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테스트
“늦었군.”
도윤과 호식이 회의실에 들어서자 안경을 쓴 차가운 인상의 30대 초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꼭 못 배운 것들 티를 내는구만…….”
오성춘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용케 들은 호식이 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도윤이 팔꿈치로 호식을 툭 하고 쳤다.
오성춘, 김영재와 비교하면 불과 3분 차이다.
그 3분 때문에 직접적으로 ‘늦었다’라는 말을 내뱉는 것만 봐도 눈앞의 남자가 얼마나 시간을 민감하게 생각하는지 도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31기 연수생 강도윤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도윤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마찬가지로 31기 연수생 장호식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흠…….”
잠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던 남자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내 소개를 하지. 부산 동부지검 박봉준 검사다. 참고로 나는 25기.”
“반갑습니다!”
박봉준 검사의 말에 네 사람이 동시에 인사했다.
그런 네 사람을 잠시 둘러보던 박봉준 검사가 말을 잇는다.
“사실 나는 지금 아주 당황스러워. 부장검사님이 나한테 전화로 한 말이라고는 ‘회의실로 가 봐라, 지금 하는 사건 거기 있는 애들한테 설명해 주고 수사에 참여시켜 줘라’밖에 없었거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박봉준 검사가 계속 말한다.
“들어서 알겠지만, 내가 지금 맡고 있는 사건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솔직히 부장검사님이 무슨 생각이신지 잘 모르겠어. 연수생 실습 겸 교육 차원이라면 책상에 앉혀 놓고 공소장 쓰는 연습이나 가르치면 충분할 텐데 말이야.”
“저…….”
“……?”
“부장검사님이 저희를 테스트한다고 하셨습니다.”
“테스트?”
김영재의 말에 박봉준 검사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한다.
도윤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소용없었다.
“예, 이번 사건을 통해 보고 느낀 감상문을 보고 인원 배분을 결정하시겠다고…….”
이내 눈치 없는 김영재가 내막을 설명하자 도윤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좋지 않았다.
영감님들, 그러니까 검사들 대부분은 프라이드가 상당히 높았다.
검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자존심도 높지만, 특히 젊은 검사들은 자신이 맡은 사건에 대한 고집과 집착이 상당했다.
그리고 이 고집과 집착이 종종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니까 내 사건, 그것도 현재 수사 중인 강력 사건을 고작 애들 테스트용 수준으로 취급한다는 건가?”
“아…….”
이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을 짓는 김영재였다.
주먹을 꽈악 말아 쥔 채 온몸을 부르르 떠는 박봉준 검사를 보며 도윤이 급히 입을 열려고 했다.
“저…….”
“선배님!”
오성춘이 도윤보다 한발 빨랐다.
순간 큰 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오성춘을 박봉준 검사가 가라앉은 눈빛으로 바라본다.
“제가 부장검사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꼭 한번 강력 사건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그랬더니 마침 유능한 부하 검사가 있다며 선배님에게 저희를 보낸 겁니다.”
“니가?”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오성춘을 보며 박봉준 검사가 여전히 싸늘한 눈빛으로 묻는다.
“선배님, 혹시 정문석 변호사를 아십니까?”
“문석이? 니가 문석이를 어떻게 알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온 이름에 박봉준 검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다.
“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는데, 역시! 문석이 형은 저희 회사 소속 변호사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친분이 있는데, 그래서 선배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주 유능한 인재라구요.”
“문석이 회사라면… 명성? 명성이 자네 회사라고?”
이제는 박봉준 검사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아, 정확히는 제 조부님 회사지요. 저는 그저 그분의 철없는 손자 중 한 명일 뿐입니다.”
겸손한 듯 대답하지만 오성춘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이런, 이런. 오 회장님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지. 오 회장님 손자가 사시를 패스한 수재라니, 정말 복도 많으시군. 하하하하하.”
