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귀신 헬리콥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윤만석의 목소리에 도윤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간다.
“귀신 헬리콥터라면 설마…….”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도윤을 보며 윤만석이 말한다.
“역시 알고 있군. 지금 바로 내 사무실로 와 줄 수 있나? 법원 실습 담당자한테는 내가 얘기해 놓겠네.”
“알겠습니다.”
이내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도윤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뭐야, 부장검사님이셔? 귀신 헬리콥터가 뭔데?”
“일단 가자. 가면서 얘기해 줄게.”
“엥, 나도?”
호식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장검사님은 너한테 볼일 있는 게 아냐?”
“그 볼일이 아마 우리 일과 관련된 것 같다. 그리고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당연히 너도 같이 가는 게 맞지 않겠어? 넌 내 파트너잖아.”
도윤의 말에 호식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파트너?”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쑥스러운 표정을 애써 숨긴 도윤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멍한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던 호식이 이내 코끝을 슥 하고 훑었다.
“짜아쉭~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말이야.”
호식이 재빨리 도윤의 뒤를 따랐다.
“같이 가, 짜샤!”
“빨리 안 오면 그냥 두고 간다.”
“쑥스럽냐?”
“지랄.”
짧게 대답하는 도윤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호식이 묻는다.
“그래서 귀신 헬리콥터가 뭔데?”
“그건…….”
빠르게 걸음을 옮기던 도윤이 또 한번 표정을 굳힌다.
“뭔데? 뭐길래 그렇게 심각한데?”
“공중화장실 용변 칸에서 한 번쯤 본 적 없어? 귀신 헬리콥터, 고가 매입합니다.”
“전혀.”
호식의 대답에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말을 잇는다.
“귀신 헬리콥터도 은어야.”
“이쪽 바닥은 일반적인 용어보다 은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냐. 무슨 놈의 은어가 그렇게 많아. 마약?”
호식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도윤이 짧게 대답한다.
“차라리 마약은 양반이지.”
“뭐? 대체 뭔데 그래?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봐. 궁금해 미칠 것 같으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도윤이 이내 대답한다.
“장기.”
“…장기? 갑자기 장기가 왜 나와? 장기 한판 두자고?”
호식의 반문에 도윤의 호식의 왼쪽 가슴을 쿡 하고 찌르며 말한다.
“사람 장기. 장기밀매라고.”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잘못 들었다는 듯 귀를 후벼 판다.
“잘 못 들었습니다?”
“어, 니가 들은 게 맞아.”
“그러니까 지금 니 말은… 사람 장기를 산다는 거야? 그런 게 진짜 있어?”
이때까지만 해도 불법 장기매매가 대중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다.
암암리에 거래되는 장기매매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것은 이보다 조금 더 뒤.
장기매매가 언론에 보도되고 이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제작되어 세상에 발표되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다.
지금은 그저 하나의 루머로 치부되는 정도다.
“있어. 뭐 귀신 헬리콥터라고 광고하는 10명 중에 9명은 사기꾼이지만…….”
“사기꾼?”
“사기꾼이라기보다는… 대부업자들이 많아. 사채업자말이야.”
“아… 그건 왜 그런데?”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대답한다.
“자기 장기까지 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절벽 끝까지 몰릴 대로 몰린 사람들이라는 거고, 사채업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고금리에 후려치는 거지.”
“그래서 못 갚으면… 장기를 팔고?”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악독한 사채업자라도 돈 못 갚는다고 장기까지 꺼내 팔지는 않아. 대부분 사채업자들이 지어낸 얘기지.”
“지어낸다고? 왜?”
“돈 없으면 장기라도 꺼내 가겠다, 한마디로 위협이고 협박이지. 그런 소문이 돌면 돈 없는 사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돈을 구하려고 하지 않겠어?”
“그렇구나.”
“물론 극히 일부긴 하지만, 실제 장기를 털어 가는 미친놈들도 있지.”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소름이 끼친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도윤이 피식 웃었다.
“쫄기는… 방금 말했다시피 극히 일부야. 보통은 갚을 때까지 죽어라 쫓아다녀. 흔히 말하는 빨간 딱지가 온 집안에 다 붙을 때까지 말이야.”
“그럼 돈 못 갚는 여자들은 섬에 팔아넘긴다는 얘기는……?”
이어지는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이번에는 멈칫한다.
섬에 팔아넘긴다느니 하는 일은 없었지만 회귀 전 도윤이 맡은 사건들 중에 분명 그와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다.
사채를 못 갚는 여성을 강제로 음란방송에 출연시킨 사건.
여성에게 청양리 오팔팔번지 미아리 텍사스 등 국내 사창가는 물론이고 동남아 등지에 원정 성매매를 강요하여 구속된 사건.
그뿐인가?
채무자의 어린 딸을 이용하는 지독한 놈들도 있었다.
그 어린 딸의 미성년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인터넷이나 랜덤 채팅방에 원조교제와 관련된 글을 올린다.
