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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23화 (23/174)

23화 BOB 엔터테인먼트

입안에서 무언가 우물거리던 윤만석이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걸 모르겠네.”

“예?”

도윤의 반문에 윤만석이 굳은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자네 말대로 장기 중에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 신장이야. 나이가 어릴수록 그 값이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뛰어오르는 것도 맞아.”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왜 콩팥이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입니까?”

어느새 진정이 된 듯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호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다.

“심장이나 간이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콩팥 하나가 없는 사람은 들어 봤어도 심장이나 간이 없는 사람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적출하는 순간 곧바로 죽으니까. 그만큼 중요한 장기가 왜…….”

“그래서 그 콩팥이 더 고가에 거래되는 것이네.”

“예?”

호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심장이나 간이 없으면 당연히 사람은 죽지. 생명과 직결되는 장기들이니까. 그만큼 수술도 위험해. 수술 성공률도 낮을 뿐더러 실패하면 곧바로 죽어.”

“…….”

“그에 비해 콩팥은? 위험성도 비교적 낮은 편이고, 수술 과정도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자네 말대로 콩팥 하나 없다고 바로 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급도 많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지도 않아.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지,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

“어느 미친놈이 스스로 자기 배를 갈라서 장기를 팔고 싶겠나? 그 악독한 놈들이 콩팥 하나만 털어 갈 거라는 보장도 없고 말이야.”

윤만석의 설명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그런 호식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이 다시 도윤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자네에게 듣고 싶은 조언은 두 가지네,”

“말씀하십시오.”

도윤의 대답에 그 두 눈을 응시한 채 윤만석이 말을 잇는다.

“P가 무엇인지, 그리고 김두식이에게서 더 이상 정보를 털어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말하고 나서 보니 아주 날로 먹으려고 하는 것 같아 면목 없군.”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윤만석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자! 퀘스트 보상: 레인보우 주사위 1개]

“…….”

잠시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던 도윤이 어느 순간 윤만석과 딱하고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윤만석이 신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자네라면… 가능할 것 같네.”

* * *

“씨발!”

쨍그랑!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새파란 난 화분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박봉준의 거친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자 가만히 앉아 있던 김영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배님, 조금 진정하시는 게…….”

“스읍~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쉰 박봉준이 말한다.

“진정? 지금 이 개 같은 상황에 내가 진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

박봉준의 물음에 김영재가 입을 다물었다.

알고 있다.

사실 박봉준만큼은 아니지만 김영재는 물론, 옆에 앉아 있는 오성춘도 누구보다 화가 나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다이가 크다고 내 사건을 뺏어 간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연수생, 그것도 고졸 나부랭이 새끼한테 수사 협조 의뢰? 이게 말이 되나?”

엄밀히 말하면 윤만석이 박봉준의 사건을 빼앗아 간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검사 한 명, 한 명은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기관으로 취급받는다.

직책이 높은 검사가, 직책만을 앞세워 평검사의 사건을 함부로 들춰 볼 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윤만석이 박봉준의 직속상관이라도 사건을 빼앗아 갈 명분도, 방법도 없다.

물론, 법적으로는 그렇다.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라지만 어느 누가 상관의 지시에 항명하면서까지 이 권리를 행사하려고 하겠는가.

평생을 지방 촌 동네에서 전전긍긍할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상관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윗선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이쪽 바닥만큼 심한 곳도 드물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누구보다 강한 박봉준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씨발…….”

면전에서 입도 뻥긋 못 하고 사건을 고스란히 빼앗겼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일반적으로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커진 사건이나 여죄, 그러니까 추가적으로 발견된 사건에 여러 검사들이 달라붙어 도와주는 경우는 있어도 특별한 이유 없이 사건 담당자를 교체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자신을 사건 담당자로 두고, 윤만석의 지휘 아래 나머지 검사들이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사건 담당자 자체를 바꿔 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라도 언제든지 수사에서 배제하겠다는 의지리라.

“그 새끼, 정말 고졸 출신 사법연수생 맞나? 대체 뭐 하는 새끼길래 윤만석이 똥꼬라도 핥아 줄 것처럼 그리 싸고도는 거야!?”

윤만석의 말에 이때다 싶어 김영재가 말한다.

“고졸 출신은 물론, 부모도 없이 자란 고아 새끼죠. 근본도 없는 건방진 새끼.”

박봉준이 찌릿 김영재를 노려본다.

“…….”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지, 곧바로 입을 다무는 김영재를 바라보며 박봉준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 보면 같은 시험을 합격한, 그것도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놈이 맞나 싶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공부 머리와 다른 능력들은 별개인 것 같다.

