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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잡는 회귀검사-38화 (38/174)

38화 아도사키 (3)

콰당!

“아이고!”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인적이 없는 폐공장 바닥에 넘어져 곡소리를 냈다.

“성 실장, 성 실장! 이러지 마, 응?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 제발…….”

“이런 사이는 니미, 확!”

성 실장 옆에 서 있던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피 묻은 각목을 휘두를 듯이 들어 올렸다.

“으이익!”

쓰러진 남자가 괴성을 터뜨리며 몸을 움츠렸다.

웅크린 몸 사이로 볼품없는 뱃살이 축 처져 있었다.

이제 오십을 갓 넘겼을까?

고생을 많이 했는지, 안 그래도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위로 남자가 더욱 울상을 짓는다.

“성 실장, 제발…….”

바닥에 납작 엎드린 남자가 애원하듯 중얼거렸다.

그런 남자를 벌레 보듯 바라보던 성 실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성 실장이 입을 열자 남자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응, 응……?”

“말해 봐.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성 실장의 말에 남자가 손바닥을 싹싹 비비며 재빨리 입을 열었다.

“성 실장, 내 비록 돈은 못 갚고 있지만, 그 정도 돈은 충분히 메꾸고도 남을 호구들을 많이 물어다 줬잖아? 이러지 말자… 응?”

“완전히 회사 사장님 스타일이로군.”

성 실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고생은 밑에 있는 직원들이 다 하는데, 일거리 물어다 줬으니 고마워해라?”

“아니, 내 말은…….”

“왜? 우리 애들 일손도 부족한데, 이쪽 인원도 좀 충원시켜 주지 그러나? 그럼 더 고마울 텐데, 박 사장.”

“그런 뜻이 아니었네, 성 실장! 제발, 제발 한 번만 나 좀 살려 줘. 응? 제발…….”

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채, 두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박 사장의 머리 위로 성 실장이 구둣발을 올려놓는다.

꾸욱.

“으윽…….”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박 사장이 신음을 삼켰다.

“버러지 새끼…….”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성 실장이 뒤를 돌아본다.

“개작두.”

“예, 형님!”

“우리 사장님 몸이 많이 무거워 보이는데, 댁으로 가시는 길 조금 가볍게 해 드려.”

순간 박 사장이 움찔 몸을 떨었다.

잔인한 미소를 입에 물은 개작두가 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찰칵’ 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날카로운 칼날이 폐공장의 흐릿한 불빛에 반사되어 번쩍인다.

“마침 내일이 수산물 시장에 꽃게 보내는 날인데, 거 잘됐네.”

개작두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고 있음에도, 박 사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선족 애들 말로다가, 우리 사장님, 작업 중에 청웅 되시는 것 아닌가 몰라.”

“잠… 잠깐만, 성 실장!”

다급히 외친 박 사장이 빠르게 기어가 성 실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게. 딱 한 번만!”

“팥 하나면 이자는 충분하겠지.”

성 실장이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개작두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우리 형님 말씀 들었지? 오른쪽? 왼쪽? 사장님이 한번 직접 골라 봐.”

“잠깐! 잠깐만! 뭐든 할게! 딱 한 번만!”

이어지는 박 사장의 말에 이윽고 성 실장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뭐든 하겠다고?”

“그래, 뭐든! 시켜만 주게!”

바들바들 떨어 대며 고함치는 박 사장을 바라보며, 성 실장이 말한다.

“박 사장,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가는 딸이 하나 있지?”

순간 박 사장의 심장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혹시 딸내미 친구가 많나?”

“…….”

“우리 애들이, 애 학교에 우르르 몰려 들어가면 어떨까? 아빠 빚 갚으라고 몇 번 소리만 쳐도 애 왕따 만드는 건 순식간이겠지?”

박 사장이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 대기 시작했다.

성 실장이 박 사장의 어깨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너무 떨지 마. 기존에 유지한 우리 사이가 있지, 설마 내가 그렇게까지 하겠어?”

