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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9화 (9/174)

9화 개강

입교식이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4월의 봄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코스닥 지수가 사상 최고점을 찍어서인지 국민들에게 올해의 봄은 유독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깥에는 벚나무가 만개하여 나들이 가기 딱 좋은 날씨.

그런 날씨에 아랑곳없이 31기 사법연수생들은 건물 안에 틀어박혀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물론, 도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법연수원의 어느 한 교실.

형법 교수이자 수업 중 연수생들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유명한 40대 초반의 남자 교수가 교실로 들어온다.

꿀꺽.

몇몇 연수생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 교수는 수업 시작 전, 연수생들을 상대로 질문부터 던지고 수업을 진행하곤 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질의응답 시간을 학기말 교수 평가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는 최하점은 따 놓은 당상이다.

긴장감이 흐르는 반 분위기를 읽은 교수가 묘한 미소를 짓는다.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잖아? 이런 시간들이 전부 자네들에게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있는 피랑 살도 다 말라죽겠는데요, 교수님.”

“킥킥킥.”

한 연수생의 말에 나머지 연수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오, 역시 31기 분위기 메이커답군. 순식간에 반 분위기가 바뀌었는데? 좋아!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호식 군이 말해 보는 게 어떤가?”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주제넘게 설쳤습니다.”

교수의 말에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장호식을 보며 이번에도 연수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쯧,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자네는 연수생들 기분은 잘 맞춰 주면서 내 기분은 이렇게 못 맞춰 주는군.”

짧게 혀를 찬 교수가 쓱 하고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본다.

휙, 휙.

교수와 눈이 마주칠세라 연수생들이 급히 고개를 돌리는 소리가 교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연수생들의 이런 반응은 이유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교수는 항상 질문 내용에 대해 말하기 전에, 대답할 학생부터 지목하였다.

전 수업 때 배운 내용에 대해 물을 때도 있었고, 한참 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물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감점을 주기도 하였다.

장차 대한민국 법조계를 이끌어 나갈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나름 대한민국에서 제일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오늘 몇 일인가?”

“17일입니다.”

“여기가 7학급이지? 앞자리 떼고 연수 번호 17번, 있나?”

사법연수원 31기생은 총 인원수가 712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50명씩 나누어 학급 개념으로 분류한 상태다.

그리고 각 연수생마다 연수생 번호가 있었는데 총 인원이 712명이었기 때문에 1번부터 712번까지 있었다.

물론 홀수 학급이기 때문에 x17번도 있다.

“예”

교실 중간쯤에 앉아 있던 남자 연수생이 번쩍 손을 들며 대답했다.

“오, 31기 차석 아닌가!? 이번 답변은 기대해도 되겠는데?”

31기 사법연수생 차석, 김영재의 얼굴을 보며 형법 교수가 만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신감에 가득 찬 김영재를 보며 교수가 말을 잇는다.

“얼마 전에 정두영이가 검거돼서 일주일째 언론이 떠들썩한데… 물론 알고 있겠지?”

그 무렵, 대한민국은 9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8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마 정두영 때문에 온 국민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사람을 죽인 이유에 대해 묻는 조사관에게 ‘내 안에 악마가 있다.’라는 뻔뻔한 말을 지껄여 온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아는 얘기가 나와서인지 김영재가 자신감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네는 정두영이가 사람들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놈은 그저 살인 자체를 즐기는 미치광이 싸이코입니다.”

“음……?”

자신의 대답에 순간 고개를 갸웃하는 교수를 보며 김영재가 빠르게 말을 잇는다.

“남을 해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미치광이 살인마. 일부 전문가는 이를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놈은 사형 제도를 다시 부활시켜서라도 세상에서 지워야 할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김영재의 대답에 교수가 묻는다.

“처음 대답은 ‘살인 자체를 즐기는 미치광이 싸이코다.’라고 대답했고, 두 번째 대답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다.’라……. 자네는 미치광이 싸이코와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같은 의미라고 보는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정두영이가 살인을 즐기는 미치광이 살인마라고 했는데, 자네 말대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남을 해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해. 무슨 차인지 알겠나?”

“예?”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하는 김영재를 보며 교수가 쯧하고 혀를 차며 말을 잇는다.

“사람을 해치는 것에 대해 ‘즐거움’이라는 감정 또한 느끼지 못한단 말이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니까.”

“아…….”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묘한 감탄사를 내뱉는 김영재를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쉰 교수가 다시 교실을 둘러본다.

역시나 시선을 회피하는 연수생들을 보며 교수가 입을 열었다.

“차석이라는 놈 대답이 이러니 다른 건 더 들을 필요도 없…….”

“제가 대답해도 되겠습니까?”

“자네는…….”

말끝을 흐리던 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차! 이번 31기는 차석과 수석이 같은 학급이었군! 깜빡했네. 그럼, 조금 기대해 볼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교수를 보며 도윤이 입을 열었다.

“정두영은 살인 자체를 즐기는 미치광이는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지난 달에 일어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계속해 보게.”

교수의 말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당시 피해자는 두 명의 여성이었습니다. 한 여성을 살해한 정두영이 다른 한 여성도 살해하려고 하였는데… 결론적으로 그 여성은 죽지 않았습니다.”

“음, 그 얘긴 처음 듣는군. 계속하게.”

“살해당한 여성과 생존한 그 여성은 차이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살해당한 여성이 죽기 전 그저 살려 달라고 울며 빌기만 하였다면, 생존한 여성은 정두영에게 아기가 있으니 살려 달라고 빌었죠.”

