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12화 (12/174)

12화 차가운 술

“차가운 술요?”

김영재가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하자 윤만석 검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차가운 술.”

“아? 아핫, 아하하핫.”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오성춘을 윤만석 검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가 우습지?”

“이거 제가 눈치가 없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경황이 없다 보니… 선배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대접해야 하는 건데.”

“……?”

“퇴근하고 시간 좀 내주십쇼, 선배님. 대통령이 즐겨 마셨다는 시바스리갈부터, 이름은 조금 생소하시겠지만 그 맛과 질은 어느 술보다 뛰어난 달모어까지, 선배님 입맛대로 대접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오성춘의 말에 윤만석 검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눈치 없는 오성춘이 이에 아랑곳없이 계속 말을 잇는다.

“물론, 얼음까지 동동 띄워서. 말씀만 하시면 북극에 있는 얼음까지 공수해 오겠…….”

“자네 집안은 돈이 상당히 많은가 보군.”

이때다 싶어 눈을 반짝인 오성춘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저희 친조부님이 자그마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류를 취급하는 계열사가 하나 딸려 있어 술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도윤도 눈살을 찌푸렸다.

오성춘의 어투와 행동은 전형적인 재벌가 자제의 그것이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기회다 싶으면 은연중에 집안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마치 귀한 술을 구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뜻은 ‘우리 집안이 이 정도 수준이니 알아서 대우해 달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특권 계층으로서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 재벌가 사람들.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이 또한 전형적인 정경유착, 그 시발점 중 하나다.

“계열사가 딸려 있는 작은 회사라… 대체 어떤 작은 회사이기에 계열사까지 딸려 있는지 궁금하긴 하군.”

윤만석 검사의 말에 오성춘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비교적 최근에 급격하게 성장한 회사라 아마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명성이라는 이름의 회사인데…….”

오성춘이 말끝을 흐리자 윤만석 검사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대한민국 10대 기업 중 하나인 명성이 작은 회사라… 겸손이 과하군.”

“과찬이십니다, 선배님.”

윤만석 검사의 입에 걸린 미소를 발견한 오성춘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도윤은 보았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는 윤만석 검사를.

이후 윤만석 검사의 행보를 봤을 때 분명 방금 오성춘의 말로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으리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것을… 스스로 점수를 깎아 먹는구나, 오성춘.’

“아쉽지만 술은 다음번에 마시도록 하지. 그리고 나는 독한 양주보다는 소주가 더 좋아.”

“아… 예. 알겠습니다.”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오성춘을 일별한 윤만석 검사가 이번에는 도윤을 바라본다.

‘그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묘하게 신경 쓰인단 말이야.’

속으로 중얼거린 윤만석 검사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차가운 술이 뭐라고 생각하나?”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아닙니까?”

도윤의 대답에 윤만석 검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윤만석 검사를 바라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보통 물에 희석시켜 직접 섭취하거나 주사기를 이용하여 손목으로 투약하는데… 후자의 경우가 훨씬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마시는 것보다 팔에 직접 투약하는 것이 약 효과를 더 극대화시키기 때문인데, 필로폰을 투약할 때 마치 차가운 얼음을 몸속에 집어넣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차가운 술’이라는 은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음’이라는 은어를 사용하기도 하구요.”

“…….”

“뽕을 술로 표현하는 거야 여기 있는 이 친구들도 짐작할 거라 생각합니다.”

이내 도윤이 말을 마치자 입을 헤 하고 벌리고 있던 윤만석 검사가 이내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자네는 오늘 두 번이나 나를 놀라게 하는군.”

네 사람을 한차례 쓱 하고 둘러본 윤만석 검사가 말을 잇는다.

“방금 똑똑한 후배님의 말대로, 차가운 술은 마약사범들이 메스암페타민을 칭하는 은어 중 하나네. 필로폰(Philopon), 혹은 히로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아……!”

이어지는 윤만석 검사의 말에 호식이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도윤을 바라본다.

“일본에서 넘어온 이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고, 투약 이후에도 오랜 기간 몸에 잔류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생명을 서서히 갉아먹네. 그렇다면 그 사실을 뽕쟁이들이 모르느냐, 그것도 아니거든.”

“자기 몸을 해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필로폰을 투약한다는 말입니까?”

호식의 물음에 윤만석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왜인 것 같나? 단지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애초에 처음부터 손대지 않으면 될 일이야. 그렇다면 단순한 호기심일까?”

누군가의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라는 듯 윤만석 검사가 곧바로 말을 잇는다.

“그것도 아니야. 호기심 때문에 지수명 깎아 먹을 짓을 왜 하겠나?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지.”

잠시 테이블 위에 있는 물로 목을 축인 윤만석 검사가 말한다.

“뽕쟁이들 말로는… 필로폰을 투약하고 떡을 치면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기분이 든다더군.”

“떡을 친다니……?”

호식이 순진한 표정으로 되묻자 윤만석 검사가 대답한다.

“섹스 말이야.”

“헉!”

기겁하는 호식을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윤만석 검사가 말한다.

“요즘 오이 나이트에서 가장 인기 많은 남자가 누군지 아나? 잘생긴 남자? 춤 잘 추는 남자? 돈 많은 남자? 모두 아니야. 뽕 있는 남자가 제일 인기가 많아.”

“…….”

“당장 남자가 필로폰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스스로 가랑이 벌릴 여자, 적지 않을 거야. 물론 이미 그 맛을 본 여자들에 한해서니까, 혹시나 내 말 곡해하진 말게.”

