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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5화 (15/174)

15화 그런 게 검사입니까?

“비아그라”

“뭐?”

“청바지는 비아그라를 뜻하는 은어라고. 청색이거든. 몰라?”

“아니 그건 알겠는데, 왜…….”

얼굴을 붉히며 말끝을 흐리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왜긴 왜겠어. 10분 떡칠 거 1시간 떡치게 해 주는데 김두식뿐만 아니라 남자들이 환장을 하는게 당연하지.”

도윤의 대답에 호식의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너도 필요해?”

그런 호식의 새로운 모습에 도윤이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으며 물었다.

“변… 변태 새끼”

“변태? 뭐가?”

“유교의 종주국, 자랑스러운 단군의 자손으로서 어떻게 떡… 떡을 친다느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

“뭐가? 그럼 섹스라고 하랴?”

“으아아아아악!”

도윤의 말에 순간 호식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모습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재벌집 자식들은 문란한 놈들이 유독 많은데, 이놈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단 말이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혼전순결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질 정도로 대한민국은 성 문화에 대해 꽤나 폐쇄적이었다.

물론, 도윤의 회귀 전인 2017년에는 일부 사람들이 원나잇을 하나의 문화로 생각할 정도로 상황이 변화되었지만 그것은 조금 더 훗날의 이야기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호식은 지나칠 정도로 성에 대한 말에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이내 호식이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조심스럽게 내리자 도윤이 입을 열었다.

“섹스”

“……!”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섹스”

“이 미친놈아!!!!!”

달빛이 어슴푸레 내려앉은 밤, 고요한 놀이터에 호식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똑똑똑.

“들어와.”

나른한 오후, 부산 동부지검 1부장검사실.

윤만석 검사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림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린다.

“부장님! 됐습니다!”

들뜬 목소리로 소리치며 들어서는 박봉준 검사의 뒤로 오성춘과 김영재가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은 채 따라 들어선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나?”

윤만석이 의아한 얼굴로 박봉준을 바라보자, 먼저 자리하고 있던 도윤과 호식도 고개를 돌렸다.

그때서야 도윤과 호식을 발견한 박봉준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윤만석을 바라본다.

“김두식이 필로폰을 매매하고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이제 바로 정식 수사 들어가서 김두식이 통화 내역 따고 계좌 추적하면 검거는 시간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범죄 혐의가 의심된다는 수사관의 추측만으로는 사건을 입건하여 정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

전쟁에서 명분이 중요하듯, 훗날 표적수사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수사를 위한 최소한의 수사단서가 필요하다.

112 신고나 고소, 고발도 모두 이 수사단서에 해당되는데, 이 경우에는 제3자의 진술, 즉 범죄첩보다.

“그래?”

윤만석의 반문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박봉준이 뒤에 선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이 친구들하고 어제 밤새 발품 팔고 돌아다녀서 확보한 진술입니다. 옆에서 저를 많이 도와줬는데, 애들이 센스도 있고 눈치도 빨라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유능한 인재들입니다.”

“음…….”

박봉준의 말에 윤만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오성춘과 김영재가 활짝 웃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 선배님만 따라다닌 것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오성춘이 짐짓 겸손을 떨자 김영재가 말을 받았다.

그 가식적인 모습에 한쪽에 앉아 있던 호식이 팍 하고 인상을 구겼다.

“가증스러운 것들…….”

호식이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 있던 도윤만이 그 소리를 듣고는 피식 미소 지었다.

“고생들 했군. 그런데 왜 여기 있는 친구들은 빼고 그 친구들만 데리고 갔나?”

윤만석 검사의 물음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박봉준 검사가 대답한다.

“저는 수사를 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의지가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죠.”

“…….”

“그런 의미에서 여기 있는 두 사람은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상당히 강한 친구들이었습니다. 어제 곧바로 저를 따로 찾아와 스스로 배움을 청했으니까 말입니다. 저기 있는 친구들과는 다르게요.”

실제로는 박봉준이 명성이라는 이름에 조금이나마 줄을 대기 위해 먼저 나선 것이지만, 김영재와 오성춘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이냐는 듯 눈빛으로 물어 오는 윤만석 검사를 보며 오성춘과 김영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수사를 배우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

순간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호식의 어깨를 도윤이 지긋이 잡아 눌렀다.

절레절레.

이내 도윤이 조용히 고개를 젓자 호식이 으득 이를 갈았다.

“젠장.”

호식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리는 모습을 발견한 오성춘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김영재도 마치 호식이 보라는 듯 가운뎃손가락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저 개…….”

