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30화 (30/174)

30화 첫 번째 투자 (1)

파악!

윤만석 검사가 구겨진 신문지 뭉치를 훽 하고 집어 던졌다.

테이블 위에는 오늘 자 신문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윤만석 검사가 구겨진 신문지 일 면을 힐긋 바라본다.

‘밥 엔터테인먼트 메인 톱스타 최하연,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

‘임용 4년 차, 젊은 검사의 대활약! 마약 밀수조직 중간 판매책이 최하연에게 마약을 매매한 사실을 밝혀내…….’

‘조폭 행동대장에 이어 연예계 톱스타까지 검거! 부산동부지청의 기대주 박봉준은 누구인가?’

‘사건 진행 과정에서 주수사관이 직속 부장검사로 바뀐 것으로 밝혀져… 검찰의 부하 공(功)적 가로채기인가?’

마지막 기사에 시선이 이르렀을 때 윤만석 검사가 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항상 자극적인 기사를 좋아하는 언론사들.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지어내는 능력은 대한민국에서 기자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어떤 방향으로 기사를 내느냐에 따라 여론이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정치인들이 정부의 ‘언론 장악’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윤만석 검사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씹어 내뱉듯 중얼거렸다.

* * *

2002년, 그 기적의 해가 드디어 밝았다.

TV 방송에서는 한류 열풍의 시작이자, 욘사마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해질 배용준의 겨울연가가 방영을 시작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발언하며 약 2년 뒤 벌어질 이라크 전쟁의 서막을 알렸다.

아름다운 청년에서 희대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가수 유승준의 국내 입국금지가 마침내 발효되었고, 그에 따른 국민들의 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 국민이 분노로 몸서리칠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남자 1500m 결승전.

마지막 1바퀴를 남겨 두고, 안톤 오노(Apolo Anton Ohno)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이 실격 처리되어, 금메달을 빼앗긴 것이다.

이 사건으로 한동안 ‘오노 같은 놈’이 대한민국 최고의 욕으로 등극했다.

약 두 달 뒤에 있을 월드컵 개최로 대한민국 전체가 떠들썩할 무렵, 도윤도 마침내 첫 번째 목표를 이루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 침대에 누워 도윤이 귀에 MP3 이어폰을 낀 채 천장을 바라본다.

마침 이어폰에서는 소리바다에서 다운받은 2001년 히트곡,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 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도 조금 있으면 사용할 수 없나?’

도윤이 MP3를 만지작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2000년도에 서비스를 시작한 소리바다는 음반사들의 저작권 침해 고소와 함께 2002년 중순,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기 때문이다.

순간 도윤이 책상 위로 힐긋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검사. 이제 첫걸음이다.’

도윤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 검사 임용장이 놓여 있었다.

‘검사 강도윤이라…….’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법연수원 성적이 최상위권에 위치한 연수생들이 무조건 판사로 임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착각이다.

상위 5퍼센트에 해당하는 최상위권 사법연수생들은 대게 대형 로펌이나 기업 변호사가 되어 말 그대로 억대 연봉을 받는다.

그들을 제외한 상위권 성적자들이 판사, 그다음이 검사, 나머지 연수생들이 일반 변호사가 되는 식이다.

이마저도 본인들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성적만 좋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물론 전체 수석인 도윤은 본래의 목적대로 검사가 되었다.

“돈…….”

상념에 빠져 있던 도윤이 짧게 중얼거렸다.

31기 사법연수생들 중 성적이 최상위권에 위치한 10명.

도윤과 판사가 되기를 희망한 여자 사법연수생 1명, 그리고 김영재를 제외하고, 나머지 7명이 전부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

뿐만 아니라 현 추세로 봤을 때 판, 검사로 임용되는 인재들도 재벌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갈 확률이 높다.

도윤이 가장 의외였던 것은 당연히 명성으로 갈 것이라 생각한 김영재가 검사가 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무슨 꿍꿍이 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윤이 주먹을 힘주어 꽈악 말아 쥐었다.

“훗날 여론을 움직일 힘, 그리고 자본. 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면…….”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도윤의 집 인근에 위치한 까페.

“이야! 강프로!”

호식이 자못 호들갑을 떨며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는 도윤을 향해 다가간다.

“그런 말은 어디서 주워들었대.”

“31기 수석이 검사라! 멋져, 멋져. 마음 같아서는 아버지께 잘 말씀드려서 우리 기업 변호사로 고용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기는.”

호식이 평소 아버지와 서먹서먹한 관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도윤이 중얼거렸다.

“너는? 국선 변호사, 진짜 할 거야?”

도윤의 물음에 잠시 멈칫한 호식이 이내 쓰게 웃으며 대답한다.

“일단 집에서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라 사선으로 시작해야 할 수도… 뭐, 어려운 사람들은 돈 안 받고 도와줘야지.”

“…….”

“개인 사무실까지 차려 준다는 거 뜯어말리느라 힘들었다. 크크.”

멋쩍게 웃으며 애써 농담조로 말을 잇던 호식이 빠르게 화제를 전환한다.

“그보다 초임지가 서울 중앙지검이라며? 역~ 시 강프로. 신임 검사들의 꿈, 대검 다음으로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곳을 시작 지점으로! 캬~”

호식의 너스레에 이내 도윤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놈의 프로, 프로. 안 하면 안 될까?”

“왜, 프로 간지 나잖아! 꼬우면 너도 장변이라고 불러!”

이어지는 호식의 말에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장똥?”