“…….”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정두영은 그런 여자에게 ‘신고하면 죽인다.’는 협박과 함께 중상만을 입혔습니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교수를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물론,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정두영이 인정이 넘치는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놈은 그저 무고한 사람을 해친 살인마일 뿐이니까요.”

“…….”

“하지만 살인 자체를 즐긴 놈은 아니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살인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금품을 빼앗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수단이었죠.”

“…그건 왜지?”

“살인을 즐기는 놈이라면 그런 이유로 그 여성을 살려 주지 않았겠죠. 또한, 정두영은 항상 사람을 죽이고 돈이 될 만한 금품을 모조리 가지고 갔습니다.”

“…….”

“방금 말씀드린 사건에서는 여성을 살려 주면서 ‘신고하면 죽인다.’라는 협박까지 했죠.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정두영의 목적은 살인이 아니라 강도구나.’라고.”

잠시 말없이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보던 교수가 이윽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훌륭하군.”

“와아아아아아~”

짝, 짝, 짝.

교수의 말과 동시에 교실에 있던 연수생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자신의 차례로 넘어오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연수생.

감탄했다는 듯 힘차게 박수 치는 연수생들.

연수생들이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지만 공통점은 하나였다.

도윤의 대답에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것.

물론, 예외도 있었다.

으드득.

김영재가 도윤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 * *

나른한 토요일 오후, 모처럼 사법연수원 근처에 위치한 집으로 온 도윤이 손을 분주히 놀렸다.

“단비 학교 마칠 시간 맞추려면 빠듯하겠는데…….”

조용히 중얼거리는 도윤의 손아귀에서프라이팬이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촌지 사건이 있고 나서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던 도윤은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결국 사법연수원 주변으로 집을 옮기고 단비를 인근 학교로 전학시켰다.

순간 욱한 감정을 못 이겨 동생을 전학시킨 것이 못내 미안했는데 그런 자신을 향해 신경 쓰지 말라며 항상 웃음 짓는 착한 동생이었다.

이미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던 도윤이었기에 구태여 집으로 짐을 옮기지는 않았지만, 사법연수생도 학과 수업 이후나 주말에는 자유로운 외출이 가능하였기에 틈틈이 새로운 집에 드나들었다.

단비 혼자 집에서 지내게 하는 것이 내심 불안했지만 등, 하교 도우미를 구한 상태였고, 올해만 지나면 성적이 좋은 단비가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이! 하이! 사랑하는 나의 베스트 후랜드! 강도윤, 하잇!”

새로 배운 유행어랍시고 ‘하이’를 연발하는 저 불청객, 장호식도 뻔질나게 드나든다는 것이다.

“그놈의 하이 좀 그만하면 안 될까?”

“그럼, 하이루?”

“하아~”

도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우리 단비는 언제 와?”

“누가 ‘우리’ 단비냐?”

“또 왜 이러실까, 처남.”

“처남? 지랄 똥을 싸고 있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아니 흙이 들어가고 그 흙에서 꽃이 펴도 절대 안 돼! 애초에 단비, 중학생이야. 아청법으로 철컹철컹하고 싶냐?”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 내는 도윤을 바라보며 장호식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청법이 뭐야?”

‘아, 아직 제정하기 전이구나.’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짐짓 인상을 굳히며 말을 잇는다.

“8살이나 어린 중학생을 이성으로 보는 게 말이 되냐고.”

“단비도 언제까지 중학생은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도 8살 차이인데?”

“…….”

장호식의 말에 이내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에이, 처남. 너무 팍팍하게 굴지 맙시다. 그럼 뭐 남자답게 게임으로 승부 볼까?”

“…….”

“스타 이어서 마저 해야지? 한 번 당한 내 전설급 포지 더블넥 빌드에 겁먹은 건 아니지?”

“…….”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장호식이 계속 말한다.

“스타 질렸냐? 그럼 포트 한판 할래? 엉아가 돌탱 각을 기가 막히게 재는데!”

“나 이제 단비 밥 해야 하니까 그냥 가라. 안 그래도 늦었는데, 자꾸 방해하지 말고.”

“응? 아 맞다! 오늘 토요일이지! 우리 단비 곧 오겠네?”

순간 황홀한 표정을 짓는 장호식을 보며 도윤이 으득 이를 갈았다.

“그. 냥. 가. 라. 좋은 말로 할 때.”

“처남, 진짜 매정하다. 진짜 내가 이 카드까지 꺼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잠시 말끝을 흐리던 장호식이 이윽고 도윤의 옆으로 바짝 다가온다.

“뭐… 뭐냐?”

순간 당황한 도윤이 움찔 몸을 떨며 한 발자국 뒤로 몸을 물렸다.

“이거 진짜 비밀이야. 그 쟁쟁한 내 형님들도 모르는 사실일걸?”

이어지는 장호식의 말에 도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장호식의 형제라면 그 유명한 KS 그룹의 자제들이다.

장호식을 제외하고는 형제 모두 그룹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었고, 그런 사람들조차 모르는 비밀이라면…….

“…뭔데?”

꿀꺽 마른침을 삼킨 도윤이 조심스럽게 귀를 장호식의 입으로 가져다 댄다.

“이거 진짜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야 돼. 약속이다?”

엄청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소곤거리는 장호식을 보며 도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장호식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있잖아…….”

꿀꺽.

도윤이 침 삼키는 소리가 방 안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프루나라고… 아주 죽여주는 프로그램을 내가 알아냈…….”

“에라이, 이 새끼야!”

퍽!

장호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윤이 확 하고 귀를 떼어 내며 발로 장호식을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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