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입교식
IT 산업의 해라고 불렸던 1999년.
전국적으로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바람의 나라, 리니지, 어둠의 전설과 같은 전설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고, 국민게임 스타크래프트에는 황제 임요환, 쌈장 이기석 등이 등장하면서 프로게이머, e스포츠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눈부신 IT 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IMF 해에 경험했던 최악의 경제 성장률을 비웃기라도 하듯 경제 위기를 단번에 극복했던 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최악의 탈옥수라 불렸던 신창원이 검거된 지 수개월이 흘렀음에도 연일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던 1999년의 겨울이 완전히 저물고
새천년이라 불리는 2000년, 도윤은 드디어 사법연수원에 입교했다.
* * *
“…향후 대한민국 법조계를 이끌어 갈 31기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2년간의 연수원 생활 또한 좋은 추억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법연수원 관계자로 보이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강당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아울러 30분 뒤부터 입교생 가족 내외가 입장할 수 있으며, 대기 중인 가족들이 모두 입장하고 나면 입교식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편하게 휴식 취하시기 바랍니다.”
이내 중년 남성이 말을 모두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기 시작하자 도윤은 내심 당황했다.
‘원래 알고 있던 사이가 이렇게 많나?’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도윤의 어깨를 누군가 툭 하고 친다.
“……?”
도윤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자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진 남자가 손을 살짝 흔들었다.
“강도윤 씨 맞죠?”
“예? 아, 예. 누구……?”
“장호식이라고 합니다. 도윤 씨랑 2년 동안 같은 방을 쓰게 되었네요.”
“아!”
도윤이 무언가 떠올린 듯 눈을 크게 떴다.
사법연수원은 서초동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 출신인 도윤은 어쩔 수 없이 기숙사를 신청했다.
일산 신도시에 짓고 있는 새로운 사법연수원은 내년 말 완공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 무렵쯤 연수원을 수료하는 도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기숙사는 2인 1실로 운영되는데 아무래도 눈앞에 인상 좋은 남자가 도윤의 룸메이트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 낯이 조금 익은 것 같은데…….’
순간 고개를 갸웃하던 도윤이 이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장호식을 발견하고는 급히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강도윤입니다.”
도윤이 인사하자 장호식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요. 혹시 나이가……?”
“스물네 살입니다.”
이어지는 도윤의 대답에 장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컥, 스물넷? 완전 엘리트네. 대학 입학하자마자 사시만 팠나 봐요?”
“아니요. 그… 대학은 안 갔습니다.”
“고졸!? 대박!”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장호식을 보는 도윤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고졸 출신이라고 하면 대게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데 장호식에게는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스물넷인데, 우리 그냥 친구 할까?”
갑작스럽게 반말로 물어 오는 장호식을 보며 도윤이 피식 웃었다.
“뭐야, 자화자찬한 거야?”
도윤이 장호식의 손을 강하게 잡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하, 나는 내가 제일 엘리트인 줄 알았지. 대학 입학하고 1년 실컷 놀다가 3년 만에 합격한 건데… 2짱으로 만족해야겠다.”
장호식의 넉살에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도윤은 얼마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장호식이 상당히 재미있는 친구라고 느꼈다.
“자고로 남자는 게임으로 친해지는 법. 그런 의미에서 끝나고 스타 한판 콜? 포트리스도 환영… 아, 공부만 해서 게임은 할 줄 모르려나?”
“얼마든지.”
참고로 도윤은 게임광이었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 틀어박혀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도윤이 힐끔 한쪽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입교식부터 어떻게 아는 사람들이 저렇게 많나 싶지?”
도윤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장호식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무리를 발견하고는 입을 열었다.
도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호식이 말을 잇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더럽고 치사한 세 년들 중 하나지.”
“…응?”
도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장호식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학연.”
“아…….”
이내 도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면 다섯 덩어리로 나뉘어서 모여 있지?”
“그러네.”
“가장 큰 세 덩어리 놈들이 흔히 SKY라 불리는 우리나라 명문대 출신들.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밥맛인 놈들이지.”
장호식이 강당 중앙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족히 전체의 절반 이상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삼등분으로 나뉘어 그쪽에 모여 있었다.
아니, 지금도 조금씩 모여들고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사법연수원 입교생 대부분을 명문대 출신으로 봐도 될 듯싶다.
“그리고 저쪽은 SKY를 제외한 서울 소재 명문대 출신들. 지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밥맛인 건 똑같아.”
장호식이 다른 한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도윤이 시선을 돌렸다.
3대 명문대 출신들에 비해 확실히 적은 숫자였지만 제법 많은 입교생들이 그쪽에 모여 있었다.
“그럼 저쪽이…….”
