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잡는 회귀검사-35화 (35/174)

35화 타협?

“부장검사님!”

도윤이 반가운 얼굴로 소리치자 지금 막 소회의실에 들어선 인물, 윤만석 검사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잘 지냈지? 이제는 강프로인가?”

“아직 사무실 책상도 없는데 강프로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기쁜 얼굴로 다가간 도윤이 두 손으로 내밀어진 윤만석 검사의 손을 맞잡았다.

“초임지가 서울중앙지검이라,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하다니까?”

“자꾸 그러시면 저 얼굴 못 들고 다닙니다.”

“하하하, 그만하지. 오랜만에 보는 후배님 덕분에 잠시 흥분했네.”

윤만석 검사가 한차례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도윤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그런데 부장검사님이 여기는 어떻게……?”

“잘생긴 총각검사 하나가 이쪽에서 놀고 있다는 소문이 벌써 지검 구석구석까지 다 퍼져 있던데?”

“그게 무슨…….”

“뭐, 아니면 내가 못 올 곳이라도 왔나? 아이고, 젊은 후배님 마음은 생각도 안 하고, 나만 반가웠네, 나만 주책이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잠시 말끝을 흐리던 도윤이 이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짓궂어지셨습니다.”

윤만석 검사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몇 달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을 겪다 보니, 나도 변하긴 변하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도윤이 자못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그런 도윤을 윤만석 검사가 입을 다문 채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윤만석 검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번에 아마 나도 이곳,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을 받을 것 같네.”

“그게 정말……!”

다시 환해진 표정으로 말을 잇던 도윤이 멈칫한다.

눈앞의 사람은 분명 발령을 ‘받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존의 직원들에 대한 상반기 정기 인사 발령은 도윤을 포함한 신임 인사 발령과 함께 모두 끝이 났다.

그 때문에 윤만석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발령을 받았다.’라고 말했어야 옳다.

도윤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눈치챈 윤만석 검사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마. 원래대로라면 벌써 발령이 났어야 정상이지만, 내가 발령을 조금만 미뤄 달라고 부탁한 거니까.”

“발령을… 미뤄요?”

윤만석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상 발령 자체는 모두 난 상태야. 단지…….”

“…….”

“내가 맡은 사건의 스케일이 워낙 크다 보니, 중간에 다른 부장검사한테 인계하는 것보다 내가 마무리 짓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부산 관할 사건을 서울까지 들고 와서 처리할 순 없잖아?”

“부장검사님이 맡은 사건이라면…….”

무언가를 떠올린 도윤이 인상을 찌푸린다.

“무슨 사건인지 얘기도 안 했는데, 왜 니가 똥 씹은 표정이냐?”

“그 사건은, 이미 박봉준 검사가 맡아서 처리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도윤의 말에 순간 윤만석 검사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 있었어?”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났는데…….”

윤만석 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뭐라 할 말이 없군.”

“부장검사님이 맡기로 하신 겁니까? 그러기에는…….”

“못 할 건 뭐야? 내가 죄지은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가 떳떳한데.”

“…….”

“대한민국 검사가 언론에 휘둘려서야 제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겠나?”

“하지만…….”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끝을 흐리는 도윤을 보며 윤만석이 피식 미소 지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네.”

“부장검사님…….”

“아, 오해는 하지 마라. 봉준이한테 사건 전부를 넘겨줬다는 말은 아니니까.”

“예?”

“마약 말고도, 하나 더 있잖아.”

“아……!”

도윤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장기밀매!”

윤만석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이유야. 내가 아직까지 부산에 남아 있는…….”

“그 말씀은…….”

윤만석 검사가 침중한 얼굴로 말한다.

“배후를 밝혀내지 못했어.”

“역시…….”

도윤도 침중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수사에 진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야. 지난 몇 개월간 길림성에서 밀입국한 조선족들뿐만 아니라, 놈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결탁한 국내 조폭들까지 대부분 잡아들일 수 있었어.”

