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1화 (11/174)

11화 부장검사

‘윤만석 검사……!’

상석에 앉아 있는 인물을 발견한 도윤이 속으로 경악했다.

TV에서 보던 얼굴보다 확연히 젊었지만 분명 도윤의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 맞았다.

예정에도 없던 김영재와 오성춘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이제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윤만석 검사.

대한민국 최고라는 S대 법학과 출신으로 졸업하고도 10년 만에 사시를 패스한 조금 특이한 케이스.

대학 시절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검사로 나와,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인물.

윤만석 검사의 대학 시절 시대적 배경이 1980년대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모의재판이라지만 권력이 살아 있는 현직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이외에도 상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과 관련된 고위 국정원 공무원들을 모조리 구속시킨 사건.

‘조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충성하는 것 아니냐’라고 묻는 여당 의원에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사건은 윤만석 검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도윤의 회귀 전 기억으로 윤만석 검사는 대검 중수과장, 서울지검 특수부 부장 등 요직만 두루 거치다가,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으로 상부의 눈 밖에 나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던 중, 정권이 바뀌면서 서울지검 검사장으로 승진하였는데 이후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최고의 기업인 오성 기업 부회장을 구속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그 화려한 복귀를 세상에 알렸다.

검찰의 특수통으로 불리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인물을 도윤은 지금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윤만석 검사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도윤이 멍청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자 옆에 있던 호식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도윤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31기 사법연수생 강도윤입니다!”

“반갑습니다! 마찬가지로 31기 사법연수생 장호식입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던 두 사람이 고개를 들자 윤만석 검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멀리서 예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부산 동부지검 1부장검사 윤만석이네. 만나서 반갑군.”

“평소에 존경해 왔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응?”

도윤이 큰 소리로 외치자 윤만석 검사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날 아나?”

“그렇습니다!”

도윤의 대답에 윤만석 검사가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냥 하는 아부성 발언은 별로 좋아하지 않네. 무릇 대한민국 법조인이라면 대쪽 같은 기질이 있어야 하거든.”

“킥!”

윤만석 검사가 말을 마치자 좌측에 앉아 있던 오성춘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죄… 죄송합니다!”

윤만석 검사가 슬쩍 미간을 찌푸리자 오성춘이 급히 사과했다.

아마 자신의 말을 우습게 생각한다고 느꼈으리라.

“아부가 아닙니다.”

“……?”

윤만석 검사가 다시 자신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안절부절못한 표정의 호식을 일별한 도윤이 입을 열었다.

“군부독재 시절, 무력으로 국민들을 찍어 누르던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끝내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모의재판 사건. 그 때문에 사시에서 거듭 낙방했음에도 불구하고 9전 10기, 끝까지 도전하여 결국 패스한 입지전적인 인물.”

“…….”

“뿐만 아니라 검경 간 매우 민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얼마 전에는 경찰 실세라는 김원희 치안감을 소환하여 단 하루 만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자백을 받아 냈죠. 존경합니다, 선배님.”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윤만석 검사가 멋쩍게 웃었다.

“헛, 이거 참. 젊은 후배님이 내 얼굴에 금칠을 하는구먼.”

멋쩍은 듯 얘기하지만 말을 잇는 윤만석 검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네들도 우선 앉지.”

“옙!”

이내 윤만석 검사가 소파를 가리키며 앉기를 권하자 도윤과 호식이 착석했다.

“우리 지검에 배정된 연수생 TO가 원래 2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네 사람이 되었군.”

“아, 선배님을 평소 흠모해 왔는데 마침 이곳에 있으시다기에 마지막에 실습 희망지를 변경했습니다.”

“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성춘이 말을 마치자 김영재도 급히 대답했다.

“음… 그래?”

윤만석 검사가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잇는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젊은 인재들이 나를 이렇게 높게 평가해 주니 상당히 기쁘군. 그런데 말이야…….”

잠시 말끝을 흐리던 윤만석 검사가 계속 말한다.

“아쉽지만 내 밑에서 실습하게 될 연수생 인원은 2명이네.”

“예? 2명이요?”

