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대포통장 (3)
“푸핫, 점마 뭐라노?”
테이블에 둘러앉아 훌라를 하고 있던 세 사람 중 한 남자가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상자를 운반했던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내의 키가 185cm는 되어 보였는데,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도 그에 못지않았다.
일명 깍두기 머리라 불리는 짧게 친 스포츠 머리에 험악한 인상이 ‘나 조폭이요.’ 라고 얼굴에 써 붙여 놓은 듯하다.
“살살 해라.”
오른쪽 눈 아래에 가로로 아로새겨진 흉터가 상당히 인상적인 중년 사내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톡 치면 부러지겠구만, 아무렴요.”
목 관절을 좌우로 뚜둑 꺾어 대던 남자가 이내 도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일단 사지 중에 한 군데만 뽈라고 시작하자이. 함 골라 봐라. 몬땐 짓 못 하구로 요 손모가지를 뽈라 줄까?”
말을 마친 남자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왼쪽 손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썅! 니들 이러는 거 엄연히 폭행죄야. 알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호식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고함쳤다.
“폭행? 큭큭, 법 좋지. 근데 증거는 있나?”
“뭐?”
호식의 반문에 비릿한 미소를 지은 남자가 양팔을 좌우로 펼쳐 보였다.
“보시다시피 우리 사무실에는 카메라, 뭐 그런 게 없다이. 몇 대 맞고 짭새… 아니, 경찰관 아찌들한테 달려가서 질질 짜 봤자 소용없다고요.”
“이익…….”
남자의 말에 호식이 이를 악물었다.
“까탈시릅네, 새끼. 니 사지도 부드럽게 함 만지 줄 테니까 너무 안달하지 말고 쫌만 기다리라.”
말을 마친 남자가 다시 도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혹시 내랑 한다이 할 생각은 아니제? 고마 가만히 있으라이. 더 맞기 싫으모.”
남자가 도윤에게 다가서며 중얼거렸다.
“CCTV 없는 건 마음에 드네.”
도윤이 씨익 웃으며 위에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이쪽 바닥에 있는 놈들을 다루는 방법을 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뭐?”
멍청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순간 손에 쥐고 있던 재킷을 남자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귀엽노!”
그대로 재킷을 낚아채던 남자가 순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코앞까지 접근한 도윤이 주먹을 뻗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크!”
남자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내빼며 두 팔을 들어 올려 날아올 도윤의 공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투욱!
순식간에 남자의 멱살과 팔꿈치를 두 손으로 틀어쥔 도윤이 오른쪽 다리를 남자의 다리 뒤로 쑤욱 하고 집어넣었다.
“……!”
남자가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몸을 내빼는 방향,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하여 다리를 걸고 밀어 넘어뜨린다.
한때 잠깐이나마 유도를 배운 적이 있는 남자는 이 기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밭다리 후리기……!’
쿵!
등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묵직한 충격이 온몸을 짜르르 울린다.
“컥!”
남자가 단말마 비명을 내질렀다.
콰직!
도윤이 쓰러진 남자의 목울대를 사뿐히 즈려밟았다.
“컥, 컥.”
눈이 붉게 충혈되어 가는 대머리 사내의 모습에 나머지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 개자슥이!”
“담가뿐다!”
두 사내가 험악한 기세로 달려들 듯한 기세를 보이자,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움직이면 이놈 사지 중에 한 군데를 부러뜨려 버릴 거야.”
농담이 아니라는 듯 도윤이 발에 더욱 힘을 주기 시작했다.
“끄어어어억…….”
“해 봐, 그럼 넌 진짜 뒈져.”
찰칵.
“……!”
묘한 소음에 사내에게 시선을 돌린 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퍼런 칼날이 창문 사이로 들어온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미친!”
호식의 욕지거리가 귀에 박혀 들자 나이프를 꺼내 든 날랜 체구의 젊은 남자가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
“큭큭큭, 내 별명이 21세기파 광견이야. 미친개지.”