잠시 눈을 반짝인다 싶더니 박봉준 검사가 유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순식간에 뒤바뀐 분위기에 도윤이 적응이 되지 않는 듯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가 아는 부장검사님은 그런 말씀을 하실 분이 아닌데… 혹시 자네, 곤란한 처지에 처한 동기를 구해 주려고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건가?”
“…….”
자신의 물음에 부끄러운 듯 말없이 머리를 긁적이는 오성춘을 보며 박봉준 검사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역시 그렇군! 머리도 좋은데 인성까지 이리 훌륭하다니, 오 회장님이 이뻐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
“과찬이십니다, 선배님.”
“하하하하. 귀한 손님 앞에 두고 내가 실례가 많았군. 다음에… 오 회장님께 안부 좀 잘 전해 주게.”
“이미 할아버지께서도 선배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문석이 형이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거든요.”
“그래? 그 친구한테 밥 한번 사야겠구만. 하하하하!”
이후로도 오성춘과 박봉준 검사의 시시콜콜한 얘기가 계속되었다.
회의실 내에 박봉준 검사의 웃음소리가 연신 끊이질 않았다.
이제는 오성춘과 박봉준 검사의 독대로 봐도 될 듯하다.
그 상황에 도윤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전형적인 간신배 스타일이군.’
박봉준 검사를 한 마디로 평가한 도윤이 그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그 시선을 느낀 박봉준 검사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뭔가? 할 말 있나?”
“…아닙니다.”
“아니라기에는 표정이 상당히 불만스러운데… 뭐,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나?”
“너무 저희 얘기만 했나 봅니다. 저 친구가 상당히 바쁜 친구거든요.”
박봉준 검사의 물음에 오성춘이 대신 대답했다.
“응? 바쁘다고?”
“예, 저래 보여도 저 친구, 저희 기수 수석으로 입학한 친구입니다. 아마 지금 흘러가는 일분일초가 아까울 겁니다.”
“오, 수석이라고?”
박봉준 검사가 조금은 감탄한 듯한 표정을 짓자 오성춘이 재빨리 말을 잇는다.
“예, 심지어 고. 졸. 출신으로 말이죠. 대단한 친구입니다.”
“…고졸?”
순간 박봉준 검사의 얼굴에 경멸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물론 도윤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뭐, 아무튼 내가 너무 내 욕심에 귀한 손님을 오래 붙잡아 두고 있었군. 하하하, 빠르게 설명해 주겠네.”
박봉준 검사가 이제는 도윤과 호식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성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손에 쥔 사진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쪽 볼에 십자 흉터가 상당히 인상적인 남자가 그 사진에 있었다.
“김두식이, 올해 서른 살로 필로폰 중간 판매상인데 부산 지역 중소 규모 조직폭력단인 망치파의 행동대장이기도 해.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서면에 있는 오이 나이트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는데…….”
이윽고 박봉준 검사가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 *
“재수 없는 새끼!”
부산 동부지검 인근 까페에 앉아 아이스티를 홀짝이던 호식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제 어쩔 거야?”
“뭐가?”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테스트 말이야! 현장에는 절대 데려가 줄 수 없다고 했지만, 꼬라지 보니 오성춘, 김영재 저 새끼들만 데리고 갈 게 뻔하잖아.”
“현장에 가 볼 생각이었어?”
“저 새끼들도 가는데 당연히 가야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쟤들한테는 절대 안 진다!”
호식의 말에 도윤이 피식 미소 지었다.
“야! 웃음이 나와? 빨리 대책을 마련…….”
“뭐가 걱정이야? 가고 싶으면 우리끼리 가 보면 되는 거지.”
“뭐?”
“말했잖아.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가야 된다고. 니 말대로 생각이 있으면 현장에는 무조건 가 봐야지.”
“그러니까 어떻게!”
“얼굴도 알고 있겠다, 위치도 알고 있겠다, 주로 출몰하는 시간이 저녁 9시 이후라는 것도 알고 있겠다. 이거면 다 아는 거나 마찬가지지, 뭐가 더 필요해?”
