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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4화 (14/174)

14화 오이 나이트에서

‘어떻게 현실에서 이 홀로그램이 보이는 거지?’

크게 당황한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눈앞의 홀로그램은 마치 꿈을 꾸듯 몽롱한 상태에서 ‘그 공간’에 있을 때만 보였다.

마치 현실같이 생생한 꿈이었지만 단 한 번도 실제 현실에서 홀로그램이 보였던 적은 없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눈앞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도윤이 홀린 듯 그곳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마치 컴퓨터에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라도 되는 양 2줄 정도의 짧은 설명과 함께 우측 상단에는 가위(x) 표시까지 있었다.

[듣고자 하는 범위를 지정해 주세요!]

떠오른 메시지 홀로그램 몇 개를 지우자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윤이 홀로그램에 손을 가져다 댄 채 김두식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자 그 근방의 바닥만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사방에서 나이트 불빛이 껌뻑였지만 조금만 집중해도 나이트 불빛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묘한 빛이다.

순간 당황한 도윤이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너, 뭐 하냐?”

“…어?”

“뭐 하냐고. 혼자 놀란 표정을 짓고서는 갑자기 빈 허공에 삿대질을 하질 않나, 몰래 온 여자 친구라도 본 것처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대지를 않나.”

호식의 말에 도윤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너, 저기 있는 불빛 안 보여?”

“무슨 불빛?”

도윤이 가리키는 김두식의 테이블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던 호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따, 확실히 중앙이 불이 삐까번쩍하기는 하네, 우리만 음침한 곳에서 이게 뭐냐. 어둠의 자식들도 아니고.”

“아니, 김두식이 있는 테이블 밑에 저 녹색 불빛 말이야.”

“뭐? 녹색 불빛?”

마침 스테이지는 블루스 타임이라는 디제이의 외침과 함께 옅은 붉은빛이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온통 야시꼬롬한 불빛뿐인데, 녹색 불빛이 어디 있다는 거야?”

이어지는 호식의 반문에 도윤은 마침내 확실히 깨달았다.

눈앞의 홀로그램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녹색 빛도 모두 자신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을.

“야, 그러지 말고 우리도 나가서 궁둥짝 한번 흔들어 재껴 볼까? 두식이도 당장 어디로 갈 것 같지는 않…….”

“잠시만.”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다 댄 도윤은 눈앞의 홀로그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너무 멉니다. 저곳을 범위로 지정할 시 어느 정도 접근해야 듣고자 하는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곳으로 범위를 지정하시겠습니까? Y/N]

도윤이 Y로 손을 가져다 대자 또다시 홀로그램이 떠오른다.

[범위가 설정되었습니다!]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지워 내자 또다시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마약 중간판매상 김두식을 검거하라!]

[퀘스트 보상: 레인보우 주사위 1개]

새롭게 떠오른 홀로그램들을 재빨리 지운 도윤이 입을 열었다.

“나 화장실 좀.”

“그려.”

어느새 음악에 몸을 맞춰 몸을 비비적대는 남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대화에 집중해야 하니까…….’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이내 무리에 섞여 들어, 김두식이 있는 테이블 뒤쪽 5미터 가까이 접근했다.

도윤이 마치 춤을 추는 듯 몸을 앞뒤로 움직이면서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니 빨통은 언제 봐도 지기네.”

이내 마치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귓가를 때리는 목소리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쫌 크제? 딱 오빠야가 좋아할 만한 크기 아니가? 막 내한테 반할 것 같제?”

“지랄 똥을 싸고 있네.”

“오빠야, 근데 있다 아이가…….”

멀리서 바라보니 젊은 여자가 김두식의 팔을 가슴으로 감싸 안으며 바짝 몸을 붙여 간다.

“술 있제?”

“흐흐, 와? 오늘 좀 땡기는 갑지?”

김두식이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젊은 여자의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아잉, 오빠야. 내만 좋자고 내가 이러나? 오빠도 좋다 아이가.”

“그건 그렇지.”

“근데 오빠야.”

젊은 여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짝대기 좀 많이 있나?”

“허? 가씨나 이거, 오늘 와 이리 밝히샀노. 와? 오늘 밤을 샐 끼가? 내 함 죽이 볼라고?”

“아니 그게 아니고, 내 친구들도 오빠야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가지고.”

“친구들? 와, 술 필요하다나?”

“어, 이번 주말까지 꼭 좀 구했으면 하던데…….”

젊은 여자가 말끝을 흐리자 잠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김두식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 내가 가꼬 있는 짝대기가 20개 정도. 다다음 주나 되면 더 생길 것 같고.”

“20개!? 만땅으로 채워서?”

기뻐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도윤의 귓가를 때린다.

“만땅은 니미, 이기 도랐나. 당연히 만들어 놓은 기지.”

“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여자를 보며 김두식이 말을 잇는다.

“니 친구라고 에누리 안 해 준다이. 정가로 다 받을 기다.”

“피. 기대도 안 했다. 언제 보자고 할까?”

“내일 새벽 2시에 요서 보자 캐라. 보는 눈 많응깨내 머씨마들 우르르 끌고 오지 말고, 안 잡아무니까 거래할 아 하나만 오라 카고.”