호식의 반문에 윤만석 검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2명은 우리 지검 2부장검사 밑에서 배우게 될 거야. 나보다 어리지만 더 유능한 친구니까 배울 것도 더 많을걸세.”

“아…….”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부장검사님. 그럼 인원 배정은 어떻게……?”

“자네들 뜻대로”

윤만석 검사가 말을 마치자마자 도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는 선배님 밑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이하 동문입니다!”

도윤의 말에 호식까지 동조하자 이에 질세라 오성춘과 김영재도 급히 번쩍 손을 들었다.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거, 이거.”

네 사람의 반응에 윤만석 검사가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잠시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던 윤만석 검사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하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윤만석 검사가 말을 잇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사무실에 박혀서 서류에만 파묻혀 사는 일반적인 검사들과 다르네. 그런 걸 딱히 좋아하지도 않지.”

“…….”

“서류 검토만으로도 하루 일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요즘 같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사회에 이해는 해. 하지만 말이야.”

“…….”

“책상머리에 앉아서 서류만 검토하고, 현장에는 직접 가 보지도 않고 수사 지휘만 내릴 거면, 과연 검찰에 수사권이 필요할까?”

윤만석 검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한다.

“그럴 거면 차라리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게 낫지. 검찰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올라온 서류 검토해서 기소여부만 결정하는 기소권만 갖고 말이야.”

“……!”

이어지는 윤만석 검사의 말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지검 부장검사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야기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뜨거운 감자다.

물론 그 주체인 검찰은 수사권 조정에 대해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다.

없는 권한을 만들어 줘도 모자랄 판에 기존에 있는 권한을 빼앗아 간다?

권력의 달콤한 맛에 이미 취할 대로 취한 기득권 계층으로서 가만히 빼앗기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윤만석 검사는 조직 대부분의 의견과는 상반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인가 보군.”

“아닙니다.”

도윤의 대답에 잠시 그쪽을 힐긋 바라본 윤만석 검사가 말을 잇는다.

“현장을 모르는 검사는 진정한 검사라고 할 수 없다. 이게 내 생각이야.”

“…….”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검찰도 다를 바 없다. 범죄 현장은 증거의 보고라는 말이 있지. 거짓말 좀 보태서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범죄 10건 중에 9건은 현장에서 증거가 다 발견될 거야.”

“…….”

“그런 현실인데 현장에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은 검사가 수사 지휘를 내린다? 경찰이 뭐라고 생각할까? 국민들은?”

물로 목을 한 번 축인 윤만석 검사가 계속 말한다.

“만약 책상에 앉아서 공소장 쓰는 방법이나 범죄 사실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2부장에게 가게. 그쪽 방면에서 아주 유능한 사람이야, 2부장은.”

말을 마쳤음에도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네 사람을 보며 윤만석 검사가 말한다.

“아직도 내 밑에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들인가?”

“그렇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네 사람을 보며 윤만석 검사가 옅게 미소 지었다.

“테스트를 하지.”

힐긋 벽에 걸린 달력으로 날짜를 확인한 윤만석 검사가 말했다.

“어차피 연수생들의 실습 첫 일주일은 내 교양 시간으로 계획되어 있으니까, 따분한 교양 말고 입단 테스트 같은 걸로 하자고.”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은 윤만석 검사가 누군가를 부른다.

“은정 씨!”

벌컥.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아까 도윤과 호식을 이곳으로 안내한 여자 실무관이 들어온다.

“예, 부장검사님.”

“혹시 박검, 조사 중인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특별한 일 없으면 잠시 나한테 오라고 해 줘요.”

“알겠습니다.”

이내 은정이라 불린 여자 실무관이 짧게 고개를 숙이더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 검사가 입을 열었다.

“대체 뭘 시킬지 상당히 궁금해하는 표정이구먼. 하하하하.”

네 사람의 면면을 살피던 윤만석 검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윤만석 검사의 말대로 오성춘과 김영재는 똥마려운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식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었고, 도윤은…….

순간 도윤의 표정을 발견한 윤만석 검사의 눈빛에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그런 도윤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잠시 뜸을 들이던 윤만석 검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들… 차가운 술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