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P의 의미
“생각보다 수확이 좋은데…….”
손에 쥔 종이 뭉치를 바라보며 도윤이 밝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제 슬슬 설명 좀 해 주시지?”
옆에서 걷고 있던 호식이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뭘?”
도윤이 짐짓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반문하자 순간 호식이 발끈한다.
“곰이니! 다리니! 온갖 알 수 없는 말만 하다가 둘이서 방 안에 들어가 놓곤, 저 흉악한 놈들 사이에서 1시간은 넘게 기다리게 했잖아! 오줌 지릴 뻔했다고!”
“킥, 왜? 시원하게 한번 싸 갈기지. 우리 집에 소금 많은데.”
“…….”
도윤의 말에 입을 다문 호식이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삐졌냐?”
“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웃지 마라, 악독하기로는 프리저보다 더한 놈아!”
“뭐가 궁금한데?”
도윤의 물음에 다시 고개를 돌린 호식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얘기해 줄 거야?”
“그래.”
이제 완전히 몸을 돌린 호식이 도윤을 바라보며 말한다.
“곰은 뭐고, 공적을 쌓기 위한 다리가 되어 준다는 건 무슨 말이야?”
“일부 조폭들이 강력계 형사들을 곰이라고 불러. 공적 쌓기는 말 그대로야.”
“말 그대로라니?”
“구속된 마약사범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말 그대로 공을 세워 공적을 쌓는 거야.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마약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 그 증거로 내가 아는 마약상선을 모조리 불겠다.’라는 식으로 말이야.”
“자기 상선을 팔아서 자기 형량을 줄이겠다?”
“그래.”
도윤의 짧은 대답에 호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잇는다.
“10명 중에 10명이 끊지 못하는 게 마약인데, 고작 형량 몇 개월 깎겠다고 자기 상선을 팔아먹는다고?”
“정확히는 상선이 아니라 다른 마약사범이야.”
“다른 마약사범이라니?”
“불어도 자기한테 별 불이익이 없는 놈, 보복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단순 투약 뽕쟁이들을 공장에 팔아넘기는 거지.”
“아, 공장이라면…….”
“지청.”
도윤의 대답에 호식이 고개를 끄덕인다.
검찰 쪽 직원들은 사내가 아닌 사외에서 검찰지청을 공장 혹은 회사라고 부르곤 한다.
검찰 쪽 직원들이라는 사실만으로 일반인들에게 충분히 위화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들이 그걸 몰라? 상선을 부는 건지, 다른 일반 뽕쟁이를 부는 건지, 대충 느낌은 올 것 같은데, 아닌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끝을 흐리는 호식을 보며 도윤이 입을 열었다.
“전에 얘기했잖아. 굳이, 왜?”
“뭐?”
“진짜 상선이든, 단순 투약, 소지범이든, 마약 혐의만 인정되면 실적은 똑같이 1건 추가되는 건데, 검사들 입장에서 진짜 상선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걸?”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호식이 입을 쩌억 하고 벌렸다.
“그, 그러니까 실적만 올려다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실적 쌓아서 인사 고과 잘 받아다 승진만 하면 장땡이다?”
“…….”
호식의 말에 도윤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누군가 무언은 긍정의 또 다른 의미라고 했던가?
“더럽네, 시발…….”
호식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끝이 아니야.”
“……?”
“보통 단순 마약 소지범이나 투약범들에게서 공적 쌓기라느니, 그런 경우는 잘 없어. 그럴 배짱도 없을 뿐더러, 상선을 제외하고 알고 있는 다른 뽕쟁이들도 몇 없을 테니까.”
“그럼…….”
“공적 쌓기는 보통 중간 판매책 이상 급은 되어야 써먹어. 중간 관리자가 잡혀 들어가면 총책도 피곤할 테니까, 작업 좀 쳐서 형량을 깎아 주는 거지.”
“작업이라니?”
“1~2명 정도는 약 사러 처음 오는 놈들이 대상이 돼. 검찰에 미리 연락 한 통 넣어 주고, 약을 넘긴 직후에 신호를 보내는 거지.”
“그럼 검찰은 그걸 알고도…….”
말을 잇던 호식이 으득 이를 갈았다.
“…공적이 많이 필요할 때는 나이트나 특정 장소에 엑스터시를 싼 가격에 다량으로 뿌려서, 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을 한 번에 잡아들이기도 하고, 검찰은 그걸 알면서도 묵인해주는거지.”
도윤의 말에 호식이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일부러 술에 약을 타서 마약사범으로 엮어 가기도…….”
“이런 씨발!”
마침내 호식이 폭발했다.
“출세 한번 해 보겠다고, 대한민국 검사라는 놈이 범죄자들이랑 짜고 치는 것도 모자라, 그딴 개짓거리를 한다고? 어떤 개새끼들이야!?”
격분하여 씩씩거리는 호식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던 도윤이 말을 잇는다.
“그래도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그렇게까지 하는 검사들은 없을 거야.”
‘아마도’
뒷말을 삼킨 도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찰싹.
어두운 조명, 5평도 안 될 듯한 작은 룸 안에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완전히 갔는데?”
오성춘이 눈앞에 있는 여자의 뺨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육감적인 몸매에 어두운 조명 사이로 얼핏 보이는 얼굴은 많이 쳐야 20대 중, 후반쯤 되어 보였다.
“어디 한 번…….”
말을 마친 오성춘이 눈앞에 있는 여자의 뺨을 다시 한 번 강하게 후려갈겼다.
짜악!