도윤이 가장 적은 수를 이루고 있는 무리를 가리키며 말끝을 흐렸다.
“거긴 지방대 출신들. 진정한 이몽룡들이지. SKY 놈들은 사시 합격은 당연한 걸로 생각할걸?”
“여어, 호식이!”
장호식이 말을 잇던 그때, 강당 중앙에서 뱁새처럼 눈이 좌우로 길게 찢어진 남자가 큰 소리로 외치며 다가온다.
“윽… 오성춘.”
장호식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왔으면 왔다고 인사 좀 하지. 섭섭하게 혼자 구석에 박혀 있냐? 아, 혹시 안 껴 줄까 봐?”
오성춘이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성춘을 따라온 것으로 보이는 3남 1녀 뒤로 가장 큰 세 무리 중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남이사, 그런 거 아니거든.”
“나 참, 부끄러워하긴. 내가 어련히 알아서 다 챙겨 주려고.”
오성춘이 팔을 들어 장호식의 한쪽 어깨에 척 하고 걸쳤다.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장호식을 보며 오성춘이 피식 웃었다.
“하긴 뭐, 굳이 내가 안 나서도 되려나? 눈앞에 대(大)KS 기업의 자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여기 있는 대부분이 서로 먼저 친해지고 싶어 발광을 할 테니까 말이야.”
오성춘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도윤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KS 기업!’
국내 최초로 제1세대 아날로그 이동전화의 시대를 연 KS텔레콤의 모(母)회사.
뿐만 아니라 KS가스, KS해운, KS에너지, KS생명, KS옥시케미칼 등 수많은 계열사를 아래에 두고 있는 다국적 대기업.
오성춘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KS그룹의 자제가 장호식이라는 말이었다.
‘이제 기억났다. KS그룹의 4남, 막내 장호식.’
보통 일반인들은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그 그룹의 장남도 아닌 막내의 얼굴까지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윤이 장호식의 얼굴을 알고 있는 이유는 호식이 그만큼 유명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가문으로부터 버림받은 비운의 천재.’
대부분의 재벌가들은 사위로 법조계 인사를 받아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만 KS기업은 예외였다.
KS기업은 재벌가 자제 중 보기 드문 사법고시 합격자가 집안에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장호식이었다.
문제는 장호식이 그런 뛰어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어른들이 장호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형제 간 사이는 상당히 좋았다.
장호식 본인의 꿈이 확고했기에 기업 후계자 경쟁과는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고, 형제들도 경쟁의 필요성이 없어진 동생을 멀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법조계 인사가 된 동생은 반드시 영입해야 할 대상 중 하나였을 것이다.
장밋빛 인생을 살아가던 장호식에게 가시밭길 비극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 아마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직후부터였을 것이다.
충분히 판, 검사를 할 수 있는 성적이었음에도 장호식은 집안의 반대를 뿌리치고 변호사가 되었다.
대형 로펌에 들어가 기업 담당 변호사가 되었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만 장호식은 스스로 국선변호사가 되었다.
재벌가가 먼저 나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여 서민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 때문에 장호식은 완전히 집안 어른들의 눈 밖에 났고, 지방에서 홀로 국선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다가 어느 가난한 사건 의뢰인과 사랑에 빠졌다.
당연히 집안에서는 격렬히 반대했고, 이를 무시한 장호식은 결국 그 사건 의뢰인과 결혼을 강행하기에 이른다.
사법고시를 합격한 재벌가 자제와 평범한 일반인의 결혼 소식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잠깐 떠들썩하던 그 이슈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중 사건이 터졌다.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장호식이 사망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장호식의 죽음을 ‘교통사고에 의한 사망’으로 발표했지만 사인에 대해 어느 한 가지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었다. 스트레스에 못 이겨 자살하였다는 소문도 있었고, KS그룹의 보복적 살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기업, 그 막내 자제의 의문스러운 죽음은 당시 대한민국 전체를 또 한 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마 그때 도윤도 언론에서 보도한 기사를 통해 장호식의 사진을 봤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장호식을 알고 있는 거지?’
도윤이 힐끔 오성춘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화 내용으로 유추해 봤을 때 같은 학교 출신은 아니다.
집안 내력까지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먼 사이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두 사람이 딱히 친해 보이지도 않았다.
‘먼저 나서서 집안에 대해 얘기하는 스타일이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도윤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친하지는 않지만 장호식의 집안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같은 부류의 사람, 재벌가 가족!’
마침내 도윤이 오성춘의 정체를 파악했을 때 입을 굳게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장호식이 입을 열었다.
“학벌도 되고 돈도 많은 대명성 그룹의 차남께서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장호식이 말을 마치는 순간 도윤의 가슴속에서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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