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프리미엄 장기매매
사무실 내부에 딸린 또 하나의 방.
약 5평 정도 되어 보이는 방 안에는 커다란 테이블 하나와 그 양옆에 의자 두 개만이 놓여 있었다.
‘비즈니스용 밀실인가?’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박판섭이 입을 열었다.
“앉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그대로 걸음을 옮겨 자리에 앉았다.
“이제 한배를 탔는데, 솔직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군.”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오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한다.
“뭘?”
“…정말 이럴 건가?”
박판섭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도윤이 말한다.
“질문 내용이 있어야 답변도 할 것 아닌가?”
“…우리 다리가 되어 주겠다는 말, 그 의미를 알고 싶다. 솔직히 느낌이라고 얘기는 했지만, 나는 아직도 니가 검사라는 게 믿기지는 않아. 검사치고는 상당히 젊… 아니, 이 정도면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더 맞겠군.”
“뭐, 니 말대로 난 아직 검사가 아니야.”
“……!”
순간 인상을 와락 구긴 박판섭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다 멈칫한다.
도윤의 말에서 묘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직?”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참아 낸 박판섭이 조용히 묻는다.
그 모습에 속으로 감탄한 도윤이 품에서 무언가 꺼내, 테이블 위에 툭 하고 집어 던졌다.
“사법연수생?”
그 물건을 유심히 쳐다보던 박판섭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도윤이 집어 던진 물건은 사법연수생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학생증이었다.
“하지만 곧 검사가 될 예정이지. 성적이 어떻게 되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해. 이 정도 패를 보였으면, 처음 당신의 감을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박판섭이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잠시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던 박판섭이 이내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아직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다리가 되어 준다는 건 무슨 말이냐?”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아니면 또 한번 떠 보는 건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도윤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21세기파는 다른 조직들과 비교해도 훨씬 뛰어난 의리를 자랑한다고 들었다.”
“갑자기 왠 칭찬이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박판섭의 기분이 썩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말을 잇는다.
“너희 조직은 단순 전달책 역할만 한다고 했나?”
“마약 말인가?”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하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나는 약장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당장 이윤이야 많이 남겠지만, 예부터 약으로 흥한 놈들 중 잘된 놈은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거든. 그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하면 더했지, 나아질 것 같지는 않아.”
‘호오…….’
도윤이 또 한 번 속으로 감탄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봐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약에 대한 처벌 규제는 강화된다.
오죽했으면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가적으로 ‘마약과의 전쟁’까지 선포하면서 마약사범들을 대부분 사살했겠는가.
“니가 21세기파를 장악하게 된다면, 마약에선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걸로 들어도 되겠지?”
도윤의 물음에 박판섭이 멈칫한다.
잠시 후 박판섭이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큰 형님이 들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담길 말을… 젊은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군. 뭐, 아무튼 나는 약장사에 대해서는 반대파다.”
“니 생각 잘 알겠다. 그럼 하나만 묻지. 만약, 니 밑에 있는 단순 전달책이 검찰에 붙잡혔을 때 너는 어떻게 행동할 생각인가?”
“뭐?”
“다른 조직들은 중간 판매책 이상이 검거된 경우가 아니면 딱히 공적을 쌓으려고 하지 않아. 바이어(구매자)가 충분히 넘쳐 남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
“오히려 약장사를 하지 않는 조직에서 공적을 쌓으려는 경우가 더 많아. 조직원이 마약 투약으로 검거되었다? 공적 1명당 200만 원씩, 약장사를 하는 조직 관리자에게 웃돈까지 줘 가며 공적을 사 오고 있는 실정이지.”
“…….”
“너는 니 부하가 붙잡혔을 때, 어떻게 행동할 건가?”
이어지는 도윤의 물음에 박판섭이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도윤도 입을 다문 채 박판섭을 응시하며 잠시간 기다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요한 침묵을 깨고 마침내 박판섭이 입을 열었다.
“정말 연수생 나부랭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군. 요즘엔 학교에서 이론보다 실무 위주로 가르치나 보지?”
“뭐, 그런 건 아니고. 이쪽 바닥에 관심이 많을 뿐이야.”
“…….”
잠시 도윤의 두 눈을 응시하던 박판섭이 말을 잇는다.
“내 부하가 검거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거냐고 물었나?”
자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계속 말한다.
“그놈이 단순 전달책이든, 중간 판매책이든, 나한테는 똑같은 내 부하다. 나는 급으로 내 부하를 나누지 않아.”
“…….”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 내 부하가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박판섭의 대답에 도윤이 만족한 듯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그 일을 도와주는 다리 역할을 내가 하겠다는 거다.”
“…….”
“일부 전국구 조직을 제외하고는 중소 조직들은 아직 검찰에 줄이 없을 텐데? 물론, 21세기파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
“무작정 저 공적 쌓을게요. 라고 담당 검사랑 쇼부 보는 것보단, 하나쯤 검찰 내에 연을 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판섭을 보며 도윤이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필요하면 공적 쌓는 것쯤은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
“…그건 무슨 말이지?”
