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을 초임지로 발령받는다는 것은 신임 검사들에게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초임 검사들은 시골검사, 쉽게 말해 지방으로 발령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대한민국 검찰 톱 쓰리라 불리는 3곳에 근무하는 검사를 가리켜 귀족검사라고 부른다.
초임 검사가 법무부나 대검으로 곧바로 발령받는 경우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고, 아주 예외적으로 극소수만이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는다.
엘리트로만 이루어진 초임 검사들 중에서도 최상위권.
전국 상위 1퍼센트 중의 최상위 1퍼센트.
1퍼센트의 1퍼센트라 불리는, 소위 말하는 초엘리트들만이 꿈의 초임지, 서울중앙지검에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서울중앙지검에 올해는 초임 검사가 무려 2명이나 배치될 예정이다.
* * *
“올해는 신임이 2명이나 된다며?”
180cm가 넘는 큰 키임에도 불구하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마른 체구 탓에 유약해 보이는 남자가 묻자, 옆에서 걷고 있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이번 신임들은 빽이 좋은가 봐?”
앞의 남자와 반대로 작은 체구에 상당히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남자가 비아냥거렸다.
“에이, 여기가 뭐 빽만 좋다고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실력은 베이스로 깔고 있어야지.”
“말은 바로 해야지. 빽이 80, 실력이 20.”
“용민이 너는 왜 이렇게 배배 꼬였냐?”
날카로운 인상의 용민이 키 큰 남자를 힐긋 흘겨보고는 말한다.
“김재욱, 니가 물러 터진 거겠지.”
“하아~ 벌써부터 걱정이다. 이번에 형사3부 티오가 하나 빠진다며? 신임 중에 한 명은 무조건 그쪽으로 가는 거 아니야?”
“…….”
“어떤 불쌍한 놈일까? 이놈의 괴롭힘에 시달릴 놈은.”
“오자마자 지게 나른다고 뭐 빠질 건데, 내가 괴롭힐 시간이나 있을까?”
“하긴…….”
박용민의 말에 김재욱이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임 검사들은 대게 스스로 사건을 기획하여 수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초임 검사가 발령 후 가장 먼저 맡는 일은 경찰에서 넘어온 사건을 법원에 넘기는 일이다.
마치 등짐을 져 나르는 지게꾼과 흡사해 ‘지게를 나른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문제는 경찰에서 넘어오는 사건들이 전체 보유 사건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업무량에, 악마 같은 맞선임까지… 나 같으면 자살한다.”
“차라리 앞에서 악마가 낫지. 나는 누구처럼 남 안 보이는 데서 사람 쓰레기 만들지는 않는다.”
“뭐야!?”
박용민의 말에 순간 김재욱의 새하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너, 설마 아직도 그 일 때문에 꽁해 있냐?”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박용민을 보며 김재욱이 헛웃음을 터뜨린다.
“와, 1년도 더 지난 일을 아직도…….”
“그게 시간이 지난다고 잊힐 일이냐!? 니놈 새끼가 입 한 번 잘못 놀려서!”
박용민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루아침에 룸돌이가 되었는데, 뭐, 아직도 꽁해 있어? 그 일 때문에 떡검이니, 섹검이니! 그거 덮으려고 고생한 거 생각하면 니 새끼를 아주 그냥…….”
“워, 워. 진정, 진정해. 우리 박프로 또 흥분하셨네.”
김재욱이 흥분하는 박용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빠르게 어깨 위로 팔을 걸쳤다.
“내가 오늘 좋은 곳으로 모실게. 쩜오급으로, 어때?”
김재욱의 말에 박용민이 멈칫한다.
“…조금 더 쓰지 그러냐?”
“야! 1년도 더 지난 일에 텐프로는 아니지! 이거 핑계로 몇 번이나 접대해 줬는데!? 검사 지갑사정 뻔한 거 잘 아는 놈이…….”
“그 지갑이 니 지갑이냐?”
박용민이 날카로운 눈을 더욱 빛내며 말을 잇는다.
“너네 장인어른 지갑이잖아.”
“아오!!!”
김재욱이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너, 이번이 마지막이다. 또 뭐, 뒷담을 깐다느니, 쓰레기라느니 개소리하면서 접대 얘기 꺼내면 그냥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박용민이 씨익 미소 지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생충 같은 새끼, 아주 건수 하나 잡아서 단물까지 쪽쪽 빨아먹네. 씨 발라먹을…….”
“설희는 잘 있으려나? 햐,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하네.”
김재욱이 욕지거리를 내뱉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용민이 자못 설렌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희는 혹시나 니가 올까 두려워 가슴이 콩닥콩닥거릴걸?”
“뭐?”
“허구한 날 예전 조폭 구속시킨 얘기나 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만 주고 다니는 진상을 누가 좋아하겠냐?”
“이 새끼, 이거 뭘 모르네. 그쪽 아가씨들이 은근히 그런 얘기 좋아한다니까?”
“그건 니 생각이고요, 이 아저씨야.”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린 김재욱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짝 하고 손뼉을 친다.
“야, 그건 그렇고 나머지 1명은 어디로 발령 낸다는데? 티오 비는 곳 없잖아? 우리 마약팀 인원이나 하나 보충 안 해 주려나?”
김재욱의 물음에 박용민이 턱을 긁적이며 대답한다.
“정원도 꽉 찬 마약팀에 잘도 인원을 주겠네.”
“그렇게 따지면 형사3부 빼고, 티오 남는 곳이 어디 있냐? 요즘 뽕쟁이들이 판을 치는데, 우리 쪽에 인원 하나 충원해 줄 수도 있지.”