날랜 체구의 사내가 혀로 입술을 날름 핥으며 중얼거리더니 도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차갑게 가라앉은 도윤의 두 눈과 시선이 마주친 사내가 움찔 몸을 떨었다.
‘무슨 놈의 눈빛이……!’
사내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킬 때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거 휘두르면 너 진짜 죽어.”
[군주의 위엄 스킬이 활성화됩니다!]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힐긋 바라본 도윤이 주변을 쓱 하고 훑는다.
움찔.
도윤과 눈이 마주친 사내들은 하나같이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마지막으로 가장 상석,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야비한 인상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움찔.
짧게 몸을 떨었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는다.
‘밑에 애들 앞에서 가오 상하기는 싫다는 거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사내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묻는다.
“너… 아니, 당신은 누구요? 설마 곰은 아닐 테고.”
곰은 일부 조폭들이 사용하는 은어다.
“맞다면?”
도윤의 반문에 야비한 인상의 사내가 표정을 굳히며 말을 잇는다.
“진짜 곰이 맞다면, 선량한 시민인 우리한테 이래도 되는 거요?”
“선량한 시민이라…….”
피식 웃으며 말끝을 흐리는 도윤을 보며 야비한 인상의 사내가 침을 꿀꺽 삼킨다.
“뭐, 그렇다고 치고. 증거 있나?”
“뭐요?”
도윤의 물음에 사내가 멍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CCTV 없다며. 증거 있냐고?”
“증거는 없지만, 증인은 있지.”
“증인? 설마 여기 있는 인상 험악한 친구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
도윤의 말에 야비한 인상의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폭행 전과가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시꺼먼 덩치들 여럿이 있는 상황에서 나 하나한테 얻어맞았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
“거짓말 탐지기도…….”
“떠보는 건 그만두지.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할 수도 없다는 것, 니가 더 잘 알 텐데?”
“…….”
이내 야비한 인상의 사내가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정말 곰이오?”
“그게 중요한가?”
“물론.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
사내의 말에 도윤이 짐짓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니들은 뒤로 물러나 있으라.”
“행님!”
나이프를 든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곰일 리가 없습니다! 곰이 이딴 식으로 우리한테 접근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행님도 알지 않……!”
“그만.”
“…죄송합니다, 행님.”
사내가 곧바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난다.
그 모습을 도윤이 이채 띤 눈빛으로 바라봤다.
‘호오…….’
대체로 조직폭력배들 사이에서는 위계질서가 상당히 잘 잡혀 있다.
주먹과 칼밥으로 먹고 사는 놈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흔한 말로, 등 뒤에 칼빵 맞기 딱 좋다.
때문에 어느 집단보다도 의리와 충성을 중요시하는 무리가 조폭들이다.
물론, 이러한 관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는 놈들이 대부분이다.
두목 바로 아래의 부두목부터 찍새라 불리는 가장 낮은 놈들까지 우두머리 자리를 꿈꾸는 것이 이쪽 바닥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을 가진 놈이 과연 몇 놈이나 될까?
그런 충성을 받는 놈은 몇 놈이나 될까?
‘그런데 이놈은…….’
잠시 야비한 인상의 남자를 바라보던 도윤이 멈칫한다.
‘잠깐, 21세기파라고?’
부산의 21세기파라면 지금은 별 볼일 없지만 앞으로 10년 내로 그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질 전국구 조직폭력단이다.
이내 다시 야비한 인상의 사내를 보며 도윤이 입을 열었다.
“당신, 이름이 뭐지?”
“…나 말인가?”
도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야비한 인상의 사내가 대답한다.
“박판섭이라고 하는데.”
멈칫.
박판섭의 대답에 도윤이 일순 움직임을 멈췄다.
‘박판섭!’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박판섭은 전국구인 21세기파 내에서도 부두목이라는 위치까지 오르는 거물이다.
“설마 여기서 에이즈를 만날 줄이야…….”
참고로 박판섭은 걸리면 죽는다는 의미로 에이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들릴 듯 말 듯 혼자 중얼거린 도윤이 박판섭을 돌아본다.