“길림성에서 밀입국한 조선족들이라구요?”

도윤이 놀라 두 눈을 부릅뜨며 반문했다.

벌써부터 조선족들 얘기가 나오기에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

정부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일 뿐더러,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폐쇄적이었다.

서울이나 특정 도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지나가는 외국인을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신기하게 쳐다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 한국에 외국인이 밀입국했다는 말도 놀라운데, 장기밀매 조선족이라니.

도윤이 충격으로 입을 다물었다.

“…….”

“나도 놀라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놈들에게 소스를 제공한, 가장 중요한 배후를 밝혀내지 못했다는 거야.”

“…….”

“대형병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짐작만 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말이야.”

답답한지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친 윤만석 검사가 계속 말한다.

“그 독종 놈들, 연결 고리에 대한 증거 자체를 전혀 남기지 않았거든.”

“…….”

“그뿐만이 아니야. 이 건으로 들어가면 최소 수년에서 수십 년은 빵에서 썩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느 하나 입을 여는 놈이 없었어. 형량으로 쇼부를 쳐도 소용없었지. 마치 말하면 죽기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도윤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사실이다.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나 집단이라면 조직폭력배 몇 찜 쪄 먹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현장을 비추는 CCTV는 바라지도 않으니, 놈들이 사용한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아쉽다는 듯 말끝을 흐리는 윤만석 검사를 보며 도윤이 순간 멈칫한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도윤이 곧바로 입을 열었다.

“부장검사님.”

“어, 왜. 뭔가 떠오르는 게 있나?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

순간 옅게 얼굴이 붉어진 윤만석 검사가 ‘흠흠’ 하고 짧게 헛기침한다.

“커흠, 너무 흥분해서 그만…….”

“…….”

“그래서, 뭐라고?”

윤만석 검사가 도윤에게 은근히 물어 온다.

“그 연결 고리, 아마 제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덥썩!

도윤이 말을 마치자마자 윤만석 검사가 두 손으로 도윤의 양어깨 위에 손을 올린다.

윤만석 검사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느꼈을까?

도윤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난 말이야.”

뜨거운 눈빛으로 도윤을 바라보던 윤만석 검사가 이윽고 말을 잇는다.

“니가 정말 좋아.”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도윤이었다.

* * *

“여어, 영재 형!”

흡연을 위해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던 김영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칫한다.

“……!”

다가오는 인물의 얼굴을 확인한 김영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오성춘이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 영재 형, 이제 검사라고 테가 산다, 이야!”

짧게 휘파람을 분 오성춘이 김영재를 위아래로 흘겨본다.

그런 오성춘을 보며 김영재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여, 여기는 어쩐 일이세… 요?”

단둘이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아직도 오성춘이 불편한 김영재가 연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아니, 형. 우리 이제 그냥 편하게 형, 동생 하기로 했잖아. 편하게 부르라니까? 그냥 친동생이다~ 생각하고 말이야.”

“…그, 그래. 성춘아,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우리 영재 형 정식으로 검사님 되는 날인데 동생으로서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말을 마친 오성춘이 품에서 얄팍한 흰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넣어 둬, 형.”

“아니, 이런 건…….”

“에헤이~”

급히 손사래 치는 김영재의 품에 억지로 봉투를 욱여넣은 오성춘이 씨익 웃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형.”

“…응?”

“아, 얘기 한번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내가 이쪽 근처에다 사무실을 하나 차렸거든.”

“……!”

눈을 동그랗게 뜨는 김영재를 보며 오성춘이 말을 잇는다.

“심심하면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내 집이다~ 생각하고 말이야.”

“…….”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조금 있으면 한 식구 될 거잖아?”

씨익 웃은 오성춘이 김영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는 건물 내부를 향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 어디 가는데!?”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을까?

화들짝 놀란 김영재가 오성춘을 다급히 불렀다.

“형.”

오성춘의 낮은 목소리에 김영재가 움찔한다.

“어, 어……?”