“…….”

성 실장의 말에도 박 사장이 입을 다문 채 벌벌 떨어 대기만 했다.

그런 박 사장을 보며 성 실장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아참! 박 사장, 집 근처에 골목길 많더라?”

“제발… 내가 해야 할 일을 말해 주게. 제발…….”

이제는 엉엉 흐느끼듯 말하는 박 사장을 보며, 성 실장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개작두.”

“예, 형님.”

“박 사장 바지 한번 시켜 봐.”

성 실장의 말에 개작두가 고개를 갸웃한다.

“…바지요? 괜찮은 공사 건 하나 있으십니까, 형님?”

순간 개작두가 성 실장과 눈이 마주친다.

그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순간, 개작두가 급히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린다.

“…죄송합니다, 형님!”

“…….”

입을 다문 채 말없이 개작두를 바라보던 성 실장이 다시 박 사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박 사장.”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박 사장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성 실장이말을 잇는다.

“박 사장 특기 한번 잘 살려 봐. 하우스에 바지 자리 하나 줄 테니까.”

“바지라면 어떤……?”

“바람잡이. 공사는 아랫것들인 우리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테니, 박 사장은 사장 노릇이나 잘 하라고.”

“나보고… 돈을 잃어 줄 호구들을 끌어오라, 이 말인가?”

벌벌 떨며 묻는 박 사장의 말에 성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호구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

“그 말은…….”

말끝을 흐리는 박 사장을 보며 성 실장이 씨익 웃으며 중얼거린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만 하라고.”

* * *

도박장 내부 구석진 곳.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에 두고, 남자 3명과 여자 1명이 빙 둘러앉아 있다.

여전히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고 있는 정 마담이라 불리는 여자와, 그 일행인 대머리 사내.

박 사장이라 불리는 남자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젊은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싸! 또 땄다! 대박, 대박!”

대머리 사내가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잠시 후.

“에잇! 난이 2개, 5땡!”

박 사장이 힘차게 손에 쥔 패 두 장을 테이블 위로 내려치며 고함쳤다.

“좋아! 이번엔 내가…….”

“잠깐! 박 사장! 책상머리에서 손 떼!”

정 마담이 하이 톤 목소리로 소리치더니, 손에 쥔 화투 패 2장을 딱 하고 내려놓았다.

화사하게 핀 벚꽃에 멧돼지 한 마리.

땡잡이다.

“삼칠 땡잡이다!”

“씨발!”

박 사장이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호호호호호호! 오늘 웬일이래. 오늘 나랑 대머리 아저씨 무슨 날이야!?”

정 마담이 요란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사기 아니야!? 정 마담! 김 사장! 오늘 무슨 수 쓰고 있는 거 아니야!?”

박 사장의 말에 대머리 사내가 펄쩍 뛰었다.

“사기는 무슨! 이 사람이 엄한 사람 잡네!”

“참나, 맨날 잃는 사람이 뭐 새로운 일이라고…….”

정 마담도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같이 잃는 사람들끼리 치는데 왜 나만 잃냐고! 젊은 양반, 안 그래!?”

테이블에 가만히 앉아 있던 젊은 사내가 말없이 미소 지었다.

같은 시각,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칸막이용 사무실.

도박장 내부가 환하게 보이는 창가 블라인드 사이로, 그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불그스름한 얼굴의 정옥만이 입을 열었다.

“형님, 왜 굳이 박 사장을 공사판에 끼워 넣었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혹시라도 지레 겁먹은 놈이 실수라도 하면…….”

정옥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묵묵부답인 성 실장을 보며, 이내 정옥만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공사는 전문 꾼이 차질 없이 마무리할 겁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바지를 투입하겠…….”

“놔둬.”

“…….”

이윽고 성 실장이 정옥만에게 시선을 돌렸다.

