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진입
어느덧 시간은 자정을 넘어 시곗바늘이 2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연산동에 위치한 오이 나이트 건물 외부에 일단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박검 쪽은 정문을 지키고 있도록 해. 후문은 형사들이 지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예? 그럼 현장 진입은…….”
윤만석의 말에 박봉준이 말끝을 흐렸다.
“수사관들 데리고 내가 직접 가지.”
일반적으로 일반 평검사 아래에는 1명 혹은 2명의 수사관과 1명의 실무관이 있다.
부산 동부지검도 대부분 한 검사실당 2명의 수사관, 1명의 실무관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 수사관과 실무관의 차이는 쉽게 말해 외근직과 내근직이다.
윤만석은 박봉준과 그 아래의 수사관 2명을 제외하고, 지원받은 수사관까지 총3명의 수사관만 데리고 직접 현장에 진입하겠다는 말이다.
“안 됩니다! 뽕쟁이인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상대는 부산에서 손꼽히는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입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자네 말대로 상대는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이네. 심지어 이 나이트는 그 망치파가 관리하고 있는 곳,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시꺼먼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의심하지 않겠나? 적대 세력에서 쳐들어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건… 그러면 차라리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아니, 현장에서는 정확한 타이밍과 판단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거야. 그런 거라면 차라리 자네보다는 내가 낫지 않겠나?”
“…….”
이내 박봉준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자 윤만석이 피식 웃으며 박봉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 아직 안 죽었네. 한창때야.”
“…….”
“장소가 장소다 보니 젊은 친구들만 골라 데려왔지만, 아마 놈 혼자서도 우리 네 사람 정도는 쉽게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을 거야. 그때는… 부탁하네.”
이내 한숨을 내쉰 박봉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 부장검사님. 그러면 저희는……?”
한쪽에 멍하니 서 있던 오성춘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들도 이곳에서 박검을 도와주게.”
윤만석의 말에 이번에는 김영재가 묻는다.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젊은 저희가 현장조로 투입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혹시 여기 있는 친구들이 늙었다고 에둘러 말하는 건가?”
윤만석의 반문에 몇몇 수사관들이 살포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김영재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하하하. 내가 불편해서 그러네. 실습 나온 연수생이 혹여 현장에서 다치기라도 하면 내가 뭐가 되겠나?”
“아…….”
이내 김영재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머지 두 친구가 안 보이는군.”
윤만석의 말에 이때다 싶은 표정으로 오성춘이 재빨리 대답한다.
“막상 현장에 나오려니 지레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아직 자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오성춘의 말을 김영재가 받는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던 박봉준도 입을 열었다.
“만약, 이 첩보가 거짓이라면…….”
오성춘과 김영재의 말에도 허허 웃고만 있던 윤만석이 멈칫한다.
“그저 점수를 따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고, 그게 들통날까 무서워 나오지 않는…….”
“그런 친구들은 아니네.”
윤만석의 단호한 말에 박봉준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박봉준의 두 눈을 마주하며 윤만석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사정이 있을 거야. 지금은 김두식이 하나만 생각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박봉준의 대답에 만족한 미소를 지은 윤만석이 좌측에 있던 네 명의 젊은 수사관들을 돌아본다.
“자네들은 지금부터 오랜만에 만나 나이트에 놀러 온 동창들이네. 나는 잘 아는 삼촌 정도로 하지. 들어가면 바로 테이블 하나 잡아 놓고 앉아. 술을 시켜도 좋고, 춤을 추고 있어도 좋아. 그편이 덜 어색할 테니까. 연기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어리바리하지 말고.”
“예!”
수사관들의 대답을 들은 윤만석이 다시 박봉준을 돌아본다.
“박검은 우리들이 모두 진입하고 나면 출입문 쪽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눈치껏 대기하고 있어. 일 터지면 전화할 테니까 귀는 항상 열어 두고.”
“예,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지.”
말을 마친 윤만석이 이윽고 출입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젊은 수사관들이 윤만석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남아 있던 몇몇 사람이 불끈 주먹을 말아 쥐었다.
반드시 필검(반드시 검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지!”
나이트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윤만석 일행을 가로막고 선다.
잠시 일행들의 면면을 살피던 문지기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쪽 분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문지기가 일행 중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나?”
의도지 않게 주변의 주목을 끌게 된 윤만석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문지기가 말을 잇는다.
“보아하니 연배도 있으신 것 같은데, 여기서 택시로 조금만 더 가면 호박나이트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시죠.”
“킥킥킥”
문지기의 말에 주변에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몇몇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호박나이트는 중년층, 특히 40대가 주 고객인 성인나이트였다.
불륜나이트로도 불리는 호박나이트는 중년층들의 원나이트 스탠드(One-night stand)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특히 유명했다.