업자들은 흔히 이를 미끼를 던진다고 표현한다.
만약 가정이 있는 돈 많은 대기업 임원이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정도 있는 중년층 남자가 이 미끼를 문다면?
이를 ‘호구 물었다.’라고 표현한다.
업자들은 그 사람이 들어가는 모텔과 호실을 여자아이를 통해 미리 파악하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들이닥친다.
거기까지만 가면 일사천리다.
‘감히 내 조카를!’, ‘감히 내 여동생을!’ 따위의 말을 지껄이며 장정 3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가 남자를 무차별 폭행하기 시작한다.
협박을 위해 미리 현장 사진을 찍어 놓는 것은 필수다.
만신창이가 된 남자는, 업자들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고액의 돈을 뜯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찰에 신고하기도 곤란해진다.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조교제를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어느 누가 신고를 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신고로 인한 보복보다 이 사실이 가족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때문에 대부분이 똥 밟았다 생각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건네주는 것이다.
업자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고 말이다.
“뭐, 아예 없다고는 못 하겠다.”
“…….”
도윤의 대답에 호식이 충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중세 시대도 아니고 현대사회에 성노예라니, 이런 미친 새끼들…….”
마침내 호식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검찰은 뭐 하는 거야? 경찰에서 단속이 안 되면 이쪽에서라도 나서야 되는 것 아냐?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다고?”
흥분한 호식이 속사포처럼 말을 잇는다.
“세금을 똥구멍으로 처먹고 있어. 개새끼들, 지금 당장 지청장님한테 가서…….”
“가서 뭘 어쩔 건데?”
“뭐?”
“지금 우리가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찾아가서 뭘 어쩔 건데? ‘이런 일이 있으니까 단속 좀 해 주세요.’라고 할 거야?”
“야! 그래도 그런 일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가만히 있을 수는!”
“검찰은!”
갑작스러운 도윤의 외침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한 물증이나 첩보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 경찰도 마찬가지.”
“…….”
“신고도 없고, 고소도 없어. 수사 단서가 없다고. 그저 이런 일도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구나,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지. 그 정도로는 경찰도, 검찰도 움직이지 않아.”
“…….”
“당장 가지고 있는 일들만으로도 처리하기 벅찬데, 굳이 일을 만들어서 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
“젠장…….”
도윤의 말에 호식이 분하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는 말이다.
수사를 진행할 아무런 단서가 없다.
당장 자기 자신도 도윤에게 직접 듣기 전까지는 그저 루머로만 생각했지 않은가?
그런 호식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하자.”
“뭐?”
“우리가 하자고. 기획수사 테마로. 경찰의 광수대나 검찰의 특검처럼 하나 붙들고 몇 달이고 주구장창 죽치다 보면 하나쯤 나오지 않겠어? 일단 하나 나오고 나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딸려 나오겠지.”
“…….”
호식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도윤이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어려운 사람 돕고 싶다며? 내가 너 도와줄게.”
“아, 이 새끼…….”
도윤의 말에 순간 울컥한 호식이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뭐냐? 감동받아서 우는 거?”
“안 울거든.”
“에이, 목소리도 울먹울먹하는 게 조만간 질질 짤 것 같은데?”
“케이아이엔.”
“…뭐?”
“즐.”
“…….”
오랜만에 듣는 인터넷 용어에 도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칭 게임 마니아라는 별명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도윤과 호식이 어느새 부산 동부지검 출입문을 지나 윤만석 부장검사실 앞에 도착했다.
검찰청과 법원은 전국 어느 곳이나 같은 지역에 함께 위치하고 있었고, 이는 부산 동부지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부장검사실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아! 그래서 귀신 헬리콥터가 뭔데?”
곧바로 부장검사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려던 도윤이 호식의 물음에 멈칫한다.
“운 띄워 줘 봐.”
“운?”
“삼행시, 사행시 같은 것처럼. 귀신 헬리콥터로 운을 띄워 달라고.”
“아…….”
이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호식이 말한다.
“귀.”
“귀하의.”
“……? 신.”
“신장.”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눈을 크게 떴다.
뒤는 더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갔다.
귀신 헬리콥터 고가 매입합니다.
그중 귀신의 뜻이 귀하의 신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헬리콥터(Helicopter)…….”
입을 쩍 벌린 채 말끝을 흐리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계속 말한다.
“알파뱃을 부분, 부분 떼어 내서, He는 Heart, 심장이야.”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li는 liver의 약자인 간, co는 cornea, 각막이야. p는 pancreas 췌장, te는 tendon 힘줄, 마지막으로 r은 retina 망막이지. 다시 말해, 귀신 헬리콥터는…….”
“…….”
“귀하의 신장, 심장, 간, 각막, 췌장, 힘줄, 망막을… 고가 매입합니다.”
“……!”
도윤이 말을 마치자 호식은 충격으로 완전히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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