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마음가짐
부산 동부지검 제1부장검사 사무실.
테이블 상석에 윤만석 검사가 심각한 얼굴로 자리하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윤만석 검사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실입니다.”
짧게 대답하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윤만석 검사가 그 옆에 앉아 있는 호식에게 시선을 돌렸다.
“…….”
한차례 움찔 몸을 떨었지만 호식도 윤만석의 시선을 애써 피하지 않고, 굳은 눈빛으로 마주했다.
이내 윤만석 검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만약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마약과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문제야. 장기매매만으로도 기가 차는데, 대한민국에서 표적장기매매라니?”
윤만석 검사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믿기지 않는 게 무리도 아니지.’
그런 윤만석을 보며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장기매매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내년, 그러니까 2002년 DJ 정권의 마지막 임기 때부터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관광산업을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중국인을 대상으로 제주도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덕분에 제주도 경기는 큰 호황을 이루었지만, 문제는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대거 국내로 유입되면서, 외국인 범죄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만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이상 동북삼성 지역에서 국내로 입국한 조선족들.
그 틈에 섞여 조선족 장기밀매조직들이 이 나라,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국내로 유입된 조선족 장기밀매조직들은 곧바로 한국의 조직폭력배들과 결탁했고, 이때부터 불법 장기매매가 성행하면서 세상에 완전히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2001년. 즉, 중국에서 장기밀매조직이 국내로 유입되기 전부터, 이미 한국에서는 장기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미 자체적인 장기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제는 표적장기매매란다.
표적장기매매는 절대 조선족들과 조직폭력배들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하다못해 납치 대상자의 혈액형이라도 알아야 될 것 아닌가?
‘장기이식 수술이 충분히 가능한 대형 병원 관계자, 더 나아가 국내 특정 권력자들까지 엮여 있다.’
“젠장…….”
순간 도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윤만석 검사의 말대로,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크다.
지방에 위치한 일개 지청 수준에서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 일은 본청에 맡기는 게 좋겠군. 그때까지는 놈들이 눈치채고 숨어들지 않게, 보안 유지를 철저히…….”
“안 됩니다!”
윤만석 검사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호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쳤다.
“무슨…….”
“본청으로 사건이 이송되는 데 며칠, 사건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또 며칠, 다시 검거 계획을 짜는 데 며칠! 준비까지 몇 주가, 아니 몇 달이 걸릴지 모릅니다! 어쩌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요!”
“…….”
호식의 말에 윤만석 검사가 입을 다물었다.
호식의 말대로였다.
단순폭행 사건도 아니고, 서류만 가지고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사건은 아니었으니까.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게 된 상황에서 그 정도 시간을 허비한다고요? 절대 안 됩니다!”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윤만석 검사를 보며 호식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어머니가, 내 딸이, 내 여동생이! 납치되어 혼자 벌벌 떨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 가족이 차가운 나이프에 몸이 두 쪽이 나 심장이 꺼내어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내 가족이 아니니까? 누군가에게는 똑같이 귀한 부모고, 자식이고, 가족 아닙니까? 만약 선배님 가족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어도 지금처럼 일을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대한민국 검사는! 국민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것도 아닙니다! 억울한 국민, 도움이 필요한 국민들을 그 막강한 권한으로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국민들을 도와줄 의무가 있습니다!”
“…….”
이어지는 호식의 말에 윤만석 검사가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나 젊은 후배에게서 가슴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느꼈으리라.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훗날 개정될 대한민국 검사 선서의 한 문구를 떠올린 도윤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제부터였을까?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
10년?
20년?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검사라는 직업이 생긴 직후부터 쭉 계속되었을까?
검사라는 직함에 국민들은 스스로 자세를 낮추며 떠받들기 바빴고, 검사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사시만 패스하면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아래로 내리깔 듯 바라봤다.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검사들도 그저 국민들의 세금으로 녹을 받는 대국민 봉사자 중 하나일 뿐인데…….
천근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저, 선배…….”
“내가 직접 지청장님을 찾아뵙지.”
도윤이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윤만석 검사가 입을 열었다.
잘게 온몸을 떨던 호식도 멈칫하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지청장님 다음은 지검장님, 더 나아가 빠른 시일 내에… 서울에도 한번 직접 올라갔다 오지.”
“……!”
엉덩이 무겁기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부장검사가 사건 하나를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직접 움직인다?
순간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내가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
이어지는 윤만석 검사의 말에 호식이 입을 다물었다.
“젊은 후배 덕분에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하군. 상부에 보고한 뒤, 마약 건이 처리되는 대로 내가 직접 움직일 생각이야. 그러니….”
잠시 말끝을 흐리던 윤만석 검사가 호식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나를 믿게.”
“…알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호식이 이내 대답한다.
