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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19화 (19/174)

19화 새로운 S급 스킬

손가락 마디만 한 오색 빛깔의 정육면체 주사위.

현실에서 홀로그램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그 주사위마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당황한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홀로그램과 달리 만약 이 주사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 비현실적인 능력이 도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생길 수 있다.

‘마치 게임 같은 현실’

“멍하니 서서 뭐 하냐?”

“……!”

어느새 다가왔는지 호식이 눈앞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도윤이 화들짝 놀랐다.

“뭘 그렇게 놀라? 야동 보다가 걸린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니…….”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젓던 도윤이 멈칫한다.

만약 정말 이 주사위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인다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내 결심한 듯 도윤이 호식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너, 혹시 이거 보이냐?”

오색 빛깔의 주사위는 여전히 도윤의 손바닥 위에서 투명한 광채를 뽐내고 있었다.

“……?”

도윤의 손바닥을 유심히 바라보던 호식이 인상을 찌푸린다.

“너, 방구 꼈냐?”

“엉?”

“아무것도 없잖아. 얼굴 갖다 대면 그 손으로 니 더러운 궁둥짝 사이의 방구 냄새를 감싸 쥐어서 분사할 생각이지?”

“…….”

호식의 말에 도윤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주사위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듯하다.

* * *

24시간 운영하는 찜질방에서 간단히 씻은 도윤은 곧바로 호식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다.

그 상태로 얼마나 잤을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침대에서 잠시 몸을 뒤척이던 도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각이다!”

어느새 시곗바늘은 아침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윤이 헝클어진 머리로 씻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옷가지를 주워 입기 시작했다.

빠르게 옷을 갈아입던 도윤이 양말을 신던 도중 멈칫하더니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망할 토요일.”

이왕 옷을 입은 것, 곧바로 지청으로 가서 김두식의 조사에 동석할까 고민하던 도윤이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피의자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인권 보호 등의 이유로 반드시 조사관과 피의자를 제외한 1인을 동석시키도록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조사관이 검사일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검사 아래의 수사관이 동석하는데, 사법연수생이 실습을 나오는 시즌에는 교육 차원에서 수사관 대신 연수생을 동석시키곤 했다.

때문에 도윤이 김두식의 조사에 동석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법적으로는… 말이지”

중요한 건 김두식 마약 사건의 담당 검사가 박봉준 검사라는 것이다.

무작정 찾아가서 조사에 동석시켜 달라고 했다가는 욕이나 먹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신던 양말을 벗어 던진 도윤이 거실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테이블 위의 리모컨을 손에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뒤통수가 볼록 튀어나온 아날로그 TV가 짧은 기계음을 내며 켜진다.

“100여 년 전 제물포 개항이 제국주의 세력의 강압에 의한 치욕이었다면, 오늘날 신공항 개항은 전 세계를 향한, 세계를 중심으로 의지와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자주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와 영광이 될 것입니다.”

마침 TV에서는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 개항식에서 DJ가 한 축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이라…….”

이 공항이 내년에 있을 2002한일월드컵의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마침 TV에서는 새롭게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TV 속 이제 막 개항한 인천국제공항은 도윤의 기억 속에 있는 공항과는 많이 달랐다.

활주로도 2개밖에 없었고, 전체적인 규모 자체가 도윤의 기억보다 훨씬 작았으며, 공항 이름 또한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영종도 신공항이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공항이라지만 전 세계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그런 수준의 공항.

아시아 동쪽 끝 작은 나라, 그 안의 항구도시에 위치한 이 공항이 훗날 세계 1위의 서비스 공항으로 손꼽히게 될 것이라고 과연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은 도윤이 문득 상의 안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오색 빛깔의 주사위가 도윤의 손으로 딸려 나왔다.

“레인보우 주사위.”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눈앞에는 어느새 반투명한 홀로그램도 떠올라 있었다.

[레인보우 주사위를 획득하였습니다.]

[주사위를 굴려 주세요!]

잠시 손안에서 주사위를 이리저리 굴리던 도윤이 이내 테이블을 향해 주사위를 가볍게 던졌다.

툭, 툭.

생각보다 탄력이 좋은지 테이블에 떨어진 주사위는 곧바로 바닥으로 튕겨 떨어져 내렸다.

데구르르르르.

한참이나 바닥을 구르던 주사위가 이내 멈춰 섰다.

[플레티넘 등급 주사위를 획득하였습니다!]

[주사위를 한 번 더 굴려 주세요.]

새롭게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도윤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방했다.’

플레티넘 주사위라면 가장 좋은 다이아 등급 바로 아래다.

어느새 오색 빛깔 반짝이던 주사위는 반짝이는 순백색의 주사위로 뒤바뀌어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주사위를 집어 든 도윤이 지체 없이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졌다.

[플레티넘 등급 주사위를 굴렸습니다. 능력은 대상자의 운에 따라 랜덤하게 결정됩니다!]

도윤이 긴장된 표정으로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퀘스트 발동 조건도 모르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퀘스트가 많지도 않다.

명성이라는 거대한 산을 아무것도 없이 무너뜨려야 하는 도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능력 하나하나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데구르르르.

작은 소음을 내며 바닥을 구르던 주사위가 그대로 벽면을 충격하더니 이내 멈춰 선다.

“제발…….”

도윤이 간절한 표정으로 주사위를 바라보고 있을 때 마침내 새로운 홀로그램이 눈앞에 떠올랐다.