“……?”

호식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런 개…….”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호식이 발끈하려는 순간, 도윤이 입을 열었다.

“너, 돈 좀 있냐?”

“돈?”

도윤의 물음에 호식이 반문했다.

“그래, 돈.”

“와~ 돈에 관해서는 2년 동안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하던 우리 강프로가 웬일이래? 무슨 일 있냐?”

“뭐, 딱히 일이 있어서 돈이 필요한 건 아니고…….”

도윤이 말끝을 흐리자 잠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식이 말한다.

“뭐, 사채 땡겨 쓰면서 장기를 담보로 신체포기각서 써내고 그런 건 아니지?”

“투자할 곳이 있어.”

도윤의 진지한 표정을 바라보던 호식도 표정을 굳히며 묻는다.

“투자? 얼마나 필요한데?”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많다는 게 감이 안 잡히는데… 용돈이랑 월급 모아 놓은 거 다 끌어 모으면 1억은 나올 것 같은데, 다 빌려줘?”

“더 많으면 좋고.”

도윤의 대답에 호식이 눈을 크게 떴다.

호식이 아무리 재벌가 자제라지만 경제관념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는 아니다.

1억이라는 거금을 선뜻 내놓겠다는데, 그보다 더 필요하단다.

짐짓 더욱 표정을 굳힌 호식이 묻는다.

“…어디 투자할 건지 물어봐도 되냐? 투자자가 투자처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돈을 내놓을 순 없잖아?”

호식의 두 눈을 잠시 응시하던 도윤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투자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일단 투자만 되면 투자 대비 수백, 아니 수천 배 이익도 낼 수 있는 곳.”

“……!”

순간 호식이 눈을 크게 떴다.

“더 나아가 머지않은 미래에 경제적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얻을 수도 있는 그런 곳.”

‘심지어 저 엄청난 미국 정부조차 두려워하는 힘을 가진 곳.’

뒷말은 애써 삼킨 도윤이 호식을 바라본다.

“…….”

호식이 헤 하고 입을 벌렸다.

“그런 곳에 투자할 생각이야.”

“…저기, 수천 배… 아니, 그냥 딱 잘라서 1,000배만 잡아도 1억만 투자하면 1000억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건데, 그게 가능하다고?”

“그보다 더할 수도 있고.”

“…너무 엄청난 얘기라 전혀 실감이 안 가는데, 대체 그 정도 수익을 낼 거라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는 거야?”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입을 다문 채 호식의 두 눈을 바라본다.

“…….”

호식이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도윤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색한 침묵이 얼마간 지속되었을까?

이내 호식이 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좋아. 투자처는 블라인드로. 나는 강도윤이라는 인물에게 투자하는 셈 칠게.”

“…….”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할 거야. 나도 물건을 팔아 이윤을 남겨 먹는 장사치 집안 사람이니까. 내 개인적인 분석으로 판단한 현재 너의 가치.”

“…….”

“딱 그 가치만큼만 투자할 생각이야. 혹시나 너무 적다고 삐지기 없기.”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좋아. 돈 융통되는 대로 연락 줄게. 나는 돈만 주면 되는 거지?”

호식의 물음에 이번에는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이 가자.”

“같이 가다니? 어딜?”

“투자처에.”

호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가 어딘데?”

호식의 물음에 도윤이 씨익 웃으며 짧게 대답한다.

“미국.”

* * *

이튿날, 방 안 책상에 홀로 앉아 도윤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현 시점에서 아직 그 사람은 대학을 입학하기 전, 그러니까 현재 고등학생일 확률이 높다.’

의사소통은 문제없다.

원어민 과외를 통해 현지인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았으니까.

길을 헤맬 걱정 또한 없다.

호식이 회사에서 미국 지리에 빠삭한 인물을 이미 섭외해 놓았기 때문이다.

항공편이나 교통도 마찬가지.

‘문제는 총알, 그리고…….’

부모님이 남긴 유산이 약 30억.

거기에 호식이 ‘너의 가치’라며 건네준 돈이 20억이다.

총 50억에 이르는, 이제 갓 20대 중반의 사법연수생에게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금액.

그 사람이 이 돈의 일부만 투자를 받을지, 아니면 투자 자체를 아예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도윤의 기억으로 그 사람은 굳이 투자를 받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자본을 축적하고 있을 터였다.

‘총알이 모자란 게 문제지, 넘치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까.’

도윤이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이 인종차별과는 전혀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먼 훗날 그 사람의 배우자, 그 사람이 하는 행동들만 봐도 그 정도쯤은 알 수 있었다.

아마, 젊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전박대(門前薄待)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공동 창업자 자리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지분의 5퍼센트. 아니, 단 1퍼센트만이라도 좋다. 그 사람과 친분, 그 조그마한 끈만 연결할 수 있다면…….’

도윤에게 부(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자본이 많을수록 도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대는 대한민국 10대 기업 중 하나라는 대(大)명성 그룹이다.

수십 년간 곳간에 가득 쌓아 놓은 명성의 자본을, 똑같은 자본으로 무너뜨린다?

매우 어렵고도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안팎으로 두드려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

“목적지는… 미국 뉴햄프셔(New Hampshire) 주.”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3일 뒤,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 북동부의 뉴햄프셔 주.

스키 관광산업이 특히 발달해 있으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주 표어로 더 유명한 그 도시로 출국할 것이다.

“반드시…….”

도윤이 힘주어 주먹을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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