이번에는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갈 정도로 강한 세기였음에도 여자는 여전히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치 혼이 그대로 빠져나간 듯한 모습이다.
그때 룸 출입문에서 누군가 가볍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실례하겠…….”
말끔하게 와이셔츠를 갖춰 입은 채 룸 안으로 들어서던 남자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재떨이가 머리 쪽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플라스틱이나 비교적 가벼운 스테인레스 소재도 아닌, 윈저 프리미어라고 적힌 겉보기에도 묵직해 보이는 느낌의 재떨이다.
남자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재떨이를 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퍼억!
이내 날아든 재떨이가 남자의 머리에 직격했다.
주르륵.
피가 흘러내림에도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씨발! 누가 마음대로 들어와도 된다고 했나!?”
“죄, 죄송합니다. 실장님이 서비스 한 병 넣어 드리라고 해서…….”
오성춘의 고함소리에 남자가 급히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사내가 허리를 굽히자 출입문 사이로 밝은 빛이 잠시 비춰 내부를 밝힌다.
애써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박봉준 검사.
그리고… 새어 들어온 빛과 함께 얼굴이 드러난 여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톱스타 중 하나로 불리는 BOB엔터테인먼트의 간판, 최하연이였다.
“그깟 싸구려 양주 하나 서비스 받자고 이 비싼 곳까지 온 줄 알아!? 돈 아끼려면 쩜오를 갔지, 새끼야!”
쩜오는 0.5를 뜻한다.
이쪽 바닥에서는 최고급 룸살롱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1.5급 정도의 고급 룸살롱을 표현할 때 쓰이는 말이다.
이곳이나 그쪽이나 남자의 입장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자랑한다.
하지만 남자는 절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씨발, 실장‘님’? 너네 실장이 나보다 위야? 군대 안 다녀왔어? 압존법 몰라?”
정작 말을 하고 있는 오성춘은 병역 면제자였다.
권력자들 사이의 병역기피 현상은 오래전부터 문제되어 왔기에 놀라운 사실도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오성춘을 비롯한 일부 재벌가 자제들이랄까.
“나가.”
남자가 어쩔 줄을 몰라 엉거주춤하게 서 있자, 오성춘이 다시 한 번 소리친다.
“꺼지라고, 새끼야! 너네 실장 직접 내 눈앞에 대령하고 싶어!?”
“아닙니다!”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이곤 부리나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잠시 출입문을 응시하던 오성춘이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을 들어 독한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퉤! 씨발, 술맛 다 버렸네.”
말을 마친 오성춘이 손에 쥔 술잔을 휙 하고 집어던졌다.
쨍그랑!
오성춘의 손을 떠난 고급스러운 술잔이 그대로 벽면에 부딪히더니 산산조각 났다.
“…….”
제법 강한 소음이었음에도 최하연은 여전히 초점 없는 눈빛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오성춘이 최하연의 커다란 가슴을 덥썩 움켜쥐었다.
“……!”
고통스러운지 잠시 인상을 찡그리던 최하연이 이내 다시 멍한 표정을 짓는다.
“…대체 약을 얼마나 탄 거냐?”
일련의 과정들을 입을 다문 채 지켜보고 있던 박봉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뭐, 1회 투약분의 5배 정도? 그보다, 형.”
박봉준의 말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대답한 오성춘이 계속하여 말을 잇는다.
“술맛도 다 떨어졌는데, 다른 것도 맛봐야지? 예부터 술과 여자는 하나 아니겠어?”
이어지는 오성춘의 말에 와락 인상을 구긴 박봉준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쯤 하지. 난 이만 가 봐야겠다.”
말을 마친 박봉준이 출입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아~ 혼자만 깨끗하시다? 그러시겠지, 대한민국 대검사님인데 나 같은 연수생 나부랭이가 어떻게 막아설까, 가세요, 가세요.”
오성춘이 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순간 걸음을 옮기던 박봉준이 움찔 몸을 떨었다.
주먹을 꽈악 말아 쥔 채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던 박봉준이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박봉준 검사님. 아니, 봉준이 형!”
“……?”
출입문을 나가기 직전 오성춘의 부름에 박봉준이 고개만 힐긋 돌려 오성춘을 바라본다.
“우린 한배를 탄 동지라는 걸 잊지 말라구. 타이틀 멋지잖아!? ‘대한민국 최대 톱스타, 최하연. 물뽕 투약 혐의로 입건!’ 캬~ 이런 소스 제공해 주는 동생 또 없다.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피보다 진한 형님의 출세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랄까!”
오성춘이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캐비넷에 고이 모셔 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더 이상 말 안 해도 나머진 형이 알아서 할 거라고 믿을게?”
쾅!
박봉준이 소리 나게 출입문을 닫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오성춘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병신, 꼴깝 떨기는… 니 출세욕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결국 공짜로 낼름할 새끼가, 아주 지 혼자 청렴검찰이에요. 그래, 내가 제일 나쁜 새끼다.”
말을 마친 오성춘이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최하연을 돌아본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오성춘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최하연에게 천천히 몸을 밀착시키기 시작했다.
* * *
“장기밀매 유통 경로와… P의 의미에 대해 얘기했다고!?”
호식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방 안에서 둘이 무슨 얘기를 했나 싶었더니, 생각보다 엄청난 대화가 오간 듯하다.
“그래서, 뭐라는데?”
다급히 물어오는 호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도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P는… Premium의 약자야.”
“프리미엄?”
호식의 반문에 짧게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말을 잇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윤의 말이 이어질수록 호식의 표정이 충격과 경악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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