[S등급, ‘심문의 달인’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심문의 달인(S)- lv.1

가벼운 죄질의 범죄자는 물론,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조차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 거짓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낮은 확률로 심문 대상자가 진실만을 말하도록 만듭니다.

현재 스킬 성공 확률 25퍼센트, 대상자의 사회적 지위와 정신력 등에 따라 스킬 성공 확률이 더 낮아질 수 있습니다.

스킬 성공 시 심문의 달인 지속 시간은 스킬 레벨과 상관없이 10분으로 고정됩니다.

사용자의 위엄 스탯이 높아짐에 따라 스킬 성공 확률이 소폭 증가합니다.

스킬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스킬 성공 확률이 증가합니다.

스킬 실패 시 재사용 대기시간은 10분, 스킬 성공 시 재사용 대기 시간은 24시간입니다.

“대박이다.”

스킬 설명을 모두 읽은 도윤이 두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이건 거짓말 탐지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지 않은가?

거짓말 탐지기는 말 그대로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만을 판단해 줄 뿐이다.

그것이라도 명확하게 결과가 나온다면 수사에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결과보다 더 많이 나오는 것이 ‘판단불능’이다.

거짓말 탐지기는 대상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신체적 바이오리듬 등으로 명확하게 판단될 때만 ‘거짓’이라는 결과를 도출해 낸다.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가차없이 ‘판단불능’이다.

직접적인 증거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재판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료가 애매해서야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거짓말 탐지 수사는 대상자가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도 없다.

영장?

체포구속 영장, 통신영장, 금융영장 따위는 있어도 거짓말탐지 영장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에 비해 이 ‘심문의 달인’은 어떤가.

일단 스킬이 성공하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말 그대로 술술 분다.

물론 영장도 필요 없다.

도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과연 누가 알 수 있을 것인가.

그저 개과천선(改過遷善)한 범죄자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이걸 잘만 활용하면…….”

그 활용법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도윤이 씨익 미소 지었다.

“일단 확인을 해 봐야 한다.”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모두 지운 도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25퍼센트라면 단순 수치상으로 4번 중에 1번은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한 스킬 적용 대상자가 ‘범죄자’로 국한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스킬 이름이 심문의 달인이기는 하지만 그 대상이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로 한정된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만약 스킬 대상에 제한이 없다면 피의자뿐만 아니라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는 중요 참고인에게도 이것을 활용할 수 있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도윤이 이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이럴 때 딱 알맞은 실험 대상이 있지.”

도윤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 * *

“피곤해 죽겠는데 왜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 오라 가라여?”

도윤의 집에 도착한 호식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해가 중천에 뜨고 점심 먹을 시간이다. 주말에 피곤하다고 잠만 자면 뼈 삭아.”

“잠 안 자고 있었거든?”

“그럼 뭐 하고 있었는데?”

호식의 말에 도윤이 반문했다.

“게임.”

“주말에는 사다드도 좀 쉬게 해 줘라.”

호식이 요즘 유행하는 RPG게임 붉은달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도윤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니, 요즘은 서프에 빠져 있음.”

“서프?”

“서바이벌 프로젝트라고 이번에 클베(클로즈베타) 시작했는데 진짜 재밌더라. 작년에 KAMEX(대한민국 게임 대전)에서 봤던, 그 아모건 나오는 로봇 조립게임 급인 듯!”

“아… 재밌냐?”

호식이 신이 나 떠들어대자 도윤이 자못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호식에게 물었다.

자신의 말에 도윤이 관심을 가지자 신이 난 호식이 빠른 속도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물론 게임 마니아인 도윤은 호식이 말한 게임을 플레이해 봤을 뿐만 아니라 그 최후까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호식의 말에 간간히 손뼉을 쳐 주기도 하고 맞장구도 쳐 주는 이유는…….

‘아쉬운 사람이 비위 정도는 맞춰 줘야지.’

호식의 설명이 조금씩 잦아들 무렵, 마침내 도윤이 입을 열었다.

“호식아.”

“엉?”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그럼, 내가 알고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도윤의 물음에 다소 들떠 있는 호식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린다.

‘심문의 달인.’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림과 동시에 옅은 녹색 빛이 호식의 입에 머물렀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심문의 달인 스킬 사용에 실패하였습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입을 열었다.

“요즘 볼 만한 영화 있냐?”

“영화? 뜬금없네. 여자 친구라도 생기셨나?”

“그건 아니고…….”

“흠…….”

잠시 수상하다는 눈초리로 도윤을 바라보던 호식이 말한다.

“요즘은 그게 대세지.”

“뭐?”

도윤의 반문에 씨익 웃은 호식이 그대로 도윤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우리 친구 아이가?”

“…….”

호식이 어색한 부산 사투리로 말을 잇는다.

“고마 해라, 마이 뭇다 아이가.”

‘진짜 고마 해라. 못 들어 주겠다.’

속에서 올라온 말을 가까스로 집어삼킨 도윤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영화 내용이 뭔데?”

“들어 봐. 지금까지 나온 영화들과 달리 조폭이 주인공인 영화인데…….”

또다시 신이 난 호식이 속사포처럼 말을 잇기 시작한다.

한 귀로 흘리며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도윤이 이윽고 눈을 빛낸다.

[심문의 달인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이 끝났습니다.]

‘심문의 달인.’

눈앞의 홀로그램을 지워 낸 도윤이 지체 없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옅은 녹색 빛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호식의 입에 머무른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그 녹색 빛은 호식의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심문의 달인 스킬 사용에 성공하였습니다!]

“……!”

마침내 도윤이 그토록 원하던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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