고개만 살짝 뒤로 돌린 오성춘이 으르렁거린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일일이 따져 묻지 마. 궁금해하지도 말고.”

“…….”

“형이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같은 식구가 되어도, 우리 관계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

“그, 그래.”

더듬더듬 대답하는 김영재를 바라보던 오성춘이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에이, 영재 형.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뭘 쫄고 그래. 한 식구가 어디 가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네. 같이 갈까?”

“어… 어?”

이리저리 돌변하는 오성춘의 모습에 김영재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김영재를 보며 오성춘이 말을 잇는다.

“가자, 형이 안내해 줘.”

“어딜……?”

오성춘이 씨익 웃으며 말한다.

“아직 인사할 사람이 한 명 더 남았잖아?”

* * *

‘발령식 할 때까지 하루 종일 대기만 시킬 작정인가.’

윤만석마저 떠나가고 홀로 회의실에 남아 있던 도윤이 쩍 하고 하품을 했다.

‘1시간 정도 남았나……?’

힐긋 시계를 바라보던 도윤이 순간 귀를 쫑긋했다.

출입문 밖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벌컥 하고 출입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장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인물을 발견한 도윤이 침음을 삼켰다.

“…오성춘.”

“오, 영재 형 말대로 여기 있네?”

오성춘이 쾌활한 목소리로 도윤에게 다가간다.

“축하해, 강 수석. 아니, 이제 강 검사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하하.”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잠시 바라보던 오성춘이 말을 잇는다.

“니가 날 싫어한다는 것 알아. 내가 초면부터 말실수를 했으니 당연한 거겠지.”

“…….”

“그때 일을 이 자리에서 사과하고 싶어서. 내 사과, 받아줄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순간 눈썹을 꿈틀한 오성춘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한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잖아. 연수생 생활 때 봐서 알겠지만, 나는 인재에 대한 욕심이 상당히 많거든.”

“…….”

“내 사람이 돼 줘라. 당장 니가 원한다면 명성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니가 검사가 하고 싶다면 퇴직한 뒤 그 자리, 만들어 줄 수 있어.”

“…….”

“너도 알다시피 변호사 수만 시대잖아. 앞으로 더 심해질 거고. 개고생해서 겨우 사시 패스했더니 월급 걱정을 해야 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도윤을 보며 오성춘아 빠르게 말을 잇는다.

“돈이면 돈, 여자면 여자, 출세까지. 전부 내가 다 책임지지. 내 사람이 된다는 거에 거부감이 든다? 그럼 필요한 일 있을 때 서로 손을 빌려주는 비즈니스 관계도 좋아. 수평적인 관계 말이야.”

“…….”

이어지는 오성춘의 말에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김영재가 눈을 크게 떴다.

김영재에게 오성춘의 저런 저자세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도윤의 대답을 기다리기를 잠시.

오성춘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이마저도 거절하면…….”

“거절하면?”

“앞으로의 검사 생활,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거야.”

도윤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오성춘이 빠르게 말을 잇는다.

“그리고… 여동생도 하나 있잖아? 엄마, 아빠도 없는데 그 여동생 대학도 보내고, 시집도 보내야지. 아무리 검사라도 요즘 외벌이는 힘들다?”

순간 도윤의 속에서 욱하고 무언가 올라온다.

곧바로 발끈하려던 도윤이 갑작스레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보통은채찍 다음에 당근이던데, 말이지.’

“뭐가 우습지?”

인상을 찡그리며 묻는 오성춘을 잠시 바라보던 도윤이 오른손을 내민다.

“……?”

오성춘이 고개를 갸웃하자 도윤이 입을 열었다.

“손, 빌려달라고 했지?”

도윤의 말에 그때서야 오성춘이 인상을 풀고 씨익 미소 지었다.

“역시, 수석은 수석이라니까. 아주 현명한 선택…….”

순간 도윤이 내민 손의 가운뎃손가락을 그대로 펼쳐 올린다.

“좆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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