또다시 발작하려는 호식을 일별한 도윤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배움을 청하는 입장에서, 스스로 나서지 않은 태도에 대해 질책하시는 거라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하지만 수사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없다는 얘기는 인정 못 하겠습니다.”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박봉준 검사가 사나운 눈초리로 도윤을 노려본다.

“인정 못 한다?”

“예”

“그 이유는? 마음만은 의지와 열정이 넘친다는 진부한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군. 나는 말뿐인 인간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내 뒤에 있는 이 친구들은 어려울 수도 있는 나를 직접 찾아옴으로써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였지. 그에 반해 수사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있다는 너는 어떤가?”

“선배님을 찾아뵙지 않으면 수사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없는 겁니까?”

박봉준의 물음에 도윤이 반문했다.

“뭐?”

“그렇게 들려서요. 저는 단지 선배님을 찾아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배울 게 없으니까요.”

도윤과 박봉준의 대화를 자못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윤만석도 이번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냐?”

“수사는 물론 검사로서의 마음가짐까지, 선배님에게는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해서 찾아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뿐입니다.”

도윤의 말에 박봉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대한민국 검사에게 명성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대단합니까?”

“뭣!?”

이제는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기 시작하는 박봉준을 일별한 도윤이 윤만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아니 자정이 지나고 나서니까 내일 새벽이군요. 2시에 김두식이 필로폰을 매매할 예정입니다.”

“……!”

예상치 못한 도윤의 말에 박봉준이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인가?”

“어젯밤에 저희 둘은 김두식이 자주 간다는 나이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도윤이 어제 있었던 일을 윤만석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물론 호식에게 말한 대로 적당한 거짓말을 섞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도윤의 설명을 듣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터뜨리기도 하던 윤만석이 마침내 설명이 끝나자 멍한 표정을 짓는다.

“현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긴 했지만… 설마 임용도 안 된 사법연수생이 근무시간도 아닐 때 그 먼 곳까지 갔다 왔을 줄은 몰랐군.”

이내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윤만석을 보며 박봉준이 옆에 있는 벽을 쾅 하고 내려친다.

“이건 명백한 징계감입니다!”

윤만석이 자신을 돌아보자 박봉준이 말을 잇는다.

“한참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그것도 강력 사건요! 검사도 아닌 실습생 따위가 아무런 말도 없이 독단적으로 나설 일이 아닙니다. 애들 장난이 아니란 말입니다!”

“…….”

“만약 김두식이 우리가 뒤를 캔다는 사실을 눈치챘으면 어쩔 뻔했겠습니까? 반드시 징계를 줘야 합니다!”

흥분해 소리치는 박봉준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이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럼…….”

“하지만!”

“…….”

“징계 이야기는 지금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우선 이번 수사를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니까. 무엇보다 자네가 강조한 수사에 대한 의지와 열정에서 비롯된 행동 아닌가?”

“과하면 독이 되는 법,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은…….”

“그만!”

윤만석의 일갈에 박봉준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하지. 자네는 이만 돌아가서 현장 덮칠 준비부터 확실히 하게.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현행범 체포만큼 확실한 방식은 없으니까.”

이어지는 윤만석의 말에 잠시 도윤을 노려보던 박봉준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나가 보게.”

“…….”

이내 짧게 고개를 숙인 박봉준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너희들도 따라가서 박검 도와줘.”

“아, 예. 알겠습니다.”

멍하니 서 있던 오성춘과 김영재도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급히 박봉준을 따라나섰다.

이제는 세 사람밖에 남지 않은 사무실에 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하하하… 저희도 이만 가 보겠…….”

“앉게.”

“옙!”

윤만석의 말에 호식이 곧바로 제자리에 앉았다.

또다시 어색한 침묵 속에 마침내 윤만석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윤만석이 도윤과 두 눈을 마주하며 말을 잇는다.

“어떤 마약이 있는지, 그 마약의 특징이 뭔지는 수석이나 되는 사법연수생이 충분히 알 수 있지. 하지만 마약사범들이 쓰는 은어는 일반인들이 알기 힘들어.”

“…….”

“차가운 술이야 혹시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나 생각했지. 하지만 자네는 그뿐만 아니라 짝대기, 청바지와 같은 다른 은어는 물론 이쪽 속사정도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군. 마치 직접 수사를 해 본 사람, 혹은… 약이라도 해 본 사람처럼.”

콰앙!

“부장검사님!”

순간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난 호식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런 호식에도 아랑곳없이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오해하진 말게. 이 직업으로 먹고살다 보면 늘어나는 게 의심밖에 없어서… 오죽하면 검사들이 제일 많이 앓는 병이 의심병이겠나?”

“…….”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예리하게 눈을 빛낸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자네, 정체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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