“소문에 이번 신임 중에 한 명은 지검장님이 직접 데려다 쓰시겠다더라.”
“지검장님이?”
김재욱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지검장님이 신임을 끌어다 쓸 일이 뭐가 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잇던 김재욱이 순간 멈칫한다.
“설마, 그거?”
박용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우리 지검장님도 그걸 노리시는구나……!”
“민감한 사안이니만큼 보안 유지가 생명이야. 말 안 해도 알지?”
“누구 일인데, 당연하지.”
김재욱이 자못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삼촌!”
서울중앙지검 형사 제4부 부장검사실 출입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남자가 뛰어 들어온다.
“오, 영재야!”
통통한 체구를 가진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형사 제4부 부장검사 김석두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보고 싶었어요, 삼촌!”
김석두가 자신에게 와락 안겨 드는 조카, 김영재의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장하다, 장해. 집안에 내 뒤를 이을 법조계 인사가 나온 것만 해도 기특한데, 초임지가 이곳 서울중앙지검이라니! 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김석두를 보며 김영재가 자못 부끄럽다는 듯 대답한다.
“에이, 여길 뭐 제 실력으로 온 건가요? 다 삼촌이 힘써 주셔서 올 수 있었던 거지.”
김영재의 말에 김석두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허헛, 녀석. 삼촌이 니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끗발이 좋지가 않아요. 다 니가 잘해서 온 거지, 삼촌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에이, 제가 수석도 아닌데요, 뭘…….”
김영재가 말끝을 흐리자 연신 머리를 쓰다듬던 김석두가 이제 생각났다는 듯 말한다.
“아! 그러고 보니 수석인 친구도 여기 발령이구나? 왜 같이 안 왔어?”
김석두의 물음에 김영재가 잠시 멈칫한다.
고개를 숙인 김영재의 얼굴 위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진다.
“그게, 같이 데려오고 싶었는데 잘 안 됐네요.”
“응?”
김석두가 고개를 갸웃한다.
“잘 안 돼? 그게 무슨 말이냐?”
김영재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한다.
“친해지고 싶었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고졸 출신인데, 워낙 주관이 뚜렷한 친구라…….”
“…뭐라고?”
김석두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잇는다.
“그러니까, 머리 똑똑한 거 하나 믿고 가방끈 짧은 콤플렉스를 동기들한테나 푸는 못되 처먹은 놈이다?”
“에이, 아니에요, 삼촌. 그냥 서로 성격이 안 맞는 거죠. 세상 모든 사람들하고 성격이 다 맞을 순 없잖아요.”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김영재를 대견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김석두가 자못 표정을 굳힌다.
“영재야, 그렇게 동기 감싸 줄 필요 없다. 정치판만큼이나 더러운 곳이 이쪽 바닥이야. 너처럼 착한 애들이 그런 놈들한테 잡아먹히는 거야.”
“정말 아닌데…….”
고개를 숙인 채 말끝을 흐리던 김영재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이놈을 어떻게 골려 줄까…….”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김석두가 손가락을 탁 하고 튕긴다.
“모처럼 부장들끼리 술 한잔해야겠네. 지게꾼으로 부려 먹으면서 깡치사건들만 던져 줘야겠어.”
“깡치사건이요?”
“고생은 뭐 빠지게 하면서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사건들 말이야. 경찰 쪽에서 넘어오는 사건들이 특히 그런 게 많거든. 공도 저쪽에서 가져가고.”
“아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김영재가 순간 침울한 표정을 짓는다.
“삼촌, 괜히 저 때문에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 단지 성격이 안 맞을 뿐이지, 삼촌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애는 아니에요.”
“영재야, 아까도 말했지만 그런 착해 빠진 성격은 이 바닥에서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 약하면 잡아먹히는 게 이쪽 바닥이야.”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김영재를 보며 김석두가 말을 잇는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이쪽 바닥이라고, 약한 놈은 공직 생활 평생을 지방에서만 전전긍긍하다가 끝난다고.”
“…….”
“그런데, 그 말은 틀렸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게 이쪽 바닥이야. 공 가로채기니, 흑색선전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국 살아남는 놈이 진정한 승자라고.”
“…….”
“그런 의미에서 니 착해 빠진 마음가짐은 이쪽 생활에 하등 쓸모가 없어요. 삼촌 말 무슨 뜻인지 잘 알지?”
부드럽게 묻는 김석두를 보며 김영재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삼촌!”
“우리 조카, 대답 시원해서 좋다! 첫 발령 기념으로 삼촌이 근사한 저녁을 대접하고 싶은데, 괜찮지?”
“감사합니다!”
우렁차게 대답하는 김영재를 보며 김석두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헛, 녀석.”
* * *
그 시각, 서울중앙지검 소회의실.
테이블에 홀로 앉은 도윤이 골똘히 상념에 빠져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검장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전체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
아니, 실질적인 힘으로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관장의 힘이 그 정도인데, 해당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명성을 무너뜨리기에, 이보다 더 최적의 장소가 있을까?
도윤은 마치 신이 자신을 도와주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관건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가다.’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장소인 만큼 유명세를 떨치기에도 좋은 곳이다.
검사라고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검찰 내에서도 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내 말 한마디에 주변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관문은…….’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힐긋 소회의실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본다.
잠시 후, 도윤이 불끈 주먹을 말아 쥐었을 때 소회의실 출입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그리고…….
“……!”
지금 막 소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는 인물을 확인한 도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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