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아도사키 (2)
상당히 커다란 건물 내부.
어림잡아 100평은 훌쩍 넘어 보이는 그 건물 안은 담배 연기로 가득했다.
매캐한 연기 사이를 뚫고 찢어지는 듯한 하이 톤 여성의 고음이 들려온다.
“죽어. 아, 정말!”
이제 갓 사십 줄에 들어섰을까?
잠옷인지 겉옷인지 모를 얇은 원피스 한 장만 입은, 글래머스러한 몸매가 유독 돋보이는 여자.
중년의 미(美)가 더해져 상당히 요염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그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화투 패를 팍 하고 집어던졌다.
“크크크, 정 마담. 오늘도 잘 안 풀리나 봐? 뭣하면 내가 대신 따다 줘?”
“내가 여기서는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대머리 남자의 말에, 정 마담이라 불린 여자가 팍 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나도 뒤져. 오늘 끗발 더럽게 안 받네, 젠장.”
이내 여자와 같은 테이블 좌측에 앉아 있던 안경 쓴 남자가 쥐고 있던 패를 툭하고 집어던졌다.
여자의 우측에 앉아 있는 남자는 이미 패를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턱수염을 지저분하게 길러, 마치 산적 같은 인상의 40대 남자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오늘 패가 아주 죽여주는구만. 우리 정 여사 몸매처럼 말이야!”
사내의 음흉한 눈빛에 여자가 몸서리쳤다.
“이거 엄연히 성희롱이야! 징그러운 눈깔 저리 안 치워!?”
“에이, 그러지 말고, 정 여사. 이제 여기 온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친목도 다질 겸 따로 술 한잔하자니까? 그럼 내 특별히 정 여사한테 딴 돈은 전부 돌려줄게.”
“됐거든요!”
여자가 짐짓 빈정이 상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빡빡이 아저씨, 나 먼저 간다!”
옆 테이블에 있던 대머리 사내가 일행이었던지, 여자가 대머리 사내를 향해 앙칼지게 소리쳤다.
순간 화들짝 놀란 대머리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니, 같이 가야지! 나 아직 판도 안 깨졌다고!”
“아, 몰라! 판돈도 다 잃었고, 오늘은 나 먼저 갈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말을 마친 여자가 건물 구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저, 저, 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손가락질하던 대머리 사내가 이내 팍 하고 화투 패를 집어 던졌다.
“죽소. 나도 오늘은 이만해야겠네.”
“거, 김 사장. 따고 튀기 있소? 끝을 봐야지!”
대머리 사내 좌측 편에 앉아 있던, 마치 술에 취한 듯 피부 전체가 유독 불그스름한 50대 남자가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 작은 거 한 장도 못 먹었구만, 이게 딴 거요?”
“딴 건 딴 거지! 패 돌릴라니까, 싸게 싸게 앉으라고!”
“에이 참! 오늘은 좀 봐주쇼! 저 여편네, 내가 데리고 왔는데 끝까지 책임은 져 줘야 할 것 아니오?”
말을 마친 대머리 사내가 품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움켜쥐어, 테이블 위에 탁 하고 올려놓았다.
“오늘은 이걸로 소주나 한잔들 하시오. 내일 합시다, 내일!”
“아, 김 사장!”
빼액 하고 소리치는 남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머리 사내가 여자가 걸어간 방향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대머리 사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불그스름한 피부의 사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한 모습으로 옆 테이블을 돌아본다.
순간, 불그스름한 피부의 사내와 여자가 앉아 있던 테이블의 상치기가 눈이 마주친다.
두 사람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한 명 빠지고 나니까, 흥이 깨지네. 에잇! 나도 오늘은 이만할라요.”
말을 마친 불그스름한 피부의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와 동시에 옆 테이블의 상치기도 뒤쪽을 향해 조용히 눈짓한다.
30대 초반의 젊은 사내가 바로 뒤로 다가오자, 마흔은 넘어 보이는 상치기가 싱긋 미소 짓는다.
“잠시 교대 좀 하겠습니다.”
“에헤이~ 한참 패 잘 붙고 있는데, 중간에 딜러 바뀌면 부정 탄다고. 성 실장, 이러기 있나?”
오늘따라 유난히 돈을 쓸어 담고 있는 턱수염 사내의 말에 성 실장이라 불린 남자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죄송합니다. 어지간하면 제가 처음부터 끝가지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요즘 조금 일이 있어서요.”
“하긴, 성 실장이 여기저기 테이블 옮겨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지. 단골 서비스도 좋고.”
성 실장의 말을 안경을 쓴 남자가 받았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성 실장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그때서야 턱수염 사내가 ‘흠, 흠’ 하고 헛기침을 한다.
“커흠, 뭐, 성 실장한테 섭섭한 건 아니고… 그래서, 무슨 일인지는 물어봐도 되나?”
사내의 물음에 성 실장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제 와이프가… 임신을 해서요.”
순간 테이블에 있던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묘한 침묵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무언가 할 말들은 있어 보이는데,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자 고개를 갸웃한 성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너는 실수 없이 잘 모셔.”
“예, 형님!”
성 실장의 뒤에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던 젊은 상치기가 힘 있게 대답했다.
“저… 성 실장!”
“……?”
성 실장이 의아한 얼굴로 자신을 돌아보자, 잠시 주저하던 턱수염 사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혹시 비법이라도 있나?”
순간 대머리 사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성 실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비법이요? 무슨……?”
“이거. 따로 관리받냐, 이 말이네.”
