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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36화 (36/174)

36화 아도사키 (1)

오성춘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 갔다.

“…빌어먹을 버러지 새끼.”

오성춘이 씹어 내뱉듯 중얼거리곤, 홱 하고 몸을 돌렸다.

“분명 욕을 들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네.”

도윤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까?

“후회할 거다.”

오성춘이 그대로 출입문을 열고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콰앙!

적막한 사무실 분위기에 김영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자 도윤이 입을 열었다.

“김영재.”

“어… 어?”

더듬더듬 대답하는 김영재를 향해 도윤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김영재가 움찔 몸을 떨었다.

차마 도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어, 바닥을 향해 시선을 내리깔고 있자, 도윤이 말한다.

“오성춘이 무섭나?”

순간 김영재의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치솟아 오른다.

“뭐라고……!”

발딱 고개를 쳐든 김영재가 도윤과 시선을 마주한다.

그런 김영재를 보며 도윤이 다시 한 번 묻는다.

“오성춘이 무섭냐고 물었다.”

“강도윤,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거냐?”

눈을 치켜뜨는 김영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윤이 말을 잇는다.

“솔직히 나는 니가 왜 명성이 아닌, 검사를 택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아니, 검사로 직책만 바뀔 뿐, 이미 명성의 하수인일지도 모르지.”

“개수작을……!”

도윤의 말에 발끈하려던 김영재가 멈칫한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김영재가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이간질을 하시겠다?”

김영재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기며 말을 잇는다.

“알량한 대가리 하나 믿고 잔머리 굴릴 생각 하지 마라. 그따위 개수작에 당할 내가 아니니까.”

김영재가 도윤의 두 눈을 정면에서 응시하며 계속 말한다.

“내가 오성춘을 두려워하든, 명성의 하수인이 되든, 그런 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김영재가 손가락으로 도윤을 가리켰다.

“앞으로의 보잘것없을 니 인생이지. 성적이 조금 앞선 걸로 깝치지 말란 말이다.”

“…….”

“집안이 대단한 것도, 특별한 줄이 있는 것도 아닌 니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바로 지금부터, 내가 너와 나의 격차를 보여 줄게.”

말을 마친 김영재를 도윤이 빤히 바라봤다.

그런 도윤을 향해 김영재도 지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묘한 대치 상황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이윽고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내 코가 석 자인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김영재가 코웃음을 쳤다.

“하, 이제야 주제 파악을…….”

“김영재.”

“……?”

“대한민국 검사 가오 상할 일은 하지 말자.”

“그게 무슨…….”

“그러려고 엉덩이에 땀띠 나도록 독서실 구석에 처박혀서 사시 공부했던 것, 아니잖아?”

이어지는 도윤의 말에 김영재가 입을 다물었다.

힐긋 시계를 확인한 도윤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영재를 지나쳐 가며 도윤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툭 하고 쳤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입사 동기.”

말을 마친 도윤이 그대로 소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김영재가 한참이나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 * *

도윤의 검사 임용식이 끝난 지도 벌써 2개월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전국에 있는 영화관에서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고 있던 국내 작품이 대박을 치고 있었다.

순수 제작비가 여타 작품들에 비해 10분의 1수준도 안 됨에도, 전국 관객 수 410만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

각종 국내 영화제에서 대상을 휩쓸, 켄터키치킨으로 유명한 영화 ‘집으로’.

‘덕분에 현실판 역갑질도 떠올랐고 말이야.’

오랜만에 단비와 영화를 보고 영화관을 빠져나오던 도윤이 순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왜 갑자기 웃어?”

단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어? 아니, 갑자기 재미있는 일이 떠올라서.”

“재미있는 일? 뭔데, 뭔데?”

도윤의 말에 단비가 눈을 반짝였다.

“너, 그런데 이렇게 맹탕 놀고만 있어도 되냐? 내일모레 대학 가야지?”

