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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6화 (16/174)

16화 호구(虎口)

“아버지가 강력계 형사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요.”

“……!”

“교통사고였는데, 당시 상대 운전자가 술에 만취한 상태였습니다. 그게 심신미약 상태로 받아들여져 징역 4년을 선고받았는데… 그것도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대형 로펌 변호사까지 고용해 항소하더군요. 사망자가 2명이나 있었는데도요.”

“2명이라면…….”

“조수석에 어머니도 같이 타고 계셨습니다.”

“…….”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듯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도윤이 이윽고 말을 잇는다.

“결국 항소가 받아들여져 그 사람은 징역 3년 6개월 형이 확정되었는데, 그마저도 모범 수용수로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석방되었습니다.”

“미안하네. 내가 괜한 걸…….”

윤만석이 자못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도윤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잇는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많은 걸 보고, 듣고, 배웠습니다.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수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름대로 혼자 공부도 하면서 수사관이라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은 알기 힘든 마약 은어 따위들도 알게 된 것이구요.”

“그랬군. 의심해서 미안하네.”

윤만석이 곧바로 사과하자 옆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호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하지만… 사과와는 별개로 자네의 언행은 명백히 잘못되었네.”

“흐읍!”

순간 호식이 다시 숨을 들이마셨다.

“실습 나온 사법연수생이 한참 선배인 현직 검사를 들이받다니, 기가 막히는군. 자네, 제정신인가?”

“그건…….”

“벌써부터 싹이 보인단 말이지.”

“아닙니다.”

“아니다? 정식 임용도 되기 전부터 이러는데, 임용된 이후에는 어떨까?”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내 도윤이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나도 아네.”

“……?”

뜬금없는 윤만석의 말에 도윤이 숙였던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야망이 큰 친구네.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도는 대충 알고 있네.”

“…….”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자네 언행은 명백히 잘못되었네.”

“예…….”

“이번 건은 나중에 실습생 태도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겠네. 불만 있나?”

윤만석의 말에 호식이 움찔 몸을 떨었다.

“없습니다.”

곧바로 대답하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이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튼 두 사람 모두 중요한 첩보를 입수하느라 고생했네. 늦은 시간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오후에는 집에 가서 좀 쉬도록 해. 향후 계획은 나중에 알려 줄 테니 이만 나가 보게.”

윤만석의 축객령(逐客令)이 떨어지자 호식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실례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호식이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는 도윤의 소매를 급히 잡아끌었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도윤도 윤만석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실례 많았습니다.”

이윽고 호식이 먼저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고, 도윤도 몸을 돌린다.

“나는.”

“……?”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개인적으로 자네 같은 친구가 마음에 드네.”

“…….”

“지금 그 마음, 변치 말게.”

윤만석의 말에 도윤이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도윤마저 출입문 밖으로 나가고, 이제는 커다란 사무실에 홀로 남은 윤만석이 출입문을 응시한 채 옅게 미소 지었다.

“초지일관(初志一貫), 어렵겠지만… 변하지 말게.”

* * *

“옴마니 반메홈”

검찰청 정문을 완전히 빠져나온 호식이 한창 사극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염불을 외며 도윤을 돌아본다.

“너랑 같이 다니면 내가 제명에 못 살 것 같다.”

호식의 말에 도윤이 피식 웃었다.

“웃어? 이게 웃을 일이야? 봉준이가 아무리 밥맛이라지만, 현직 검사를 면전에서 그런 식으로 까 버리다니, 제정신이야?”

“뭐, 잘 넘어갔잖아?”

“미친, 잘 넘어가? 누구는 부장검사님이 어떤 징계를 줄까 조마조마해 미칠 것 같았는데…….”

“부장검사님은 처음부터 징계 주실 생각은 없었을걸?”

자신의 말을 끊고 대답하는 도윤을 보며 호식이 멈칫한다.

“뭐?”

“애초에 징계를 주실 생각이었다면 첩보 물어 오겠답시고 둘이서 나이트 간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어.”

“그걸 말이라고… 그런데, 정말이야?”

"뭐가?"

"그…· 부모님 교통사고 말이야."

"아아."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버지 직업만 빼고는 사실이니까.'

"그래."

도윤의 짧은 대답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그, 뭐냐…· 괜…·찮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부모님 돌아가신지가 언제적 얘긴데…· 그 얘긴 그만하고, 지금부터 준비 좀 하자."

“무슨 준비?”

도윤의 말에 호식이 반문했다.

“이왕 일하는 거 확실하게 해야지.”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고개를 갸웃했다.

“범죄 시간, 장소, 피의자까지 모조리 특정했는데 여기서 무슨 준비를 더 해?”

“이런 말이 있어.”

“……?”

“내 손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내 것이 아니다.”

“…….”

“범인도 똑같아. 내 손안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잡은 게 아니야. 확실히 하자고.”