이어지는 도윤의 물음에 호식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니까 우리 둘이 가자고?”
호식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속전속결. 오늘 저녁 9시까지 오이 나이트 앞에서 보자. 먼저 간다.”
“야, 야! 잠깐만!”
이내 따라 일어난 호식이 급히걸음을 옮겼다.
* * *
저녁 8시 50분, 오이 나이트 앞.
“여어!”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은 캐쥬얼한 차림의 도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호식을 발견하고는 멈칫한다.
마치 물고기 비늘 같은 재질에 은빛으로 과하게 반짝이는 옷을 입은 호식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와? 이 지역 말로다가, 오늘 내 좀 까리하나?”
이 대 팔 머리를 스윽 매만지며 말하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대답한다.
“아니, 꾸리하다.”
“뭐라? 하, 나 참. 니가 공부만 해서 그런지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모르네.”
“니를 보니 알고 싶지가 않네.”
“아니, 니가 이 옷을 몰라서 그러는데…….”
호식이 말을 잇던 그때 누군가 뒤에서 툭 하고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아, 아저씨! 사람을 쳤으면 사과를…….”
“뭐고, 이 은갈치는.”
험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 30대 초반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순간 도윤과 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모습을 겁먹은 것으로 오해한 남자가 피식 웃으며 손을 휘휘 젓는다.
“마, 니 운 좋네. 오늘 행님이 기분이 좀 좋다. 그냥 가자이?”
이윽고 남자가 나이트 안으로 사라지자 도윤과 호식이 서로를 바라본다.
“김두식!”
동시에 소리친 두 사람이 김두식을 뒤쫓아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스윽.
그때 나이트 기도(문지기)가 두 사람을 가로막는다.
“……?”
잠시 인상을 찌푸린 채 호식의 옷을 바라보던 기도가 이내 도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길을 비켜선다.
“…뭐야?”
“일단 가자.”
짧게 대답한 도윤이 빠르게 나이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윤과 호식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나이트클럽의 단골 노래, 사요나라 리믹스가 귀청을 가득 때렸다.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야!?”
호식의 말을 듣지 못한 듯 주변을 휘휘 둘러보던 도윤이 딱 하고 시선을 멈췄다.
“저기 있다!”
중앙과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한 김두식을 발견한 도윤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같이 가!”
이내 호식도 도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도윤이 김두식의 테이블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호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조심한다지만, 이건 너무 먼 거 아니야?”
“기다려 봐.”
도윤이 품에서 무언가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온다.
“아이고, 행님들! 두 분이서 오셨습니까!?”
“뭐… 뭐야?”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남자가 살가운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박차노?”
사내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확인한 호식이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먼 바다 건너 에레이에서 온 광속의 웨이터! 박차노라고 합니다. 왜 광속이냐? 부킹 속도가 아주 그냥 라이징 빼스트볼 구속보다 더 빠르거든요! 백이십 퍼센트 성공률도 자랑합니다!”
“부킹?”
호식이 조금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도윤을 돌아보자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웨이터를 바라본다.
“지금은 이 친구랑 할 얘기가 있어서. 조금 있다가, 괜찮죠?”
말을 마침과 동시에 도윤이 만 원짜리 몇 장을 웨이터에게 건네줬다.
“즐거운 시간 되시고, 언제든지 찾아 주십쇼, 행님!”
이내 웨이터가 빠르게 사라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호식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 호식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청각의 비술”
순간 도윤의 눈빛에 초록빛 광채가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청각의 비술 능력을 사용하였습니다!]
[현재 청각의 비술의 레벨은 1입니다.]
[5미터 이내의 범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마치 바로 옆에서 듣는 것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대상자와 범위 사이에 장애물이 있을 시 90퍼센트 효과가 감소합니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
새하얀 공간이 아닌, 처음으로 현실에서 보이기 시작한 홀로그램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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