그와 동시에 윤만석 검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청장님 설득하는 것보다 한참 어린 후배를 설득하는 게 더 어렵군.”
윤만석 검사의 말에 호식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을 해서…….”
그런 호식을 보며 도윤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동감.’
도윤이 이채 띤 눈빛으로 호식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런 모습이 있는 줄은 몰랐군.’
미래에 있을 일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실제로 보는 것과 전해 들은 내용은 받아들여지는 느낌 자체가 다른 듯하다.
“이번에도 후배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군.”
말을 마친 윤만석 검사가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한차례 벽에 걸린 달력을 힐긋 바라본 윤만석 검사가 말을 잇는다.
“실습 기간이 이제 1주일이 채 남지 않았군. 조금 아쉬운데…….”
짐짓 말끝을 흐리던 윤만석 검사가 묻는다.
“지금 와서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이제 내가 조금 말을 편하게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선배님.”
도윤의 대답에 호식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내가 도윤이한테 그런 말을 했지? 너 같은 친구, 마음에 든다고. 변치 말라고.”
“예.”
도윤의 짧은 대답에 윤만석 검사가 호식에게 시선을 돌린다.
“변치 마라, 호식아.”
“……!”
윤만석 검사의 말에 호식이 눈을 크게 떴다.
잠시 후…….
이내 호식도 밝게 미소 지으며 큰 소리로 대답한다.
“예!”
* * *
“장난하십니까?”
오성춘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김영재가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삭인 박봉준이 반문했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 주는 것도 못 드시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김두식이 검거 건, 이대로 눈 뜨고 코 베일 거냔 말입니다.”
“이미 부장검사님이 수사 진행 중인 사건이다! 내가 섣불리 나서면, 뽕쟁이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가 그대로 날아갈 수 있단 말이다!”
와락 인상을 구기며 고함치는 박봉준을 잠시 바라보던 오성춘이 말한다.
“진심은 그게 아니잖아요?”
“뭐?”
“출세.”
“……!”
“형은 고작 지방에 묻혀 있을 인재가 아니잖아요? 지청장도 해 봐야 하고, 서울지검장도, 나중에는 검찰총장도 해 봐야죠?”
“…….”
“그다음은? 금배지 달고 여의도 입성해야죠. 평생 이런 곳에서 썩을 생각, 아니잖아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봉준을 보며 오성춘이 말을 잇는다.
“마약? 그게 무슨 강력범죄야. 지들이 좋아서 하는 건데. 고작 뽕쟁이 몇 놈 놓친다고 이 나라에 무슨 큰일이 일어나나? 아니라니까?”
말을 마친 오성춘이 박봉준의 눈앞에 바짝 얼굴을 가져다 댄다.
“똑같다고. 벌레들은 여전히 우리한테 고개를 숙이고, 말 한마디에 벌벌 떨어 대지.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
“뽕쟁이 몇 놈 잡는 거랑 출세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 뭘 선택해야 할지는 형이 더 잘 알잖아?”
오성춘의 말에 박봉준이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꽈악 말아 쥐었다.
그런 박봉준을 잠시 바라보던 오성춘이 피식 웃으며 박봉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캐비넷에 모셔 둔 것, 내일 당장 터뜨려요.”
박봉준이 움찔 몸을 떨었다.
“필요하면 언론사도 소개시켜 줄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말하고.”
오성춘이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질질 시간 끌어 봐야 성공 확률만 낮아진다는 것, 알죠?”
말을 마친 오성춘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박봉준의 눈치를 살피던 김영재가 빠르게 오성춘의 뒤에 따라붙었다.
“…한 가지만 묻자.”
조금씩 멀어지는 오성춘의 뒷모습을 보며 박봉준이 낮지만 확실히 들릴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런 박봉준의 말에 오성춘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냐?”
박봉준의 물음에 오성춘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나는 바보가 아니다. 니가 나한테 호감이 있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 생각하지 않아. 목적이 뭐냐?”
박봉준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 오성춘이 완전히 몸을 돌렸다.
“목적? 그런 거창한 건 없는데?”
“…….”
“단지, 주제도 모르고 내 앞에서 설쳐 대는 벌레 새끼들을 보고 있자면, 화가 나 잠을 잘 수가 없거든. 그뿐이야.”
말을 마친 오성춘이 다시 몸을 돌렸다.
“…너는, 명성이 내 야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박봉준의 말에 몸을 돌린 상태에서 오성춘의 얼굴에 떠오른 비릿한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물론.”
짧게 대답한 오성춘이 다시 걸음을 옮기더니,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잠시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던 박봉준이 이윽고 무언가 결심한 눈빛으로 어디론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 *
그리고, 다음 날.
대한민국 5대 메이저 신문사 중 하나인 중심일보의 일 면이 한 가지 주제로 대서특필(大書特筆)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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