“그러니까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확실히 하자고?”

호식의 반문에 도윤이 힐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다.

시곗바늘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랜만에 스타 한판 하러 갈까?”

“뭐?”

“가자.”

말을 마친 도윤이 자연스럽게 호식의 차량으로 다가간다.

“아주 그냥 지 차네, 지 차여.”

그 모습을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본 호식이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떠오르는 태풍저그가 뭔지 보여 주마.”

“콩은 까 줘야 제맛이지.”

“……?”

도윤의 말에 호식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차량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대체 여길 왜 벌써 왔는데?”

밤 8시가 되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한 호식이 피곤한 표정으로 묻는다.

호식과 도윤의 눈앞에서 화려한 네온사인이 빛난다.

‘오이 나이트’라는 이름의 간판이 달린 커다란 건물.

슬슬 인원이 유입되기 시작할 시간대였음에도 평일 밤이라 그런지 주변은 비교적 한산했다.

“들어가자.”

“뭐?”

도윤의 말에 호식이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직 김두식이 일 저지를 때까지 한참 남았는데?”

“미리 준비를 해야지.”

“그러니까 무슨 준비냐고요, 이 아저씨야.”

“일단 가.”

짧게 대답한 도윤이 나이트 내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짜 럴수, 럴수, 이럴 쑤!”

이내 호식이 머리를 벅벅 긁으며 도윤을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

건물 외부와 달리 내부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청을 찢을 듯한 사운드가 귀를 먹먹하게 만들자, 호식이 큰 소리로 외친다.

“대체 어딜 가는 건데!?”

호식의 물음에 말없이 손가락을 까딱인 도윤이 건물 내부를 크게 한 바퀴 둘러 걸음을 옮겼다.

한쪽에 위치한 화장실 내부는 물론이고 건물 내 구석구석을 모두 둘러본 도윤이 이윽고 호식을 향해 밖으로 나가자는 듯 손짓한다.

“진짜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도윤이 호식을 돌아본다.

“나 답답해 죽어 버릴 거 같으니까, 이제 진짜 말해라. 이게 뭐 하는 짓거리인지.”

호식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도윤을 향해 말했다.

그 모습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도윤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너, 혹시 호구(虎口)라는 말 아냐?”

이어지는 도윤의 물음에 호식의 속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진다.

“이런 씨 발라 먹을 십색볼펜 신발놈아! 봉준이도 개 취급 하더니 사람 졸졸 끌고 다니면서 친구까지 개 호구 취급…….”

“워, 워. 릴렉스.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것 아니니까 일단 진정해.”

게거품을 물고 늘어지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빠르게 말을 잇는다.

“니가 생각하는 그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말 그대로 범의 아가리,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말이지. 물론 그 대상은 김두식이고.”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멈칫하더니 깊게 심호흡한다.

“스읍~ 후우~ 그래서?”

“바둑에서도 이 호구라는 말이 있어. 바둑돌이 사방을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곳을 말하지.”

호식의 두 눈을 응시하며 도윤이 계속 말한다.

“그 호구에 상대방이 돌을 두면 상대방의 돌들을 바로 따낼 수 있는데, 호랑이 아가리처럼 튼튼한 모양이라 바둑에서는 이를 호구라고 불러.”

“…계속 해 봐.”

호식이 어느 정도 진정된 듯하자 도윤이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막다른 곳에 몰린 사람은 반드시 생로(生路)를 찾고자 하지. 특히나 중간판매상 정도의 위치에 있는 놈들은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결코 쉽게 포기하지 않아.”

“그 점을 이용하자?”

어느새 눈을 반짝이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김두식이 생로라고 생각한 곳을 호구로 만드는 거지.”

“아, 그래서 건물 내부부터 둘러본 거구나!”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호식이 손뼉을 짝 하고 치며 말을 잇는다.

“정문과 달리 뒷골목으로 이어지는 나이트 후문! 외부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건물 내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럼 우린 검찰에서 놓칠 때를 대비해서 후문만 지키고 있으면 되겠네?”

흥분하여 외치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부장검사님이라면 특별히 말씀드리지 않아도 후문에 인력을 배치해 둘 거야.”

“엥? 그럼 우리는…….”

“정문과 후문에 위치한 출입문을 제외하고, 다른 곳을 막고 있어야겠지.”

도윤의 말에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호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비밀 통로라도 있다는 거야?”

“뭐 그런 거창한 말보다는 개구멍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씨익 웃으며 호식에게 묻는다.

“니가 김두식이라면, 양쪽 출입문이 다 막힌 상황에서 어디로 도망갈까?”

“음… 개구멍이라고 했지? 혹시 뭐 벽면에 따로 구멍이라도 파 뒀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는 호식을 바라보는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설마.”

짧은 대답과 함께 잠시 뜸을 들이던 도윤이 이윽고 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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