대로 유지만 한다면 이 근처의 원하는 고등학교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렇습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곧바로 대답하는 도윤을 보며 송창기가 말을 잇는다.
“자네, 작년부터 서울과 부산에서 연합고사를 폐지한 사실을 알고 있나?”
“예? 아니요. 정확히는…….”
“기존의 고입과 달리 작년부터는 내신 성적에 의한 무시험 전형제를 실시하고 있네. 물론, 일부 학부모들이 항의를 하고 있지만… 한동안 이 제도는 바뀌지 않을 것 같거든.”
“아…….”
이제야 머릿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낸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말하는 부모의 ‘치맛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하던 때가 이맘때부터였을 것이다.
내신 성적에 의한 무시험 전형제는 학교 간에 상존하는 학생들의 성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우수 학교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험문제 유출을 부탁하며 일명 ‘촌지’를 건내는 학부모들도 상당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과 같이 특별한 날에는 교사에게 인사치레로 돈 봉투를 건내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였다.
생각에 잠겨 있는 도윤을 보며 송창기가 말한다.
“보면 알겠지만 우리 교실이 조금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분위기가 삭막해. 어항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끝을 흐리는 송창기를 보며 도윤은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교사는 대놓고 촌지를 요구하고 있었다.
‘학부모 진로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쾅!
도윤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뇌물을 요구하시는 겁니까?”
가라앉은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도윤을 보며 흥분한 송창기도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아니, 이 사람이! 뇌물이라니! 내가 언제 자네한테 돈 달라고 했나!?”
“…….”
말없이 노려보는 도윤을 보며 송창기가 와락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런데 이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 눈까리를! 내가 너한테 돈 달라고 했냐? 어? 말해 봐!”
“…….”
“하여튼 이래서 부모 없이 자란 새끼들은 가정교육부터가 글러 먹었어요. 윗사람 앞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모자 뒤집어쓰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송창기가 손가락을 들어 도윤의 이마를 콕콕 찔렀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 아니야, 새끼야. 응? 동생 고등학교 보내야 될 것 아냐?”
움찔.
이윽고 송창기의 입에서 단비까지 거론되자 도윤이 움직임을 멈췄다.
“부모 목숨값으로 백수 짓이나 하고 있는 한심한 새끼가… 퉤! 재수가 없으려니까.”
바닥에 탁 하고 침을 뱉은 송창기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앞으로 동생 많이 신경 써 줘라. 돈 아껴서 학원도 좀 보내 주고. 뭐, 성적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비릿하게 미소 지은 송창기가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마침내 도윤이 입을 열었다.
“형법 제129조 제1항.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도윤의 말을 들은 송창기가 다시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이 어린 놈의 새끼가 그래도! 니가 법을 알…….”
“하나 더. 형법 제260조 제1항.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참고로 멱살 잡고 손가락으로 머리 찌르는 것도 폭행에 해당합니다.”
“하! 그래서 신고라도 하시겠다? 그런데 이거 어쩌지? 내가 그랬다는 증거가 없을 것 같은데?”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송창기의 비릿한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신고해 봐. 그리고… 강단비는 전학시키는 걸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게 좋을 거야. 아! 내가 지인이 제법 많거든. 인근 학교는 물론 힘든 것, 알지? 오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뭐?”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송창기를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기획수사와 표적수사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
도윤이 손가락을 들어 송창기를 가리킨다.
“미리 대상을 선정하여 사전에 계획하고 조진다는 겁니다.”
말을 마친 도윤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송창기의 앞에 툭 하고 던졌다.
“털어서 먼지 나오는 놈은 기획수사, 먼지 하나 안 나오는 놈은 표적수사. 과연 선생님은 어느 쪽일까요?”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송창기의 말을 한 귀로 흘린 도윤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저벅, 저벅.
상담실 내부에 도윤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진다.
움찔.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온 도윤을 올려다보며 송창기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런 송창기를 보며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단비 한번 건드려 봐. 먼지 한 톨 안 나올 정도로 탈탈 털어 줄 테니까, 이 새끼야.”
“이… 이…….”
순간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짓눌린 송창기가 온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드르륵.
이윽고 도윤이 그대로 미닫이문을 열고 나가자 송창기가 괴성을 지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이 개자식이! 뭐 새끼? 털어 줘? 오냐, 니 하나뿐인 동생, 학교도 못 다니게 만들어 주마.”
한바탕 난리를 치던 송창기가 이내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하고 거칠게 집어 들었다.
“무슨 개수작……!”
그대로 종이를 찢어 버리려던 송창기가 순간 움찔한다.
“……!”
이윽고 송창기의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팔락.
작은 소음과 함께 종이가 바닥에 떨어진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합격확인서>
성명: 강도윤
주민등록번호: -
위의 사람은 1999년 시행 제41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하였음을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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