윤만석 검사의 적나라한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사법연수생들이 멍청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아직 필로폰이 그렇게 많이 유통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응?”

도윤의 물음에 윤만석 검사가 의아한 얼굴로 그쪽을 바라본다.

“지금은 필로폰보다 엑스터시(ecstasy)나 GHB(Gamma-Hydroxy Butrate)가 훨씬 많이 유통되고 있지 않습니까? 구하기도 더 쉬우니까요.”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윤만석 검사가 두 손 들었다는 표정으로 도윤을 바라본다.

“자네, 정체가 뭔가? 정말 경력이 전혀 없는 사법연수생이 맞는 건가?”

“…….”

“혹시 다른 쪽에서 일을 하다가 왔다든가…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데…….”

도윤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며 윤만석 검사가 말끝을 흐렸다.

전체적인 유통량이야 엑스터시나 GHB가 필로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클럽이 성행하는 2000년대 초반에는 도윤의 말대로 엑스터시나 GHB가 실제 더 많이 거래되곤 했다.

미심쩍은 얼굴로 도윤을 바라보던 윤만석 검사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본다.

“이미 배워서 다들 알고 있을 테니 약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엑스터시는 도리도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 알약 형태로 된 이 엑스터시는 한 20년 전부터 유통되기 시작했다.”

“…….”

“재벌 자제들의 난교 파티에 주로 사용되는 약이기도 한데…….”

말끝을 흐리던 윤만석 검사가 잠시 우측을 바라보자 오성춘이 움찔 몸을 떨었다.

“환각 효과는 필로폰의 수 배나 되지만 가격은 더 싸고 중독성은 더 약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엑스터시의 유통량이 더 많아.”

“…….”

“GHB, 물뽕도 마찬가지다. 특히 물뽕은 술이나 음료수에 몰래 타서 강간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마약이기 때문에 2차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기도 하지. 괜히 데이트강간약물로 불리겠나?”

말을 마친 윤만석 검사가 도윤을 돌아본다.

“니 말대로 필로폰보다 엑스터시나 GHB의 유통량이 훨씬 많아. 아직까지는.”

무언가 말을 하려던 도윤이 윤만석 검사의 뒷말에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아마 필로폰 유통량이 다른 두 마약의 유통량을 월등히 뛰어넘을 거다.”

이어지는 윤만석 검사의 말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말 그대로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검거되는 마약사범 대부분이 필로폰 관련 소지, 투약, 밀매 사범이다.

조금만 지나면 세계, 특히 중국에 필리폰 비밀 제조 공장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되면서 가격도 훨씬 저렴해지고 입수 경로도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몇 년은 지나야 나타날 현상을 윤만석 검사는 이미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을 보며 윤만석 검사가 씨익 미소 지었다.

“자네의 그런 표정도 나쁘지 않군. 괜히 내가 우쭐해지는 기분이랄까?”

“아…….”

이내 정신을 차린 도윤이 표정을 바로 한다.

“내가 자네들에게 내줄 과제는 이 필로폰에 관한 거네.”

“필로폰에 관한 과제라는 말씀은……?”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김영재가 입을 열자 그쪽을 힐긋 바라본 윤만석 검사가 이내 말을 잇는다.

“내 밑에 있는 유능한 후배가 이번에 필로폰 중간 판매상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거든.”

“……!”

윤만석 검사의 말에 도윤을 제외한 세 사람이 사뭇 긴장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다.

“자세한 내용은 조금 있으면 올 그 후배가 설명해 줄 거야.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옆에서 따라다니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감상문 형식으로 나한테 제출하는 거네.”

“저, 선배님. 마약사범들은 정신이 이상해서 상당히 위험하다고 알고 있는데…….”

오성춘이 긴장된 표정을 유지한 채 말끝을 흐렸다.

“물론 위험하지.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지만, 자네들이 그 현장에 직접 가서 마약사범들을 잡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네. 그저 멀리서 지켜보고 느낀 바만 간단하게 적어 제출하게.”

“아,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이내 오성춘이 밝은 얼굴로 대답하자 윤만석 검사가 다른 세 사람을 돌아본다.

“혹시 질문 있나?”

“없습니다.”

호식이 대표로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인 윤만석 검사가 말을 잇는다.

“그럼 이 층 끝에 있는 회의실에서 기다리도록 하게. 앞에 있는 이쁜 실무관이 잘 안내해 줄 거야.”

“예!”

힘차게 대답한 오성춘이 가장 먼저 사무실을 나갔고 곧바로 김영재가 뒤따라 나갔다.

호식마저 나가고, 도윤도 사무실을 나서려다 멈칫한다.

“강도윤이라고 했지?”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윤이 몸을 돌렸다.

“예, 선배님.”

잠시 도윤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던 윤만석 검사가 이내 입을 열었다.

“…기대하겠네.”

“아… 예!”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도윤이 밝게 미소 짓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덜컥.

도윤이 밖으로 나가자 혼자 남은 사무실에 묘한 적막감이 내려앉는다.

“올해 연수생들은 재미있군.”

피식 웃은 윤만석 검사가 이윽고 쌓아 둔 서류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도윤이 밖으로 나오자 문 앞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던 호식이 의아한 얼굴로 묻는다.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먼저 갔지. 그보다 대체 감상문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거지? 초등학교 때 독후감 같은 건 아닐 테고, 최소 대학교 때 레포트 수준으로는 써야겠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리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입을 열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뭐?”

순간 귓가를 때리는 말에 멈칫한 호식은 어느새 저만치 앞으로 걸어가는 도윤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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