자신의 하반신을 가리키며 말하는 턱수염 사내를 보며,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성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요즘 내가 통 신통치가 않아서… 집에서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네. 따뜻한 아침밥 먹어 본 지가 언제인지…….”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턱수염 사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도 입을 다문 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사내들을 잠시 둘러보던 성 실장이 옅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뭐, 뭐? 뭔 플라스틱 효과?”
“무식하긴! 플라시보 효과라잖아.”
안경을 쓴 남자의 말에 턱수염 사내가 팍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성 실장, 나한테 대학물 먹은 거 자랑하는 거야? 어려운 말 쓰지 말고 쉽게 말해.”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의사의 말을 믿고 가짜 약을 꾸준히 먹었더니, 결국에는 병이 완치되었다는 말입니다.”
“…그게 요거랑 무슨 상관이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턱수염 사내가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사내를 잠시 바라보던 성 실장이 대답한다.
“믿으십시오. 자기 자신을.”
“……?”
“믿으면… 서실 겁니다.”
“…….”
성 실장의 말에 턱수염 사내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이윽고 성 실장이 홱 하고 몸을 돌린다.
“그럼…….”
성 실장이 떠난 테이블, 묘한 적막감을 깨고 안경을 쓴 남자가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결론은… 이것도 타고난 재능이란 소리군.”
사내의 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 * *
“알아봤나?”
하우스 2층에 위치한 작은 밀실.
그곳에 도착한 성 실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자, 10살을 더 많아 보이는 불그스름한 피부의 사내가 짧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한다.
“예.”
“골부인 쪽은 어때?”
이쪽 바닥에서 골부인은 매번 게임에서 돈을 잃어도, 여전히 도박에 중독되어 있는 여성을 나타내는 은어다.
“인근에서 방석방을 운영하는 마담이었습니다.”
“방석방?”
성 실장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다른 조직과 이권이 얽혀 있는 곳이라든가…….”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
소파에 몸을 묻으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톡톡 두들기던 성 실장이 말한다.
“호구 쪽은?”
“콜때기 총책(총책임자) 겸 실장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성 실장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영업하는 택시 차량이 아닌, 일반 승용차나 대포차, 렌터카를 이용해 일반 요금보다 몇 배나 되는 가격을 받아 이득을 챙기는 콜때기들.
자기과시를 위해 일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콜때기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 고객층은 유흥업소 아가씨들이다.
이쪽 일을 하다 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상들에게 시달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물장사, 아가씨장사로 벌어들인 돈을 그대로 도박에 갖다 붓는다? 진정 인생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인데?”
성 실장이 재미있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꼬라박는 액수가 제법 크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뭐, 가끔 이런 대호구들이 있어야 우리도 한 번씩 소고기라도 사 먹는 거지.”
불그스름한 사내의 말을 받은 성 실장이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쪽 준비는 잘되 가나?”
“차질 없이 준비 중입니다.”
“어때? 골부인이랑 호구도 관심 가질 것 같아?”
성 실장의 말에 불그스름한 인상의 사내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장을 할 겁니다. 특정 놀이에만 빠져 있는 게 아니라, 도박 종류라면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로 도박 자체에 푹 빠져 있거든요.”
“좋군.”
성 실장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창고장들한테 조금 더 신경 쓰라고 하고, 마지막까지 확실히 준비하라고 일러 둬. 특히, 니 역할이 가장 중요한 것, 알지?”
“맡겨 주십쇼.”
“믿는다. 이번 건만 잘 해결되면, 지금 내 자리, 그대로 넘겨줄 테니까.”
성 실장의 말에 불그스름한 인상의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예!”
사내가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도윤이 방 안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아, 연신 마우스를 또각거리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초록색 배경에 앙증맞은 노란색 캐릭터가 슈퍼맨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작은 창이 떠 있었다.
‘세이클럽 타키…….’
빨간색 땡땡이 두건에, 선글라스, 흰 마스크를 착용하고 담요까지 뒤집어쓴 캐릭터를 보며 추억에 빠져 있던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두 번째 투자처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단비가 깔아 놓은 메신저 프로그램을 발견하고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지나면 타키도 한물가고, 일촌 열풍이 불기 시작하겠지.’
투자처를 늘려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도윤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끝을 알고 있는 투자처에 굳이 돈을 쏟아부을 필요는 없다.
물론 한탕 장사야 되겠지만, 도윤의 목적이 자본 그 자체는 아니다.
그 이상의 가치, 자본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면 그걸로 족하다.
‘배보다 배꼽이 클 정도로 그 부수적인 가치가 어마어마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옅은 미소를 지은 도윤이 시선을 아래로 내린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휴대폰이 진동음을 내며 들썩이고 있었다.
플립, 폴더 타입의 휴대폰만 존재하던 때에 스카이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최신형 휴대폰.
IM5100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휴대폰은 출시와 동시에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국내 최초로 위로 밀어 올려 통화를 받는 슬라이드 형식의 휴대폰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발신자를 확인한 도윤이 곧바로 슬라이드를 밀어 올려 수화기에 입을 가져다 댄다.
“…박판섭?”
“여어, 어린 영감님. 옥체는 잘 보존하고 계시지?”
박판섭의 유쾌한 목소리에 도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이야?”
“뭐, 일이 꼭 있어야 전화를 하나…….”
“나 바빠.”
“…….”
도윤의 짧은 대답에 잠시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던 박판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작업장에 풀어놓은 흑장미한테서 연락이 왔다.”
순간 도윤이 멈칫했다.
“미끼… 물었다.”
이어지는 박판섭의 말에 도윤이 말없이 수화기를 붙들고 있기를 잠시.
도윤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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