“여기? 사람들도 많은데 쫌 위험한 거 아니가?”

“가씨나, 뭘 모르네. 원래 술잔 밑이 어두운 기다. 요래 사운드 빵빵하고 이리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모 정신 차리기도 힘들 긴데, 어떻게 잡을 기고?”

“오빠야, 술잔이 아니고 등잔이다.”

“…….”

여자의 말에 김두식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김두식이 이내 입을 열었다.

“몇 개 준비하모 대노?”

김두식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여자가 대답한다.

“일단 다섯 개 정도면 될 것 같다.”

“카드 안 돼요? 이 지랄 하면 지기 삐는 거 알제? 짝대기 1개에 빳빳한 배춧잎 10장, 준비해 놓으라 캐라이.”

“피, 걱정도 팔자다. 알겠다.”

“그건 그렇고…….”

팔짱을 낀 채 입을 삐죽이 내미는 여자를 보며 김두식이 음흉한 미소로 팔을 여자의 어깨에 걸쳤다.

“오늘 한따까리 됐나?”

어깨에 걸친 손으로 가슴을 주물럭거리는 김두식을 보며 여자가 손을 탁 하고 쳤다.

“치아라. 오빠야, 요새 영 시원치 않더라.”

“내 오늘 청바지도 준비해 왔다이.”

또다시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려는 김두식을 밀어내려던 여자가 멈칫한다.

“청바지?”

“흐흐흐, 와. 좀 혹하나?”

“그건 또 언제 구했대.”

이내 김두식의 손에 몸을 맡긴 여자가 살포시 안겨 들었다.

“아따, 좆이 뻐근하네. 안 되긋다, 나온나.”

“어머, 어머.”

김두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잡아끌자 여자가 꺅꺅거리며 따라나선다.

그 모습을 보며 그대로 따라나서려던 도윤이 멈칫한다.

‘놈은 모텔로 갈 확률이 높다. 운 좋게 모텔 안으로 들어가 놈을 붙잡더라도 필로폰 소지죄밖에 안 돼. 하지만…….’

잠시 김두식과 여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도윤이 이내 호식이 있는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 * *

부산 연산동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놀이터.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사방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 고요한 모래밭에 간간히 삐걱대는 그네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때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가 놀이터의 적막감을 깨부순다.

“뭣!? 그럼 바로 뒤쫓아서 모텔로 가야지!”

“목소리 좀 낮춰!”

도윤의 말에 급히 입을 틀어막은 호식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는다.

“필로폰 투약하고 그… 흠, 성… 관계를 할 게 거의 확실한데 바로 현장을 덮쳐야지. 왜 안 쫓는 건데?”

호식의 물음에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대답한다.

“방 잡고 둘이서 떡을 친다고 쳐. 그 방에는 어떻게 들어갈 건데? 영장도 없는데?”

“그건……”

잠시 말끝을 흐리던 호식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텔 주인한테 양해 좀 구하면… 안 될까?”

“남의 장사 말아먹을 일 있냐? 그리고 검사도 아니고 공무원증도 없는 사법연수생이 방에 좀 들여보내 달라고 하면, 과연 주인이 들여보내 줄까?”

“음…….”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 놈을 잡는 게 더 나을 거야.”

“엉?”

“운 좋게 오늘 놈을 잡더라도 필로폰 소지, 잘 풀리면 투약 혐의까지 엮을 수 있겠지. 하지만 딱 거기까지야.”

“…….”

“반면에 내일 현장을 덮치면… 필로폰 매매 혐의까지 추가, 그리고 하루 동안 충분히 준비도 할 수 있지. 부장검사님께 조언도 구할 수 있고 말이야.”

“아……!”

이내 무릎을 탁 치며 감탄사를 터뜨린 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데 내일 놈이 필로폰을 매매한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호식의 물음에 잠시 멈칫한 도윤이 이윽고 대답한다.

“화장실 가는 길에 운 좋게 김두식이 여자와 대화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던데?”

순간 눈을 반짝이는 호식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들은 대화 내용을 그대로 말해 줬다.

지식의 대가라는 스킬이 있는 도윤에게 불과 몇 시간 전에 들은 대화 내용을 그대로 들려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도윤이 설명하는 동안 호식은 손뼉을 치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마침내 모든 설명을 다 들은 호식이 이때다 싶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짝대기가 뭐야? 만땅으로 채운다는 말은 뭐고?”

“뽕쟁이들이 쓰는 은어야. 짝대기는 주사기, 그러니까 주사기 안에 필로폰을 가득 채우는 걸 만땅으로 채운다고 표현한 거지.”

“아! 그럼 만들어 놓은 거라는 건……?”

“물에 희석시킨 필로폰이 담긴 주사기. 보통 물을 제외한 필로폰 1회 투약분이 0.03그램이야. 그걸 10만 원에 판다는 거고.”

사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도윤도 조금 놀랐다.

회귀 전 필로폰 1회 투약분이 20만 원 안팎으로 거래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금은 그 절반 가격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택시 기본요금도 1300원 하는 시절인데…….’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피식 웃었다.

“그럼 청바지는?”

“그거?”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 뭔데? 아, 답답해! 빨리 말해.”

“그건 말이야…….”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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