“주말에는 원래 스트레스도 풀어 주고 그러는 거야! 그리고 나 공부 잘하거든!?”

단비가 입을 삐죽 내밀며 대답했다.

“하긴…….”

단비의 성적을 떠올린 도윤이 수긍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능력으로 무장한 자신과 달리, 단비는 본인의 능력만으로 전교 최상위권에서 노는 수재였으니까.

“그래서, 재미있는 일이 뭔데?”

“뭐, 방금 본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라고나 할까?”

“비하인드 스토리?”

고개를 끄덕인 도윤이 말한다.

“상품 이름에서는 정이 넘치는데, 실제로는 엄청 야박했다고나 할까?”

단비가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오빠, 나 답답한 거 진짜 못 참는 거 알지? 빨리 말 안 할 거야!?”

빼액 소리를 지르는 단비를 바라보며 옅게 웃은 도윤이 말을 잇는다.

“이 영화,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을 것 같아?”

“응? 제작비?”

잠시 생각하던 단비가 곧바로 대답한다.

“얼마 안 들었을 것 같은데? 특별히 이름 있는 배우가 나왔던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할머니랑 꼬마… 하나였잖아.”

말을 잇던 단비의 목소리에 조금 물기가 끼었다.

영화를 보며 아마 자신을 보는 듯했으리라.

그런 단비를 보며 도윤이 빠르게 말을 잇는다.

“그래. 말 그대로 초저예산. 없는 돈 어떻게든 아껴 보려고 제작사에서 강구해 낸 한 가지 방안이, 협찬이었거든.”

“협찬?”

단비의 반문에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 장면에 초코파이가 나오잖아. 제작사에서 그 부분에 대한 협찬을 부탁했는데, 초코파이를 만든 회사에서 들은 척도 안 하고 무시를 했거든.”

“무시? 협찬을 안 해 주겠다고 한 거야?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보는데, 대체 왜?”

단비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 단비를 보며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회사에서 이렇게까지 영화가 흥행할 거라고 생각 못 했으니까. 심지어 제작사에서도 이 정도 반응은 예상 못 했을걸?”

“아…….”

단비가 이해했다는 듯 감탄사를 터뜨렸다.

“엄청난 CG를 쓰는 것도, 대단한 스타 배우를 쓰는 것도 아닌, 기껏해야 시골집 배경에 주인공으로 할머니랑 어린아이가 나오는 영화잖아. 이런 성적 자체가 기적이지.”

“이해했어. 그런데 그게 왜 재미있는 일이야?”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거든.”

도윤의 말에 단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끝난 게 아니라니?”

“영화가 대박을 치니까, 이제는 거꾸로 회사에서 제작사 바짓가랑이 붙들고 애원을 하는 거야. 제발 영화 장면으로 홍보 좀 하게 해 달라고.”

“그런!”

도윤이 웃으며 말을 잇는다.

“재미있잖아? 제작사 입장에서 얼마나 사이다… 아니, 통쾌했을까?”

“…오빠도 한 번 씩 보면 독한 면이 있는 것 같아.”

“뭐? 푸핫.”

도윤이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 * *

집으로 돌아온 도윤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바로 어제, 마크로부터 초기 자본으로 200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해외 계좌로 송금해 준 참이었다.

당분간은 돈이 더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함께 했다.

남아 있는 돈은 약 30억.

물론, 도윤은 이 돈을 그냥 놀리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명성을 잡을 힘과 자본, 그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두 번째 투자.’

속으로 중얼거린 도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야 수십 가지는 떠오른다.

‘하지만…….’

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히 가지고 있는 돈을 불리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저 엄청난 초거대 기업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자본은 그저 부차적인 가치일 뿐이다.

‘생각해 둔 게 하나 더 있긴 하니까.’

도윤이 힐긋 벽에 걸린 달력의 날짜를 확인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우우웅, 우우웅.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다.

벌떡 하고 침대에서 일어난 도윤이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든다.

그리고…….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발신자를 확인한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곧바로 전화를 받아 든 도윤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박판섭?”