“곰이냐고 물었나?”
박판섭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윤이 말한다.
“그보다 위야.”
도윤의 대답에 이번에는 박판섭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설마…….”
입을 쩍 벌린 채 말끝을 흐리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거래 하나 하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윙윙은 니미, 저 새끼가 누굴 파리 새끼 취급하나!”
나이프를 든 사내의 말에 박판섭이 인상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행님.”
“어떤 거래지?”
“너희는 대포통장뿐만 아니라 술장사도 함께 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술장사?”
“여기까지 와서 모르는 척하지는 말지. 아니면 얼음이나 크리스털 장사라고 말해 줄까?”
“…….”
‘그냥 심문의 달인 스킬을 써야 하나.’
심각한 얼굴로 표정을 굳히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보는 눈도 많고, 도윤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고려하면 지금 심문의 달인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당신이 정말 곰보다 윗줄이라면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는…….”
“약속하지.”
“……?”
“지금 하는 얘기만으로 절대 엮어 넣지 않겠다. 믿어도 좋아.”
“음……”
길게 침음성을 흘리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장사도 그날로 끝이야. 이건 반드시 믿어야 할 거다.”
“…….”
이어지는 도윤의 대답에 박판섭이 입을 다문 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21세기파라면 다른 조직들에 비해 기반이 상당히 약할 텐데. 공적을 쌓아 전달하고 싶어도, 연결할 다리가 없지 않나?”
“…당신이 그 다리가 되어 주겠단 거요?”
“원한다면.”
결정타다.
이내 박판섭이 결심을 굳힌 듯 도윤을 향해 뚜벅, 뚜벅 걸음을 옮긴다.
경계의 눈초리로 도윤을 바라보고 있던 나머지 사내들이 움찔 몸을 떨더니 이내 박판섭을 따라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냥 있어라.”
박판섭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사내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불안한 눈초리로 박판섭을 바라보고 있던 호식도 이내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짓는 도윤을 보며 경계를 풀었다.
“솔직히, 당신이 우리 조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진짜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소.”
뚜벅, 뚜벅.
박판섭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짱구 굴리자니 머리는 아프고, 그래서 그냥 지금껏 해 오던 것처럼 내 느낌을 믿어 보려고.”
박판섭이 말을 이으며 거침없이 걸음을 옮긴다.
“사실, 우리는 단순 전달책이기 때문에 공적을 위한 다리는 큰 의미가 없소.”
어느새 도윤의 코앞까지 다가온 박판섭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르신 한 분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되겠지.”
박판섭이 정면에서 도윤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지금 어느 공장에 있소?”
“해운대.”
도윤이 짧게 대답하자 박판섭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운대면, 동부관할이군.”
말을 마친 박판섭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 큰 키가 아님에도 시꺼먼 손은 마치 솥뚜껑만큼 컸다.
도윤이 잠시 그 손을 바라보고 있자 박판섭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도 조카뻘은 되어 보이는 사람한테 고개는 못 숙이겠소.”
“바라지도 않아.”
박판섭의 말에 도윤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내민 손을 맞잡았다.
“……!”
순간 박판섭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무슨 놈의 악력이……’
박판섭이 있는 힘껏 손에 힘을 줬지만, 도윤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판섭의 관자놀이가 툭툭 불거지기 시작했다.
‘젠장, 천하의 박판섭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새끼한테 이런 추태를…’
속으로 중얼거린 박판섭이 맞잡은 도윤의 손을 힘차게뿌리치려는 순간, 도윤이 먼저 손을 놓았다.
박판섭이 찌푸린 얼굴로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딱 하고 도윤과 눈이 마주쳤다.
“……!”
박판섭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박판섭은 저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잘 알고 있다.
‘큰 형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박판섭의 등 뒤가 식은땀으로 촉촉하게 젖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박판섭이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잘, 잘 부탁하요.”
박판섭의 말에 이내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한다.
“나야말로.”
훗날 도윤의 손발이 되어 주는 박판섭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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