고시에 합격한 놈이라고 다 빠릿빠릿하고 똑똑한 놈들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봉준이 형.”

순간 이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오성춘이 입을 열었다.

“비록 사건은 빼앗겼지만, 수사는 형이 주도적으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에 따른 공은 물론…….”

오성춘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독자적으로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순간 윤만석은 나를 수사에서 빼 버릴 거야. 사건을 뺏기기 전이라면 모를까, 불가능해.”

“원래 사건 담당자인 형이 나름대로 수사하는 걸, 지가 뭐라고 할 거예요? 그리고… 숨기려면 숨길 수도 있잖아요?”

“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

오성춘의 말에 박봉준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오성춘이 말을 잇는다.

“알려지는 건 수사가 마무리되고 논공행상 때 정도가 좋겠네요.”

잠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박봉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혹시라도 잘못되어서 만약 그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박봉준이 자못 불안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윗선에 찍히는 건 물론이고 여론의 뭇매도 한 몸에 받을 것이다.

‘언론에서 미친 듯이 달려들겠지. 하이에나 같은 새끼들.’

아마 ‘공 쌓기에 혈안, 일반 평검사가 바로 위 부장검사의 사건에 끼어들어, 수사 망쳐…….’ 정도의 타이틀로 기사가 나갈 것이다.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요?”

“뭐?”

오성춘의 물음에 박봉준이 당황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혹시 개, 돼지들을 걱정하고 있나요?”

“…….”

이어지는 오성춘의 말에 박봉준이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개, 돼지들. 정말 그들이 두려워 만약의 상황을 걱정하는 거라면… 실망입니다. 그 정도 배짱은 있는 분으로 생각했는데.”

“……!”

점점 표정이 굳어 가는 박봉준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댄 오성춘이 말을 잇는다.

“고작 잠깐입니다. 배고플 때만 울부짖는 짐승들,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이 그 짐승들입니다.”

“…….”

“개개인으로 보면 한낱 벌레만도 못한 버러지 같은 존재들, 정녕 그들이 두려운 겁니까?”

“…그 버러지 같은 존재들도 뭉치면 상당히 성가셔. 너도 알지 않나?”

박봉준의 말에 오성춘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땐 버러지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먹이를 하나 던져 주죠.”

“뭐?”

“사건은 사건으로 덮는다. 형도 잘 알잖아요?”

“……!”

오성춘의 말에 박봉준이 눈을 크게 떴다.

“더 큰 사건일 필요도 없죠. 자기 목줄 죄이는 입법 정책에 대한 기사보다, TV에 나오는 딴따라들의 스캔들 기사에 더 열광하는 존재들이니까.”

“그건…….”

박봉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금 오성춘이 하고 있는 말은, 실제 검찰 내부적으로도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는 일이다.

10대 소녀들의 우상이라는 유명 아이돌 그룹 리더가 대마를 피워 입건된 사건이라든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중년의 톱스타가 다른 여자와 떡을 치다 걸려 간통죄로 고소된 사건.

검찰은 이런 사건들을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까지 사무실 캐비넷 한편에 고이 모셔 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 언론에 터뜨린다.

철도 민영화 사업이나 국회의원의 범법 행위 관련 기사 등, 보도되었을 때 국가에 대한 민중의 비판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말이다.

박봉준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권모술수도 타고난 재능인가.’

잠시 표정을 가다듬은 박봉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검사로서 내 경력은 그리 길지 않아. 그 정도 소스는 내 캐비넷엔 없어.”

박봉준의 말에 오성춘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없으면 만들면 되죠.”

“어떻게?”

“BOB엔터테인먼트가 저희 계열사인 건 알고 계시죠?”

BOB엔터테인먼트라면 연예계 큰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쪽 바닥에서는 매년 상위에 랭크되는 회사다.

오성춘의 물음에 박봉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 최하연이 있는 회사지?”

BOB엔터테인먼트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배우이자, 30대 초반에 들어섰음에도 20대 못지않은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30대의 요염함을 한 몸에 갖고 있는 인기 톱스타.

박봉준이 최하연을 거론하자 오성춘이 씨익 웃었다.

“제가 이번에 사시 패스 선물로 BOB엔터테인먼트를 선물로 받았거든요.”

“…….”

사시패스 선물이 연예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라…….

역시 명성이라는 이름은 우습게 볼 게 아니다.

그리고 오성춘은 그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

“톱스타 접대 한번 받게 해 드리죠.”

“뭐?

박봉준의 반문에 오성춘의 얼굴 위에 지어져 있던 비릿한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귀 좀…….”

이윽고 오성춘이 낮은 목소리로 박봉준의 귀에 무언가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

박봉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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