“매일 오면서 따 가는 돈은 기껏해야 소주값, 아니 골부인 쪽은 오히려 돈을 전부 잃고 가지.”

“…….”

“그런 두 년놈이 갑자기 엄청난 돈을 쓸어 담았다고 생각해 봐. 골부인 쪽이야 생각 없이 좋다고 미쳐 날뛰겠지만…….”

성 실장이 대머리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라는 생물은 여자보다는 이성적이거든. 콜때기 총책까지 맡을 놈이면 눈치도 보통은 아닐 테고.”

“…….”

“하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놈이 이미 안면을 튼, 매일 하우스에 들락거리는 놈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

“더군다나 그놈이 매일같이 하우스에서 돈을 잃어 주는 놈이라면 더더욱…….”

순간 정옥만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적당히 돈을 잃어 주기만 하면 되는 일에도 두 번, 세 번 치밀하게 생각한다.

아마 이런 점이, 눈앞의 남자를 저 정도 위치까지 오르게 만들었으리라.

“…죄송합니다, 형님. 주제넘게 나섰습니다.”

힐긋 정옥만에게 시선을 돌린 성 실장이 말한다.

“미안할 것 없어. 차기 관리자가 그 정도는 충분히 궁금해할 수 있지.”

성 실장의 말에 정옥만의 얼굴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던 성 실장이 이번에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꾼은 들쥐가 하나?”

“예. 이번에 일본에서 새로 들여온 도구를 가장 잘 다뤄서, 들쥐에게 부탁했습니다. 다른 꾼들보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도구에 대한 적응도 상당히 빨랐습니다.”

“…도구? 공장목을 사용한다는 건가?”

성 실장이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도박판에서 도구는 화투를 뜻한다.

그런 화투 중에서도 공장에서 특별 제작된 것을 공장목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제작된 화투는 뒷면의 무늬가 미묘하게 다르다.

특수제작된 공장목은 일반인들이 절대 눈치챌 수 없다.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진데다, 특별한 방법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문 타짜들은 절대 공장목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은 화투, 현장목.

전문 타짜들은 이 현장목으로도 눈보다 빠른 손기술을 이용하여, 충분히 돈을 쓸어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 실장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계시다시피 전문꾼들도 새로운 공장목을 알아보는 데 최소 한 달은 걸립니다. 이번 공장목은 제작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을 뿐더러…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

“더군다나, 잃어 주기만 하면 되는 판이니까요.”

“…….”

여전히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성 실장을 보며 정옥만이 마지막 말을 잇는다.

“믿어 주십시오, 형님.”

이내 성 실장이 굳은 표정을 풀었다.

“믿어. 큰 형님이 많이 신경 쓰고 있는 일이다 보니 내가 조금 예민했나 보다.”

“…….”

성 실장이 정옥만의 어깨를 툭 하고 두드렸다.

“다른 창고장들 쪽은, 특별히 내가 신경 써야 할 곳이 있나?”

“두식이파 애들하고 연이 있는 놈이 몇몇 있는데, 크게 신경 쓰진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외 호구들을 많이 물어올 수 있는 곳들은 따로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

입을 다문 채 무언가 생각하던 성 실장이 정옥만을 보며 묻는다.

“너는 이번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

“일전에 내가 얘기해 줬지 않나. 큰 형님이 준비 중인 사업에 대해…….”

“그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정옥만이 입을 열었다.

“아마… 우리나라가 16강에만 진출해도 뿌린 돈의 수십 배, 아니 수백 배는 벌어들일 수 있을 겁니다.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대거 몰려 올테니까요.”

“반대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면 본전 찾기도 힘들다는 말이군. 꼴에 애국심이라도 있는지, 탈락하는 순간 절반 이상은 빠져나갈 테니…….”

정옥만이 부정할 수 없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1승이 목표인 한국이 16강이라…….”

성 실장이 힐긋 벽에 걸린 달력을 통해 날짜를 확인했다.

잠시 속으로 디데이를 헤아린 성실장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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