“나는 반드시 검사가 될 거다. 나한테 넘어온 마약 사건들에 대한 공적을 너희 쪽으로 돌려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범죄자와 타협하는 놈이라며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그런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이를 그만둘 생각도 전혀 없다.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를 바로잡아, 범죄자들의 씨를 말리겠다는 흔해 빠진 이유로 검사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출세를 위해서,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검사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도윤은 확실히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명성을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내 소중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검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니까.
“……!”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박판섭이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군. 그렇게 해서 니가 얻는 건 뭐냐?”
“정보.”
“정보?”
“내가 필요한 정보들을, 니가 알고 있는 선에서 얘기해 주면 된다. 알아봐 주면 더 좋고.”
“…….”
잠시 골똘이 생각하던 박판섭이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느낌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지. 그 정보, 지금 필요한가?”
박판섭의 대답에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최근 망치파에 대포통장을 대량으로 넘긴 사실이 있나?”
순간 예상치 못한 도윤의 질문에 박판섭이 인상을 굳혔다.
“그 일로 우릴 잡아다 넣으려는 건 아닐 테고… 혹시 공장에서 그 빌어먹을 종자들을 작업하고 있는 건가?”
이번에는 도윤이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분명 회귀 전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망치파와 21세기파의 관계가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조금씩 틀어지기는 했다.
사실, 이 무렵 21세기파가 부산 지역에 있는 중소 조직폭력단들 중 나름 큰 세를 자랑하긴 하였지만, 전국구인 망치파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오죽했으면 관할 경찰서에서 21세기파를 망치파의 하부 조직으로 판단했겠는가.
그런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종국에는 21세기파가 전국구급으로 성장하면서 두 조직이 완전히 적대 관계가 되어 버렸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예상보다 빠르군.’
아마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부에서 훨씬 더 빨리 분열이 시작된 듯하다.
‘한번 시험해 볼 필요가 있겠어.’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박판섭을 바라본다.
“얼마 전에 우리가 망치파의 김두식을 검거했다.”
“……!”
예상치 못한 도윤의 말에 박판섭이 눈을 부릅떴다.
“김두식이… 붙잡혔다고?”
망치파의 차기 2인자로까지 불리는 거물이 김두식이다.
그런 김두식이 붙잡혔다?
박판섭이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역시 모르고 있군.’
언론에 발표된 사실은 아니지만, 만약 망치파와 21세기파가 이전과 같은 친밀한 관계였다면 박판섭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만 더.’
“망치파와 21세기파는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니가 부탁한다면, 김두식이 풀려날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니가? 어떻게?”
박판섭의 물음에 도윤이 대답한다.
“담당 부장검사님이 나를 꽤나 신뢰하고 있어. 사실 검거도 내가 직접 했거든. 얘기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거야.”
“…….”
도윤의 말에 박판섭이 심각한 얼굴로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런 박판섭을 도윤이 바라보기를 잠시.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하지.”
“왜지?”
“망치파의 차기 2인자라면 굳이 내가 손쓰지 않아도, 그쪽에서 알아서 조치를 취할 것 같으니까.”
이어지는 박판섭의 말에 도윤이 피식 미소 지었다.
“뭐가 우습지?”
“아, 실례. 니 생각 잘 알겠다. 그럼, 잠시 이걸 좀 봐 줬으면 좋겠다.”
말을 마친 도윤이 메모지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메모지에 적힌 글자를 가리키며 도윤이 묻는다.
“대포통장에 찍힌 거래 내역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
테이블 위에 메모지를 빠르게 낚아챈 박판섭이 떨리는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본다.
“이건…….”
“역시 아는군. 장기밀매.”
“…하, 더 이상 놀랄 힘도 없군. 그래, 니 말대로 장기밀매다. 적출한 10살짜리 남자아이의 심장을 어느 빌어먹을 새끼가 12억에 팔아먹었군. 개자식…….”
“21세기파는 아닌가?”
도윤의 말에 박판섭이 와락 인상을 구기며 으르렁거렸다.
“농담이라도, 그런 개소리는 지껄이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조폭이라고 니가 생각하는 질 나쁜 새끼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사과하지.”
곧바로 사과하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애늙은이 자식.”
“그런 얘기 자주 듣지.”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도윤을 보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박판섭이 묻는다.
“그래서, 뭐가 궁금하나? 이미 장기밀매를 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이 P. 무슨 뜻이지?”
이내 도윤이 가리키는 메모지로 시선을 돌린 박판섭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P는 프리미엄, 한마디로 미리 표적이 된 대상의 장기다. 맞춤형 장기랄까?”
“뭐라고?”
조금 높아진 목소리로 반문하는 도윤을 보며 박판섭이 계속 말한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아무나 납치해서 장기를 적출해 봐야, 수술할 대상에게 맞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나. 그래서 미리 대상에게 맞는 장기를 가진 표적을 선정하는 거야.”
“이 미친…….”
도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 짓을 할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아. 병원 같은 곳에서 미리 정보를 빼돌려야 하니까. 아마 그 조직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큰 누군가가 밀어주고 있을…….”
콰아앙!
박판섭이 설명을 채 마치기도 전에 도윤이 눈앞의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이윽고 밀실 내부가 고요한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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