“전화 받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데? 애인 전화라도 기다리고 있었나?”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런 연락도 없길래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목소리 들어 보니 잘 지내나 보네.”

“뭐, 누가 죽을 정도로 고생을 시켜서 힘들긴 했지.”

박판섭의 말에 도윤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아봤나?”

“아무렴. 이제야 정식으로 영감님이 되신 귀하신 분의 첫 부탁인데.”

옅게 미소 지은 도윤이 묻는다.

“감사 인사는 나중에 따로 하지. 어떻게 되었지?”

도윤의 말에 수화기 너머로 잠시 종이를 팔락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박판섭이 입을 열었다.

“먼저 이 얘기부터 해야겠군. 망치파 내부에는 전달책을 도맡아 하는 소규모 조직이 따로 있다.”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조직 안의 조직이라고?”

“그래. 어차피 망치파의 하부 조직 개념이긴 하지만, 워낙 머릿수가 많다 보니 총책임자를 두고, 따로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식이야.”

“…….”

“너도 알다시피, 일반적으로 전달이 주목적인 곳은 점조직 형태가 많아. 조직원들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해. 아니, 조직원들이라 부르기도 민망하군.”

“…….”

“특별히 기술을 요하는 일도 아닐 뿐더러, 통장이나 물건만 전달하는 단순한 일이기에 시커먼 덩치들이 하는 것보다는, 어린아이나 노인네가 대부분 도맡아 하니까 말이야.”

“…그런데 망치파는 그게 아니다?”

도윤의 물음에 박판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도사키를 아나?”

“줄도박?”

“역시 아는군.”

얘기가 쉽겠다는 듯 박판섭이 빠르게 말을 잇는다.

“뒤에서 누가 봐주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망치파는 다른 조직들에 비해 행동이 상당히 대담해. 걸려도 상관없다는 식이지. 일부 조직원들이 도시 안에 버젓이 하우스(도박장)를 차리고 판을 벌일 정도로 말이야.”

잠시 혀로 입술을 핥은 박판섭이 말을 잇는다.

“망치파는, 거기 있는 꾼들이 전달책 역할을 직접 한다.”

“뭐라고?”

도윤이 더욱더 크게 눈을 떴다.

도박 전과만 해도 몇 개씩 되는 놈들이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그 정도 단순한 일을 도맡아 한다니?

망치파의 규모를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다.

“주 전달지가 그만큼 보안을 요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겠지. 믿을 수 있는 내부 조직원들에게 맡겨야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이 없을 테니까.”

“…….”

“그렇다고 마개나 상치기, 쩐주들이 그 일을 하지는 않아. 주로 무수리들이 일을 도맡아 하지. 손이 없으면 간혹 병풍들이 하기도 하고.”

도박장에서 마개는 패를 돌리는 사람이다.

상치기는 판돈을 수거하거나 분배하는 사람, 전주는 말 그대로 도박꾼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다.

세 사람 다 도박판 자체를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다른 곳에 손을 뻗칠 틈이 없다.

그래서 피로회복제나 라면, 담배 심부름을 대신 해 주는 박카스나 무수리, 도박장 내부 질서를 유지하는 병풍들이 이 전달책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도박장을 캐면 뒤에 누가 버티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박판섭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장소는 물론 알고 있겠지?”

“나 박판섭이야.”

이내 도윤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들어가는 방법은?”

“끽해야 섯다나 카드놀이나 하던 놈들이, 요즘은 다른 쪽에 아주 눈에 불을 키고 있거든. 창고장들이 꾼들 모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서, 들어가는 건 쉬울 거야.”

창고장은 도박장으로 쓰일 장소를 물색하고, 꾼들을 모집하는 놈들이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도윤이 순간 눈을 반짝인다.

“설마…….”

“우리 머리 좋은 영감님이, 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네?”

“나도 총알 좀 준비해야겠네.”

도윤의 미소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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