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22화 (22/174)

22화 수요와 공급

“아, 안녕하세요?”

도윤이 부산 동부지검 1부장검사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서류에 파묻혀 있던 윤만석 부장검사의 실무관이 인사한다.

이제 20대 중반쯤 되었을까?

웃을 때 눈꼬리가 완만하게 휘어지는 것이 유독 매력적인 여자 실무관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살짝 고개를 숙인 도윤이 사무실 내부를 잠시 돌아본다.

검찰청 부장검사실은 통상 사무실 2개를 벽 하나로 나누고 있었는데, 진짜 부장검사가 있는 사무실을 가기 위해서는 이 실무관실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도윤은 이 실무관실을 거칠 때마다 마치 대기업 회장님의 비서실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대한민국 검사의 힘이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진다고 할까?

도윤의 인사에 살며시 눈웃음 지은 여자 실무관이 이번에는 호식을 바라본다.

“호식 씨도 안녕하세요?”

“아, 예. 예…….”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던 호식이 허둥대며 마주 인사했다.

‘곱게만 자라서 그런지, 충격이 어지간히 컸나 보네.’

짧게 한숨을 내쉰 도윤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얘가 지금 정신이 조금 없어서요.”

“아, 네.”

그런 호식을 대신해 도윤이 사과하자 다시 한 번 살며시 미소 지은 여자 실무관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시만요. 도착했다고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또각,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사무실 내부에 울려 퍼지기를 잠시, 방 안의 또 하나의 출입문 앞으로 걸음을 옮긴 여자 실무관이 그 문을 두드린다.

똑, 똑.

“부장검사님, 김민아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윤만석의 중후한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오자 잠시 도윤 쪽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 지은 여자 실무관이 부장검사실 안으로 들어간다.

채 10초도 되지 않아 밖으로 나온 여자 실무관이 도윤과 호식을 향해 손짓했다.

“들어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짧게 목례한 도윤이 멍하니 서 있는 호식을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이내 부장검사실 안으로 들어서는 도윤과 호식을 윤만석이 반긴다.

“어서 오게.”

“잘 계셨습니까, 부장검사님.”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도윤을 따라 호식도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호식 군도 왔군.”

“제가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백지장도 맞대면 나을 것 같아서요.”

도윤의 대답에 잠시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보던 윤만석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백지장이라… 내 생각에 자네는 아주 비싼 한지쯤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두 사람 다 일단 앉지.”

손님 접대용 테이블 상석으로 자리를 옮긴 윤만석이 도윤과 호식에게 양쪽 소파에 앉기를 권하자, 이내 두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대접할 차가 마땅히 없는데… 주스라도 한 잔 마실 텐가?”

자리에서 일어난 윤만석이 손수 준비하려는 듯 냉장고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도윤이 급히 손사래 쳤다.

“괜찮습니다, 부장검사님. 음료수라면 많이 마시고 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는 잉여 자원이다 보니 하는 거라곤 먹고 마시면서 멍하니 앉아 있는 것뿐이라서요.”

도윤의 말에 윤만석이 멈칫한다.

“잉여 자원이라… 올해 국가 인력은 아주 풍년이로군.”

“…….”

거듭되는 윤만석의 극찬에 도윤이 입을 다물었다.

윤만석의 입장에서는 분명 좋은 뜻에서 높게 평가해 주는 것 같은데, 도윤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대체 무슨 조언을 구하려고… 설마 진짜 그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생각하던 도윤이 순간 윤만석과 눈이 마주쳤다.

어느새 윤만석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실 말씀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부장검사님.”

“…….”

“뜸 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아는 것이라면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올곧은 눈빛으로 대답하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이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를 보고 있으면… 전혀 그 나이 또래 같지 않아. 마치 내 또래, 아니, 그보다 더 높은 연배의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뜨끔.

“아, 이건 칭찬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게. 자네 애늙은이 같다고 욕하고 있는 거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이어지는 윤만석의 말에 도윤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예.”

“대충 눈치챈 것 같으니 자네 말대로 편히 말하겠네. 우선, 이번 일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김두식이 건의 수사 상황부터 얘기해 줘야겠군.”

잠시 물로 목을 축인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알다시피 김두식이는 마약, 특히 필로폰을 지속적으로 밀수하여 판매해 왔네. 물론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수급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90퍼센트 이상은 중국에서 들여왔고.”

“……”

“들여오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지만 망치파는 주로 국가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어선이나 화물선을 이용해 밀항을 하는 것 같더군.”

윤만석의 말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중국에서 필로폰을 운반하는 것이야 생각보다 쉽다.

중국의 공안은, 아직까지 돈 몇 푼에도 쉽게 매수되곤 했으니까.

문제는 국내 반입이다.

보통 마약사범들은 필로폰을 국내에 반입하는 데 무역 화물선을 이용한다.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무역선이 아닌 대한민국에 잠시 정박하는 화물선 말이다.

직접 거래하는 무역선도 물량이 적은 경우에는 다른 물품들 사이에 묻어 두기만 해도 단속될 가능성이 낮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은 일시 정박하는 화물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거래되는 물품이 아니기에 함부로 검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일단 배에서 내릴 수만 있으면 더욱 안전하게 필로폰을 반입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주로 선박 주방장.