오죽하면 ‘불륜의 시작은 호박나이트에서’라는 말이 생겼겠는가.
부들부들.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 있던 젊은 수사관들이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온몸을 부르르 떠는 윤만석을 발견하고는 표정을 굳힌 채 긴장하기 시작했다.
젊은 수사관들은 철혈의 검사로도 불리는 윤만석이 화가 났을 때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지기와 윤만석 일행들의 묘한 대치가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뒤에 손님들 기다립니다. 자꾸 물 흐리고 있을 거야? 앙!?”
문지기가 자못 위압적인 표정으로 고함친다.
“나도…….”
“……?”
마침내 윤만석이 입을 열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윤만석의 입으로 집중된다.
“나도 아직 30대야아아아아아!”
윤만석의 고함소리가 주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김두식이가 여자와 부대끼는 때에 특히 집중들 하세요. 지금부터 존칭은 생략합니다.”
결국 윤만석을 대신하여 나이트에 들어와 테이블을 잡고 앉은 박봉준이 수사관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현재 김두식은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예.”
수사관들의 대답에 박봉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듣는 귀가 많아. 동창생, 존칭은 생략”
이어지는 박봉준의 말에 유일하게 안경을 착용한 젊은 수사관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
“어, 그래. 봉준아”
“알겠다, 봉준아”
“봉준아, 맥주 한 잔 시켜도 되냐?”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
한 수사관이 말을 트기 시작하자 나머지 수사관들이 곧바로 반말을 사용했다.
“…그래,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이내 박봉준의 허락이 떨어지자 상당히 놀기 좋아하게 생긴 수사관이 재빨리 웨이터를 불러 맥주를 주문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봉준이 입을 열었다.
“두식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도 움직인다. 춤이라도 추러 나가는 것처럼.”
박봉준이 말을 잇고 있을 때 곧바로 맥주가 도착했고, 잘 놀 것 같은 수사관이 그것을 받아 재빨리 맥주병 마개를 따 냈다.
뽕~
청량한 소리와 함께 맥주 뚜껑이 뽑혀 나가자 잘 놀 것 같은 수사관이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캬~ 이 소리, 나이트에서 술병 까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술은 적당히.”
박봉준의 단호한 말에 맥주를 따르던 수사관이 멈칫한다.
“봉준이 너무 깐깐해.”
“밥맛이야.”
“좀 밥맛이긴 하지.”
“그건 나도 인정.”
‘이것들이…….’
죽이 척척 맞는 세 수사관을 보며 박봉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듣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제지하기에는 상황이 애매하다.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쉰 박봉준이 김두식이 있는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김두식.
김두식의 테이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시고 있는 술병의 윤곽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나름 애주가라고 자부하는 박봉준이 보기에 지금 김두식이 마시고 있는 술은…….
“잭콕이군.”
양주병 옆에 놓여 있는 콜라병을 봤을 때 놈이 마시고 있는 양주는 잭다니엘.
거기에 콜라를 섞은 일명 잭콕이다.
“정말이네.”
박봉준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것을 용케 들었는지 일전의 노는 걸 좋아하는 인상의 수사관이 말했다.
“부킹도 안 하는 놈이 혼자 양주 시켜 놓고 재미 좋네, 띠그럴…….”
“어, 움직인다!”
순간 무언가 발견한 안경 수사관이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훽.
박봉준과 나머지 수사관들이 김두식의 테이블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안경 수사관의 말대로 김두식이 홀 중앙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북적이는 인파를 파헤치며 조금씩, 조금씩 더 깊숙이 들어간다.
“두 사람은 후문을 등지고 접근, 나머지 한 사람은 나를 따라 정문을 등지고 접근한다. 움직여!”
박봉준의 말에 수사관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박봉준도 김두식을 놓칠세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실례합니다, 잠시만요.”
박봉준이 손으로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나이트 스피커에서는 끈적한 노래의 대명사, 한참 히트를 치고 있는 박지윤의 성인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남자의 신체에 몸을 바짝 밀착시켜 엉덩이를 부비적거리고 있던 여자가 순간 인상을 찌푸린다.
“아 씨, 뭐야.”
“잠시만요.”
얼마나 많은 인파를 헤쳤을까?
마침내 홀 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장소에 이르렀을 때, 박봉준은 발견했다.
김두식이 낯선 여자와 부둥켜안은 채 손으로 무언가를 주고받는 모습을.
“김두식이!!!!”
그런 김두식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던 박봉준보다 맞은편에서 접근하던 수사관들이 한발 빨랐다.
안경 수사관이 큰 소리로 외치며 김두식의 손목을 낚아챘다.
“……!”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는 김두식.
그리고…….
퍼억!!!!!!
경쾌한 타격음이 시끄러운 나이트 스피커 소리 사이로 낮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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