통상적으로 식재료를 사기 위해 움직이는 주방장들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시 하선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물량이 많은 경우, 밀항선을 이용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위험부담이 큰 만큼, 일단 루트만 확보하면 그 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밀항선을 이용한다는 특수성, 그 엄청난 규모.

윤만석의 말대로라면 망치파의 규모는 생각보다 더 엄청나다.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청도, 상해, 단동부터 연변은 물론 장쩌민이 있는 수도 베이징까지, 필로폰 제조 공장이 있는 곳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밀수해 왔네. 우리가 파악하기로 지난 한 달만 해도 망치파가 밀수해 온 필로폰의 양이 자그마치…….”

잠시 말끝을 흐리던 윤만석이 이내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보였다.

“오십 킬로그램이야.”

윤만석의 말에 도윤이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오… 오십 킬로그램이라고 하셨습니까?”

회귀 전, 도윤의 동기가 있는 부산청 마약수사대에서 중국 심천에 마약 제조 공장을 두고 지속적으로 필로폰을 밀수해 온 조직을 일망타진한 적이 있었다.

그 공으로 도윤의 동기는 1계급 특진까지 하기도 했는데, 그때 현장에서 압수한 필로폰이 십 킬로그램.

시가로 약 3백억 원이다.

지금 윤만석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망치파가 지난 한 달간 밀수해 온 필로폰의 양은 현재 시세를 고려해도 1000억 원이 훌쩍 넘는 양이다.

“미친…….”

부지불식간에 도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가는 말 그대로 통상적으로 거래되는 금액일 뿐이다.

마약의 무서운 점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갈 정도로 지독한 중독성.

한번 마약의 마수에 빠진 사람은 결코 쉽게 헤어날 수 없다.

당장 밀수업자들이 가진 물량이 부족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지속적으로 마약을 투약해 온 사람들 대부분이 가진 집까지 팔아 시가의 2배, 3배, 10배까지도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른 인플레이션(inflation) 현상은 이쪽 세계에도 적용된다는 말이다.

물론, 밀수업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필로폰 오십 킬로그램이라면, 망치파는 최소 그 시가의 2배 이상은 벌여들었을 것이다.

가격을 몇 배나 후려쳐서 말이다.

마약에 한번 빠진 사람의 인생은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집은 물론 집터의 주춧돌까지, 그마저 모두 털리고 나면…….’

윤만석이 말한 몇 가지 정보만으로 전체적인 윤곽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도윤이었다.

“그래서, 사람의 장기까지 털어 갔다는 말씀이십니까?”

도윤의 물음에 이번에는 윤만석이 잠시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알고 있군.”

윤만석이 감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순간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호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그런 미친 짓을 할 수가 있습니까? 고작 돈 때문에, 인간이 같은 인간을…….”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치는 호식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이 입을 열었다.

“고작 돈이라… 자네 집은 조금 살 만한가 보군.”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호식이 흥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고작 돈 때문에 자기 부모, 형제도 죽이는 세상이네. 고작 돈 때문에 불과 2~3년 전에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네.”

“그건…….”

IMF라는 거대한 화마는 대한민국의 많은 가장을 집어삼켰다.

그 아픔을 잊기에 3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또래 친구들의 고통을 눈앞에서 지켜본 윤만석에게 호식의 말은 충분히 거슬렸으리라.

호식이 입을 다물자 짧게 한숨을 내쉰 윤만석이 도윤을 바라본다.

“자네 말대로 이제는 장기 밀매까지 하더군.”

말을 마친 윤만석이 품에서 무언가 꺼내어 테이블 위에 툭 하고 던졌다.

“이건…….”

테이블 위의 통장을 도윤이 잠시 바라보고 있자 윤만석이 입을 열었다.

“한번 보게.”

통장을 집어 든 도윤이 그 안에 거래 내역을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한다.

어느 한 부분에 이르렀을 때 도윤이 시선을 고정한 채 멈칫한다.

굳이 윤만석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여기 있는 거래 내역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다.

“이… 이게 대체 뭐죠?”

도윤의 어깨너머로 통장 내역을 살펴보던 호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가 설명해 주겠나?”

윤만석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도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마치, 도윤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듯이.

“…m은 male, 남자. f는 female, 즉 앞의 m과 f는 성별이야.”

도윤의 말에 호식이 풍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사정없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숫자는 아마도 나이, 뒤의 알파벳들은 아까 얘기한 대로야. co는 각막, li는 간, 신장은 ki.”

“미친 새끼들.”

호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부장검사님.”

“말하게.”

“통상적으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사람의 장기는 심장, 간, 그리고 신장. 심장이나 간은 엇비슷하지만 신장, 즉 콩팥 같은 경우 앞의 장기보다 약 2배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군.”

도윤의 말에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는 듯 윤만석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장기가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것도 알고 있구요.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기 이 12억은.”

도윤이 통장 거래 내역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너무 과합니다.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여기 이…….”

이번에는 도윤이 검지 하나만을 들어 한곳을 콕 찍어 가리켰다.

“P의 의미를요.”

윤만석이 말을 마친 도윤의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도윤을 바라보던 윤만석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다시 10분이 흘렀을 때.

윤만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P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